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여서 행복하지만,
두려운 날들이 시작되었다.
나는 다시 ‘나만의 색’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림이 내게 새로이 다가왔다, 엄마의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였다
“삶의 전환점을 맞을 때마다 더욱더 그녀다운 작품을 선보였던
핀란드의 화가 헬레네 스키예르벡.
평생을 충만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았던 스키예르벡의 자화상에서
나는 왠지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감정을 느낀다.
엄마라는 인생의 새로운 문 앞에 선 나의 마음이 담겨서일까.
그림을 보며 나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나를 잃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계속 나답게 살 수 있을까?”
_저자의 말 중에서
헬레네 스키예르벡, [자화상], 1912년
미술사 박사 논문이 거의 마무리되는 와중에 임신했음을 알게 된 이 책의 저자 정하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왔다고 한다. 새로운 생명과의 만남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원래 ‘나’의 계획은 임신이 아니라, 서둘러 학위를 마치고 일자리를 얻어 커리어를 쌓는 것이었다. 또한 출산과 육아로 사회적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모습도 주변에서 많이 봐왔다. 앞으로 진행될 미래를 단 하나도 예측할 수 없어 두려웠노라고 저자는 고백한다.
남편과 둘일 때는 계획적인 삶을 사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엄마가 되고나니 자신이 아닌 아이의 하루 일과에 맞춰나가야 한다는 것 역시, 심정적으로 쉽지 않았노라고 또 고백한다. 삶의 전반에 대한 결정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때 그에게 말을 건넨 것은 그림들이었다. 엄마의 시간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 책을 집필했다는 저자가 첫번째로 소개하는 그림은 우리의 예상을 깬다. 포동포동한 아이와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엄마, 그리고 그 둘 사이에 흐르는 평화로운 분위기. 우리가 생각하는 모자상은 이토록 따뜻하다. 그런데 저자는 함메르쇠이의 [휴식]을 가장 먼저 꺼내들었다.
“전공이 그림을 보는 일이라 마음을 기댈 곳을 찾고 싶어 머릿속으로 잠자는 아기와 엄마를 그린 작품을 열심히 떠올려보았지만 어느 것 하나 마땅치 않았다. 평온히 자고 있는 아기 옆에 예쁜 엄마를 그린 그림들이 몇 점 떠올랐지만 나의 상황과는 너무도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아기들은 새근새근 잘도 자고, 엄마들은 너무 행복해 보이기만 했다. 그런 그림들은 위안이 되기는커녕 내 현실을 더 보잘것없이 보이게 했다. 오히려 나는 아름다운 모자상보다 쓸쓸하고 적막한 빌헬름 함메르쇠이의 그림 <휴식>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
작품 속 여인은 고개를 숙인 채 의자에 비스듬하게 몸을 기대어 앉아 있다.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휴식이 필요해 보이는 여인의 두 어깨가 낯설지 않다. 겨우 아기를 재운 후 지쳐 앉아 있던 내 모습이 그녀의 뒷모습에 겹쳐 보였다. 그녀도 나처럼 나지막하게 깊은 숨을 내쉬고 있을 것만 같았다.” _15쪽
빌헬름 함메르쇠이, [휴식], 1905년
미술사가인 저자에게 그림은 연구대상이기에, 그림을 보면 반사적으로 작품과 작가에 대한 미술사적 사실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제는 [휴식] 속 여인이 늘어트린 오른쪽 어깨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작품이 품고 있는 정적인 분위기에도 위로를 받지만, ‘육아에 지친 나처럼’ 그 어떤 이유에서든 휴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여인의 모습에 더욱 위로를 받는 것이다.
저자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의 색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이 책의 집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상세하게 기술함으로써 자신이 건너고 있는 엄마의 시간에 단단한 힘을 부여한다. 힘을 얻은 그 시간은 저자가 소개한 그림 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저자는 자신이 출산과 육아를 통해 새로이 접한 세계를 어떻게 건넜는지, 또 어떻게 건널 예정인지 그림을 통해 전한다. 육아 전문가는 아니지만, 엄마의 시간을 먼저 경험한 선배의 이야기는 적잖은 위로가 된다.
엄마이면서, 여성이자 한 인간인 내 삶을 살기 위해서
이 책을 먼저 읽은 한국 여성주의 미술 1세대 작가 윤석남은 ‘여성의 독립적인 삶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저자의 고민이 문장마다 새겨져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게 미술 작가 윤석남은 인생 선배이자 선배 엄마이기도 하다. 윤석남 역시 자신만의 세계를 갈망했고, 그 갈망을 고스란히 작품 세계에 반영하면서 우리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작가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엄마가 되면서 생긴, 한 여성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갈망을 이 책에 풀어놓는 것으로 엄마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엄마이자, 나 자신이고 싶은 ‘2018년 한국의 여성들’은 두 개의 정체성과 역할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다. 그 고민을 잘 알기에,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으로 이 문제를 돌파하고자 한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나를 살피는 일’을 멈추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 같을 때 나는 화가들, 특히 여성 화가들의 자화상을 떠올린다. 작품이라는 것은 소재를 불문하고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주제나 양식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 화가의 성격을 반영하지만, 자화상만큼 그린 이의 정체성을 전면에 드러내는 장르는 없다.
인생의 굵직한 변화를 맞을 때마다 다른 스타일의 자화상을 선보인 헬레네 스키예르벡의 모습은 왠지 나에게 용기를 준다. 나 역시 일생일대의 전환기를 맞아 나의 그 무엇이 사라지는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들지만, 사실은 나도 그녀처럼 새로운 스타일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중이 아닐까, 예전의 색, 이전의 나를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것은 지금이 과도기여서 그런 게 아닐까, 실은 좀더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_82쪽
아이와 엄마는 함께 성장한다
이 책은 엄마와 아이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아이의 신생아 시절부터 유치원 입학 전까지의 시간을 담았다.
1장에서 밤낮이 바뀐 아이의 일상에 지쳐가는 자신의 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밥을 거부하는 아이로부터 받은 열패감도 숨기지 않는다.
2장에서는 아이와의 전쟁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전쟁도 만만치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육아 전쟁 속에서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시간도 공간’도 모두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이 마음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알려준다.
3장은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넘어, 남편과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보여준다.
4장과 5장에서 아이는 성장한다. 걷기에 성공한 아이는 이제 엄마와 손을 잡고 함께 산책을 갈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1장에서의 저자와 4장에서의 저자는 다르다. 성장한 것은 아이만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상세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마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은 이 책은 엄마의 성장기를 다룬 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