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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극장 1

혁명 극장 1

  • 힐러리 맨틀
  • |
  • 교양인
  • |
  • 2015-10-30 출간
  • |
  • 712페이지
  • |
  • 140 X 210 X 40 mm /754g
  • |
  • ISBN 9788991799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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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무시무시한 시절의 차가운 공포와 역동적 에너지,
흥분을 그대로 담아낸 매혹적인 소설.”
_ Daily Telegraph

“역사 소설을 재창조한 작가” 힐러리 맨틀이 그린 혁명의 연대기
비극으로 치닫는 젊은 혁명가들의 격정 드라마!

노벨 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두 차례 수상한 최초의 영국 작가이자 최초의 여성 작가,
역사 소설의 대가 힐러리 맨틀이 그린 놀랍도록 새로운 혁명가들의 초상!


《혁명 극장》은 “역사 소설을 재창조한 작가”로 평가받는 힐러리 맨틀의 첫 번째 역사 소설이자 대가의 탄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혁명을 이끈 세 명의 젊은 혁명가 로베스피에르, 당통, 데물랭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로베스피에르가 오랫동안 믿고 사랑했던 친구이자 혁명 동지인 데물랭과 당통을 단두대로 보내는 파국의 순간까지를 다룬다. 혁명가들이 남긴 편지와 일기, 프랑스 혁명을 다룬 소설, 역사학자들의 책까지 가능한 모든 자료를 섭렵한 뒤 집필을 시작했고 소설 초고를 쓰기 시작해 완성하기까지 18년이 걸렸다. 출간 직후 “역사 소설이라는 장르를 저만치 뛰어넘는 작품”, “1789년의 격동적 사건에 20세기의 감각을 불어넣은 작품”이라는 언론의 찬사를 받았고 [Sunday Express]가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혁명 극장》은 낡은 체제의 신봉자들과 그들에 맞서 혁명을 촉발하고 이끌고 나간 정치적 인간들의 결단과 음모, 공포 정치를 불러일으킨 극단적 이념의 정치, 중독성 강한 권력의 속성을 세밀하게 그린 빼어난 정치 소설이다. 바스티유 함락부터 루이 16세 처형, 당통 처형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과 그 모든 사건들의 원동력이 된 인간의 욕망을 당사자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때로는 그들의 입을 빌려 직접 들려준다. 이 소설은 혁명이라는 무대에 오른 지극히 인간적이면서 비범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사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엮어 나가는 작가적 역량이 돋보이는 역사 소설의 걸작으로 꼽힌다.

한국어판 전 2권 1,300페이지(200자 원고지 4,860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몰입도가 강한 작품이다. 1권은 로베스피에르, 데물랭, 당통 세 인물의 출생과 성장 과정에서 시작해 왕정 폐지와 공화정 수립을 불러온 1792년 8월 봉기까지를 다룬다. 이어서 2권에서는 유럽 동맹군의 프랑스 침공과 내란이 겹치면서 혁명이 위기를 맞고 혁명을 함께 이끌어 온 절친한 친구들이 끝내 서로 등을 돌리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기까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한국어판에는 특별히 ‘프랑스 혁명 연표’와 ‘주요 등장 인물(37명)’을 소개하는 부록을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사건 뒤에 감춰진 인간의 마음을 읽어내는 예리한 눈,
사실의 빈틈을 메우는 논리적 추리와 격렬한 상상력이 빚어낸
가장 뜨거웠던 한 시대의 드라마!


2009년 《울프 홀》에 이어 2012년 《브링 업 더 바디스》로 두 번째 맨부커상을 수상한 힐러리 맨틀은 “영어권 최고의 소설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맨부커상을 받은 두 작품이 대가의 노련함을 보여준다면, 《혁명 극장》은 대가의 탄생을 알리는,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작품이다. 낡은 세계가 무너지던 혼란의 시기에 스스로 길을 만들고자 했던 젊은이들과 그들 앞에 닥친 예기치 못한 상황을 작가는 마치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실감나게 그렸다.

“한 사람이 이전까지와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탈바꿈하게 되는 지점이 있을까? 만약 그런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일까? 나는 늘 궁금했다. 《혁명 극장》에서 나는 로베스피에르와 당통과 데물랭에 대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들에게 삶이 결정적으로 바뀐 순간, 예전의 자신으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게 되는 지점이 있었다면 과연 어디였을까?” _ 힐러리 맨틀

“언제나 마음이 더 높고 더 먼 곳에 가 있는 듯한 아이, 빛을 사로잡아 안에 담아 둔 듯한 바다 색 눈을 한 소년” 로베스피에르, “언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소년, 말을 더듬지만 펜은 날아다녔던 영민한 청년, 모두에게 사랑받았지만 아무에게도 존경받지 못한 위험한 열정의 소유자” 데물랭, “시끌벅적한 활기를 몰고 다니는 거구의 사나이, 겉보기와 달리 언제나 신중하고 철저히 계산하여 행동하는 남자” 당통.
이 소설에는 70여 명의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야기는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조르주자크 당통, 카미유 데물랭의 우정과 투쟁, 갈등과 반목이 중심이 되어 펼쳐진다.
‘프랑스 혁명’의 대명사로 불리는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의 이상을 극단적으로 추구해 결국 자신을 포함해 수많은 혁명가들을 단두대에서 죽음을 맞게 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부패할 수 없는 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청렴하고 강직해 존경을 받았으나 그만큼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힐러리 맨틀이 찾아낸 로베스피에르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어머니가 출산 도중 사망하자 변호사였던 아버지가 아이들을 버려 둔 채 집을 나갔다.)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한 번도 말썽을 부리지 않은 조용하고 단정한 성품의 소년이었다.
소년 로베스피에르는 늘 모범생이었고 고독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특별한 친구가 생긴다. 파리의 명문 학교 루이르그랑 콜레주에서 만난 영특한 소년 카미유 데물랭이었다. 데물랭은 1789년 바스티유 습격 사건을 주도한 열렬한 공화주의자로서 혁명 시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 된다. 로베스피에르가 데물랭의 어린 시절 죽마고우였다면, 변호사 시절 만난 당통은 데물랭과 단두대까지 함께 오른, 끊을 수 없는 혁명 동지였다. 당통은 세 주인공 가운데 가장 야심이 컸으며 현실적이고 정치적 수완이 뛰어났다. 자수성가한 변호사였던 당통은 청중을 사로잡는 연설 능력과 대담한 결단과 행동, 특유의 카리스마로 혁명의 격랑을 타고 지도자로 올라선다.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는 구체제에 맞선 긴 싸움에서 뜻을 함께하는 동지이자 친구가 된다.

독자를 끊임없이 긴장시키는 대담한 브레히트적 기법
죽은 혼들을 불러내어 아우성치게 하는 문학적 영매의 상상력


《혁명 극장》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적인 자극을 선사하며 다소 낯설지만 흥미로운 경험을 안겨준다. 맨틀은 이 작품을 가리켜 “나의 브레히트적 소설”이라 부른다. 이 소설을 쓸 때 맨틀은 브레히트 희곡에 매료되어 있었고 브레히트풍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혁명 극장》은 장면 전환을 위해 암전을 적절히 활용하는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대담한 장면 구성과 독자들을 끊임없이 ‘낯설게 만드는’ 실험적인 형식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제3자의 시점에서 상황이 서술되다가 다음 장에서 등장인물인 당통이 직접 독자에게 “여러분”이라고 말을 건네며 자기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이다. 독특한 형식 덕분에 독자는 특정 인물의 입장에서 편향되게 상황을 보지 않고 거리를 두면서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혁명 극장》의 또 다른 특징은 등장인물들의 생동감 넘치는 대화와 독백이다.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이 숨소리까지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런 묘사는 문학적 영매라고 부를 만한, 작가 맨틀의 특출 나게 예민한 감수성 덕분이다. 역사 소설을 쓸 때 맨틀은 상상 속에서 과거의 인물을 만나 그들의 정신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작가 자신이 온전히 그 인물이 되는 것이다.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면서 맨틀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분명히 존재하며 중요하다고 배웠다. 또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맨틀은 죽은 사람들을 가깝게 느꼈다. 그녀는 죽은 이의 영혼을 느끼고, 과거의 기억을 현실로 느낀다. 무엇을 보거나 향기를 맡거나 소리를 듣는 순간, 그 감각적 경험이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그 순간 맨틀은 “기억이 아니라 마치 다시 그 순간을 사는 것처럼” 과거 속으로 밀려들어간다는 것이다. 소설가로서 맨틀은 이러한 능력을 통해 대화와 독백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역사적 인물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역사의 빈틈을 메우는 논리적 추론과 상상력
여러 인터뷰에서 맨틀은 역사 소설을 쓸 때 극적인 효과를 위해 가상의 사건을 만들거나 사실을 바꾸지 않도록 경계한다고 밝혔다. 《혁명 극장》의 주인공인 혁명가들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적었다. 그들이 모두 젊어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살아남은 가족들이 그들이 쓴 편지와 일기 등을 간직했고 연설이나 신문 등에도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확보할 수 있는 정보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맨틀은 지식을 바탕으로 추론하고 상상력을 동원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어떤 대화에 관한 기록을 읽으면 그 대화에 앞서 어떤 대화가 오갔을지 추리했고, 분열에 관해 읽으면 실제로 일어났을 법한 다툼을 추론했다. 그리고 가능한 경우에 역사 기록을 직접 인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합의된 역사적 사실들을 가능한 한 촘촘하게 배치하고 그 사이의 빈틈을 메우려 했던 것이다. “극적으로 보이게 과장하고 싶은 욕구와 설명하려는 욕구” 사이에서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사건과 인물에 대해 전지적인 시점(사후 판단)에서 평가하지 않는다. 독자는 마치 자신이 지금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한 인물이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하면 상대방이 거기에 반응을 보이고 다시 그에 따라 다른 반응이 일어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이 파악한 상황을 전달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달려 있다. 맨틀은 소설은 “작가와 독자의 동업, 협력”을 통해 완성된다고 믿는다.
역사 소설은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 역사책의 기록이 스포일러가 된다. 로베스피에르도, 당통도, 데물랭도 죽음을 맞는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맨틀의 세계에서 역사는 닫혀 있지 않다. 주인공들은 앞날을 알지 못한 채 고뇌하고 갈등하고 선택해야 한다. 그 순간순간이 너무도 생생해서 우리도 똑같이 두려움과 설렘과 긴장을 느끼며 다음 장면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현재형 문장과 찰나를 포착하는 사진 같은 묘사도 한몫을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맨틀의 소설을 통해 지나간 과거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그 장소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순간을 살아나간다.

역사적 사건 이면에서 움직이는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파리의 명문 학교 루이르그랑 콜레주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고독한 모범생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와 말을 더듬는 똑똑하고 예쁜 소년 카미유 데물랭, 황소에게 덤볐다가 밟히고 찢겨 험상궂은 얼굴을 갖게 된 마을 최고 악동 조르주 당통의 이야기는 전설이 된 실존 인물들의 어린 시절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꿈도 야무져라, 앙리에트는 생각했다. 얘를 보내야 하는 건가, 그녀는 불안했다. 열한 살이었지만 아직도 몸집이 작았고 말도 다소곳하게 조용조용 했다. 외할아버지 집을 일단 벗어나면 아예 무시당하는 일이 벌어질까 봐 걱정이었다. 하지만 루이르그랑을 포기한다는 건 안 될 말이었다.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사람은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 여자들 앞치마에 매달려봐야 좋을 게 없다. 막시말리앙(로베스피에르)을 보면 가끔은 아이 엄마가 생각났다. 막시밀리앙의 눈은 빛을 사로잡아 안에 담아 둔 듯한 바다 빛이었다. - 1부 1장 ‘어린 날들’(1권 42쪽)에서

사고가 있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의 코를 유심히 보지 않았으므로 코가 제대로 아물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소뿔에 찢긴 얼굴 부위에는 흉터가 심하게 남았다. 뺨 한쪽을 따라서 줄이 죽 그어졌고, 자주색 흉터가 윗입술로 밀고 들어갔다. 이듬해에는 홍역에 걸렸다. 누나들도 걸렸지만 다행히 아무도 죽지 않았다. 엄마는 흉터가 아들의 감점 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못생길 바에야 애를 써서라도 제대로 못생긴 편이 낫다. 조르주(당통)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 1부 1장 ‘어린 날들’(1권 27쪽)에서

맨틀은 세 주인공 외에도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각자 구별되는 개성의 소유자로 그려낸다. 민중의 마음을 돈으로 사려 했던 왕족 오를레앙 공작과 《위험한 관계》의 작가 라클로가 꾸민 음모, 개혁을 주장하다가 왕당파로 돌아선 미국 독립전쟁 영웅 라파예트, 온건파 공화주의자들의 정신적 지주가 된 여성 마농 롤랑까지 많은 인물들이 주인공의 배경이 아니라 각자 뚜렷한 개성을 지닌 입체적인 인물들로 그려진다. 또 이들 각자의 욕망이 부딪혀 파열음을 내는 순간이 눈앞에 보이듯 구체적이고 긴장감 넘치게 그려진다. 작가가 가장 집중하는 주제는 인간의 욕망과 권력의 본질이다.

“카미유, 이건 독재가 아니야. 우리가 쥔 권력은 아예 사용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고 쓰더라도 몇 달 이상 가지 않을 거야. 이건 우리의 자기 보존을 위한 거고 한 나라로서 생존하기 위한 거야. 자넨 한 번도 주춤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난 주춤했어, 언제나 주춤했어. 내가 피에 굶주렸다고 생각하나? 자네는 내가 올바른 일을 할 걸로 믿어주리라 생각했는데.”
“믿지, 그래 믿을 거야. 하지만 자네가 위원회를 장악한 건가 아니면 자넨 그 사람들의 얼굴마담에 불과한 건가?”
“내가 어떻게 그 사람들을 장악하나?” 로베스피에르는 두 손을 펴면서 난감해했다. “난 독재자가 아니야.” - 5부 9장 ‘단두대의 앙투아네트’(2권 303쪽)에서

로베스피에르는 손으로 턱을 괴었다. “맞아. 그건 카미유와 맺은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많은 걸 양보해야 했기 때문에 그래. 내 인생의 다른 것도 다 비슷해. 난 이렇게 외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지. ‘나한테 말하지 마.’, ‘잘못한 거 있거든 내가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좀 숨겨.’”
“자네의 그런 면을 자네가 알고 있는 줄은 몰랐네.” (당통이 말했다.)
“당연히 알지. 난 위선자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 속에 위선을 키우지.”
“키우고말고. 로베스피에르는 거짓말 안 하고 속이지 않고 훔치지 않고 술에 취하지도 않고 오입질도 안 한다. 지나칠 정도로. 향락주의자도 아니고 기회주의자도 아니고 약속을 짓밟는 사람도 아니고.” 당통은 빙긋 웃었다. “그런데 이렇게 선량하면 뭐하는데? 사람들이 본받을 생각을 안 하잖아. 그 대신 사람들은 자네 눈을 천으로 덮으려고 들지.”
“사람들은?” 로베스피에르는 조용히 반복했다. “‘우리는’이라고 하지 그래, 당통.” 로베스피에르는 미소를 지었다. - 5부 10장 ‘로베스피에르와 친구들’(394~395쪽)에서

‘더 안전한 곳’은 어디인가?
《혁명 극장》의 원제는 ‘A Place of Greater Safety(더 안전한 곳)’이다. ‘더 안전한 곳’이란 무슨 뜻일까? 혁명 직전 18세기 프랑스 사회는 왕과 귀족 같은 소수 특권층에게만 안전한 세상이었다. 왕이 거액을 받고 서명해준 체포장이 있으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쉽게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는 세상이었다. 전쟁으로 식민지를 넓혔지만 그 수혜는 왕을 비롯하여 소수에게만 돌아갔고 대다수 하층민은 늘어난 국가의 빚을 갚느라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했다. 로베스피에르와 친구들이 혁명을 통해 이루려고 했던 것은 다수 인민이 안전한 사회였다.
그러나 이 제목에는 더 어둡고 비극적인 의미가 숨어 있다. 맨틀은 소설의 첫 문장을 쓸 때부터 이미 결말을 알고 있었다. 1794년 4월 로베스피에르가 어린 시절의 친구였던 데물랭, 혁명 동지였던 당통을 단두대로 보냈다는 것과 불과 몇 달 후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공포 정치에 따른 반동에 휘말려 단두대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자신의 주인공들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었고 맨틀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더 안전한 곳’이란 결국 ‘무덤’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해도 로베스피에르, 당통, 데물랭은 맨틀에게 첫 번째 캐릭터들이었고 그만큼 소중했다. 데물랭과 당통의 처형 장면을 쓰고 나서 맨틀은 비통에 젖었다.

“날 체포하러 온 거로군 역시. 국민공회에서 방금 의결을 한 모양이지.” (데물랭이 말했다.)
“아닙니다, 시민, 그렇지 않습니다. 체포하러 왔다면 우리 둘만 오지는 않았지요. 여기서 혼자 걸어가시는 걸 보고 때가 때인지라 훌륭한 시민 르펠르티에가 맞아 죽은 것이 생각나서 걱정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랬군요. 그렇지만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용감하게 내 길을 가로막고 싶다면 모르겠지만.” 데물랭이 긴장을 풀면서 말했다.
“누군가를 잡을 수도 있죠.” 병사가 말했다. “암살자 말입니다. 우린 이 음모꾼들을 늘 살피거든요, 시민 로베스피에르가 우리한테 말한 대로. 그래서 ? ” 그는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지 머뭇거리다가 동료를 쳐다보았다. “아, 그래 ? 시민 대의원을 더 안전한 곳까지 호위해드려도 될까요?”
“그런 곳은 무덤뿐인데.” 데물랭이 말했다. “무덤.” - 5부 7장 ‘혁명가의 죄’(251쪽)에서

먹을거리를 찾아 파리 뒷골목을 헤매는 아이들, 젊은 혁명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살롱의 귀족과 부르주아들…… 소설로 되살아난 18세기 말 파리의 풍경!
《혁명 극장》은 시궁창이 흐르는 음울한 파리의 뒷골목부터 정치 토론이 무르익고 혁명의 전망이 싹튼 카페, 문화와 지성의 요람이자 프랑스를 뒤흔든 여러 정치 스캔들과 연애 사건의 진원이었던 살롱에 이르기까지, 18세기 말 혁명을 전후해 프랑스인들의 일상에 생긴 변화를 고스란히 되살려낸 흥미로운 풍속 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저명한 작가 메르시에가 파리와 베르사유의 살롱들에 데물랭을 소개했다. …… 이런 자리에서 데물랭의 기분은 순간순간 마구마구 바뀐다. 신바람이 난다 싶다가도 어느 순간 자기가 허깨비가 된 듯한 기분도 든다. 그를 데려오려고 그토록 공을 들인 사교계의 귀부인들은 막상 만나면 그를 모르는 것처럼 굴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 금요일 늦은 저녁, 드 보아르네 백작 부인의 저택은 여주인에게 아첨하는 젊은 시인들로 꽉 찼다. 흥미로운 크레올어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경박한 방들은 은빛과 파르스름한 빛으로 번쩍거렸다. 파니 드 보아르네는 데물랭의 팔을 잡았다. 소유자라도 되는 듯한 몸짓, 아무도 그를 소유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때와는 너무도 다른 몸짓이었다. - 3부 1장 ‘청년 혁명가들’(1권 379쪽)에서

프랑스의 실직한 미용사들이 기댈 사람은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하여 몇 사람 말고는 없었다. 국민공회의 새 의원들은 너도나도 머리를 앞으로 빗어 내려서는 고대 영웅상처럼 이마께에서 일자로 잘랐다. 승마화를 어디서나, 심지어 하프 공연장에서도 신고들 다녔다. 신사들은 주중이고 주말이고 저녁을 마치고 언제라도 프로이센 적진으로 내달릴 기세였다. 멋으로 목에 매는 크라바트는 마치 목청을 보호하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점점 커졌다. 공인 중에서는 국민공회와 공안위원회의 일원인 시민 앙투안 생쥐스트가 가장 큰 크라바트를 하고 다녔다. - 5부 1장 ‘음모가들’(2권 29쪽)에서

힐러리 맨틀과 《혁명 극장》

힐러리 맨틀(Hilary Mantel)은 1952년 7월 6일 잉글랜드 더비셔 북부에서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 받은 이름은 힐러리 메리 톰프슨이었다. 힐러리의 부모는 아일랜드계 가톨릭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고 직물 공장에서 일했다. 힐러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맨체스터에서 가까운 황량하고 추운 공장 지대였는데, 그곳 사람들은 대부분 유년기가 끝날 무렵부터 공장에서 일하면서 욕실이나 온수 따위를 기대할 수 없는 비좁은 집에서 살았다. 11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로 힐러리는 다시는 친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자리는 몇 년 전부터 어머니의 연인이었던 잭 맨틀이 대신했다. 많은 친지들에게 둘러싸여 살던 시절이 끝나고 낯선 곳에서 삶이 시작되었다.
힐러리 맨틀은 정규 교육을 마치고 런던정치경제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마치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불가능했고 꿈을 접어야 했다. 이후 셰필드대학으로 옮겨 법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에는 잠시 자선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고 백화점에서 옷을 팔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지 않았고 옷을 파는 일은 지루했다. 게다가 오랫동안 원인 불명의 심각한 통증에 시달리는 상태였기 때문에 다른 직업적 전망을 찾기도 어려웠다. 눈앞에서 문이 모두 닫힌 것 같은 암담한 시기였다. 프랑스 혁명에 매료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맨틀은 “프랑스 혁명이야말로 세계사에서 일어난 가장 흥미로운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1974년이었고 맨틀은 22살이었다. 그녀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책은 소설부터 학자들의 연구서까지 모두 다 찾아서 읽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힐러리 맨틀의 첫 번째 소설 《혁명 극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맨틀은 어떻게 프랑스 혁명을 다룬 역사 소설을 첫 작품으로 쓰게 되었는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난 역사가가 될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설가가 됐습니다. 그러니까 차선책이었죠. 나 자신에게 프랑스 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했어요. 혁명의 적들이 아니라 혁명을 만든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 혁명 이야기 말이죠.”

“손에 넣을 수 있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모든 역사책과 소설들을 다 읽었어요. 하지만 내가 찾은 걸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소설들은 죄다 귀족과 그들이 겪은 고통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그 작가들이 훨씬 흥미로운 집단을 놓친 것 같았습니다. 이상주의적인 혁명가들, 그들의 이야기야말로 정말 대단하지요. 하지만 그들을 다룬 소설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난 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 자신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던 거죠.”

사실 22살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까지 맨틀은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작가로서 훈련받은 적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책을 출간할 수 있는지도 몰랐지만, 맨틀은 자신이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요즘으로 치면 난 꽤 늦게 깨달은 편이에요. 많은 작가들이 어린아이였을 때 벌써 자신이 작가가 되리라는 걸 알았다고들 하지요. 하지만 난 스물두 살 때 작가가 되기로 의식적으로 결정했어요. 건강이 나빴고, 다른 직업적 전망과 거리가 멀어졌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난 내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픽션을 쓸 수 있을지는 몰랐어요. 나 자신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보이지는 않았어요. 배워야 했죠.”

그러나 ‘소설’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 맨틀은 일종의 ‘다큐멘터리 픽션(documentary fiction)’을 쓰려고 했다. 완벽하게 사실들(facts)로만 이루어진 소설을 쓰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떤 일화에 관련된 사실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 지점에 이르렀고, 상상력을 발휘해 빈틈을 메워야 했다. 힘들게 그 부분을 쓰고 나자 비로소 맨틀은 자신이 그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어내야 한다는 걸 몰랐다는 게 순진한 소리로 들리지만, 그때 난 모든 자료가 어딘가에 반드시 있다고 정말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걸 못 찾아낸다면 순전히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죠.” 맨틀은 자신이 인물 간의 대화를 쓰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도 실제로 대화 장면을 쓰고 난 뒤에 알았다.
맨틀은 나중에야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는 데 필요한 훈련을 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글을 배우기 전에도 다른 사람이 읽어주는 책의 내용을 기억하면서 책의 세계에 빠졌고, 혼자 책을 읽게 된 뒤에는 언제나 한 장면을 읽고 다음 장면을 미리 상상해보곤 했다. 단어의 의미와 뉘앙스에도 민감해서 어린이 책의 “단순하고 밋밋한 단어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읽고 나면 반드시 스스로 책의 내용을 확인하고 분석하는 버릇이 들었다. 이렇게 읽은 수많은 소설과 희곡이 맨틀의 자양분이 되었다.

프랑스 혁명을 다룬 소설은 영국이 아닌 아프리카에서 쓰였다. 맨틀은 1972년에 제럴드 매큐언(Gerald McEwen)과 결혼했고 1977년 봄 지질학자인 남편이 새로 얻은 일자리를 위해 아프리카의 보츠와나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1979년 말 마침내 소설 초고를 마무리했다. 맨틀은 잠시 영국에 돌아와 원고를 영국의 여러 출판사와 에이전시에 보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역사 소설이 별로 인기가 없었다. 또 ‘프랑스 혁명’이라고 하면 대부분 하얗게 분칠한 머리를 높이 쌓아 올린 귀부인을 떠올리거나, 혁명이 배경인 로맨스 소설을 떠올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영국인들이 관심 있는 역사 인물은 로베스피에르가 아니라 헨리 8세와 크롬웰이었다. 결국, 일반적인 소설 네 권 분량(영어로 35만 단어, 1992년에 출간된 책으로는 870페이지)에 해당하는 진지한 역사 소설(더군다나 정치 소설)을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작가로서 길을 포기할지 말지 기로에 선 맨틀은 방향을 바꾸어 동시대를 다룬 짧은 소설을 썼고 그 결과물이 바로 등단작인 《매일이 어머니 날》(1985)이었다. 보츠와나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몇 년을 보낸 뒤 맨틀은 거의 10여 년 만에 영국으로 귀국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걸었다.
맨틀은 《혁명 극장》 초고를 쓰고 10년 가까이 되어서야 개작에 들어갔다. 초고의 내용을 대폭 수정하고 초고에는 거의 없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새로 써 넣고 보강해서 입체적인 인물로 되살려냈다. 또 10여 년 사이에 프랑스 혁명에 관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로 내용을 보완했다. 완성된 《혁명 극장》은 1992년 드디어 빛을 보았다. 맨틀의 나이 40세 때였다. 등단 후부터 《혁명 극장》이 출간되기 전까지 맨틀은 자주 같은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속에서 맨틀은 산모의 출산을 돕는 산파인데 아기가 죽어 나가는 상황을 막지 못해 괴로워해야 했다. 이 꿈은 《혁명 극장》이 세상에 나온 뒤 다시 꾸지 않게 되었다.

목차

작가의 말
혁명기의 파리(지도)

1부
1장 어린 날들(1763~1774)
2장 로베스피에르와 루이 16세(1774~1780)
3장 파리 입성(1780)

2부
1장 야심가(1784~1787)
2장 아네트와 데물랭(1787)
3장 아라스의 변호사(1787)
4장 오를레앙 공(1787~1788)
5장 당통의 친구들(1788)
6장 혁명 전야(1789)
7장 바스티유 함락(1789)

3부
1장 청년 혁명가들(1789)
2장 가브리엘과 뤼실(1790)
3장 미라보의 죽음(1791)
4장 샹드마르스 학살(1791)

4부
1장 마농 롤랑의 꿈(1791)
2장 당통의 목소리(1791)
3장 혁명 전쟁(1791~1792)
4장 테루아뉴의 고백(1792)
5장 공화국 만세(1792)

프랑스 혁명 연표

저자소개

저자 힐러리 맨틀(Hilary Mantel)은 1952년 잉글랜드의 더비셔에서 태어났다. 런던정경대학(LSE)과 셰필드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법정변호사를 꿈꾸었으나 가난 때문에 법률가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을 수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사회복지사와 백화점 점원 일을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77년부터 지질학자인 남편과 함께 아프리카 보츠와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약 10년을 보낸 뒤 1980년대 중반에 영국으로 돌아왔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영국의 시사 주간지 에서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5년에 소설 《매일이 어머니 날(Everyday is Mother\'s Day)》로 등단했고 이후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2009년에는 헨리 8세의 총신이었던 토머스 크롬웰의 일대기를 그린 ‘크롬웰 3부작’ 중 첫 번째 책 《울프 홀(Wolf Hall)》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뒤이어 2012년에 후속작인 《브링 업 더 바디스(Bring Up the Bodies)》로 두 번째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맨틀은 영국 작가 최초, 여성 작가 최초로 두 차례 맨부커상을 받은 작가가 되었다. 2006년에 대영제국 훈작사 훈장을 받았고 2014년에 기사 작위에 해당하는 대영제국 데임 커맨더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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