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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 제인 제이콥스
  • |
  • 그린비(그린비라이프)
  • |
  • 2010-04-05 출간
  • |
  • 591페이지
  • |
  • 152 X 224 X 35 mm /996g
  • |
  • ISBN 9788976827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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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도시 재건축은 도시 약탈이다!!”
―1950년대 미국 도시의 흥망을 통해 본 도시의 오래된 미래!


1950년대 미국, 사람들의 귀중한 세금을 쏟아부으면서도 이렇다 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던 도시계획. 도심 재개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면서도 도시를 안전은 물론이거니와 흥미롭지도, 활력이 넘치지도 않는 곳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을 목격한 『건축포럼』(Architectural Forum)의 부편집장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 1916~2006)는, 그때부터 정통 도시계획 이론의 정 반대편에 서며 계획가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도시 살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현재의 도시계획은 수십억 달러를 들여 도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나올 뿐이며,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같은 유명한 건축가들과 도시계획가들이 오히려 도시의 다양성과 생명력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엄밀하고 명징하고 풍자적이며, 문학적이기까지 한 제이콥스의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은 1961년 초판이 나온 이래, 도시를 실제로 이용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도시계획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은,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 제이콥스는 어떤 특별한 건축적인 비전이나 전략을 다룬다기보다는 도시를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세계로 바라볼 줄 알았던, 게다가 보도의 공중생활을 사랑했던 한 ‘시민’으로서의 소소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개발과 공사가 아니라 조그만 동네와 오래된 건물들,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도로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임을, 미국 각 도시의 실례를 들어 구체적이고 다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어 우리가 건설한 것들을 보라. 저소득층 주택단지는 기존의 슬럼보다도 더 심한 비행과 파괴와 전반적인 사회적 절망 상태의 중심이 되어 버렸다. 도시 생활의 활기나 활력과는 동떨어진 불가사의한 답답함과 획일성의 표본인 중산층 주택단지. 김빠진 천박함으로 공허를 누그러뜨리려고 애를 쓰는 호화 주택단지. 좋은 서점을 유지하지 못하는 문화센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부랑자들만 찾는 시민센터. 규격화된 교외 체인점 쇼핑을 흐리멍덩하게 모방한 상업센터.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산책하는 이 하나 없는 산책로. 대도시의 속을 들어내 버린 고속화도로. 이런 건 도시 재건축이 아니라 도시 약탈이다.” (본문 22쪽)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혹은 누가 살고 있나
재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폭력은 무지(無知)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파괴, 어떤 폭력. 개별 존재에 가해지는 폭력, 그것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기가 쉽다. 도시란 곳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는 과잉축적의 위기를 공간의 부단한 생산과 파괴를 통해 잠정적으로 해소하는 곳인 까닭에, 이런 폭력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말이다.

제인 제이콥스가 살던 시기의 뉴욕, 이스트할렘. 그곳에 새로 정비된 한 저소득층 주택단지에는 눈에 띄게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잔디밭이 있었다. 지역 관계자들은 그 잔디밭을 보면서 한마디씩 했다. “참 예쁘군요. 이제 가난한 사람들도 누릴 거 다 누리는군요.”(본문 36쪽) 그러나 정작 주민들은 자신들의 집을 헐어 버리면서 자신들의 동네를 커피 한 잔, 신문 한 부 구할 데 없는 곳으로 만들어 놓은 그 잔디밭을 좋아할 수 없었다. “누가 저게 필요하대요?” “어느 누구도 이곳을 지을 때 우리가 뭘 원하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시 당국과 개발 관계자들. 그들은 지역 주민들, 혹은 그들의 삶에 대해서 실제로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개발’이나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폭력을 휘둘러 서류상의 정의에 의해 ‘슬럼’으로 명명되었으나 실제로는 살기 좋았던 곳을, 단돈 5센트도 빌리기 어려운 명명백백한 슬럼으로 만들어 대고 있었다. 그리고 1950년, 혹은 60년대의 미국의 모습은 2000년대에 세계 곳곳에서, 또한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제인 제이콥스는 가장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가장 일반적인 주장을 펼쳤던 것이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재개발은 사람들의 실제적인 삶을 개발해 내는 데 실패했다. 도시가 어떻게 살아서 움직이고 작동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저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했던 소수 전문가 집단의 결정으로 그 몇십, 몇백, 몇천 배 되는 사람들의 삶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상황. 용산 참사에서도, 평택 대추리에서도, 수많은 뉴타운 지구, 그 어디에서도 정부 및 관계자들은 실제로 그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일상의 흐름, 그들의 네트워크, 삶의 터전, 생활방식에 대해 화폐 이외의 다른 가치로는 고려한 적이 없었다. 50년 전의 이 책,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은 그런 식의 일방적인 개발이 가져오는 도시의 죽음을 경고하고 있다. 개발로 죽어간 미국의 많은 도시들과 우리나라의 지역들 사이의 거리를 잴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도시의 죽음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저소득층의 주거 보조의 다양화
지난 1월 한 신문보도에 따르면, 서울인구의 1%에 달하는 사람들이 고시원에 산다. 현대판 쪽방이라고 불리는 고시원은 애초에 주거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으나 고시생은 물론이고, 직장인, 외국인 노동자, 결혼한 부부들까지도 비싼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그 쪽방에 들어가서 산다는 것이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자취를 목적으로 고시원을 선택하는 것은 지방 거주 대학생들의 몫이었으나, 이제는 고시원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범주가 꽤 많이 확장된 셈이다. 50년 전의 제인 제이콥스의 지적처럼, 우리의 도시에는 공공의 양심상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양질의 주거의 값을 치를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제이콥스의 경우에는 많은 도시에서 주거의 공급 자체가 너무 적어서 과밀 없이는 인구를 수용하지 못한다고 지적한 반면, 지금 우리의 경우에는 주거의 공급 자체는 차고 넘치는데, 단순히 주거에 대한 대가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비용이 문제가 된다는 것. 서로 다른 이유 때문이기는 하지만 제이콥스의 미국과 우리의 한국은 도시 주거의 일정한 비율에 대해서는 보조가 필요하다는 동일한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데 이 주거 보조에서 제이콥스가 문제 삼았던 것은 주거에 많은 비용을 치를 수 없는 사람들, 즉 사기업에 의해 주택을 공급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의 통계―소득!―에 기초하여 죄수같이 특별한 주거요건을 가진 통계 집단으로 바꿔 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소득층 사람들은 도시의 주거 보조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유토피아론자들이 이리저리 갖고 노는 특별한 기니피그 집단이 되는 것이다. 도시를 하나의 ‘과제’로 생각하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화하여 본다면, 그리고 그 대상화가 되는 척도가 단지 그들의 소득수준일 뿐이라면, 도시 발명가들이 내놓을 수 있는 결론도 단지 소득수준에 따른 방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도시 개발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주거 보조의 문제에서는 더더욱 사람들의 여러 가지 스펙트럼과 다양한 사정이 고려되어야 하며,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다른 결정권자들에 의해 자신들의 삶이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도시의 문제들이 단순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도무지 생기와 활기가 생기지 않는 지역, 아무리 예쁘게 꾸며 놓아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공원들은 설명되지 않는다.

살기 좋은 도시는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다
슬럼과 비슬럼을 가르는 기준의 모호함


제인 제이콥스가 보스턴 최악의 슬럼가로 불리는 노스엔드(North End)에 갔을 때, 그녀는 도시계획 및 지역 관계자들의 정의에 따라 ‘슬럼’이 된 그곳의 생기를 경험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본문 29쪽) ‘타칭’으로 슬럼가가 된 노스엔드는 보스턴에서 청소년 범죄율과 발병률, 결핵 사망률이 가장 낮은 곳이었고, 필요한 여러 종류의 가게가 뒤섞여 있었고, 뛰어노는 아이들과 쇼핑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적당하게 어우러져 쾌활하고 다정한 거리를 가진 곳이었다.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 ‘슬럼’이라는 사실이 의아했던 제이콥스가 보스턴의 도시계획가에게 이런 사실에 대해 말하자 그 도시계획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거긴 끔찍한 슬럼가예요.……어쨌든 거기는 재건축해야 돼요. 그 사람들을 거리에서 빼내 줘야죠.”

당시 노스엔드를 가 본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노스엔드가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사회 통계 자료들 또한 그런 본능적인 느낌을 확인해 주었다. 하지만 그곳을 슬럼으로 정의하고 어떻게 개발할지를 구상하는 것이 본업인 도시계획가들에게는, 자신들을 도시계획 전문가로 만들어 준 모든 이론과 그 내용에 따르면 노스엔드는 나쁜 곳이어야 했다. 슬럼과 비슬럼을 가르는 기준은 이렇게도 모호했다. 아니, 모호하다기보다는 없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지금 서울을 지배하고 있는 강남 열풍 역시도 그곳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실제적인 근거들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강남’은 비싸고 좋은 곳, 상류층이 사는 곳, 상류층에 속하기 위해서는 월세를 내며 살더라도 머물러야 하는 곳이라는 근거 없는 통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던가.

님비(NIMBY)의 불필요함
쓰레기장, 장의사, 고물상…….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이런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님비현상. 이제는 일말의 의문도 들지 않는 당연한 사회적 현상이 된 ‘님비’는 거의 유일하게 지역 주민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었다. 주거 환경의 쾌적함을 원한다는 이유로 포장한 부동산 하락에 대한 공포는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왜 그것이 해로운가? 그것은 과연 얼마나 해로우며 이 해악은 무엇인가?”(본문 314쪽) 하는 질문에 대해 제대로 된 대답은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게 만든다. 그저 그런 시설이 들어오면 살기에 안 좋아진다는 것이 유일한 핑계거리다. 그러나 제인 제이콥스가 말하는 좋은 도시의 조건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바뀌어 있다. 혐오시설이 들어오는 것에 의해 그 지역이 사람들이 꺼리는 안 좋은 곳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것. 혐오시설들이 들어서는 곳이라면 이미 그곳이 사람들이 꺼리는 곳이 되었다는 징후이며, 그리고 설사 혐오시설이라 불리는 업종이 들어서더라도 성공적인 지역이라면 그 시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혐오/비혐오의 규정을 넘어 그 시설은 지역에 오히려 다양성을 하나 추가하게 될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꺼리는 시설이 동네에 들어서지 않으면 무조건 안심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지역은 쾌적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제인 제이콥스가 보기에는 합법적인 (그리고 몇몇 불법적인) 경제적 용도 가운데 풍요로운 다양성의 부족만큼이나 도시 지구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 당장 어느 계획 지구로 발길을 돌려 깨끗하지만 단조로운 풍경과 텅빈 거리를 본다면 아마 어떤 게 도시의 성공인가에 대한 의문이 쉽게 들 것이다.

도시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다양한 인간 활동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구조적 체계인 도시는 다른 종류의 유기체나 물건이 아니라 자체의 관점에서 직접 볼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파악하기 쉽지 않은 짤막한 비유가 도움이 된다면, 아마 최선의 비유는 어둠 속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상상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들판에는 여기저기 불이 타고 있다. 어떤 불은 크고 어떤 불은 작다. 어떤 불은 멀리 떨어져 있고, 어떤 불은 가까이에 점점이 붙어 있다. 어떤 불은 밝게 빛나고 어떤 불은 서서히 꺼져 간다. 크든 작든 간에 각각의 불은 주변의 암흑에 빛을 퍼뜨리며, 이런 식으로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본문 493쪽)

제인 제이콥스가 들고 있는 비유에서, 빛이 만들어 내는 공간과 공간의 모양은 불에서 나오는 빛이 그것을 만들어 내는 정도만큼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암흑에 형태나 구조를 부여하는 유일한 길은 암흑 속에 새로 불을 붙이거나 가까운 곳에 있는 불을 더 키우는 것뿐이다. 도시의 경우, 다양성을 만들어 내고 복잡성을 만들고, 활기를 이끌어 내는 것만이 도시의 암흑에 빛을 비추고, 그곳을 존재하게 만드는 길이다. 오로지 용도의 복잡성과 활기만이 도시를 이루는 부분들에 적절한 구조와 형태를 부여한다는 제이콥스의 주장대로 말이다. 그러나 현대의 도시는 다양성의 과잉으로 오히려 그 다양성이 단일성으로 둔갑하고, 사람들의 다양한 인간 활동에 의해 살아 숨쉬던 곳곳을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모두 천편일률화하고 있다.

홍대의 경우: 젊음과 유행과 음악의 거리로 불리는 홍대. 그 주변에는 홍대만의 특색 있는 지하보도가 있어, 가난한 뮤지션들은 그곳에서 접이의자를 놓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들은 그곳에 맘껏 실력을 뽐냈으며, 거리의 아티스트들은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그래피티를 바꿔 그렸다. 짧은 텀으로 열리던 공연들에서는 무대가 되기도 했고, 우연히 만난 음악 지망생들의 갑작스런 합주가 이루어지기도 했던 지하보도는 버스중앙차선 계획의 일환으로 헐리게 되었다.

지하보도를 지키겠다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틈틈이 어떤 움직임이 보였지만, 지역적 특색이나 사람들의 구체적 활동보다는 도시계획의 큰 그림에 맞추는 것이 더 중요시되었던 까닭에 지하보도는 헐렸고, 그나마 ‘문화’를 내세우며 다른 지역과 차별점을 만들어 주었던 홍대의 조그마한 랜드마크는 사라졌다. 큰 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지구의 특색을 담아 내며 다양성을 부각시켰던 홍대 앞 도로는 광화문과, 종로와, 강남과도 비슷한 모습이 되었다.

마포구 성미산의 경우: 성미산 마을 공동체는 이제 꽤 유명한 지역 공동체가 되었다. 공동육아 모임으로 시작된 성미산 마을 공동체는 주민들이 조합을 구성하여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헐릴 위기의 성미산을 계속해서 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내고, 아이들의 교육을 고민한 부모들은 대안학교를 세웠다. 공동출자해서 만든 반찬가게는 물론이고, 마을 주민들이 모금을 통해 ‘성미산 마을극장’까지 개관했다. 주민들은 아예 ‘생태 도시재개발 워크숍’ 등을 하면서 끊임없이 도시에 대해서 고민하고 공부하고, 그 지역의 결정사항에 대해 지역 관계자(구청)에게 단순히 통보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을 어떻게 하면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까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간다. 제인 제이콥스가 만약 이 마을 공동체를 보았다면 자신이 꿈꾸던 살아 움직이는 동네라며 엄지를 치켜들지 않았을까.

제이콥스는 자신이 기억하는 공청회는, 공청회 전날 집행위원회를 열어 이미 모든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려 놓고 그 다음에 공청회를 열어 주민들의 말을 예의있게 들어주는 것이었다고 말한다.(본문 530쪽) 그 주민들은 자신들 모두가 문제 바깥에 있다고 느꼈다. 이런 수동적이고 형식적인 공청회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지역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나서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도시, 그리고 도시계획. 도시에 필요한 것은 전문가들이 이론에 의해 내리는 결정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사람들의 의지이고, 또 그들의 구체적인 활동이다.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는 어떤 도시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살고, 돈을 벌고, 이동하는 도시. 이 도시가 작동하는 데에는 다종다양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명백히 겉으로 보이는 문제라면 차라리 쉽다. 그리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더더욱 쉬운 문제다. 미국의 공공주택 단지 워싱턴하우스(Washington Houses)의 경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한 도로에 크리스마스 트리 한 그루를, 그리고 단지 내부에 트리 두 그루를 장식해 두었는데 다음날 도로에 있던 트리는 멀쩡한 반면 단지 안에 있던 트리는 장식품까지도 모두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본문 59쪽) 흔히 사람들이 많은 곳에 공공물건을 두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편견에 대항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제인 제이콥스가 내놓는 실례들은 대체로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도시, 좋은 지역에 대한 그릇된 생각과 오해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도시를 지키는 패트롤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보다는 그냥 거리에 사람이 많고, 자신들이 사는 곳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어른들이 많은 것이 도시의 안전에는 훨씬 더 효과적임을, 우리가 도시 생활을 불편하게 만드는 주범으로 꼽는 자동차는 원인이 아니라 단지 징후일 뿐임을, 제이콥스는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논증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례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한 상상력, 그 삶을 꾸려가는 공간에 대한 상상력은 언제까지고 도전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바로 ‘도시’를 생명체로 바라본 제이콥스의 주장이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도시’를 계속 살아 있을 수 있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목차

1993년판 서문
감사의 말

서론

1부 도시의 독특한 성격
 1장 보도의 효용:안전
 2장 보도의 효용:접촉
 3장 보도의 효용:어린이들의 동화
 4장 근린공원의 효용
 5장 도시 근린의 효용

2부 도시 다양성의 조건들
 6장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것들
 7장 혼합적인 주요 용도의 필요성
 8장 작은 블록의 필요성
 9장 오래된 건물의 필요성
 10장 집중의 필요성
 11장 다양성에 관한 몇가지 신화

3부 쇠퇴와 재생의 힘
 12장 다양성의 자기파괴
 13장 경계공백지대의 저주
 14장 탈슬럼화와 슬럼화
 15장 점진적인 돈과 격변을 일으키는 돈

4부 다른 전술
 16장 주거 보조
 17장 도시의 잠식, 또는 자동차의 소모
 18장 시각적 질서 : 그한계와 가능성
 19장 계획단지 구조하기
 20장 지구의 관리와 계획
 21장 도시 문제는 어떤 종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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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옮긴이 소개

저자소개

저자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1916년 5월 4일에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났다. 『스크랜턴트리뷴』의 기자로 일하다가 뉴욕으로 간 후, 1952년에 『건축포럼』의 부편집장이 되었다. 도시 재건축 프로젝트에 관한 글을 쓰던 중 이런 프로젝트가 운영된다 할지라도 도시 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점차 도시계획의 전통적인 믿음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이후 도시계획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를 계속한 제이콥스는 1961년 출간과 동시에 가장 독창적이고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 책으로 인정받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외에도 『도시의 경제』(1969), 퀘벡의 주권 문제에 관해 고찰한 『분리주의의 문제』(1980), 세계경제에서 도시와 도시지역이 갖는 중요성에 관한 주요 연구서인 『도시와 국가의 부』(1984), 그리고 『생존의 체계』(1993) 등을 썼다. 1968년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한 뒤에도 도시계획과 주거정책 개혁에 관한 충실한 조언자로 일했던 제이콥스는 대규모 고속화도로 건설 반대 캠페인과 도심 근린 주거지역 해체 반대 캠페인에 앞장섰다. 도시의 다양성과 생명력을 살리는 일에 평생을 헌신한 그는 2006년 4월 25일, 89세의 나이...1916년 5월 4일에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났다. 『스크랜턴트리뷴』의 기자로 일하다가 뉴욕으로 간 후, 1952년에 『건축포럼』의 부편집장이 되었다. 도시 재건축 프로젝트에 관한 글을 쓰던 중 이런 프로젝트가 운영된다 할지라도 도시 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점차 도시계획의 전통적인 믿음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이후 도시계획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를 계속한 제이콥스는 1961년 출간과 동시에 가장 독창적이고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 책으로 인정받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외에도 『도시의 경제』(1969), 퀘벡의 주권 문제에 관해 고찰한 『분리주의의 문제』(1980), 세계경제에서 도시와 도시지역이 갖는 중요성에 관한 주요 연구서인 『도시와 국가의 부』(1984), 그리고 『생존의 체계』(1993) 등을 썼다. 1968년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한 뒤에도 도시계획과 주거정책 개혁에 관한 충실한 조언자로 일했던 제이콥스는 대규모 고속화도로 건설 반대 캠페인과 도심 근린 주거지역 해체 반대 캠페인에 앞장섰다. 도시의 다양성과 생명력을 살리는 일에 평생을 헌신한 그는 2006년 4월 25일,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도서소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이 책에서 저자 제이콥스는 어떤 특별한 건축적인 비전이나 전략을 다룬다기보다는 도시를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세계로 바라볼 줄 알았던, 게다가 보도의 공중생활을 사랑했던 한 ‘시민’으로서의 소소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개발과 공사가 아니라 조그만 동네와 오래된 건물들,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도로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임을, 미국 각 도시의 실례를 들어 구체적이고 다정하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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