과거의 도덕과 윤리, 가치관이 전복되고 새로운 사상이 일어났다가도 사그라지는 오늘날의 현실은 한마디로 복잡계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는 주도적 시대정신을 성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이러한 시대이기 때문에 시대정신을 고찰하는 인문학의 힘이 더욱 필요하다.
『시대정신과 인문비평』은 시대정신의 비판적 고찰에 관한 책이다. 즉 비판의 힘을 무기로 가지고 있는 인문학자의 시선으로 시대정신을 바라본다. 그에 따라 1부에서는 현대 물리학의 최신 트렌드(?)라 할 수 있는 양자역학에 인문비평의 칼날을 들이댄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으로 나누어졌던 경계를 뛰어넘어 철학의 획기적 재정립까지 요구하며 시대정신으로 등장한 양자역학의 인문학적 의미에 대해 고찰한다.
2부에 이르러 저자의 인문비평은 현실 전체로 그 지평을 넓힌다. 『세월호의 비명』이라는 가상의 비극 작품을 비평하고, 문학상과 문학권력에 대해 우려하는 등 시대비평, 문화비평, 정치비평, 심리비평을 펼쳐나간다.
원자와 우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칸트 철학, 2016년 대한민국의 현실과 과거의 독재를 넘나드는 저자의 글쓰기 형식, 또한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불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불편함이 진리로 정당화된다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 책머리에 중에서
시대와 정신의 합으로서 시대정신(ZeitGeist)을 담으려고 한다. 시대정신(혹은 ‘시대정신비판’)은 시대정신에 관한 고찰이고, 특히 ‘시대정신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다. [‘비판’을 칸트적 의미에서 얘기할 때 이것은 의도되는 것을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한 ‘수사적 방법’을 지시한다. 순수이성을 명확하게 하려고 한 것이 『순수이성비판』이었고, 실천이성을 보다 명확하게 하려고 한 것이 『실천이성비판』이었다] ‘시대정신과 인문비평’은 시대정신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다. 시대정신 비판과 ‘시대정신과 인문비평’이 동전의 앞뒷면이다. 인문비평의 다른 말이 비판이다. 비판이 인문학적 비판이다.
우선 권두비평 「관찰의 예술─인식의 예술」이 ‘시대정신과 인문비평’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시대정신과 인문비평』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및 2부 상위 제목이 각각 ‘양자역학과 인문학’ 및 ‘비평 및 담론’이다. 1부는 시대정신으로서 양자역학에 관해서이다. 제목 그대로 양자역학(혹은 양자물리학)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다. 그동안 양자역학에 관해 이론물리학자들에 의한 연구서들이 꽤 있었으나, 인문학자들에 의한 연구서는 거의 없었다. 본 연구서의 1부 ‘양자역학과 인문학’은 인문학자에 의한 양자역학 연구 시도로서, 『시대정신과 인문비평』이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이다. 양자역학이 곧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양자역학은 인문학적 주요 질문들에 대해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적극적인 대답을 시도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종교적-철학적-문학·예술적 질문에 대해 양자역학은 그동안 적극적 대답을 시도했다. 양자역학에 의할 때, 우리는 별에서 왔으며, 우리는 별의 폭발로 인한 수소-탄소-질소-산소-인-황-철 등의 소산이며, 우리는 다시 별로 돌아가는 존재다. 2부 ‘비평과 담론’에 포함된 각 장들 또한 시대정신을 담으려고 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고찰(「『세월호의 비명』이라는 비극작품에 관하여」) 및 '신경숙 사태'로 촉발된 문학권력에 관한 고찰(「자립적 존재:몰락하는 시대의 문학[賞]」)이 대표적 예이다. 2부 각각의 장들의 상위개념을 정확히 ‘시대비평’-‘문화비평’-‘정치비평’-‘심리비평’으로 나눌 수 있다. 2부 각 장들이 시대정신과 얼마나 부합할지의 판단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1부의 양자역학(혹은 양자물리학)에 관한 두 꼭지의 글들이 시대정신을 얼마나 대표하는지의 평가 역시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양자역학을 인문학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1부의 양자역학을 내용으로 하는 글들은 양자역학 자체에 관한 고찰이라기보다 ‘시대정신으로서 양자역학’의 인문학적 의미에 관한 고찰이다. 빅뱅이론, 우주표준모형, 특수/일반상대성원리, 자연상수[우주상수] 등을 인문학과 연결시키는 단초를 만들려는 시도이다.
특수/일반상대성원리가 물리학을 넘어 인문학에서 유의미한 계기가 된 것 중의 하나가, ‘상대성이론’ 이래, 서로 다른 영역의 것들을 당대의 실증주의적 접촉 여부와 무관하게 말 그대로 상대적으로 고찰할 수 있게 한 점이다. 상대적 고찰의 하위개념으로 간학문적 고찰, 탈경계적 고찰, 융합적 고찰 등이 있다.
각론의 내용은 ‘거대담론 그 자체’라기보다 미시담론에 가깝다. 양자역학 분야에서도 미시담론적 글쓰기를 시도하였다(미시담론적 글쓰기가 모여 각각의 거대담론을 형성할 때 이것은 이 책의 부수적 성과가 될 것이다). 각론들에서[1부와 2부의 각각의 글들에서] ‘전체로서 부분’, 즉 전체를 담지한 ‘부분’을 말할 수 있다. 각론이 이른바 단자로서, 각론 상호 간에 소통하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전체로서 부분에는, 즉 ‘극단으로서 단자’에는 창문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여섯 개의 별[꼭지] 각각이, 혹은 여섯 개의 별이 거느린 행성들 각각이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여섯 개의 별로 구성된 별자리(권두비평을 포함하면 일곱 개의 별들로 구성된 별자리)가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불편함’을 말할 수 있다. 북두칠성 일곱 개 별의 알레고리가 국자라면, 일곱 개 꼭지의 알레고리가 불편함이다.
일곱 개 꼭지의 알레고리가 불편함이라면 이것은 성좌의 원리, 곧 우연성의 원리가 말하는 것으로서, 북두칠성의 알레고리가 ‘국자’인 것과 비동질적 유비이다. 불편함 아닌 글 있으랴? 불편함이 모여 더 큰 불편함을 보여주지 않는 글 있으랴? 극단으로서 별·별들이, 극단 중의 극단인 별자리들이 일제히 몰락을 우주적 알레고리로 얘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별자리들이, 극단 중의 극단으로서, 몰락의 세계사─몰락의 자연사─몰락의 인류사를 진리로 정당화시키는 것과 같이, 한편으로 일곱 개의 글이 모인 글자리들이 지상의 극단으로서, ‘불편함’(혹은 거북함)을 진리로 정당화시킨다. 정당화시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