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으면,
가슴을 쫙 펴고 “영화관 출신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박력 있는 영화광 하이리 씨의
영화관과 검표원에 대한 편애 가득한 이야기
영화 <카모메 식당>의 개성파 배우 가타기리 하이리 씨는 누군가 자신에게 태생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영화관 출신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중학생이 됐을 무렵부터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어떻게든 변통해서 영화에 쏟아 붓고 다녔고, 영화관에 있는 것이 가장 안심되고 아무도 없는 영화관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열여덟 살 때부터 7년 동안 영화관 검표원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특별한 과외활동 덕분에 비뚤어지지 않고, 큰 사고도 치지 않고 어쨌든 멀쩡한 어른으로 자랐다고 믿는 그녀가 풀어놓는 검표원 시절의 추억과 오래된 영화관에 대한 편애 가득한 이야기. 일본의 대표적인 영화 잡지 『키네마 준보』 에 3년간 매달 연재했던 글을 골라서 묶은 이 책은 어쩌면 지금은 사라졌을지도 모를 영화의 원초적인 즐거움―좋아하는 배우의 신작을 기다리고, 개봉 첫날 영화관을 찾아가고, 스크린 앞에 자리를 잡고, 팸플릿을 수집하고―을, 그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준다.
영화관에 관한 기쁨과 슬픔
어렸을 때부터 영화 속 세계에 푹 빠진 나머지 극장이 밝아져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일이 잦았던 하이리 씨. 영화를 사랑한 나머지 무작정 검표원이 된 후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배우와 겸업을 하면서 검표원 일을 계속해나간다. 그만큼 그녀에게 영화관은 지독한 편애의 대상이었다. 이 책에는 하이리 씨가 입장권을 뜯으며 검표원 동료들과 침을 튀기며 나눴던 영화 이야기, 매점 아줌마들과 차를 마시고 야금야금 과자를 먹으며 나눴던 인생 이야기, 사라져가는 변방의 영화관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관과 관련된 모든 기쁨과 슬픔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이 세상에 약간 유쾌한 장난을 치고 싶다. 아무래도 나란 인간은 겨우 그것, 오로지 그것뿐인 충동으로 검표원 일을 했고, 또 연기하는 일도 하는 모양이다. 미묘한 박수를 들으며 새삼스럽게 그런 자신을 깨달았다. 플로어에 서 있을 때도 “어라? 어쩌고 하이리잖아? 왜 여기 있어요?” 하고 여고생이 말을 걸기도 했고, 못 본 척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 반응 없이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반응을 보이든 나는 그때마다 약간의 서프라이즈에 성공한 기분이어서 폴짝 뛸 정도로 기뻤다. 그런 나를 시네마시티 사람들도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지켜봐주었다.”
“손님한테도 단골 바가 있죠? 일을 마치고 훌쩍 옆 마을에 내려서 좋아하는 곳에서 잠깐 쉬는 거예요. 좋아하는 술이 있고, 대화할 상대가 있고요. 다트를 할지도 모르죠. 노래방 기기가 있으면 노래를 할지도 모르고요. 저한테는 그게 검표원이에요.”
“기분만큼은 자메이카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즐긴다는 것은.
영화를 종교처럼 신봉한 어린 시절에는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건네주는 과자마저 신경이 쓰일 정도로, 스토익한 관객이었던 하이리 씨는 영화관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로는 영화를 감상하는 것에서 극장을 즐기는 쪽으로 변한다. 일단 이렇게 되니 전향에도 가속도가 붙어, 과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메밀국수를 배달시켜서 먹으면서 영화를 보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책 속에는 하이리 씨의 대담무쌍한 검표원 생활이 펼쳐진다. 아울러 지금과는 달리 동시 상영이 흔했던 시절, 극장의 단골이자 낮잠 동료들이었던 회사원들, 팸플릿 수집가, 동료 검표원들과의 사소하지만 풋풋한 일상의 풍경이 녹아들어 있다.
“고민 끝에 아버지의 낡은 양복을 입고 넥타이에 모자까지 써서 완벽한 남자로 변신해 명화 상영관에 다닌 시절도 있었다. 너무 완벽한 덕분에 때때로 여자 화장실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비명을 지르고 주의를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줌마가 갑자기 때리려고 한 적도 있었다. 볼일을 보는 사이 직원을 데려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여자예요! 여자라고요!”라고 변명하는 것도 한심했고, 나중에는 “오나베 아니야?”라는 의심까지 받아 결국 완전 무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정도로 약 20년 전의 영화관에는 다양한 종류의 남자가 차고 넘쳤다.”
영화관이 있는 마을은 왠지 두근거린다
하이리 씨는 아주 많은 영화관과 작별해왔다고 말한다. ‘긴자 문화’에서 일할 때는 검표원 동료들과 함께 극장에 작별인사를 하러 일일이 찾아갔다. 하지만 혼자가 되니 그럴 용기도 사라졌다. 하이리 씨는 사라지는 것이 너무 많아서 그때마다 멈춰 설 수도 없었다고 말한다. 책 속에는 그렇게 사라져가는 영화관들―국경마을을 지키는 단 하나의 영화관 ‘야치요’, 융통성 넘치는 복합영화관 ‘시네마 선샤인 이와이’, 지금은 불타 없어진 세계 제일의 영화관 ‘그린하우스’, 영화 <굿’ 바이>에 인상적으로 나왔던 ‘미나토자’…―을 찾아 나선 그녀가 탐정처럼 영화관의 숨겨진 비밀을 밝혀낸다.
하이리 씨는 말한다. 가능하면 지금처럼, 나이를 먹어서도 영화관에 다니고 싶다고. 집이 아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고. 혹시 치매에 걸리더라도 잠옷차림으로 키네마에 가고 싶다고. 이 기적과도 같은 행운을 어떻게든 놓치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 모든 마을의 영화관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고. 모든 마을의 기적을 믿고 싶다고.
“이 마을에 영화관은 없나요?”라고 물으면, 길을 가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며 “여기에 있었어”, “아니야, 저기 있었어요”라고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그 마을의 추억이나 자신이 영화에 품은 추억을 그야말로 행복한 얼굴로 말해주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영화의 힘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 마을에 영화관은 없나요?”라는 한마디로 나는 절대 바꿀 수 없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