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중 ‘장진호 전투’는 처절하기로 근대 전쟁사에 3번째로 기록 된다. 미해병1사단은 미국이 자랑하는 최강의 부대로서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마무리한 후 회항, 원산에 상륙하여 압록강으로 치닫고 있었으니 북쪽 공산정권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동부전선 X-군단은 선전포고 없는 15개 사단의 중공군에 포위된다. 영하 30도의 개마고원의 강추위 속에 퇴로는 ‘덕동 통로’ 고개 길 하나뿐, 이곳에 해병 폭스중대를 투입, 중공군 3개 대대와 8일간의 전투를 치른다. 이름 하여 혹한의 17일간의 ‘장진호 전투’이며 승리한 하이라이트전투이다. 눈보라와 바람뿐인 장진호는 피의 갈혈천을 만들고... 드디어 ‘덕동 통로’를 확보하니 압록강으로 진군하던 8천여 해병은 무사히 사단본부 하갈우리에 이른다. 이 병력은 훗날 국군 수도사단, 제3사단을 포함한 UN군 10만과 피난민 14만 명의 역사적인 흥남부두 철수작전을 가능케 했으며, 기네스북에 오른 12월 24일 피난민 14천명을 태운 메르디스 빅토리호가 그 마지막 철수였다. 눈물겹고 감동적인 철수. 그야말로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해병전우들은 ‘초신퓨’CohsinFew 단체를 결성하여 장진호와 엇비슷한 알래스카에 기념공원을 건립하고, 미국 해군은 순양함을 건조 ‘장진호’로 명명 진수했다. 할리우드는 ‘혹한의 17일’이라는 장진호 전투를 영화로 제작 중에 있으며, 오바마 대통령은 6·25전쟁 휴전일인 7월 27일을 ‘미국의 참전유공자의 날’로 선포하고, 퀀티코 미국립해병대박물관에 장진호 전투기념관을 건립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저자 바브 드러리와 톰 클라빈은 장진호전투의 해병 생존자들을 면담하고 국무성 자료들을 끈질기게 추적, 전쟁종료 59년만인 2009년에 ‘폭스중대의 최후의 결전’을 발간하니 장진호 전투의 처절함이 세상에 알려졌다.
6·25전쟁은 우리민족의 비극이요, 인류역사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 대한민국 군인만도 13만8,000명이 전사하고, 당시 남북 총인구 3천만 중 500만 명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16개국 참전국 미군은 5만 명 전사에 47만 명이 다치거나 불구자가 되었다. 세계지도에 찾아보기 힘든 코리아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젊은이들은 그렇게 죽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