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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징비록

  • 유성룡(류성룡)
  • |
  • 서해문집
  • |
  • 2014-11-20 출간
  • |
  • 320페이지
  • |
  • 153 X 224 X 18 mm /494g
  • |
  • ISBN 978897483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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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징비록》의 밑바탕이 된 《서애집》
그 속에서 찾아내 엮은 ‘종군의 기록’ 추가 수록!

‘2014 개정증보판’ 《징비록》은 기존 《징비록》(2003년 출간)의 내용상 오류를 바로잡고 편집을 새롭게 했을 뿐 아니라, 유성룡이 《징비록》을 쓰는 데 밑바탕이 된 글을 모아 ‘유성룡 종군의 기록’이란 이름으로 뒤에 덧붙였다. 그 글은 유성룡의 저작집인 《서애집》에 흩어져 있는 기록들을 옮긴이가 직접 가려 뽑고 요약, 정리한 결과물이다. ‘때에 맞춰 해야 할 일을 분야별로 아뢰는 글’, ‘평양을 수복한 뒤 세자에게 아뢰는 글’, ‘굶주리는 백성의 구원을 진정하는 글’, ‘훈련도감을 설치한 기록’, ‘이순신을 애도하는 시’ 등의 기록을 통해 독자들은 《징비록》과 임진왜란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계사년 10월, 거가가 환도하니 불타고 남은 것들만이 성안에 가득하고, 거기에 더해 전염병과 기근으로 죽은 자들이 길에 겹쳐 있으며, 동대문 밖에 쌓인 시체는 성의 높이에 맞먹을 정도였다. 그 냄새가 너무 더러워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 잡아먹어, 죽은 시신이 보이면 순식간에 가르고 베어 피와 살이 낭자했다.
- ‘유성룡 종군의 기록’ 중에서

지옥의 전쟁, ‘임진왜란’에 관한 가장 입체적인 역사 기록
《징비록》은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리 역사에 드물게 보존되어 온 기록문학이다. 그 내용은 임진왜란 이전의 국내외적 정세로부터 임진왜란의 실상, 그리고 전쟁 이후의 상황에 이르기까지를 체계적이며 종합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1592년 왜군은 조선을 침략, 파죽지세로 조선 땅을 약탈했다. 그러나 하늘을 찌를 듯하던 왜군의 기세는 평양성에서 멈췄고, 명나라 군대의 개입과 의병의 활약 그리고 이순신 등 뛰어난 장수들의 노력으로 왜군은 후퇴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에도 1597년 정유재란으로 침략은 재발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끝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으로 이어졌다.
전쟁 당사자인 조선과 일본 그리고 참전국인 명나라, 명나라와 경쟁하던 청나라 등의 전쟁 관련국들에게도 임진왜란이 끼친 영향은 대단히 컸다. 다만 전쟁의 직접 피해자인 조선 정권은 붕괴하지 않았다. 이러한 내용이 《징비록》에 동영상처럼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명재상 유성룡이 눈물과 회한으로 쓴 반성의 기록
유성룡은 임진왜란 발발 당시 포화의 한가운데서 전쟁의 참화를 실제로 겪은 고위 관리였으며, 특히 전쟁 수행 책임자 가운데 최고위직에 있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증언은 임진왜란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유성룡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징비懲毖’란 《시경》 ‘소비小毖’ 편에 나오는 문장, ‘予其懲而毖後患(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로부터 유래한다. 즉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 닥쳐올지도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 하기 위해 쓴 글이다. 이러한 집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유성룡은 자신의 잘못부터 조정 내의 분란, 나아가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등 임진왜란을 둘러싸고 발생한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그러기에 《징비록》이라는 책을 통해 수백 년 후 우리에게 임진왜란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해 줄 수 있었다.

나와 같이 보잘것없는 자가 흩어지고 무너져 내린 때를 맞아 나라를 지키는 무거운 임무를 맡아 위기를 극복하지도 못하고 쓰러지는 나라를 지키지도 못했으니, 그 죄는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다. 그럼에도 산골 전답 사이에서 쉬며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고 있으니 이 어찌 두려움을 씻어 주시는 임금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그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두렵고 부끄러워 몸을 지탱할 수조차 없다.
- 유성룡의 서문 중에서

저자소개

저자 유성룡柳成龍(1542~1607)은 중종 37년에 경상도 의성 지방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세 때 향시에 급제한 그는 21세 되던 해 퇴계 이황의 문하로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25세 되던 1566년에는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관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좌의정으로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다가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했다. 선조가 난을 피해 길을 떠나자 호종했으며, 개성에 이르러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평양에 도착해서는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했다. 서울 수복 뒤, 영의정에 복직되었다. 선조가 서울로 돌아오자 훈련도감의 제조를 맡아, 군비를 강화하고 인재를 배양했다. 그러나 정유재란 이듬해 북인들의 탄핵으로 관직을 빼앗겼고, 그 뒤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저술에 몰두했다. 나중에 조정의 부름을 여러 번 받았으나 일절 응하지 않았다. 주요 저서로 《서애집》, 《영모록》, 《징비록》 등이 있다.

도서소개

유성룡이 남긴 임진왜란의 생생한 기록!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했던 유성룡이 전란을 겪으며 적은 수기를 엮은 책이다. 저자가 온 몸으로 느낀 전란의 참화를 통해 임진왜란의 참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과, 조정 내의 분란 등 임진왜란을 둘러싸고 벌어진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서술했으며 전쟁 이전의 국내외적 정세와 전쟁 이후의 상황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지옥의 전쟁으로 불리는 임진왜란. 왜군은 파죽지세로 조선의 땅을 약탈했으나 이순신 장군과 뛰어난 장수들의 활약으로 후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재침략을 도모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침략당한 조선과 침략에 실패한 일본, 참전국인 명나라 등 전쟁은 관련된 모든 국가에 다방면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또한 사실기반의 사례를 상세하게 서술해 독자들이 전쟁의 폐해를 보다 사실감 있게 느낄 수 있도록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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