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신원불상의 변사체, 집채만 한 멧돼지……
끊이지 않는 공포의 복선
한 남자를 위협하는 잡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제1부의 주요 등장인물은 ‘조윤식’이다. 모든 사건의 열쇠를 그가 쥐고 있다. 그의 직업은 교사. 누가 봐도 멀쩡하게 생긴 평범한 젊은 남자다. 그러나 얼마나 지독한 살을 맞았는지 허구한 날 공포에 시달린다. 계모에게 직접적인 저주를 가하기 위해 지인들의 초상집을 전전하던 중 멧돼지의 노려보는 눈, 귀신, 방울 소리, 유관순 초상화의 환영에 시달린다. 노들강변에서 여인의 변사체가 발견되는데, 그것도 과거나 미래 속에 숨은 지독한 살의 복선이었다. 윤식이 계모 정금옥에게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려고 꿈꾸면 꿀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공포는 이어진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살은 윤식을 고통 속에 몰아넣는다.
제1부에서 윤식의 발자취를 좇았다면, 제2부에서는 형사 종환의 추적 이야기로 시작한다. 윤식에서 종환으로 시점을 달리하여 비밀을 풀어나가려는 소설적 장치다. 윤식이 사라진 이후라 공포는 잠시 잠잠해진 듯하지만,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비밀들 속에는 더욱 엄청난 살기가 숨어 있다. 이 역시 저주가 부른 ‘악(惡)의 단면’이다. 종환은 과연 친구 조윤식이라는 한 남자를 옥죄는 공포의 존재는 무엇일까, 의문을 품으며 추리한다. 그리고 정금옥은 단순히 계모인가? 알고 보니 그녀는 사탄이 깃든 중년 여성이었다. 그렇다면 윤식이라는 한 남자와 정금옥이라는 한 중년 여성의 단순한 복수극? 지엽적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소설은 개인의 저주와 복수심에서 비롯된 공포를 이야기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사로운 개인의 공포가 인류를 위협하는 거대한 재앙이었음이 곧 밝혀진다.
『을화』와 [오멘]을 병치한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문명 초월적인 공포의 찬가
인간이 경험하는 공포의 근원은 어디인가
무엇이 저주와 공포, 재앙을 만들어낸 것일까. 어느 문명, 어느 지역에나 선과 악의 존재에 대한 전설이 존재한다. 특히나 신앙으로 세워진 종교는 악의 유혹을 경계하고 선을 통해 이겨내야 함을 강조한다. 한국의 무속신앙은 신, 혹은 귀신이라는 영적 존재에 대해 믿음과 경계를 모두 갖고 있다. 선신에게는 제사를 지내 복을 기원하고, 악신에게는 제사를 지내 화를 면하고자 하였다. 서양의 종교에는 악마, 사탄의 절대악이 있다. 종교를 통해 신의 뜻을 따르고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 중요한 교리이다. 바로 이 절대악 혹은 귀신은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경계의 대상이다. 그리고 이는 윤식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이 착실히 따르고 의지하던 공포로부터의 탈출 방법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공포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서 인물들에게 공포를 불어넣는 것이 악마인가? 아니면 인간의 복수심, 애증, 소유욕 등 욕망에서 빚어진 두려움은 아닐까. 악은 단지 인간에게 욕망을 보여주고 무너져가는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과한 욕망과 악한 욕망을 품으면 품을수록 지독하고 흉악한 살이 윤식을 옥죄어오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