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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위안부문제 증거자료집 1

일본의 위안부문제 증거자료집 1

  • 호사카유지
  • |
  • 황금알
  • |
  • 2018-04-19 출간
  • |
  • 416페이지
  • |
  • 131 X 210 mm
  • |
  • ISBN 9791186547977
★★★★★ 평점(10/10) |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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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본서의 목적은 위안부 문제의 논리화 작업입니다. 기타의 특징으로서는 

(1) 주로 1937년부터 1945년까지의 위안부 문제가 본격화된 시기의 관련 자료를 번역?분석함으로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전체상을 누구나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 점(1930년대 초기의 문서도 일부 수록되었음).
(2) 자료집으로만 출간하는 것이 아니라 자료 하나하나에 해설을 추가함으로 자료들이 갖는 의미를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 점. 
(3) 위안부문제 일본문서의 정식 한국어 번역?해설 자료집의 발간은 이 책이 처음이라는 점이 큰 특징이다. 전에 일본학자의 자료집을 번역한 책이 있었다고 들었으나 문서 하나하나에 해설 등은 없었고 그 자료집은 1992년까지의 문서모음이었습니다. 이번 자료집을 1997년 이후에 발견된 것들도 몇 가지 포함시켰습니다. 
2017년까지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던 위안부문제 번역집 파일이 여러 가지 문제로 현재 삭제된 상태이므로 이 자료집이 현재 일본문서를 체계적으로 한국어로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 되었습니다. 
(4) 자료의 출처를 모두 밝혔으므로 원문과 대조가 가능합니다. 
(5) 일본군의 아시아 침략 과정에 관한 배경설명을 추가해 일본군의 침략전쟁 속의 위안부문제라는 시각을 구체적으로 제공해 위안부문제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점. 특히 일본군이 중국북부 공략을 포기하여 남방정책으로 작전을 바꾼 배경이나 진주만 공격보다 1시간 30분 먼저 말레이반도의 영국군을 공격한 사실 등을 언급하면서 일본군의 침략과 더불어 만주, 중국, 동남아 등지로 확산된 위안소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6) 위안부 피해자분들 일부의 증언을 칼럼에 게재하여 문서로 확인되는 내용과 피해자들의 증언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점.
(7) 일본병사들의 증언을 칼럼으로 게재하여 일본군이 실제로 여성들을 강제연행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한 점. 일본병사나 종군일본인기자들에게 위안부가 된 조선인 여성들이 간호사가 된다거나 야전병원에서 병사들을 돌봐준다, 군의 식당 종업원이 된다 등의 말에 속아서 연행되었다고 털어놓은 실화 등을 10개정도 수록했습니다. 
특히 패전 후 일본의 유명 만화가가 된 인물이 그의 만화에 그린 위안부들의 실화에서 위안부 한 사람 앞에 70~100명의 병사들이 줄을 섰다는 만화그림과 이를 증명하는 실제 문서(병사 100명당 위안부 1명으로 정한 문서)를 간담회 때 공개할 계획입니다. 
(8) 여성들을 해외로 도항시키기 위해 일본정부나 일본군이 도항할 여성들에 부여한 신분의 변화(마지막 신분은 군관계자)와 서류 작성의 위법성을 살펴봄으로 위안부문제가 일본정부와 일본군 주도의 법적 범죄였음을 밝히는 작업을 한 점. 이에 대해서는 일본(조선, 대만도 포함)내 경찰서장이 여성들에게 도항신분증명서를 내기 위해서는 전쟁터의 현지 헌병대나 육군성이 여성들의 신분을 군관계자로 한 문서를 내면 경찰서로부터 도항증명서를 얻을 수 있게 했습니다. 처음 관행이었던 것이 1942년 이후 정식절차가 됩니다. 이런 사실들은 사실상 위법에 대한 단속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간담회 때 공개하겠습니다. 
*간결한 의미에서 본서의 특징으로서는 
1. ?주로 1937년부터 1945년까지의 위안부 문제가 본격화된 시기의 관련 자료를 번역 분석함으로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전체상을 누구나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 점 
2. ?자료 하나하나에 해설을 추가함으로 자료들이 갖는 의미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한 점 
3. ?일본군의 아시아 침략 과정에 관한 배경설명을 넣어 일본군의 침략전쟁 속의 위안부문제라는 시각을 구체적으로 제공해 위안부문제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점 
4. ?위안부 피해자분들 일부의 증언을 칼럼에 게재하여 문서로 확인되는 내용과 피해자들의 증언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점 
5. ?일본병사들의 증언을 칼럼으로 게재하여 일본군이 실제로 여성들을 강제연행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한 점 
6. ?여성들을 해외로 도항시키기 위해 일본정부나 일본군이 도항 여성들에 부여한 신분의 변화와 서류 작성의 위법성을 살펴봄으로 위안부문제가 일본정부와 일본군 주도의 법적 범죄였음을 밝히는 작업을 한 점, 등이다.


국내 최초의 ‘일본 위안부문제 증거’를 제시했다!
일본군이 만주사변이나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위안소를 전쟁터에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중일전쟁으로 많은 일본군인들을 중국대륙으로 보낸 이후는 일본군이 위안소를 중국 각지에 많이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 목적은 일본병사들이 현지 여성들을 강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고 성병의 만연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으며 나아가 일본군인들이 현지 창녀들과 어울려서 군의 기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이유들을 열거하면서 일본의 일부 사람들은 위안부제도는 훌륭한 제도였다고 말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이 중국대륙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위안부제도자체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결국 일본의 위안부제도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위안부제도가 일본군의 중국, 동남아, 태평양 등에 대한 침략의 결과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1931년 식민지 조선을 방어하기 위해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그리고 괴뢰 만주국을 지키기 위해 일본은 1937년 중국대륙전체를 장악하려는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나아가 중국을 지원하는 영국과 미국 등 서양열강들의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해 일본은 1941년12월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여 열강들의 거점이었던 동남아, 태평양으로 침략을 확대해 나갔다. 그러므로 전쟁은 장기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군은 병사들의 거친 기풍, 살벌한 분위기 등을 개선하기 위해 여자를 병사들의 먹이, 희생양으로 투입한 것이 위안부문제의 핵심이다. 그런 면에서 여성을 전쟁의 도구로 삼고 인간성을 박탈해 심하게 유린했다는 면에서 위안부문제는 용서하기 어려운 일본군의 범죄이자 위안부문제란 정확하게는 성노예문제가 맞는 말이다. 일본군이 주둔한 곳에는 어디든지 반드시 위안소가 개설되었다. 그리고 여러 문서나 증언을 봐도 여성들은 많을 때는 혼자서 하루에 70~80명 이상의 군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비참한 상황에 놓여졌다. 위안부를 모집하는 방법은 주로 감언, 사기, 강제연행이었다. 사기방법으로는 군의 의뢰를 받은 업자들이 다음과 같은 거짓말을 여성들에게 말했다. 야전병원의 간호사나 준 간호사로 일한다, 군의 위안시설의 식당 종업원이 된다, 레스토랑 여급이 된다, 장교의 가정부가 된다, 일본 도쿄의 공장에서 일한다, 쉬운 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등 모집업자들은 수많은 감언으로 여성들을 속이고 배에 승선시키는 수법을 동원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고액의 가불금을 미리 지급하므로 사기였다고 알게 되어도 여성들은 이미 구속된 상태여서 도망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군은 위안부들이 이렇게 모집된 사실을 알으면서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이 격화됨에 따라 내무성이 일반인의 해외 도항을 제한하자 일본군은 여성들을 동원할 때 ‘군 관계자’라는 자격을 부여해 공무를 위해 도항하는 자로서 인정해 내무성이 아니라 육군성이 도항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게 했다. 그러므로 위안부는 군의 공무로 위안소에서의 일을 수행한 것이다. 강제 매춘자체가 군의 공무였다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사실이 있었다. 이런 사실로 일본군이나 일본정부는 법적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원래 여성을 도항시킬 경우 내무성 산하 경찰서에서 여성들의 신원조회를 하여 증명서를 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원조회는 거의 생략되었기 때문에 업자들이 작부가업승낙증명증 같은 서류를 마음대로 위조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위안부를 공창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공창제도는 상하이에서 1929년에 폐지되었고 이를 대신해 일본당국은 작부제도를 신설했다. 위안부문제는 이 작부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 공창이면 적어도 창기가 된다는 것을 본인이 승낙해야 한다. 위안부는 거의 속아서 위안부가 된 여성들이므로 공창이라 할 수 없다.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 여성들은 자유롭게 외출도 못하는 노예상태에 놓여져 있었다. 여성들은 폐업도 자유롭지 못했고 건강을 해친 여성만 교체한다는 이유로 자유를 준 것뿐이다. 많은 증언이 남아 있고 그것을 보면 많은 여성들이 속아서 연행된 사실을 위안소에서만난 사람들에게 고해서 구출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그런 부탁을 받은 일본군인 등은 여성들을 위해 거의 어떤 방법도 취할 수 없었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전쟁터 현지 여성들을 위안부로 동원할 때 상대가 포로일 경우 물리적인 강제연행이 실제로 자행되었다. 인도네시아의 바타비아, 뉴기니와 호주 사이에 있는 모아 섬 등에서 여성들을 물리적으로 강제연행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결론적으로 위안부는 성노예였다. 그러므로 일본정부는 그 범죄성을 우선 인정해야 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에서는 일본정부가 이런 범죄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10억엔이라는 돈으로 유야무야 사건을 해결하려고 시도했을 뿐이다. 한국 측은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을 무시해 일본 측과 밀실로 합의안을 만들어 합의를 강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이 많으나 우선 역사적인 사실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데 해결의 첫걸음이다. 이번에 번역, 해설한 자료들은 일본군 위안부 자료의 기초적인 것들이다. 앞으로는 중국이나 대만의 자료, 동남아에 남아 있는 기타 자료들을 번역, 공개하여 누구나 위안부문제를 쉽게 알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할 생각이다.

 

목차


서언ㆍ4
제1장. 중일전쟁과 위안부 동원의 시작
제1절. 중일전쟁과 일본인의 중국도항 문제 20
1. 배경 20
2. 관련 문서 22
문서-1: 불량분자의 지나 도항 단속에 관한 건 [외무차관] (쇼와12<1937>. 8. 31.)ㆍ22
제2절. 일본군에 의한 위안소 설치 결정 27
1. 배경 27
2. 관련 문서 30
문서-2: 야전 주보(酒保) 규정개정 설명서(쇼12년<1937>. 9. 15.) <육군>ㆍ30
문서-3: ?상하이 파견군내 육군위안소의 작부모집에 관한 건 [군마<群馬>현 지사](쇼와 13<1938>. 1. 19)ㆍ32
문서-4: ?북지나 파견군 위안작부 모집에 관한 건 [야마가타(山形)현 지사](쇼와13. 1. 25)ㆍ40
문서-5: ?지나 도항 모집 단속에 관한 건 [고치(高知)현 지사](쇼와13년<1938> 1월 25일)ㆍ43
문서-6: ?시국이용 부녀유괴 피의사건에 관한 건 [와카야마(和歌山)현 지사](쇼와13<1938>. 2. 7.)ㆍ45
?문서-7: ?상하이 파견군내 육군위안소에서의 작부모집에 관한 건 (이바라키<茨城>현 지사)(쇼와13<1938>. 2. 14)ㆍ56
문서-8: ?상하이 파견군 위안소의 작부모집에 관한 건(미야기<宮城>현 지사)(쇼13<1938>. 2. 14.)ㆍ59
?[칼럼_강제연행-1] 상하이 위안소로 강제 연행된 김순덕씨(1921~2004) ㆍ62
제3절. 중일전쟁 이전의 중국 내 위안소 상황 64
1. 배경 64
2. 관련 문서 66
문서-9 위생업무 순보 [혼성 제14여단 사령부](쇼와8<1933>. 4. 11?20)ㆍ66
문서-10: ?혼성 제14여단 예창기 작부 건강진단 실시요령(쇼와8년<1933> 4월 28일)ㆍ68
문서-11: ?쇼와11년 재류 일본인 특수부녀의 상황 및 그 단속 [재 상하이 총영사관 경찰서 연혁지에 의함](쇼와11년<1936>)ㆍ72
[칼럼_강제연행-2] 만주의 위안소로 강제 연행된 조선 여성들ㆍ75
1) 만주 위안소에 강제 연행된 나눔의집 위안부 피해 여성들ㆍ75
2) 만주 둥닌의 위안소로 강제 연행된 조선 여성들ㆍ76
3) 만주 훈춘의 위안소로 강제 연행된 조선 여성들ㆍ77

제2장. 전쟁의 격화와 군부 주도의 위안부동원 시작
?제1절. 위안부 모집에 관한 일본 내무성 통첩과 동원의 실상 80
1. 배경 80
2. 관련 문서 82
문서-12: 지나 도항 부녀 취급에 관한 건 [내무성 경보국장](쇼와13<1938>. 2. 23)ㆍ82
문서-13: 군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건 [육군성 부관](쇼13<1938>. 3. 4)ㆍ86
문서-14: ?지나 도항 부녀에 관한 건, 문의 [내무성 경보국 경보과장](쇼13<1938>. 11. 4.)ㆍ89
문서-15: ?남지나 방면 도항 부녀의 취급에 관한 건 [내무성 경보국장](쇼13<1938>. 11. 8.)ㆍ92
문서-16: 추업부 지나 도항에 관한 경위 [내무성](불명)ㆍ95
[칼럼_강제연행-3] 일본 형법과 한일병합조약으로 본 위안부문제ㆍ98
제2절. 중일전쟁 확대와 위안부 동원 102
1. 배경 102
2. 관련 문서 104
문서-17: 「외무성 경찰사 재 난징 총영사관」 발췌(쇼와13<1938>)ㆍ104
문서-18: ?쇼와13년(1938) 재류 일본인 특종부녀의 상황 및 그 단속과 조계(租界)당국의 사창 단속상황 [재 상하이 총영사관 경찰서 연혁지에 의함](쇼와13<1938>)ㆍ107
문서-19: 「외무성 경찰사 재 주장(九江)영사관」 발췌(쇼와13<1938>)ㆍ111
문서-20: ?모리카와(森川)부대 특종위안 업무에 관한 규정 [모리카와 부대장](쇼14<1939>. 11. 14.)ㆍ115
문서-21: ?「한커우(漢口) 공략 후 일본인(邦人) 진출에 대한 응급처리 요강」 송부 건 [재 상하이총영사 대리](쇼와13<1938>. 9. 28)ㆍ122
문서-22, ?23: 한커우(漢口) 육군 아마야(天野) 부대 위안소 부녀자의 지나 도항(渡支)의 건과 답장 [외무대신](쇼와14<1939>. 12. 22, 12. 27)ㆍ125
?[칼럼_강제연행-4] 『한커우 위안소(漢口慰安所)』(나가사와 켄이치<長?健一> 저, 도서출판사, 1983)ㆍ129
제3장. 일본군 각 편성부대와 위안부 문제
제1절. 북지나파견군과 위안부문제 134
1. 배경 134
2. 관련 문서 135
문서-24: ?군인군대의 대 주민 행위에 관한 주의의 건 [북지나 방면군 참모장](쇼13<1938>. 6. 27)ㆍ135
문서-25: ?간부에 대한 위생교육 순서 [북지나파견군 갑집단 군의부](쇼15<1940>. 11)ㆍ137
?[칼럼_강제연행-5] 산시성(山西省) 타이유안(太原)으로 강제 연행된 조선 여성들ㆍ141

제2절. 중지나파견군과 위안부문제 143
1. 배경 143
2. 관련 문서 144
문서-26: 상황보고 [독립 공성중포병 제2대대장](쇼13<1938>. 1. 20.)ㆍ144
문서-27: ?독립공성 중포병(獨立攻城重砲兵) 제2대대 제2중대 진중일지(쇼13<1938>. 1. 26.)ㆍ146
문서-28: 독립공성 중포병 제2대대 제2중대 진중일지(쇼13<1938> 3. 3.)ㆍ148
문서-29: ?창저우(常州) 주둔 간 내무규정 [독립공성중포병 대2대대](쇼13<1938>. 3. 16.)ㆍ150
문서-30: 제3병참 무카이(向井)지부 진중일지(쇼13<1938>. 7. 1.)ㆍ155
문서-31: ?전장생활의 특이현상과 그 대책[하야오 데이유(早尾?雄)](쇼14<1939>. 6)ㆍ158
문서-32_1: 독립 산포병(山砲兵) 제3연대 진중일지(쇼16<1941>. 4. 9.)ㆍ166
문서-32_2 독립 산포병(山砲兵) 제3연대 진중일지(쇼15<1940>. 10. 11.)ㆍ168
문서-33: 위안부 관련 군인 불량행위 일람표ㆍ171
문서-34: 여(呂)집단 특무부 월보(쇼15<1940>. 4.)ㆍ178
문서-35: ?지나사변의 경험에서 본 군기 진작 대책 [육군성 부관](쇼15<1940>. 9. 19)ㆍ185
문서-36: 특별보고 중 군인 변사의 건 보고 [제13사단장](쇼17<1942>. 3.)ㆍ187
문서-37: ?쇼와17년 9월 부관회동 석상 의견, 질의 및 회답(추가) [지나파견군 총사령부](쇼17<1942>. 9)ㆍ190
문서-38: 위생업무 요보 [제15시단 군의부](쇼18<1943>.1., 18. 2.)ㆍ192
[칼럼_강제연행-6] 후베이성 점령지역에서 강제 연행된 중국 여성들ㆍ196
제3절. 남지나파견군과 위안부문제 198
1. 배경 198
2. 관련 문서 199
문서-39: 쇼와14년 8월 제2순 위생순보 [남지나파견군 군의부](쇼14<1939>. 8.)ㆍ199
문서-40: 위안소의 상황 [파집단(波集團)사령부](쇼14 <1939>. 4)ㆍ206
문서-41: 군인 클럽 이용 규정 [나카야마(中山) 경비대(재 광둥)](쇼19<1944>. 5)ㆍ209
문서-42: ?「하이커우(海口) 총영사관 경찰서 충산(瓊山)파견소 경찰사」 발췌(쇼와15<1940>)ㆍ213
문서-43: ?재 화이인(淮陰) 예창기 검징성적표 [보병제54연대](쇼18<1943>. 1. 29, 18. 4)ㆍ216
[칼럼_강제연행-7] 중국 남부로 강제 연행된 조선 여성들ㆍ219
1) 하이난 섬으로 강제 연행된 여성-김옥주씨(1923~2000)ㆍ219
2) 식당 종업원이 된다고 속아 난닝으로 연행된 조선 여성들ㆍ221
3) 중국 남부 핑양(平陽)현의 위안소로 강제 연행된 조선 여성ㆍ222
제4장. 동남아 등지로 확산하는 위안소
제1절. 전쟁 확대로 동남아에 만들어진 위안소들 226
1. 배경 226
2. 관련 문서 229
문서-44: ?일본인 지나 도항의 일시적 제한에 관한 외무성 발표 [외무성](쇼와15<1940>. 5. 7)ㆍ229
문서-45_?1: 지나 도항 일본인 잠정 처리 취급방법 중 영사관 경찰서의 증명서 발급범위에 관한 건 [경무부 제3과](쇼와15<1940>)ㆍ231
문서-45_?2: ‘지나 도항 일본인(邦人)잠정 처리의 건’ 협의사항 [불명](쇼15<1940>)ㆍ235
문서-46: ?군 위안소 종사자에 대한 신분증명서 발급의 건 [대만(臺灣) 총독부 외사부장](쇼와 15<1940>.6. 1)ㆍ237
문서-47: ?지나 도항 사유증명서 등이 입수 불가능하다고 인정되는, 대안(?岸)지역으로 도항하는 자의 취급에 관한 건 [대만(臺灣) 총독부 외사부장](쇼와 15<1940>.9. 2)ㆍ239
문서-48: ?지나 도항 사유증명서 등이 입수 불가능하다고 인정되는, 대안(?岸)지역으로 도항하는 자의 취급에 관한 건 [가오슝(高雄) 주지사](쇼와15<1940>. 8. 23)ㆍ241
문서-49: ?지나 도항 사유증명서 등이 입수 불가능하다고 인정되는, 대안(?岸)으로 도항하는 자의 취급에 관한 건-답변 [대만(臺灣) 총독부 외사부장](쇼와15<1940>. 9. 2)ㆍ248
제2절. 남방 파견군과 위안부 문제 250
1. 배경 250
2. 관련 문서 252
문서-50_1: 도항 수속에 관한 건 [파집단 참모장](쇼17<1942>. 11. 12.)ㆍ252
문서-50_2: 도항 수속에 관한 건 [육군차관](쇼17<1942>. 11. 18.)ㆍ254
문서-51: ?육군관계자 남방점령지(홍콩 포함) 진출 절차에 관한 건(쇼17<1942). 4. 23.)ㆍ257
[칼럼_강제연행-8] 일본이 가입한 국제조약으로도 위안부는 불법이다ㆍ262
제5장. 동남아 각지로의 위안부 강제연행
제1절. ?일본군의 말레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베트남 침공과 위안부 문제 266
1. 배경 266
2. 관련 문서 268
문서-52: 군정 규정집 제3호 [말레이(馬來)군정 감부](쇼18<1943>. 11. 11.)ㆍ268
문서-53: 독립자동차 제42대대 제1중대 행동 상보(詳報)(쇼17<1942>. 8. 24.)ㆍ277
문서-54: ?일본파견 남방군 최고사령관 앞 연합국 지령서 제1호 [불령(佛領) 인도차이나연합국 군사령부](1945. 9. 7.)ㆍ278
?[칼럼_강제연행-9] 말레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위안소로 강제 연행된 조선 여성들ㆍ280
1) 말레이 반도의 위안소로 강제 연행된 조선 여성들ㆍ280
2) 싱가포르의 위안소로 강제 연행된 조선 여성들ㆍ281
3)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팔렘방 위안소로 강제 연행된 조선 여성들ㆍ283
4) 수마트라 쿠타라자의 위안소로 강제 연행된 조선 여성들ㆍ285
제2절. 일본군의 필리핀 침공과 위안부 문제 287
1. 배경 287
2. 관련 문서 288
문서-55: 위안소에 관한 규정 [독립수비보병 제35대대](쇼17<1942>. 6. 6., 11.)ㆍ288
문서-56: 콘돔 지급의 연락 [카토바로간 분대 앞](쇼17<1942>. 11. 21., 12. 12.)

ㆍ292
문서-57: ?검징 성적의 건 통보 [일로일로 환자요양소](쇼17<1942>. 5. 12~12. 27.)ㆍ295
문서-58: ?위안소 규정 송부의 건 [군정감부 비사야 지부 일로일로 출장소](쇼17<1942>. 11. 22.)ㆍ304
문서-59: 군인 클럽 규정 [마스바테 섬 경비대장](쇼17<1942>. 8. 16.)ㆍ307
문서-60: 독립수비보병 제35대대 진중일지(쇼18<1943>. 2. 14.)ㆍ310
문서-61_?1: 군 위안 및 오락설비 상황에 관한 건 조회 [바기오 헌병분대장](쇼18<1943>. 8. 2)ㆍ311
문서-61_?2: 군 위안 및 오락 설비 상황 조사의 건 「통첩」 [세부 헌병분대장](쇼18<1943>. 8. 10.)ㆍ313
문서-61_?3: 군위안소 및 오락 상황조사의 건(회답)[타클로반 헌병분대장](쇼18<1943>. 8. 14.)ㆍ314
제3절. ?일본군의 보르네오, 뉴기니 방면 침공과 위안부문제 317
1. 배경 317
2. 관련 문서 318
문서-62_1: 남방파견 도항자에 관한 건 [대만군 사령관] (쇼17<1942>. 3. 12)ㆍ318
문서-62_2: [육군성] 부관으로부터 대만군 참모장 앞으로ㆍ321
문서-63: 남방 파견 도항자에 관한 건 [대만군 참모장](쇼17<1942>. 6. 13.)ㆍ322
문서-64: 야전고사포 제45대대 제1중대 진중일지(쇼17<1942>. 4. 3, 5. 14.)ㆍ325
문서-65: 독립자동차 제39대대 제4중대 진중일기(쇼17<1942>. 5. 29, 30)ㆍ328
문서-66: 독립자동차 제39대대 제4중대 진중일지(쇼17<1942>. 8. 18, 24.)ㆍ330
문서-67: 오하라 세이다이 육군 중위의 선서진술서(1946. 1. 13. 문서작성)ㆍ332
[칼럼_강제연행-10] 뉴기니 방면으로 강제 연행된 조선 여성들ㆍ338
1) 라바울로 강제 연행된 박옥련씨ㆍ338
2) 뉴기니 코코포(Kokopo) 위안소를 목격한 일본의 유명 만화가의 증언ㆍ340
3) 트럭 제도로 강제 연행된 조선 여성들ㆍ344

제4절. 일본군의 버마(미얀마) 침공과 위안부문제 347
1. 배경 347
2. 관련 문서 348
문서-68: 주둔지 위안소 규정 [만다레 주둔지 사령부](쇼18<1943>. 5. 26.)ㆍ348
문서-69: ‘만다레’ 주둔지 근무 규정 [제5야전 수송 사령부](쇼20<1945>. 1. 2.)ㆍ354
문서-70: ?‘미국 전시 정보국 심리 작전반’의 일본인 포로 심문보고 제49호(1944. 10. 1.) ㆍ356
?[칼럼_강제연행-11] 버마(미얀마)의 위안소로 강제 연행된 조선여성들ㆍ360
1) 버마 랑군으로 끌려간 이용녀씨(1926~2013)ㆍ360
2) 요미우리 신문 종군기자의 증언-강제 연행된 조선인 여성, 소녀들ㆍ361

결어ㆍ365
원문자료(사례): 지나 도항 부녀에 관한 건 문의ㆍ371
참고문헌, 자료, 사이트ㆍ413

저자소개

 

저자 : 호사카 유지
자타가 공인하는 독보적인 독도 연구자 호사카 유지 교수는 1956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 공학부를 졸업했다. 우연한 기회에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고, 언젠가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런 바람 때문인지 1988년에 한일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한국에 유학했고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귀화한 한국인 교수로써 일본과 한국의 역사에 관한 책들을 주로 저술해왔다. 그의 특징은 일본과 한국의 비교 뿐만이 아니라 쟁점화되는 부분을 역사적으로 고찰한 글들을 집필한다는 데에 있다. 그가 출판한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는 없다』, 『일본에 절대 당하지 마라』 등은 모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켜왔는데, 그는 일본의 역사왜곡 주장에 대한 기존의 한국이 취했던 감정적 입장을 개선시켜 나가고 있다. 그는 역사왜곡 쟁점에 있어 감정적 대응이 아닌 이론적이고 체계적인 비판을 제안한다. 그는 일본인으로써 일본의 방식은 기다리며 약점과 자료를 축적하여 공격하는 방식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자민당의 아소 다로 의원의 "창씨개명은 한국인의 자발적인 의사였다" 같은 망언의 경우,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며, 반박 역시 당시의 법령을 분석하여 강제적이었음을 입증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독도 문제의 경우에도 샌프란시스코 조약 초안에 독도가 명백한 한국의 국가였다는 자료를 통해 이 초안이 왜곡되게 된 배경에 대하여 조약에 합의한 연합국들로부터 동의를 구하여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유사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달라지는 이유를 또한 역사를 통해 바라본다. 유지 교수는 선비와 사무라이의 비교를 통하여 한국과 일본의 사상까지 흘러들어간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성리학을 국교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한국은 퇴계·이이라는 대학자를 거치면서 학문적인 주자학으로 발전되었고, 일본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일본 군국주의로 변화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이처럼, 그의 연구는 한국과 일본의 현대 모습을 과거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 그는 세종대 교양학부 부교수(일본지역학 전공)로 재직하면서, 2009년 5월에 같은 학교에서 창립한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에 취임해 독도 연구를 심화시키는 일뿐만 아니라 나라를 초월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독도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선비와 일본 사무라이』(김영사), 『일본 古지도에도 독도 없다』(자음과 모음), 『일본역사를 움직인 여인들』(문학수첩), 『일본에게 절대 당하지 마라』(답게) 등이 있다.

2004년 재한 일본계 인사로는 처음으로 보신각 타종을 했고, 독도 연구의 공적을 인정받아 2005년 ‘외교통상부 장관 표창’을, 2013년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2016년에는 미국의 인물대사전 ‘Who′s Who in the World’에 이름이 게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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