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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워 1945-2005 1

포스트워 1945-2005 1

  • 토니주트
  • |
  • 플래닛
  • |
  • 2008-06-30 출간
  • |
  • 734페이지
  • |
  • 145 X 220 mm
  • |
  • ISBN 978899197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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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전후 60년, 유럽인들이 건설한 것은 무엇인가?
“유럽은 단지 물질적 성과가 아니라 정신에 관한 것이다. 유럽은 마음의 상태다.”
____자크 들로르
“유럽인들이 정치인들에 대한 믿음을 잃었을지라도, 유럽 통치 체제의 핵심에는 가장 급진적인 반체제 정당들조차 감히 정면으로 공격하지 못하고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계속해서 지지를 얻은 무언가가 있다.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유럽연합은 아니다. 민주주의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홀로 탄복의 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불명료하다. 또 너무 많이 써먹었다. 자유나 법치도 아니다. 자유나 법치는 수십 년 동안 중대한 위협을 받은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유럽연합 모든 회원국들의 젊은 세대는 이를 이미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실제 작동 방식에 이러저러한 결함들이 있다고 심각하게 지적될 때조차 유럽인들을 하나로 결속시킨 이것은 바로 ‘유럽식 사회모델’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는 ‘미국식 생활양식’과 대비될 때 비로소 그 뜻이 더 분명해진다.”
22장_<구유럽과 신유럽>, 1218쪽.

“지난 세기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지각 변동의 진원지이자 금세기 인류가 지닌 평화의 기회를 실험할 주요 실험실인 유럽. 이 막대한 서사적 중요성을 지닌 주제는 이제 그 무게에 합당한 저자를 찾았다.”_ 스트로브 탤봇, 브루킹스연구소 소장

“정말 훌륭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남긴 잿더미에서 오늘날의 유럽이 등장하기까지의 역사를 이보다 더 잘 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진정한 걸작이다.” _ 이언 커쇼

“<포스트워>에서 주트는 유럽이 치명적인 분열과 파괴적인 전쟁에서 평화롭고 대륙 전역에 걸친 연합으로 변화하는 감격스러운 이야기를 엄청난 지식을 통해 쏟아 낸다. 철의 장막이 무너지는 과정에 대한 주트의 역사 서술은 결정적이다.” _T. R. 리드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

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전쟁이 남긴 폐허에서부터 2005년까지 하나의 유럽을 향한 기나긴 여정을 담고 있는 <포스트워 1945-2005>는 백과사전처럼 광범위한 주제들을 스릴러의 속도감을 지닌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에서부터 냉전의 기원, 유럽 제국주의의 종언과 식민지 해방, 유럽경제공동체의 탄생과 발전, 서유럽의 경제적 번영과 불만, 소련의 동구권 지배와 소비에트 블록의 몰락, 발칸 전쟁, 난민과 불법 이민 노동자, 그리고 스포츠, 음악, 영화 등 유럽인들의 일상적 삶에 이르기까지 주트는 전후 유럽의 모든 것을 철저히 해부한다.
출간 직후 한국을 포함해 브라질, 중국, 크로아티아, 체코, 슬로바키아, 에스토니아, 프랑스, 독일, 그리스, 헝가리, 이스라엘, 일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네덜란드, 폴란드, 포르투갈, 루마니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스페인, 터키, 미국 등 전 세계 26개국과 판권 계약이 체결되었고, 2005년 <뉴욕 타임스>, <타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가디언>, <옵저버>, <뉴 스테이츠먼>, <인디펜던트> 등 주요 언론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현대 유럽은 세계화 시대에 우리와 무관한 곳이 전혀 아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정치적 변동과 과거 청산 같은 무거운 주제들만이 아니다. 기업의 민영화나 ‘제3의 길’, 역사의 상품화, 인구 변동과 연금 문제, 예술에 대한 국가의 후원, 다민족 사회의 문제점, 환경오염, 지역 간 빈부 격차, 분리주의 등 현대 사회의 첨예한 문제들과 좌파와 우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와 시장, 복지와 경쟁 등 서로 대립하는 개념들에 관한 많은 내용들이 들어 있다. 이야기는 과거형이지만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므로 정부나 기업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현대 유럽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또 대학생들에게도 유익한 교양서가 되리라 본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종말론의 무대에서 개인과 국가의 역할 모델로
“마치 여우처럼 유럽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유럽의 전쟁이었고,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었다. 단순히 사망자 수만 헤아려 봐도 그 참상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소련, 그리스가 최대의 인적 손실을 입었다. 폴란드는 전쟁 이전 인구의 5분의 1을, 유고슬라비아는 8분의 1을, 소련은 11분의 1을, 그리스는 14분의 1을 잃었다. 포로들의 운명도 이 비극적인 전쟁의 비참함을 강조한다. 독일군 포로가 된 소련군 550만 명 중 330만 명이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굶주림과 유기, 학대로 사망했다. 비극은 전후에도 이어졌다. 전후 동유럽 지역에 살던 수백만 명의 독일인들이 집과 재산을 빼앗긴 채 살던 곳에서 쫓겨났고, 1953년까지 본국으로 송환된 소련 국민 550만 명 중 다섯에 하나는 결국 사살되거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전후 유럽은 본의 아니게 히틀러와 스탈린에 의해 단일 민족 국가들로 재편되었다.
유럽에서 국가 간의 전면전은 1913년에서 1945년 사이에 종말론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20세기 전반에만 약 6,000만 명의 유럽인이 전쟁이나 국가가 후원한 살인으로 사망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그 누구도 유럽에서 희망의 흔적을 발견하기는 힘들었다. 유럽의 문명은 붕괴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1945년에서 1989년 사이에 유럽 대륙에서 국가들 사이의 전쟁은 사라졌다. 두 세대의 유럽인들은 평화를 마치 자연의 질서인양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전쟁 혹은 이데올로기적 대결은 제3세계에 외주 제작을 맡겼다. 60년 전에 유럽이 이처럼 번영을 이룰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날 유럽은 하나의 지리적 표현에서 개인과 국가에게 역할 모델을 제시하는 매력적인 대상으로 변했다. 유럽 모델은 유럽연합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나라들에게 횃불이자 본보기가 되었다. 도대체 유럽에서는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포스트워1945-2005>는 리스본에서 레닌그라드까지 유럽 34개국 60년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6개 국어로 된 문헌들과 최근에야 비로소 개방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러한 궁금증에 답한다. 40년간 유럽이라는 주제에 헌신해 온 주트는 풍부한 정보와 깊은 학식을 바탕으로 현대 유럽을 만든 흐름과 사건들, 인물들에 대해 서술하면서 연구 대상자들의 행위와 핑계, 공적, 실패에 날카로운 판결을 내린다. 하지만 주트의 유럽 오디세이는 우리에게 단지 현대 유럽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유럽 이야기의 주제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주제들이라는 데 있다. 우선 과거 청산과 통일, 지역감정, 이데올로기와 지식인의 쇠퇴, 반미주의와 반공주의, 출산율 감소와 국민연금 고갈, 공기업 민영화, 이주 노동자 문제 등 각각의 첨예한 사회적 쟁점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 갈등의 진원지라 할 복지 국가와 신자유주의 사이의 길이라는 어려운 문제가 책 전체를 통해 논의되고 있다. 현대 유럽의 역사는 ‘계급’에 집착하며 ‘시장’을 고려하지 않는 좌파와 ‘복지’를 포기하고 ‘공익’을 고려하지 않는 우파 모두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한다. 좌파는 ‘계급’을 뛰어넘어야 하고 우파는 ‘시장’ 너머에 존재하는 사회적 자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 특히 전후 60년 동안의 유럽은 정치, 경제, 사상의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마치 여우처럼 유럽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공산주의 vs. 자본주의 vs. 유럽
“공산주의의 반대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유럽’이었다.”

공산주의를 개혁할 수 있다는 환상, 스탈린주의는 잘못된 길로 들어섰으며 여전히 교정될 수 있는 실수라는 환상, 민주적 다원주의의 핵심적 이상이 마르크스주의의 집산주의 구조와 양립할 수 있다는 환상. 이러한 환상들은 이미 1968년 8월 21일에 탱크에 짓밟혔고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 동유럽의 공산주의는 계속 비틀거렸으며 썩어 가던 송장은 1989년에 가서야 마침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정신은 20년 전인 1968년 프라하에서 죽었다.
레닌은 권력을 한 곳에 집중시키고 강제로 그곳에 존속시켰다. 따라서 공산주의 체제는 주변부에서 무한정 부식될 수도 있었지만, 최후의 붕괴를 주도할 자는 중앙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역할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고르바초프에게 맡겨졌다. 개혁 공산주의자였던 고르바초프는 경제 개혁을 시도했지만, 이내 경제는 문제의 일부일 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당 자체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고르바초프가 추구한 개혁 개방 노선은 보수적인 당 원로들의 반발을 초래하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게 된다.
1988년 12월 7일 국제연합에서 고르바초프가 “선택의 자유는 보편적인 원리다. 예외는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을 때, 이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고르바초프의 선언은 ‘브레주네프 독트린’의 폐기를, 즉 ‘사회주의’ 해석을 형제 국가들에 강요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고백에 머물지 않았다. 고르바초프가 인정한 것은, 아니 인정했다고 곧 이해되었던 것은 위성 국가들의 시민이 이제 사회주의든 아니든 자유롭게 자신들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동유럽 국가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스탈린이 자국의 서쪽 국경에 대한 안전장치로 위성 국가들을 건설했던 것처럼, 고르바초프는 러시아 공산주의를 구하기 위해 동유럽 공산주의가 몰락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전술적으로 보면 고르바초프는 크게 오판했다. 동유럽의 교훈은 채 두 해가 지나기도 전에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략적으로 볼 때 고르바초프는 전례 없이 막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역사상 그 어느 제국도 그토록 급속하게, 그토록 적은 피를 흘리고 영토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고르바초프가 1989년에 발생한 일들에 직접적인 공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고르바초프는 그 일을 계획하지 않았으며 다만 그 장기적인 의미를 흐릿하게 이해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허용하는 원인이자 촉진하는 원인이었다. 1989년의 혁명은 고르바초프의 혁명이었다.
공산주의 이후의 체제는 어디서나 어려움을 겪었다. 공산주의에서 벗어나는 과정에는 선례가 없었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베오그라드에서 버클리까지 학회와 대학, 카페 등에서 지겹도록 이론화되어 왔지만,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공산주의에서 갓 벗어난 동유럽 사람들이 이해한 바로는 자본주의는 시장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시장은 사유화를 뜻했다. 1989년 이후 동유럽에서 벌어진 공유 물자의 특별 판매는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었다. 서유럽에서 70년대 말부터 속도를 더하며 유행했던 사유화는 국가 소유로부터 무질서하게 후퇴하는 동유럽에 모범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하면 그들은 거의 아무런 공통점도 없었다. 서유럽과 대서양 연안에서 등장한 자본주의에는 지난 400년 동안 법률, 제도, 규정, 관례가 축적되어 있었다. 하지만 탈공산주의 국가들에는 그러한 법률과 제도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의 신참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위험스럽게도 이 점을 과소평가했다.
그 결과 사유화는 도둑 정치가 되고 말았다. 자본주의로 이행한 후, 경제는 소수의 수중에 떨어졌고 그들은 터무니없이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2004년 서른여섯 명의 러시아 백만장자들이 국내총생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100억 달러를 차지했다. 사유화와 독직과 단순한 절도 사이의 구분은 거의 사라졌다. 석유, 가스, 광물, 귀금속, 송유관 등 훔칠 것은 너무 많았고 이러한 자원 절도를 막을 사람도 제도도 전혀 없었다. 공적 자산과 공적 제도는 공무원들이 분해하여 서로 나눠가졌다. 이들은 사적 패거리로 이전되거나 합법적으로 양도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빼내어 손에 넣었다.
하지만 여기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점이 있다. 동유럽인들이 권위적인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나기를 열망했다는 사실이 곧 그들이 자본주의를 열망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동유럽 국가들은 자본주의라기보다는 유럽으로 복귀하기를 바랐다. 이는 반체제 지식인들이 오랫동안 다루었던 주요 주제들 중 하나였다. 유럽공동체와 유럽연합이라는 제도적 실체의 존재는 그러한 열망을 더욱 부추겼다. 개인의 권리와 시민의 의무, 표현과 이동의 자유 같은 ‘유럽적’ 가치들에 이들은 쉽게 공명했다. 이제 유럽은 과거의 프라하나 부다페스트의 잃어버린 문화를 위한 만가가 아니라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를 의미했다. 그들에게 공산주의의 반대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유럽’이었다.
이는 단지 수사의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과거의 공산당 간부들은 ‘자본주의’라는 추상적 개념의 약탈 행위를 설득력 있게 지적할 수 있었던 반면, ‘유럽’ 대신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전혀 갖지 못했다. 유럽은 이데올로기적 대안뿐만 아니라 정치적 규범도 대표했다. 그 관념은 때로 ‘시장 경제’ 또는 ‘시민 사회’로 변형되기도 했지만 어떤 경우든 ‘유럽’은 정상 상태와 현대적인 생활양식을 뜻했다. 미국은 오랫동안 유럽의 미래였다. 그러나 이제는 단지 또 다른 장소일 뿐이다.

유럽식 사회모델 vs. 미국식 생활양식
“성장은 추구할 만한 것이지만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얻어야 할 것은 아니다.”

1945년 이후 유럽의 다양한 복지 국가들은 제도적 절차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계산의 반영이었다. 전후 유럽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물자는 극도로 부족했다. 그런데 유럽 국가들은 왜 그렇게 많은 자금을 보험과 기타 장기적인 복지 공급에 기꺼이 투입하려 했을까? 첫째,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전후 복지 제도는 최소한의 정의나 공정함에 대한 보증서였다. 복지 제도는 전전의 절망과 냉소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었다. 둘째, 서유럽 복지 국가는 정치적인 분열을 야기하지 않았다. 복지 국가의 전반적인 취지는 사회적 재분배였지만 전혀 혁명적이지 않았다. ‘부자들의 피를 빨아먹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즉각적으로 가장 큰 혜택을 느낀 자들은 가난한 자들이었지만, 장기적으로 실질적인 수혜를 입은 자들은 전문직과 상인들로 구성된 중간 계급이었다. 유럽의 복지 국가는 사회 계급들을 분열시켜 서로 적대하게 만들기는커녕 이전보다 더욱 긴밀하게 결합시켰고, 따라서 복지 국가의 보존과 방어는 공동의 관심사가 되었다.
참혹한 전쟁을 겪은 유럽 국가들은 놀라울 정도로 급속하게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유럽 특유의 사회 모델을 만들어 냈다. 복지 국가에 유럽연합을 통한 국가 간 협력 관계를 결합시킨 이 모델은 인권, 시장,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미국식 사회모델과 달랐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은 이러한 유럽식 사회모델이 노동 시장을 경직시키고 청년 실업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고율의 세금이 성장과 혁신을 방해한다고 비판해 왔다. 이제 국가 소유와 국가 의존은 유럽의 문제이며, 위로부터의 구원을 과거의 환상이라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은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다. 전후 호황의 절정기에 마련된 복지 정책의 일부가 이제 심각한 부담이 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유럽 경제가 비효율적이라거나 비생산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2003년 스위스, 덴마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경제는 노동 시간당 생산성의 척도로 측정했을 때 모두 미국에 견줄 만 했다. 같은 기준으로 아일랜드, 벨기에, 노르웨이, 네덜란드, 프랑스는 모두 미국을 능가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생산성이 전체적으로 더 높았다면, 이는 미국인들 중에 유급 직업을 갖고 일하는 사람의 비율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미국인들이 유럽인들보다 더 오래 일했고 휴가는 더 적고 짧았다.
영국인은 법적으로 연간 23일의 유급 휴가를 사용할 권리가 있고 프랑스인은 25일, 스웨덴인은 30일 이상의 유급 휴가를 즐길 수 있었던 반면, 많은 미국인의 유급 휴가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유럽인은 마음먹기에 따라 적게 일하고 적게 벌기를, 그리고 더 잘 살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유럽인은 유례없이 높은 세금의 대가로 무료나 거의 무료에 가까운 의료 서비스를 받았으며 빨리 은퇴했고 막대한 사회 복지와 공공 서비스를 보장받았다. 또한 중등학교를 통해 미국인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았다. 더 안전한 생활을 누렸고 그 덕에 더 오래 살았으며 더 건강했고, 가난한 사람도 훨씬 더 적었다.
이것이 바로 ‘유럽식 사회모델’이었다. 이것이 비용이 매우 많이 드는 모델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유럽인들에게 직업의 안정과 누진세, 대규모 사회적 이전 지출에 대한 약속은 시민 상호 간의 약속임과 동시에 정부와 시민 사이의 약속을 의미했다. 매년 실시되는 ‘유로바로미터Eurobarometer’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절대 다수의 유럽인이 빈곤의 원인은 개인의 무능력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또한 빈곤을 완화시키는 데 쓰인다면 기꺼이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에는 국가가 불운이나 시장의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의무를 지고 있다는 데 대해서 폭넓은 국제적, 계급 간 합의가 존재했다. 회사도 국가도 직원을 하찮은 생산 단위로 대우해서는 안 되며, 사회적 책임과 경제적 이익이 상호 배제 관계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성장’은 추구할 만한 것이었지만 어떤 비용을 치르고라도 얻어야 할 것은 아니었다.

해외 언론 서평

“스릴러의 속도감과 백과사전의 범주를 지닌 책. 대단히 주목할 만한 업적이다.”
<뉴욕 타임스>지 선정 ‘올해 최고의 책’

“전쟁의 잿더미에서 출발하여 불확실한 미래로 뛰어드는 유럽 이야기의 결정판.”
<타임>지 선정 ‘올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분석과 종합, 반성이 어우러진 최고의 작품.”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지 선정 ‘올해의 책’

“최선의 역사 서술은 학문인 동시에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선데이 헤럴드>지 선정 ‘올해의 책’

“대단히 인상적인 작품. 이미 일어난 변화와 앞으로 일어날 변화 그리고 직시하고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변화를 철저하게 파고들고 있다.” <옵저버>지 선정 ‘올해의 책’

“유려한 문체가 깊은 지식과 결합되어 있다. 유럽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의 해석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뉴 스테이츠먼>지 선정 ‘올해의 책’

“어떤 서평도 정당하게 다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엄청나게 많은 주제들이 빈틈없이 다루어지고 있다.”
<스펙테이터>

“전후 유럽에 관한 최고의 역사서. 당분간 이 책을 능가할 책은 나올 것 같지 않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한 사람이 집필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초인적인 범주의 작업. 매 페이지마다 예기치 않은 자료를 제시하며 익숙한 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뉴요커>

대가다운 작품이다. 가장 포괄적이고, 권위적이고, 무엇보다 가장 잘 읽히는 전후 역사서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보스턴 글로브>


목차


[1권]

머리말
서문

1부 전후 시대 1945-1953
1장 전쟁의 유산
2장 보복
3장 유럽의 부흥
4장 불가능한 해결
5장 냉전의 도래
6장 회오리바람 속으로
7장 문화 전쟁
종결부 구유럽의 종말

2부 번영과 불만 1953-1971
8장 안정의 정치
9장 잃어버린 환상
10장 풍요의 시대
후기 두 경제 이야기
11장 사회민주주의 시대
12장 혁명의 유령
13장 사건의 종언

[2권]

3부 퇴장 송가 1971-1989
14장 줄어든 기대
15장 새로운 정치
16장 이행기
17장 새로운 현실주의
18장 무력한 자들의 권력
19장 구질서의 종말

4부 몰락 이후 1989-2005
20장 분열하기 쉬운 대륙
21장 청산
22장 구유럽과 신유럽
23장 다양한 유럽
24장 유럽, 하나의 생활양식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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