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의 목적은 위안부 문제의 논리화 작업입니다. 기타의 특징으로서는
(1) 주로 1937년부터 1945년까지의 위안부 문제가 본격화된 시기의 관련 자료를 번역?분석함으로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전체상을 누구나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 점(1930년대 초기의 문서도 일부 수록되었음).
(2) 자료집으로만 출간하는 것이 아니라 자료 하나하나에 해설을 추가함으로 자료들이 갖는 의미를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 점.
(3) 위안부문제 일본문서의 정식 한국어 번역?해설 자료집의 발간은 이 책이 처음이라는 점이 큰 특징이다. 전에 일본학자의 자료집을 번역한 책이 있었다고 들었으나 문서 하나하나에 해설 등은 없었고 그 자료집은 1992년까지의 문서모음이었습니다. 이번 자료집을 1997년 이후에 발견된 것들도 몇 가지 포함시켰습니다.
2017년까지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던 위안부문제 번역집 파일이 여러 가지 문제로 현재 삭제된 상태이므로 이 자료집이 현재 일본문서를 체계적으로 한국어로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 되었습니다.
(4) 자료의 출처를 모두 밝혔으므로 원문과 대조가 가능합니다.
(5) 일본군의 아시아 침략 과정에 관한 배경설명을 추가해 일본군의 침략전쟁 속의 위안부문제라는 시각을 구체적으로 제공해 위안부문제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점. 특히 일본군이 중국북부 공략을 포기하여 남방정책으로 작전을 바꾼 배경이나 진주만 공격보다 1시간 30분 먼저 말레이반도의 영국군을 공격한 사실 등을 언급하면서 일본군의 침략과 더불어 만주, 중국, 동남아 등지로 확산된 위안소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6) 위안부 피해자분들 일부의 증언을 칼럼에 게재하여 문서로 확인되는 내용과 피해자들의 증언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점.
(7) 일본병사들의 증언을 칼럼으로 게재하여 일본군이 실제로 여성들을 강제연행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한 점. 일본병사나 종군일본인기자들에게 위안부가 된 조선인 여성들이 간호사가 된다거나 야전병원에서 병사들을 돌봐준다, 군의 식당 종업원이 된다 등의 말에 속아서 연행되었다고 털어놓은 실화 등을 10개정도 수록했습니다.
특히 패전 후 일본의 유명 만화가가 된 인물이 그의 만화에 그린 위안부들의 실화에서 위안부 한 사람 앞에 70~100명의 병사들이 줄을 섰다는 만화그림과 이를 증명하는 실제 문서(병사 100명당 위안부 1명으로 정한 문서)를 간담회 때 공개할 계획입니다.
(8) 여성들을 해외로 도항시키기 위해 일본정부나 일본군이 도항할 여성들에 부여한 신분의 변화(마지막 신분은 군관계자)와 서류 작성의 위법성을 살펴봄으로 위안부문제가 일본정부와 일본군 주도의 법적 범죄였음을 밝히는 작업을 한 점. 이에 대해서는 일본(조선, 대만도 포함)내 경찰서장이 여성들에게 도항신분증명서를 내기 위해서는 전쟁터의 현지 헌병대나 육군성이 여성들의 신분을 군관계자로 한 문서를 내면 경찰서로부터 도항증명서를 얻을 수 있게 했습니다. 처음 관행이었던 것이 1942년 이후 정식절차가 됩니다. 이런 사실들은 사실상 위법에 대한 단속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간담회 때 공개하겠습니다.
*간결한 의미에서 본서의 특징으로서는
1. ?주로 1937년부터 1945년까지의 위안부 문제가 본격화된 시기의 관련 자료를 번역 분석함으로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전체상을 누구나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 점
2. ?자료 하나하나에 해설을 추가함으로 자료들이 갖는 의미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한 점
3. ?일본군의 아시아 침략 과정에 관한 배경설명을 넣어 일본군의 침략전쟁 속의 위안부문제라는 시각을 구체적으로 제공해 위안부문제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점
4. ?위안부 피해자분들 일부의 증언을 칼럼에 게재하여 문서로 확인되는 내용과 피해자들의 증언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점
5. ?일본병사들의 증언을 칼럼으로 게재하여 일본군이 실제로 여성들을 강제연행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한 점
6. ?여성들을 해외로 도항시키기 위해 일본정부나 일본군이 도항 여성들에 부여한 신분의 변화와 서류 작성의 위법성을 살펴봄으로 위안부문제가 일본정부와 일본군 주도의 법적 범죄였음을 밝히는 작업을 한 점, 등이다.
국내 최초의 ‘일본 위안부문제 증거’를 제시했다!
일본군이 만주사변이나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위안소를 전쟁터에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중일전쟁으로 많은 일본군인들을 중국대륙으로 보낸 이후는 일본군이 위안소를 중국 각지에 많이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 목적은 일본병사들이 현지 여성들을 강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고 성병의 만연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으며 나아가 일본군인들이 현지 창녀들과 어울려서 군의 기밀이 누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이유들을 열거하면서 일본의 일부 사람들은 위안부제도는 훌륭한 제도였다고 말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이 중국대륙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위안부제도자체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결국 일본의 위안부제도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위안부제도가 일본군의 중국, 동남아, 태평양 등에 대한 침략의 결과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1931년 식민지 조선을 방어하기 위해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그리고 괴뢰 만주국을 지키기 위해 일본은 1937년 중국대륙전체를 장악하려는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나아가 중국을 지원하는 영국과 미국 등 서양열강들의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해 일본은 1941년12월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여 열강들의 거점이었던 동남아, 태평양으로 침략을 확대해 나갔다. 그러므로 전쟁은 장기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군은 병사들의 거친 기풍, 살벌한 분위기 등을 개선하기 위해 여자를 병사들의 먹이, 희생양으로 투입한 것이 위안부문제의 핵심이다. 그런 면에서 여성을 전쟁의 도구로 삼고 인간성을 박탈해 심하게 유린했다는 면에서 위안부문제는 용서하기 어려운 일본군의 범죄이자 위안부문제란 정확하게는 성노예문제가 맞는 말이다. 일본군이 주둔한 곳에는 어디든지 반드시 위안소가 개설되었다. 그리고 여러 문서나 증언을 봐도 여성들은 많을 때는 혼자서 하루에 70~80명 이상의 군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비참한 상황에 놓여졌다. 위안부를 모집하는 방법은 주로 감언, 사기, 강제연행이었다. 사기방법으로는 군의 의뢰를 받은 업자들이 다음과 같은 거짓말을 여성들에게 말했다. 야전병원의 간호사나 준 간호사로 일한다, 군의 위안시설의 식당 종업원이 된다, 레스토랑 여급이 된다, 장교의 가정부가 된다, 일본 도쿄의 공장에서 일한다, 쉬운 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등 모집업자들은 수많은 감언으로 여성들을 속이고 배에 승선시키는 수법을 동원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고액의 가불금을 미리 지급하므로 사기였다고 알게 되어도 여성들은 이미 구속된 상태여서 도망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군은 위안부들이 이렇게 모집된 사실을 알으면서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이 격화됨에 따라 내무성이 일반인의 해외 도항을 제한하자 일본군은 여성들을 동원할 때 ‘군 관계자’라는 자격을 부여해 공무를 위해 도항하는 자로서 인정해 내무성이 아니라 육군성이 도항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게 했다. 그러므로 위안부는 군의 공무로 위안소에서의 일을 수행한 것이다. 강제 매춘자체가 군의 공무였다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사실이 있었다. 이런 사실로 일본군이나 일본정부는 법적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원래 여성을 도항시킬 경우 내무성 산하 경찰서에서 여성들의 신원조회를 하여 증명서를 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원조회는 거의 생략되었기 때문에 업자들이 작부가업승낙증명증 같은 서류를 마음대로 위조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위안부를 공창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공창제도는 상하이에서 1929년에 폐지되었고 이를 대신해 일본당국은 작부제도를 신설했다. 위안부문제는 이 작부제도의 연장선상에 있다. 공창이면 적어도 창기가 된다는 것을 본인이 승낙해야 한다. 위안부는 거의 속아서 위안부가 된 여성들이므로 공창이라 할 수 없다.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하고 여성들은 자유롭게 외출도 못하는 노예상태에 놓여져 있었다. 여성들은 폐업도 자유롭지 못했고 건강을 해친 여성만 교체한다는 이유로 자유를 준 것뿐이다. 많은 증언이 남아 있고 그것을 보면 많은 여성들이 속아서 연행된 사실을 위안소에서만난 사람들에게 고해서 구출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그런 부탁을 받은 일본군인 등은 여성들을 위해 거의 어떤 방법도 취할 수 없었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전쟁터 현지 여성들을 위안부로 동원할 때 상대가 포로일 경우 물리적인 강제연행이 실제로 자행되었다. 인도네시아의 바타비아, 뉴기니와 호주 사이에 있는 모아 섬 등에서 여성들을 물리적으로 강제연행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결론적으로 위안부는 성노예였다. 그러므로 일본정부는 그 범죄성을 우선 인정해야 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에서는 일본정부가 이런 범죄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10억엔이라는 돈으로 유야무야 사건을 해결하려고 시도했을 뿐이다. 한국 측은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을 무시해 일본 측과 밀실로 합의안을 만들어 합의를 강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이 많으나 우선 역사적인 사실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데 해결의 첫걸음이다. 이번에 번역, 해설한 자료들은 일본군 위안부 자료의 기초적인 것들이다. 앞으로는 중국이나 대만의 자료, 동남아에 남아 있는 기타 자료들을 번역, 공개하여 누구나 위안부문제를 쉽게 알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