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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 매튜 스튜어트
  • |
  • 교양인
  • |
  • 2011-07-10 출간
  • |
  • 632페이지
  • |
  • 153 X 224 X 35 mm /875g
  • |
  • ISBN 9788991799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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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야심에 찬 만능인과 불온한 이단자의 불꽃 튀는 대결
지적 호기심을 한없이 자극하는 흡인력 넘치는 이야기!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는 17세기를 대표하는 두 천재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짧은 만남을 중심으로 삼아 두 철학자의 파란만장한 삶과 사상을 한 편의 이야기로 창조해낸 흥미진진한 철학적 모험담이다.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가 필생의 주제로 삼아 분투했던 고민의 핵심을 쉽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철학 교양서이자, 역사의 낡은 책장 속에 박제된 두 인물을 생생한 현실의 인간으로 살려낸 매혹적인 평전이다.
매튜 스튜어트는 탄탄한 철학 지식과 뛰어난 이야기꾼의 재능을 발휘하여 실제로 일어났던 철학사의 결정적인 한 장면을 마치 한 편의 추리 소설처럼 엮어낸다. 두 철학자의 삶과 역사와 철학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인문학적 호기심과 철학적 재미를 두루 충족시켜주며, 몹시 난해한 개념으로 알려진 스피노자의 ‘신(God)=자연’과 라이프니츠의 ‘모나드(monad)’ 개념을 더없이 쉽고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이 책 안에서 스피노자의 ‘신’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와 사유의 전장에서 만나 한판 전쟁을 벌인다.

철학의 격전장에 나선 두 전사의 양보 없는 결투!

1676년 11월 찬바람이 불던 어느 가을날, 젊은 남자가 헤이그에 도착해 운하 옆 작은 벽돌집 2층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기는 도회풍의 그 젊은 남자는 수수한 옷차림을 한 중년의 남자와 마주앉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눈빛만은 한없이 투명하고 깊어서 세상의 비밀을 다 꿰뚫어보는 듯한 남자였다. 한 사람은 미적분의 고안자이고 마인츠의 전직 추밀고문관이며, 얼마 전 하노버 공작의 신임 사서로 임명된 서른 살의 야심만만한 만능 철학자 라이프니츠였다. 그 철학자를 맞아들인 다른 남자는 당대의 가장 위험한 두뇌로 악명을 떨침과 동시에 탁월한 지성으로 유럽 지식 세계를 전율시킨 마흔네 살의 불온한 은둔자 스피노자였다. 스피노자를 만나는 일은 그 자체로 전도유망한 삶이 끝장날 수 있는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숨긴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에게 문을 열어주었으며, 라이프니츠는 왜 그토록 위험한 도전을 감행했을까? 철학사의 가장 은밀하고도 위험한 만남에서 두 천재 철학자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것일까?

스피노자는 이중으로 추방당한 자였다. 유대 공동체에서는 이단자로 몰려 파문당했고 기독교 세계에서는 무신론자 유대인으로 낙인찍혔다. “쇠사슬로 묶어놓고 몽둥이 매질을 해야 마땅한 미치광이 악한”이라는 비난이 그를 따라다녔다. 암살 위협까지 받게 되자 그는 고향 암스테르담을 떠나 헤이그로 숨어들었다. 이 이중 망명자는 하숙집 다락방에서 낮에는 광학용 렌즈를 갈고 닦고, 밤에는 촛불 아래서 자신의 철학 체계를 갈고 닦았다. 그는 억압적인 신권정체 타도와 자유로운 민주정체 수립을 주장한 근대 최초의 정치 철학자이자 급진 혁명가였다. 이 사유의 전복자는 지극히 청렴하고 겸손하고 조용한 삶을 살았다.

라이프니츠는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품은 ‘옴니마니아(omnimania)’였다. 철학사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천재로 꼽히는 라이프니츠는 철학, 수학, 물리학, 기계 기술, 지리학, 법학, 어학에 두루 능통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정도가 그에게 비견될 만한 천재였다. 그는 유럽의 평화를 위해 프랑스 루이 14세에게 제2의 십자군 원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라이프니츠는 모든 사상의 중재자가 되겠다는 거대한 야심을 품었고, 무너져 가는 기독교 세계를 재통합하는 ‘기독교 국가’ 건설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의 야심은 스피노자의 철학을 만나 격하게 흔들렸다.

저자는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삶과 사상을 촘촘하게 엮어 역사 소설과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직조한다. 화려하게 치장한 젊은 궁정인은 검소한 다락방 철학자와 격론을 벌인다.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생각은 3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적 문제의식으로 생동한다. 17세기는 철학하는 것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태로운 시대였으며 동시에 그 위태로운 시대를 별처럼 빛냈던 불온한 천재들의 시대였다. 이 잘 짜인 철학적 모험담은 그 17세기를 강타한 천재적 사상들의 대결을 한 편의 드라마로 되살려낸다.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만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나?

구름 낀 오후가 덜거덕거리는 창유리를 뚫고 집안으로 스며든다. 밖에서는, 가을 낙엽들이 도시의 질서에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으며 스쳐 지나간다. 위층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삐걱거리는 마루청 위에서 다투고 우는 소리를 내며 돌아다닌다. 묽은 닭고기 수프의 따뜻한 냄새가 방안의 공기를 채운다. 파빌륜스흐라흐트에 있는 그 집 거실에서 두 사람? 작은 나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한 사람은 젊음과 정력으로 가득 차 있으며, 유행하는 옷차림을 하고 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가발은 이마 위로 불룩 솟아 있다가 아마도 11월의 거센 바람을 맞아 살짝 흐트러졌을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은 나이가 더 들었고, 간편한 셔츠를 입었으며, 그가 가진 다섯 장의 손수건 중 하나에다 너무 자주 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상상해보건대, 이런 모습이 아마도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가 1676년에 헤이그에서 만났을 때의 풍경이 아니었을까.

17세기의 가장 위대한 두 철학자의 만남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헤이그를 떠난 후 라이프니츠는 만남 자체를 부인하거나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 했다. 라이프니츠는 헤이그를 거쳐 지나가는 길에 동료 철학자에게 잠시 들렀던 것뿐이라고 마지못해 둘러댔다. 그 여행에서 누구의 무슨 철학을 어떻게 알게 되었든지 간에 자기는 그것이 너무나 형편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반박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헤이그의 은둔한 혁명가 대 하노버의 젊은 궁정대신
스피노자는 초월적인 인격신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유대 공동체에서 파문당했을 뿐 아니라 기독교 세계에서 ‘사악한 무신론자’로 낙인찍힌 위험한 철학자였다. 1670년에 성서를 역사적으로 해석하고 신권정체 타도와 민주정체를 주장하는 《신학정치론》을 발표한 뒤로 스피노자는 매우 심각한 박해의 위협에 시달렸다. 늘 신변의 안전을 염려해야 했던 스피노자는 서신 왕래를 할 때 가시 돋친 장미와 다음의 한 단어가 새겨진 도장 반지를 활용했다. 그것은 바로 ‘Caute’, 즉 ‘조심’이었다.

라이프니츠에게도 스피노자와의 만남은 독일과 프랑스의 궁정을 넘나들며 화려한 출세의 사다리를 오르고 있던 자신의 경력을 단번에 끝장낼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당시 서른 살에 불과했던 라이프니츠는 이미 유럽이 배출한 최후의 만능 천재임을 만천하에 공언할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었다. 스물한 살에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벌써 수학 분야에서 미적분학을 고안해낸 상태였으며, 화학, 시각(時刻) 측정, 지질학, 역사 편찬, 법학, 언어학, 광학(光學), 철학, 물리학, 시학, 정치 이론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자신이 공헌한 업적들의 긴 목록을 일찌감치 채워 두고 있었다. 그런데 왜 라이프니츠는 자신의 자리는 물론이고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들지도 모를 위험한 모험, ‘불경한 이단자’ 스피노자를 찾아가는 모험을 감행한 것일까?

단 한 장의 메모에 담긴 비밀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만남을 증명하는 직접적인 증거는 단 한 장의 종이뿐이다. 1890년에 처음 출간된 문제의 그 증거는 ‘가장 완벽한 존재가 존재한다’라는 제목으로 라이프니츠가 쓴 한 장짜리 문건이다. 라이프니츠가 그 종이의 여백에 적어놓은 기록에 따르면,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의 눈앞에서 그 글을 직접 읽어주었다고 한다. 그 한 장의 종이에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존재, 즉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들의 토론 주제는 결국 이 한 단어로 압축된다. 바로 ‘신’이다. 스피노자는 기독교의 하느님으로 대표되는 초월적인 인격신에게 이제 그만 인류에게서 떠날 것을 요구한다. 흥분해서 날뛰는 광신자들과는 달리, 당대에 스피노자와 견줄 수 있는 지성의 소유자 라이프니츠만이 스피노자의 논증 속에서 족쇄에서 풀려난 근대 이성의 종착점이 어디가 될 것인지, 또 그러한 결말이 어떤 파괴력을 발휘할지 절절히 인식할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의 천재 소년, 공공의 적이 되다
스피노자는 근대 철학자들 중 현대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철학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수많은 철학자들이 스피노자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헤겔은 “스피노자의 추종자가 된다는 것은 모든 철학의 필수적인 출발점이다.”라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자, 다음과 같은 유명한 답변을 내놓았다. “나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습니다.”
스피노자는 평생 지극히 검소하고 조용한 삶을 살면서 오로지 자신의 철학 체계를 갈고 닦는 일에 전념했고, 그런 점에서 오늘날 스피노자는 진정한 철학자의 표본으로 불린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생활 방식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단순한 인간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친구들과 방문객들은 그에게서 수수께끼 같은 면모를 심심치 않게 발견하곤 했다. 바로 신중함과 당돌함, 겸손함과 오만함, 그리고 냉철한 논리와 반항적인 열정이 기묘하게 뒤섞인 모습이었다.

파문당한 천재
바뤼흐 스피노자는 1632년 11월 2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부유한 포르투갈계 유대인 무역상 미카엘 스피노자의 셋째 아이로 태어났다. 포르투갈식 이름인 ‘벤투’라고 불린 스피노자는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학교에서 이례적으로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신동으로 주목받았다.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하지 않았다면, 스피노자는 랍비 교육을 받았을 것이고 서양 철학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1653년 아버지가 죽은 뒤 스피노자는 무역상이 되어 집안을 책임지게 되었다. 무역상 일을 하면서 그는 자신을 새로운 배움의 세계로 인도한 프란스 판 덴 엔던과 만나게 되었고 여러 명의 평생의 친구들을 얻었다. 라틴어 학자이자, 급진적인 민주주의 투사였던 판 덴 엔던에게서 스피노자는 라틴어를 배웠고 데카르트 철학을 만났다.

스피노자는 유대 공동체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다. 그가 모세5경이 실은 인간이 쓴 것이며, 영혼은 육체와 함께 죽고, 신은 물질 덩어리라고 믿는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1656년 스피노자의 이단적 생각을 소문으로 접한 유대 공동체 지도자들은 청문회를 열어 그를 파문한다. 스피노자의 파문은 그때까지 이루어진 모든 파문의 형태 가운데 가장 가혹한 것이었다. 심지어 가족과도 말을 하거나 식사를 할 수도 없었다. 스물세 살에 유대 공동체에서 파문당한 스피노자는 이중의 망명자가 되었다. 유대인들에게 그는 불경한 이단자였고, 기독교인들에게 그는 무신론자 유대인이었다.

“그의 철학은 그렇게 나쁜데 어떻게 그의 삶은 그리도 훌륭할 수 있나?”
파문당한 뒤 스피노자는 자기 철학의 유일한 목적을 “부단하고 지고하며 영구불변한 행복”을 성취하는 데 두었다. 그 행복은 오로지 ‘사유하는 삶’을 통해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물질적인 쾌락은 불필요했다. 다만 철학자에게도 건강을 유지할 정도의 돈은 필요했고, 이 삶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그는 광학용 렌즈를 갈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스피노자는 낮에는 현미경과 망원경을 위한 렌즈를 갈고 닦았고, 밤에는 촛불 아래서 자신의 형이상학 체계를 갈고 닦았다.
늘 경건하고 검소하며 조용한 삶의 방식은 그를 이단자, 무신론자로 비난하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17세기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무신론자는 퇴폐적인 인간이었다. 인간을 심판하는 섭리의 신을 믿지 않는 비(非)신앙인은 모든 형태의 감각적인 자극에 탐닉하고, 닥치는 대로 속이고, 사기 치고, 그러다가 마침내 전능자에게 붙잡혀 괴로운 죽음을 당하는 신세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추론에서 스피노자는 예외였다.

“그 불온한 서적이 출간되는 것을 막아라.”
1677년 2월 21일 스피노자가 지병인 폐 질환으로 불과 마흔네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스피노자의 죽음이 몰고 온 가장 큰 파장은 그의 유고집 출간과 관련된 일이었다. 스피노자의 유언에 따라 그의 미출간 원고인 ≪에티카≫와 그의 다른 글들이 담긴 책상이 봉인되어 비밀리에 출판업자에게 전달되었다. 스피노자의 유고집 출간은 극도로 위험한 프로젝트였다.

1677년이 며칠 안 남은 시점에 스피노자의《유고 전집》이 마침내 암스테르담의 지하 인쇄소로부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책은 과거 《신학정치론》이 출간된 이후 꺼지지 않고 남아 있던 비난과 검열의 불길을 다시 뜨겁게 불러일으켰다. 유고집 출간은 독일 하노버에 있는 한 철학자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다. 그 안에서 위험한 무신론자에게 자신이 보낸 호의적인 편지를 확인한 라이프니츠였다.

옴니마니아, 혹은 다중 강박증에 걸린 남자
계몽주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는 “누구든 자신의 조그만 재능을 라이프니츠의 재능과 비교해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책들을 집어던지고 깊고 어두침침한 모퉁이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며 그의 재능을 칭송했다. 반대로 볼테르는 철학적 소설 《캉디드》에서 라이프니츠를 극단적인 낙천가로 조롱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그를 ‘싸구려 인기’를 추구하느라 자신의 천재성을 비천하게 만든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조롱과 찬사를 동시에 받는 라이프니츠는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까.

라이프치히의 신동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1646년 7월 1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라이프치히대학 도덕철학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에 스피노자의 별이 환히 빛났던 것만큼이나 고트프리트의 별 또한 찬란하게 빛났다. 그러나 두 사람은 제각기 매우 상이한 유형의 신동이었다. 학교에서 스피노자는 내성적이고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눈에서 느껴지는 어떤 번득임과 이리저리 오가다 무심결에 내뱉는 날카로운 언변이 없었더라면 그는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았을 그런 유형의 천재 소년이었다.” 반면에 라이프니츠는 “자신이 지닌 최고의 지능이 다른 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축소하려는 성향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점은 어린 시절에는 물론이고 훗날에도 변함없었다.

1666년에 고트프리트는 라이프치히대학에 자신의 박사 학위를 청구했다. 그 학위는 그의 20년 생애가 일관되게 지향해 온 결정적인 순간이자, 작고한 유명 교수의 아들로서 그에 걸맞게 지역 학문 공동체 내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는 법학과 수학에서 자신의 선구적인 연구 작업이 적절한 요구 조건을 충족시켰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의 청구는 거절되었다. 그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좌절이었다. 그리고 그의 연구에 담긴 개척자적인 의의에 비추어보면 엄청나게 불공정한 결과였다. 그 길로 라이프니츠는 바로 고향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세상을 위한 철학을 꿈꾼 신의 변호인
스피노자를 이해하는 데 이중으로 추방된 망명자였다는 점이 중요하다면, 라이프니츠 철학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가 태어난 곳이 30년 전쟁의 참화를 입은 독일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유럽을 휩쓴 종교 전쟁인 30년 전쟁으로 독일 인구는 2100만 명에서 1300만 명으로 급감했다. 그것은 20세기의 세계대전들에서 발생한 사상자 수치를 능가하는 파괴력이었다. 평화를 갈망했던 라이프니츠는 모든 사상의 위대한 중재자, 신의 변호인이 되고자 하였다. 30년 전쟁이 낳은 아이로서 그는 오로지 평화만이 지속적인 지성의 번영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1670년부터 마인츠 선제후의 추밀고문관으로 일하게 된 라이프니츠는 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자신이 세운 원대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 국가 건설 계획이었다.

만물을 향한 열정
스피노자가 전형적으로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었다면, 라이프니츠는 정반대로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벌이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라이프니츠는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을 보이는 ‘옴니마니아(omnimania)’ 성향을 보였고, 계획 세우기의 신봉자였다. 그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다중 작업자의 한 명이자, 많은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기의 대가로 인정받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끊임없이 세우는 다양한 계획들은 결실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 또한 많았다.

라이프니츠의 배는 결코 항구에 안착하지 못했다. 매우 부유한 사람으로 간주될 만한 직무와 직함과 자금을 축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멈추지 않고 기어코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안전을 찾아서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라이프니츠에게 삶은 물질 세계의 침탈 행위에 맞서 싸우는 지속적인 투쟁이요, 존재 자체의 불안정성에 맞서 내뱉는 끝없는 불만의 표출이었다. 실제로 그는 스피노자가 11년 동안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을 1년 연봉으로 받으면서도 늘 더 많은 급여를 원했고, 하노버 궁정에서 일하면서도 파리나 런던으로 탈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지원서를 쓰고 명사들과 접촉했다.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근대적 사유의 탄생
코페르니쿠스에서 갈릴레이로 이어지는 일련의 천문학적 발견과 뉴턴의 역학 등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17세기에 신과 종교의 권세는 급격히 쇠퇴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무너졌고, 인간이 신의 모든 피조물들 사이에서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믿음도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세계 무역의 확대로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 사회가 문명의 원천이라는 믿음에도 일찍이 금이 간 상태였다. 거기에 종교개혁 이후 당혹스러울 정도로 심화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갈등, 가속화된 경제 발전과 도시화, 통치 세력의 세속화가 더해지면서, ‘신의 존재’를 중심으로 유지되어 온 중세적 질서는 뿌리부터 흔들렸다.

‘천재의 세기’ 또는 ‘가장 사악한 시대’
후대 역사가들은 갈릴레이, 뉴턴, 데카르트, 홉스, 로크,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이 활약한 17세기를 ‘천재의 시대’로 부른다. 그러나 당시 세상의 판세를 읽을 줄 알던 사람들의 일반적인 의견은 그 시대가 대단히 사악하다는 것이었다. 17세기 삶의 풍요로우면서도 혼란스러운 풍경을 하나로 꿰뚫는 단 하나의 맥락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 시대가 하나의 과도기, 즉 중세의 신정(神政) 일치적인 질서가 근대의 세속적 질서에 막 자리를 내주던 시대였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바로 그 전환기의 세계를 누구보다 먼저, 냉철하게 인식한 사람이었다. 저자는 스피노자를 근대 세계를 제대로 관찰한 최초의 인물이자, 근대성을 능동적으로 끌어안은 최초의 근대 사상가라고 평가한다.

스피노자의 근대적 이성이 찾아낸 새로운 신
스피노자는 전통적인 신 개념을 전제정치의 대들보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신학자들은 미신에 갇힌 군중의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심판하고, 처벌하는, 무서운 신에 대한 믿음을 조장하는 것이고, 실제로 조직화된 종교란 조직화된 사기 집단에 불과하다. 스피노자가 이성의 인도에 따라 발견한 새로운 신은 자신을 섬기는 인간들을 어여삐 여기는 그런 신이 아니었다. 스피노자의 신은 ‘인격성’이 없다.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신은 잠을 자지도, 꿈을 꾸지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결정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다. 신은 개개인을 판단해서 그들을 천국이나 지옥으로 보내지 않는다. 스피노자의 신은 ‘자연(Natura)’이었다. 여기서 ‘자연’은 만물의 ‘본성’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인간은 신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인간은 돌멩이나 나무와 다를 것이 없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반드시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하고, 그리고 자연만이 참된 숭배의 대상이다.” 스피노자의 세계에서 인간은 돌과 나무와 고양이가 그렇듯이 그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자연이라는 단 하나의 왕국에 속해 있다. 이런 단순한 명제와 더불어 스피노자는 지난 2천 년 동안 종교와 철학의 심장부에 꽂혀 있던 말뚝을 뽑아내버렸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인간을 나머지 자연과는 별개의 존재로 간주해야 한다는 태도였다.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켰던 스피노자 특유의 겸손함은, 개개의 인간들이 광대한 자연의 활동 속에 단지 하루살이 같은 보잘것없는 신세에 처해 있다는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신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스피노자의 신 개념에 따르면, 행복의 문제 역시 신의 영역에서 떨어져 나와 개인의 책임이 된다. 스피노자의 세계에서 신은 인간의 관심사에 무심하다. 물론 신이 냉담해졌고 인간의 특권이 불확실해졌다는 사실을 스피노자 자신보다 더 뚜렷하게 자각하고 있던 사람은 없었다. 따라서 행복은 스피노자의 최대 문젯거리였다. 다시 말해, 스피노자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철저하게 세속화된 이 세계에서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도덕적일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스피노자는 인간에게 특별한 무엇이 있지는 않지만 특별해질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생각했다. 스피노자는 그것을 가리켜 ‘마음의 삶’이라고 불렀다. 즉 사유하는 삶 속에서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두철미 ‘마음의 삶’을 실천하려 했다.

수없이 많은 ‘모나드’들로 이루어진 세계
라이프니츠 또한 스피노자에 못지않은 혜안을 지니고 있었고, 야심의 크기 역시 결코 뒤지지 않았다. 라이프니츠 역시 근대적 사유의 핵심인 합리적 이성에 대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고, 그로 하여금 헤이그 여행길에 나서게 한 것도 바로 그 신념이었다. 그리고 스피노자와의 만남은 라이프니츠의 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라이프니츠가 근대의 도전들에 맞서 나름의 독창적이고도 대조적인 반응을 표출하게 된 것은 바로 스피노자를 만났던 사건의 직접적인 결과라 말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는 모든 면에서 스피노자의 이론을 논박하고 이성의 힘으로 자신만의 형이상학 체계를 세우려 했다. 무엇보다 그는 스피노자의 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가 말하는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이며 합법칙적인 신을 신으로 부를 수 없다고 보았다. 라이프니츠는 지성과 의지를 지닌 가장 완벽한 존재로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의지와 선택권을 지닌 신이 우리 인간에게 유익한 것을 염두에 두고 모든 일을 행하며,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행복과 평온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보장하는 이론을 폈다.

또한 라이프니츠는 이 세계에는 신이라는 단 하나의 실체만 존재한다는 스피노자의 이론에 맞서, 세계가 무수히 많은 실체 즉 ‘모나드’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스피노자는 신만이 유일한 실체이며 인간은 단지 실체의 한 양태일 뿐이라고 보았고, 그 결과 인간의 마음도 소멸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끌어내렸다. 이를 논박하기 위해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를 세운 것이다.

스피노자의 부활, 라이프니츠의 재발견?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는 이른바 근대성이라고 불리는 일군의 경험들에 대해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반응을 각기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간단히 말해, 근대적인 사유의 상당 부분은 1676년 11월 헤이그에서 만났던 그 두 철학자가 각자 표방한 양극단의 철학을 오가며 벌어진 방랑의 역사였다. 한편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극단적으로 다르면서도 늘 인간 경험의 일부를 형성해 왔던 한 쌍의 철학적인 인물 유형을 각자 표방한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의 삶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목차

프롤로그 다락방의 은밀한 만남

1장 세속의 성자
그 비범한 남자는 왜 파문당했나?

2장 스물한 살의 법학박사
만물박사, 정치 세계로 들어가다

3장 성스러운 유물론자
“유물론자가 어떻게 영적일 수 있는가?”

4장 신의 변호인
끝을 모르는 정력, 만물을 향한 열정

5장 세계 혁명의 지도자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책을 쓰다

6장 여러 얼굴을 지닌 만능인
기독교 공화국 건설을 꿈꾸다

7장 스피노자의 친구들
분노한 철학자, 격문을 쓰다

8장 파리의 라이프니츠
“세계를 치료하기 위해 세계를 기만한다.”

9장 스피노자의 신
《에티카》,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의 기록

10장 신의 존재 증명
신을 구출하겠다는 라이프니츠의 꿈

11장 ‘신 들린’ 자들의 논쟁
신을 닮은 사람과 신에 미친 사람

12장 죽은 철학자의 비밀 서랍
“불온한 책의 출간을 막아라.”

13장 철학이라는 이름의 정치학
세계 통합을 향한 원대한 야망

14장 스피노자의 유령
스피노자와 싸우는 스피노자주의자

15장 억압된 것들의 귀환
“신이 모나드라면, 그는 신이 아니다.”

16장 위대한 모나드의 최후
신을 찾아 헤맨 자, 무신론자로 죽다

에필로그 스피노자의 부활,
라이프니츠의 재발견

스피노자 · 라이프니츠 연보 / 주석
참고문헌 / 자료들에 관한 주석
옮긴이 후기 / 찾아보기 - 인명 · 용어

저자소개

저자 매튜 스튜어트(Matthew Stewart)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1988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은 후 강단에 서지 않고 대신 경영 컨설턴트로 현실에 뛰어들어 모험을 시작했다. 여러 은행들을 위해 일하면서 경력을 쌓았고, 동료들과 함께 경영 컨설팅 회사를 창업해 운영하기도 했다.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는 네덜란드에서 컨설턴트로 일할 때 구상한 일종의 철학 스릴러에서 출발했다. 1676년에 헤이그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진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만남을 소설이나 시나리오로 만들겠다는 최초의 구상은 곧 방향을 바꾸었다. 수많은 자료를 검토한 끝에 어떤 기발한 상상도 실제 일어났던 사건만큼 흥미진진하고 풍부한 의미를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 책이 대중과 평단의 격찬을 받으며 매튜 스튜어트는 철학 저술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이밖에 《The Truth About Everything》, 《The Management Myth》, 《Monturiol\'s Dream》을 썼다.

역자 석기용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언어철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대우교수이자 생명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 《요부, 그 이미지의 역사》, 《철학, 더 나은 삶을 위한 사유의 기술》(공역), 《다윈은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세상을 미치게 하는 음식들》, 《신(神) 이론》, 《위대한 질문》, 《러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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