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는 의미에 대하여: 번뇌가 깊어지면 ‘꽃’이 핀다
1부 나를 넘어
조국애란 무엇인가 | 타향살이, 불안의 일상화 |
거절의 미학 | 부처님 오신 날 |
절망을 느끼는 순간 | 너무 쉽게 망각된 그들, 고려대 출교자 |
자리가 사람을 명예롭게 만든다? | 학문의 의미, 미국의 아시아 학회에서 돌아와서 |
종교적 심성을 갖게 된 계기 | 근대적 ‘민중’에 대한 생각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선생, 그리고 군인과 아이 | 노르웨이 직장의 송년회 |
성욕과 종교에 대한 짧은 생각 | 등수 없는 학교의 추억 |
“코리안 호스티스가 필요하세요?” | ‘친절’이라는 국제자본주의체제의 코드 |
불만과 불안의 수위, 그리고 우리들의 미래 | 우리들의 중독(들) |
마광수 교수의 연구실을 보고 | 인권, 아직 오지 않은 ‘근대’ |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인가 | 권위주의 사회엔 권위가 없다 |
<효자동 이발사>와 지배·복종의 심리 | 군 폭력 관련 보도를 보고
2부 우리를 넘어
한국 유학생들의 핸디캡 | ‘테러리스트’는 욕인가? |
<겨울연가> 열풍, 그렇게 자랑스럽기만 한가?|‘악플’의 문화 |
한국 자본주의 미래 비관 | KTX 여승무원의 단식을 보며 |
여행잡감, 영어를 못(안)하는 유럽 | 포섭, 감옥보다 더 무서운…… |
유사 성행위와 유사 신앙행위 | 한국의 자유주의, ‘말의 잔치’ |
보수가 표를 얻는 비결? | 전교조 죽이기, 골프 버금가는 한국 지배계급의 취미 |
아니, ‘백인’이 뭐가 좋다고 이러는가? | 대학 신문을 보다 눈물 흘리다 |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한다 | 내가 현실정치를 평생 못할 이유 |
NL파 세력이 유지되는 이유 | 한국사 교과서를 쓰면서 역사 속의 선악을 생각하다 |
숫자놀이의 무의미함에 대해서 | 내가 방효유 선생을 내심 좋아하지 않는 이유 |
‘삼성관’에서 회의를 해본 느낌 | 제 손으로 제 무덤파기, 과잉성 혹은 예방성 폭력 |
강정구 선생 유죄 판결, 혹은 절망의 시간 | 우리가 도대체 그때 노무현에게 왜 기대를 걸었을까? |
‘바람직한 우익’, 한국에서 가능할까?
3부 국가와 민족을 넘어
‘민족주의자’를 포용하는 방법 | 희망과 절망 사이, 북한 학자들과의 ‘만남’ |
사회주의자가 ‘예수쟁이’ 구출에 사활을 걸어야 할 이유 | 국기에 대한 쓴웃음 |
통일, 디스토피아의 그림자 | 한국 사랑? |
‘일심회’ 판결 유감 | 의사 폴러첸의 강의를 갔다 와서 |
귀화인도 ‘한국인’인가? | '노무현’에 대한 가장 위험한 착각 |
‘국민’, 해체되지 않는…… | 미국의 주요 일간지가 전하는 북한의 ‘진짜 의도’ |
김일성 대학 기숙사의 국제 사랑 이야기 | 황장엽의 회고록을 읽다가…… |
‘그들’의 ‘민족’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 | 북한 인권 문제를 생각한다 |
‘반미’보다 차라리 ‘반미제’ | 역사학자들이 파업을 벌인다면? |
극단주의는 왜 위험한가 | 남이 하면 ‘우경화’, 우리가 하면? |
김영남, 그리고 ‘일본인 납치’ 문제 | 월드컵, 스포츠, 그리고 국가 |
우리는 그들과 얼마나 다른가? | 북한은 과연 ‘깡패 국가’일까? |
불교는 평화의 종교? |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4부 경계를 넘어
러시아의 ‘인간 사냥’ | 악의 일상성에 대한 명상 |
‘고향 방문’의 슬픈 회상 | 노르웨이 국치일 |
발이 빠지기 쉬운 징검다리 | 원칙을 배반한 타협의 결과 |
일본 잡감 | 일본공산당원이 서대문 감옥을 둘러보는 심정? |
‘진짜 사회주의’? 슬랴프니코프와 트로츠키 | 배울 것만 배우자 |
노르웨이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오해 | 사담 후세인과 서구인들의 인종주의 |
러시아에 스킨헤드라는 망종이 생긴 까닭 | ‘주니어 제국주의자’들의 발흥 조짐? |
우리가 영어에 매달리는 이유 | 후쿠오카 단상, 의아한 평화 |
성개방과 보수성의 관계? | 일본공산당을 생각한다 |
트로츠키 아이러니 | 모리타 어민의 죽음 |
다민족 국가 미국의 진일보한 인재등용책 | 미 제국이 몰락해버린다면……? |
언어를 빼앗긴 자의 언어, 프랑스 무슬림 청년들의 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