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깨침
새로운 것을 향한 열망, 편향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갈망
이 책에 실린 「과학사교편」「문화편향론」「마라시력설」「‘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등의 글이 수록된『무덤』은 일본 유학 시절에서 중국으로 돌아온 후 ‘5·4 신문화운동’ 시기까지의 글들을 정리한 것이다. 이 글들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도 절실히 필요한 ‘새로운 것을 향한 열망’ ‘편향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갈망’ 을 느낄 수 있다.「아름다운 이야기」「그림자의 작별인사」「희망」「가을밤」「이런 전사」「복수」「죽은 불」등의 산문시를 모은 『들풀』은 루쉰의 저작 가운데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상징성 강하고 아름다운 시어들 속에서 아련한 ‘희망’이 느껴진다.「개·고양이·쥐」「사소한 기록」 「후지노 선생」 「판아이눙」등이 실린『아침꽃 저녁에 줍다』는 ‘3·18’ 참안으로 피신 생활을 할 때 쓴 잡문 1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의 제목은 루쉰의 어린 시절을 의미하는 ‘이침 꽃’을 중년이 된 ‘저녁’에 줍는다는 뜻으로, 피난 생활 속에서 자신의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것들이다. 글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향수, 지금 잃어버리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장성」「스승」등의 글이 실린 『화개집』은 중국 혁명의 지도자였던 쑨원이 사망하고 중국 최초의 노동운동이라고 일컫는 ‘5·30 사건’을 지나며 중국 사회가 격랑에 휩싸였던 시기의 기록이다. 루쉰의 중국 사회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이 시작된 하나의 분기점이 된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다. 「꽃이 없는 장미」가 실린 『화개집 속편』은 주변의 논적들과 펼친 논쟁들을 묶은 것이다. 좌우를 염두에 두지 않고 거침없는 비판을 가했던 루쉰이었기에 주변에 논적들이 많았고, 루쉰 고유의 논법과 설득력으로 그 논적들과 맞서 싸웠다.「혁명시대의 문학」「문예와 혁명」등이 실린 『이이집』은 루쉰의 생애에서 가장 쓸쓸한 시기였던 샤먼 시절을 지나 광저우 시절 ‘4·12 쿠데타’로 중국 사회가 또 한 번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 현장이었던 역사의 기록이다. 이 시기를 거치며 루쉰은 마르크스주의로 기울게 되는데, 거대한 사회의 소용돌이 앞에 한 개인의 무력감을 느낀 루쉰의 심경이 잘 담겨 있다. ‘사회의 커다란 변혁 앞에 개인의 역할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반하 소집」「이것도 생활이다」「죽음」「여조」등의 글이 실린 『차개정잡문』『차개정잡문 말편』은 루쉰이 죽기 직전에 쓴 글들이다. 이 시기는 국민당의 검열이 극에 달해 루쉰의 글 또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루쉰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편집하면서 글이 편집된 부분은 밑줄을 긋거나 방점들을 찍어 흔적을 남겼다. 이 글들과 함께 루쉰도 떠났다.
루쉰의 피와 살, 처절한 ‘몸부림’의 기록인 잡문은
시나브로 죽어가고 있는 우리의 영혼을 내리치는 죽비
이러한 루쉰의 잡문들은 그의 정신의 성장과 변화, 평생 타협하지 않고 저항했던 그의 피와 살, 처절한 ‘몸부림’의 기록이기도 하다. 한 개인으로서,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한 가장으로서, 커다란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 놓였던 사회 구성원의 한사람으로서, 당대 청년들의 추앙을 받던 지식인의 한사람으로서 루쉰의 어깨에 올려진 짐의 무게는 너무도 컸다. 그런데도 루쉰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치열하게 살아냈다. 루쉰이 시공을 초월한 오늘의 우리 독자들에게도 남긴 것도 바로 그 ‘시들지 않는 정신’이다. 지금 우리가 루쉰의 피와 살, 그의 삶과 정신의 모든 것이었던 ‘잡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글을 읽는 동안 스멀스멀 깨어나는 살아있는 정신과 세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루쉰은 평생 싸움을 멈추지 않았고, 싸움의 대상은 자와 우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불의하다고 생각했던 것 모두에 분노하고 저항했던, 그리고 그 싸움의 무기는 글, 그중에서도 잡문이었다. 그는 고향인 사오싱산 ‘금불환’이라는 5푼짜리 싸구려 붓 하나에 의지해 소설을 쓰고 잡문을 써내려갔다. ‘금불환’이라는 이름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다시 말해 돈에 불복하지 않고 글을 쓰겠다는 그의 의지의 표명일 수도 있다.
그렇게 써내려간 글은 그 자신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것은 그의 말대로 “비수이어야 하고 투창이여야 하며 독자들과 함께 생존의 혈로를 죽여내는 것”(「소품문의 위기」)이어야 했다. 그러므로 그가 쓴 잡문들은 그의 피와 살이고, 그의 삶이었다. 그러하기에 그의 잡문을 읽는 일은 즐겁지 않고 차라리 고통스럽다. 동시에 그 고통은 우리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일깨운다. 밀폐된 ‘쇠로 만든 방’에서 자신의 죽음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시나브로 죽어가고 있는 우리의 영혼을 내리치는 죽비인 것이다. 고통은 살아 있음의 증좌이다.
_옮긴이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