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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지미 카터 구순 기념 회고록

  • 지미카터
  • |
  • 지식의날개
  • |
  • 2018-03-01 출간
  • |
  • 376페이지
  • |
  • 152 X 225 mm
  • |
  • ISBN 9788920029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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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아메리카 퍼스트 트럼프 시대, 인류 박애주의자 카터를 만나다
20세기 ‘성공한 전직 대통령’ 카터, 21세기 ‘위대한 지도자’로 돌아오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인권과 도덕주의를 기치로 대통령에 취임한 카터. 임기 중에는 파나마운하 반환, 이란 인질사건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때마침 닥친 제2차 석유 파동으로 인한 경제 위기까지 현명하게 극복해 내지 못하면서, 카터는 결국 정권을 교체한 미국 대통령 가운데는 최초로 재선에 실패하고, ‘전직 대통령’이 된다.

오늘날 단기적 이익과 인기에 급급한 지도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카터는 리더로서 세계적인 시야에서 가치와 이념을 추구하는 진정한 지도자로 빛을 발한다. ‘성공한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위대한 지도자’로, 카터는 인류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공통된 가치를 위해 상대편과 대화하고 설득해 나갔다. 더 먼 미래를 내다보았던 카터 덕분에 세계는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중동 평화안을 비롯한 몇 가지 국제적인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고, 냉전은 끝까지 열전이 아닌 냉전으로 지켜졌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같이, 세계가 함께 발전하기보다 자국의 단기적인 이익에 급급한 지도자들이 점차 확산되어 가는 지금. 이제야 비로소 세계는 지도자로서 그때의 카터가 우리 모두에게 옳았음을, 가치와 이념을 추구하는 더 넓게 더 멀리 보았던 참된 리더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1994년 제1차 북핵위기 당시 대북특사 파견,
1977년 주한미군 감축과 국내 핵무기 철수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들


평화올림픽으로 올림픽 정신을 성공적으로 구현하며 폐막한 평창올림픽에 때맞춰, 한국에서도 지미 카터(이하 카터)의 자서전이 나왔다. 최근 양 극단으로 치닫는 북미관계 속에서, 카터는 제1차 북핵위기 당시의 대북특사 파견 경험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과의 심각한 의견 대립으로 한미관계가 어려움에 처했던 지난 1977년의 경험과 관련해서는 당시의 주한미군 감축 계획과 이것이 무산된 과정, 한국전쟁 이후 국내에 배치되어 있던 핵무기 철수에 관한 비화를 소개해 눈길을 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주한 미국대사에 내정되었다가 철회된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의 낙마 배경으로 일각에서는 코피 전략(bloody nose strike)에 부정적이었던 점이 손꼽힌다. 평창올림픽 이후 한반도는 대북 선제타격설로 일촉즉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반면 북한은 평창올림픽 참여와 특사단 파견으로 핵 개발 이후 대화를 통한 출구 전략을 모색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김일성 생존 당시, 3년 동안이나 카터의 방북을 요청해 온 북한과, 영변 핵시설 폭격을 검토하던 미국이 대조되는 1994년의 정세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카터는 회고록에서 평화의 중재자로서 적극적으로 북핵위기에 개입한 과정을 서술한다. 클린턴 대통령의 두 차례 방북 거부에도 불구하고, 승인 없이도 북한을 방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고 결국 방북을 승인받았다. 방북과정 또한 순조롭지만은 않았는데, 김일성이 중국을 통한 방북을 원한 반면, 카터는 서울에서 비무장지대를 경유하고자 했다. 이 책에는 방북과정과 합의내용, 이후 이행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카터가 직접 회상하며, 이때 느낀 김일성 개인에 대한 인상과 방북 소회 등도 언급된다.

대북 경제제재에 대한 인권운동가로서의 견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만남

인권과 세계 평화를 위한 중재자 역할에 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카터는 자신의 행정부를 평가하면서도 인권 옹호를 강조한다. 인권운동가로서 북한의 식량난에 관심을 보이며, 식량 증산을 위해 북한 농업지도자들을 멕시코로 보내기도 한다. 미국의 식량지원 증가에 보람을 표현한 카터는, 특히 북핵위기 당시 본인의 방북에서 연결된 제네바 합의 이후 양국 관계가 개선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후 식량원조의 감소와 북한의 열악한 영양상태에는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카터가 북한 정권에 호의적이라는 것은 오해다. 카터는 단호하게 북한 정권을 폭압적이라고 묘사하며, 독재국가에 대한 결연함을 보인다. 다만 인권운동가로서 실제 경제제재나 경제봉쇄조치의 경우, 독재국가의 통제된 미디어로 역효과를 낼 수 있고, 오히려 정권의 기반만 강화시킨다며, 독재자와 그 측근들에 대한 여행 제한, 해외계좌 동결, 그리고 기타 특권을 표적으로 한 맞춤 경제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대북 경제제재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는 것 같다.
한편,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인권과 도덕주의를 기치로 취임한 대통령답게 카터는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일관되게 ‘장군(General)’으로 호칭하여 눈길을 끈다. 1977년 방한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명망 있는 인권운동가들을 만났다는 사실을 소개하며, 유신 정권의 인권유린 사례를 항의했던 당시의 회담이 자신이 경험한 정상회담 가운데 가장 불쾌했었다고 기억을 끄집어낸다. 상대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당시 영부인 역할을 맡고 있었다고 비교적 호의적인 서술 태도를 보이며, 이후 대통령에 취임한 사실까지 직접 언급한다.

아메리카 퍼스트 트럼프의 시대, 평화와 정의의 사도 카터를 만나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동맹국들과의 무역 분쟁도 두려워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단기적 이익과 인기에 영합하는 지도자들로 가득 찬 오늘날, 카터의 자서전은 우리에게 지도자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카터는 세계적인 시야에서 가치와 이념을 추구했던 이상주의 지도자로, 당시 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없는 정책 가운데 하나였던 파나마운하 반환을 직접 나서서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야당이었던 공화당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알래스카에서도 한반도 면적만한 제한구역을 설정함으로써 카터는 지역민들로부터 지지를 잃어, 실제로도 지역에서 카터에 대한 지지율은 재선 도전 때는, 1976년 대선에 비해 하락한다.
이 밖에도 카터는 냉전 시기, B-1 폭격기 생산에 반대한 것을 비롯해 소련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핵무기 경쟁 속에서도 군축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제2차 석유 파동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해치지 않고 무역 분쟁을 현명하게 해결하고자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여, 오늘날 미국의 일방적인 행보와는 큰 대조를 보인다. 카터가 민주 진영의 거두로서,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지 않고 이상적인 면모를 유지했던 덕분에 세계는 석유 파동으로 인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냉전을 열전이 아닌 냉전으로 지켜냈으며, 오히려 중동 평화안을 비롯한 몇 가지 굵직한 합의까지 이끌어 냈다.
카터가 바라는 미국의 모습은 트럼프와는 대조적이다. 카터는 책의 후반부에서 평화, 인권, 환경, 공정 등의 가치가 미국을 존경받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한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특히 일관되게 자신의 행정부에 대해, 도덕주의적인 면모에 대해서만은 자부심을 드러내는데, 경제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세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오늘날,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지도자로서 카터의 가치는 다시금 조명받아 마땅하다. 카터 스스로도 자신의 결정은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점차 인기를 얻고 있다고 술회한다.

위대한 인물의 담대한 이야기(빌 게이츠)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명저 10선으로 꼽기도 한 《지미 카터(원서 A FULL LIFE)》는 지난 2016년 카터에게 그래미상 수상(Best Spoken Word Album 부문)을 안겼다. 카터 본인이 구순을 기념하여 자신의 선조로부터 최근의 일에 이르기까지, 담담하게 연대기적으로 서술해 나갔으며,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 10컷과 사진 11컷은 물론, 직접 쓴 시 6수가 포함되어 있다.(카터는 1995년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간추려 읽기]

* 제1차 북핵위기와 대북특사 파견

김일성 주석은 내가 평양을 방문해서 그와 미국정부 간의 적대관계를 일부라도 해소시켜 줄 수 있을지 3년 동안이나 요청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문제로 기본적으로 불쾌한 인식 때문에 이 요청을 피하고 싶었다. (…) 1994년 봄에 위기가 발생했다. 북한은 핵확산방지조약의 의무조항을 무시하고 핵시설에서 감시단을 철수시켰고, 사용한 우라늄 연료봉으로 플루토늄을 재처리하기 시작했다. 미국정부는 북한과 대화하길 거부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이 사안을 넘겨 징계적 제재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몇몇 중국 친구들은, 만약 북한을 국제사회의 악당으로 낙인찍고 그들이 숭배하는 지도자를 범죄자로 몰고 가면 북한은 남한을 공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 평양에서 배를 타고 대동강을 따라 바다까지 내려가면서 우리는 12가지 중요한 사안에 관한 합의에 도달했는데, 여기엔 핵문제, 국제사찰단의 조사 허용, 남한과의 정상회담, 비무장지대에 전진배치한 군대의 철수, 그리고 한국전쟁 중 전사한 미군의 유해송환문제 등이 포함되었다.
- 317~318쪽, 8장 가운데 ‘평화’ 중에서
* 1977년 방한과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이어지는 이틀은 국가원수였던 박정희 장군(General Park Chung-hee)을 만났는데, 나는 우선 한국이 경제성장을 실현한 점을 축하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쟁점사안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이 사안들 가운데는 그가 자주국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가 벌인 중대한 인권유린 사례들이 포함되었다. 이 회담은 그동안 내가 우리 동맹국 지도자들과 가진 토론 가운데 아마도 가장 불쾌한 토론이었을 것이다. 박정희의 젊은 딸이자 북한 암살범에 의해 살해된 어머니를 대신해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고 있던 박근혜 덕에 분위기가 어느 정도 누그러지긴 했다.
- 199~200쪽, 5장 가운데 ‘외국 지도자들’ 중에서

내가 대통령이었을 때 한국은 여전히 독재자 박정희 장군이 통치하고 있었고, 미국과 다른 국가들의 엄청난 지원을 받아 가며 주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공산주의 독재자 김일성은 철권통치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었고, 이 지역은 가혹한 경제제재로 외부와 고립되고 경제난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굶주렸다. 남북한 양측의 지도자들은 말로만 통일을 외치고 있었다. 약 3만 명의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주한미군과 한국군은 미군 장성의 지휘를 받았다. 나는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 및 다른 보좌관들과 함께 이제 미군을 감축할 때라고 결정했다.
- 284~285쪽, 7장 가운데 ‘남한과 북한’ 중에서

이 사건 후 놀랍게도 국방부 정보부서는 예전 평가와는 달리 북한의 군사력을 갑자기 두 배로 늘린 평가서를 내놓았다! 이 정보에 매우 회의적이었으나, 보고서가 의회 지도자들과 공유되었기 때문에 보고서 내용을 승인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미군 철수계획은 철회하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대신 핵무기는 철수하기로 했다.
- 285~286쪽, 7장 가운데 ‘남한과 북한’ 중에서

* 대북 경제제재에 대한 인권운동가로서의 견해

먼데일 대통령은 우리 행정부를 요약하면서 “우리는 진실을 말했고, 법을 준수했으며, 평화를 지켰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에 “우리는 인권을 옹호했습니다”란 문장을 덧붙이고 싶다.
- 6쪽, 서문 중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정권을 대상으로 경제제재나 경제봉쇄조치를 취하는 전략을 대부분 효과를 거두기 힘들고 오히려 역효과만 내기 쉽다. 쿠바의 경우 정부가 미디어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쿠바인들은 경제파탄은 미국이 일으킨 것이며 그들은 공산주의 정권의 조치 덕에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하여, 정권은 오히려 권력을 강화하게 된다. 카스트로 형제나 몇몇 고위관리들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생활은 경제제재 와중에도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 있음이 명백했다.
- 280쪽, 7장 가운데 ‘경제제재’ 중에서
북한은 더 비극적이다. 미국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65년 전부터 북한에 엄격한 경제제재조치를 취해 왔다. 이 조치를 통해 북한경제에 최대한 타격을 가하고 붕괴시키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했다. (…) ‘생존을 위한 배급량’으로는 하루 약 600그램의 곡물이 필수적인 것으로 추산되었는데, 북한에서는 종종 하루 128그램씩만 배급되곤 했다. 1998년 북한을 방문한 의회 직원들은 “매년 30만 명에서 80만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 가고 있다”고 보고했다. (…) 폭압적인 북한의 독재 정권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가혹한 제재로 시민들만 볼모로 잡고 있는 듯하다. 굶주린 사람들은 곤궁한 처지에서 벗어날 궁리를 하는 법이고, 그래서 투옥되거나 처형될 확률이 높다. 쿠바에서처럼 북한의 정치 엘리트는 경제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법이 없고, 오히려 북한 지도자들은 북한 도처에서 발견되는 선전물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자신들이 아니라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 280~282쪽, 7장 가운데 ‘경제제재’ 중에서

독재자의 최우선 목표는 정권유지다. 우리는 이미 그들에게 고통당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또다시 고통을 주고 있을 뿐이며, 독재 정권이 국민을 억압하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자로 자처할 변명거리를 만들어 줌으로써 그들의 목표를 성취시켜 주고 있다. 비군사적 압박이 필수적이라고 간주될 경우, 억압받는 국민들의 삶과 밀접한 국가경제를 붕괴시킬 것이 아니라, 결정권을 가진 해당국 관리들의 여행 제한, 해외계좌 동결, 그리고 기타 특권을 겨냥하여 경제제재를 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 282쪽, 7장 가운데 ‘경제제재’ 중에서

* 세계적인 지도자, 평화와 정의의 조정자

베긴 총리에겐 극도로 중요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던 두 가지 사안밖엔 남지 않았다. 한 가지는 예루살렘의 지위였고, 두 번째는 이집트 영토에서 모든 이스라엘인을 철수시키는 문제였다. (…) 몇 분 후 우리는 한 번 더 협상하는 데 동의했다. 몇 번의 격렬한 토론 끝에, 마침내 협상이 타결되었다.
- 233쪽, 6장 가운데 ‘중동 평화안’ 중에서

파나마운하 지역을 놓고 주권문제와 관련한 끝없는 논란이 있었고, 린든 존슨 대통령 임기 초반 양측의 대립은 절정에 달했다. (…) 치아리 대통령은 양국 간 협정개정을 요구했다. 존슨 대통령은 파나마인들의 깊은 우려를 고려하겠다고 약속했고, 이윽고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의회의 반대가 워낙 심해 존슨 대통령은 협정문을 의회에 제출하지도 못했다. 협상은 닉슨과 포드 대통령 시절에도 계속되었지만, 두 사람 다 새 협정문을 의회에 제출할 생각이 없었다. 반면, 파나마와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계속해서 미국을 압박했다. 양측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1973년 파나마는 이 문제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로 가지고 갔는데, 미국은 ‘공정하고 평등한’ 협정으로 새로 협상하자는 요구를 비토했다. 비단 서방국가뿐 아니라 전 세계의 ‘비동맹’ 국가 모두가 파나마의 요구를 지지했다.
- 235~236쪽, 6장 가운데 ‘파나마운하’ 중에서

불공정 무역관행을 두고 여기저기서 기업 간 소송이 발생했고, 미일 양국의 우호적 외교관계를 위협했다. 이 문제를 일본의 후쿠다 다케오 총리와 논의했는데, 우리는 각자에게 조언을 해 줄 ‘현인’ 패널 구성에 동의했다.
- 277쪽, 7장 가운데 ‘일본 및 중국과의 경제전쟁’ 중에서

우리 정부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적으로 국제분쟁을 해결하며, 힘을 닿을 때마다 이 목표를 추구하는 정부로 인식되어야 한다. 또한 국내외를 막론하고 흔들리지 않는 인권의 보루로 인식되어야 한다. 미국은 인류가 공유하는 환경에 대한 위협에 다른 나라들이 함께 맞설 때 그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미국은 솔선수범해서 우리의 부를 필요한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모든 시민에게 동일한 기회를 부여하고, 그들의 삶을 영위하는 데 기초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이런 모범을 보이기 위해선 어떤 희생도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예전처럼 다른 나라들의 신뢰, 존경, 우정을 회복함으로써 미국의 성공은 더욱 추앙받을 것이다.
- 349쪽, 8장 가운데 ‘미국의 미래’ 중에서

* 환경운동가 카터

대통령의 권한으로 알래스카의 넓은 지역을 국가기념지로 지정하기로 하고, 마침내 미네소타주보다도 큰 22만 6천 제곱킬로미터 이상의 지역을 여기에 포함시켰다. (…) 이런 노력들은 막상 알래스카주에서는 매우 인기가 없었다. 알래스카주 축제장에 사람들이 야구공을 던져 두 개의 목표물을 맞추면 광대가 물탱크로 떨어지는 게임이 있었던 것이 기억나는데, 그 목표물 가운데 하나가 내 얼굴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란 지도자 아야톨리 호메이니였다. (…)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이 결정은 알래스카에서 점점 인기를 얻었다.
- 253~254쪽, 6장 가운데 ‘알래스카’ 중에서


목차


서문 / 5
제1장 가족, 어린 시절과 인종문제 / 11
제2장 해군 시절 / 53
제3장 조지아로 돌아와서 / 103
제4장 애틀랜타에서 워싱턴으로 / 145
제5장 백악관 생활 / 175
제6장 임기 중 거의 해결한 사안들 / 207
제7장 끝나지 않은 문제들 / 263
제8장 고향으로 / 303
옮긴이의 글 / 351
찾아보기 /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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