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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삼대

아베 삼대

  • 아오키 오사무
  • |
  • 서해문집
  • |
  • 2017-11-05 출간
  • |
  • 336페이지
  • |
  • 152 X 211 X 25 mm /555g
  • |
  • ISBN 9788974838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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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반골 평화주의자, 아베 간
일본 혼슈 최서단에 위치한 시모노세키시 부근의 시골 마을(옛 헤키촌)에서 아베가는 대대로 간장 등을 만드는 양조업을 해 왔다. 또 논밭이나 산림 등을 많이 소유한 대주지기도 했다. 현재 아베가의 생가와 묘지도 모두 그곳에 있다.
아베 총리의 할아버지인 아베 간은 이곳에서 1894년 출생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 모두 여의고, 이모 손에서 자랐다. 어릴 적부터 수재로 유명했던 간은 이 마을 출신으로는 드물게 도쿄제국대학 정치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도쿄에서 잠시 자전거 가게(산페이상회)를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어린 아들 신타로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줄곧 그곳에서 활동했다.
간은 결핵과 그에 따른 척추뼈 괴사 등으로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헤키촌 촌장과 야마구치현 의원, 중의원 의원 등을 겸임하며 활발히 정치활동을 했다. 특히, 1937년 4월 치러진 중의원 의원선거에서는 반전과 기성정당 비판, 그리고 친서민 정책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출마해 당선했다. 이때부터 간에게는 ‘반골’,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 같은 수식어가 붙게 됐다. 이후 ‘익찬선거(관제선거)’로 불리는 1942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비추천이라는 불리함과 경찰·헌병의 삼엄한 감시를 이겨 내고 당선했다. 그러나 재발한 결핵 때문에 정치가로서의 꿈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채, 1946년 향년 51세로 세상을 떠났다.

간이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고향인 옛 헤키촌 사람들은 지금도 간에 대해 한없는 동경의 마음을 품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손자 신조에게는 불안과 불만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 본문 105쪽

균형 감각을 겸비한 보수주의자, 아베 신타로
신타로는 1924년 도쿄에서 간과 시즈코 사이에서 출생했다. 하지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 간의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아버지의 고향인 헤키촌으로 오게 된다. 이후 신타로는 헤키촌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쿄제대 법학부에 진학했다. 하지만 입학과 동시에 해군 시가항공대로 징병됐고, 특공(가미카제)에 지원한다. 다행히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신타로는 1949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마이니치신문 정치부 기자로 입사했다.
이후 신타로는 1951년 기시 노부스케의 딸 요코와 결혼한다. 1956년 기시가 외무상이 되면서 신타로도 신문사를 그만두고 기시의 비서관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기시가 총리가 되자 자연스레 총리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때부터 신타로에겐 기시 노부스케가 정치적 후광이 된다. 하지만 신타로는 주변에 “나는 기시 노부스케의 데릴사위가 아니다. 아베 간의 아들이다”라고 말하는 등, 기시와 거리를 두고 아버지인 간의 후계자임을 밝히고 정치활동을 이어 간다.
본격적인 신타로의 정치활동은 1958년 야마구치현에서 중의원 의원 당선을 시작으로, 1991년 죽을 때까지 단 한 번 낙선을 빼고 총 11번 의원에 당선되는 등 승승장구였다. 또한 소속 정당인 자민당 간사장 등을 역임하고, 내각에서는 관방장관과 외상을 지내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의원으로서는 지역의 ‘자이니치코리안’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좋은 평가를 얻기도 했다. 그 덕분에 비록 선대와 처가가 가진 위광을 등에 업은 세습의원, 수줍음 많고 특성 없는 정치가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절묘한 ‘균형 감각’을 갖춘 보수주의자라는 평을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신타로는 아베 총리와는 달리 매파이면서도 [평화헌법] 옹호론자였다.

아베 신타로는 반골과 반정의 정치가 간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를 가장 큰 자랑으로 생각하며, 아버지의 유산 위에 서 있었다. 그와 함께 눈부신 처가 쪽 족벌의 대열을 잇는 세습 프린스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주어졌던 고독과 전쟁 경험이 균형 감각과 상냥함과 같은 신타로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 본문 224쪽

우파의 아이콘이 된 도련님, 아베 신조
아베 신조는 1954년 도쿄에서 신타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엔 지역구 의원으로 활동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떨어져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와 지냈다. 기시는 신조를 아꼈고, 신조 또한 외할아버지를 무척 따랐다. 신조는 소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도쿄에서 저명한 사학인 세이케이학원에서 보냈다. 이후 신조는 2년간의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79년 고베제강소에 연줄로 입사했지만 회사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1982년 아버지 신타로가 외상으로 취임하면서 신조가 비서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조의 정치계 진출이었다.
한편, 어린 시절 신조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일관된 평가는 “공부도 운동도 그저 그런 정도의 극히 평범한 ‘좋은 녀석’”,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 어디까지나 평범하고 어떤 특별한 부분도 없는 도련님”이다. 그런 그가 아베가의 3대라는 이름을 물려받아, 눈 깜짝할 사이 정계의 계단을 뛰어올랐다. 파란만장한 정치활동을 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조차 이루지 못한 총리직을 간단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처음 집권 때는 좌절을 맛보기도 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세 번째 집권에 성공하며, 최장기 정권을 현실로 만들어 [평화헌법] 개정 등을 노리고 있다. 실로 ‘우파의 아이콘’으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셈이다.

신조가 기시 노부스케를 경애하며 모범으로 삼고 있다고 해도, 솔직히 말해 실제 신조는 상당히 질이 떨어지는 기시의 복제물이다. 친할아버지 간이나 신타로와 비교해 봐도 이 사실엔 변함이 없다. 땅에 발을 붙인 정치 경력의 면면에서도, 이를 지탱하는 지성의 면면에서도, 내부에서 용솟음치는 정치적 에너지와 정열이라는 점에서도 이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취재를 해 본 입장에서 보자면, 대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박력도 매력도 자력도 점점 퇴행하고 있다.
- 본문 305쪽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베 총리가 싫다. 그러나 언론인으로서 사실로 인정해야 하는 점이 있다. 아베 총리는 1차 정권 때는 실패했지만 두 번째에선 집권 5년째를 맞기까지 지지율도 그럭저럭 50~60퍼센트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 여부와는 별개로 이 정권이 일본의 개헌까지 노리는 역사적인 정권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인으로서 ‘아베 총리는 대체 무엇인가’, ‘우린 왜 전후 70년에 이런 정권을 갖게 됐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베 총리는 흔히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를 존경한다고 말하지만, 정치인으로서는 할아버지인 아베 간과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의 루트를 따랐다. 그래서 ‘간-신타로-신조’, 이들 3대를 제대로 그려 보고 싶었다. 이 과정을 통해 전후 70여 년 동안 이어진 일본 정치의 큰 흐름을 잡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본문 속에서 아오키는 아베 총리의 청년기를 아는 수십 명의 지인을 인터뷰한 뒤 “(아베 총리는)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를 존경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아무런 특색 없이 평범하고 성실하며 친구들 사이에서는 상냥한 좋은 집안의 도련님”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텅 빈 깡통’ 같던 아베 신조라는 인물은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처음 국회에 입성한 뒤 주변에 있던 우익 성향 인물들의 영향을 받아 지금과 같은 ‘우익의 괴물’로 변했다. 그리고 이 괴물은 일본 사회가 전후 70년 동안 소중히 지키고 가꿔 온 ‘국가의 모습’을 근본부터 뒤집으려 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 같은 시도는 그 자신이 여러 차례 ‘필생의 과업’이라 공공연히 밝혀 온 개헌을 통해 최종 완성되려고 한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목차

한국어판 서문
일러두기
정ㆍ재계에 뻗어 있는 아베가의 친인척들

서장
1 간
알려지지 않은 할아버지
‘부의 편재’에 대한 분노
반전을 외치며, 익찬선거로

2 신타로
천애고아 골목대장
이단과 자이니치
내 아버지는 대단한 사람이다
리버럴과 균형

3 신조
평범한 ‘좋은 아이’
‘하늘의 섭리’와 ‘운명’
세습의 결말

맺음말
참고문헌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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