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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개 허클베리 용감무쌍

얄개 허클베리 용감무쌍

  • 마크트웨인
  • |
  • 동서문화사
  • |
  • 2018-05-05 출간
  • |
  • 312페이지
  • |
  • 153 X 225 X 18 mm /465g
  • |
  • ISBN 97889497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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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탄생 63년! 돌아온 얄개 나두수!
《얄개전》이 2018년으로 조흔파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얄개전》은 전국민 환호속에 -학원]에 1954년 5월부터 1955년 3월까지 일 년 반 동안 연재되었으며 이를 책으로 묶어 펴낸 것은 1955년 4월이다. 1976년 한국일보 ‘신고전을 찾아서’란 코너에 따르면《얄개전》은 우리나라에서 7번째로 많이 판매된 책으로, 1955년에 출간하여 2004년까지 100만부를 돌파한 밀리언셀러였다. 세상에 선을 보인지 60년이 넘다보니 할아버지와 손자가 대물림하며 함께 웃으며 권위와 규범을 조롱하는 주인공 나두수(얄개)의 재기 넘치는 행동에 나란히 즐거워하며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나두수가 2018년 얄개걸작시리즈로 우리 앞에 다시 돌아왔다.

가난한 시대 꿈과 희망 심어준 얄개 나두수!
조흔파가 학원사 김익달 발행인으로부터 청탁을 받고 이 작품을 집필할 때, 원고료는 당시 최고 수준이었다. 이는 조흔파 얄개소설의 인기가 상당했음을 알려 준다. 1955년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 책이 얼마나 많이 나갔는지 인지(印紙)용 도장을 무려 4개나 바꾸어 가며 사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폭발적인 인기는 각종 대중매체 제작으로 이어져 《얄개전》은 이후 아홉 차례 영화화되었으며 연극, 드라마, 만화로 재탄생하는 등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얄개’는 함경도 함흥지방 사투리로 ‘짓궂은 장난꾸러기’를 뜻한다. 그 ‘얄개’에 ‘전(傳)’을 붙여 《얄개전》이 되었다. 얄개전 때문에 《우리말큰사전》에 ‘얄개’라는 단어가 정식으로 오르기도 했다.

한국 최초 얄개문학 개척자 조흔파!
조흔파 작품의 특징은 유머와 위트가 넘쳐흐르고, 삶의 애환을 긍정적으로 그려 인간미로 승화했다는 데 있다. 그는 우리나라 얄개소설 장르를 개척하고 정착하는 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얄개소설이 가장 활발하게 발표된 것은 1950년대였다. 그 무렵 얄개소설 전문으로 조흔파, 박흥민, 천세욱, 서용운, 최요안 등 다수의 작가들이 활동했는데, 그중에서도 조흔파의 인기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6·25 전쟁의 참상이 채 아물기도 전, 대중들은 왜 조흔파 얄개소설에 그토록 열광했던 것일까? 조흔파 얄개소설은 이데올로기나 사회체제 문제 대신 학업과 연애, 결혼과 같은 가장 일상적인 일화들을 유쾌하게 다룬다. 바로 그 평범한 이야기가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다. 소소하고 보잘것없는 보통의 일상이야말로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히 목마른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갈등과 분쟁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유쾌한 웃음의 이야기로 재현해낸 조흔파 얄개소설은 이처럼 전쟁을 겪은 우리 국민의 갈증을 채워주는 장으로 기능했다.

고루한 기성 권위 규범에 맞선 얄개!
《얄개전》은 주인공 나두수의 장난이 소설의 중심 이야기를 이룬다. 중학생인 나두수는 기성 권위와 규범을 적극적으로 위반하는 인물이다. 나두수는 “우리 사회에 도장 찍는 데가 많고 각종 증명서가 범람하는 것은 정부가 국민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웅변대회 연설을 통해서 정부와 사회를 비판하기도 하며 친구 용호와 장난할 때마다 ‘화랑정신을 발휘하여 돌진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관변적 수사를 비웃으며 비틀기도 한다. 때문에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을 이해하는 데 《얄개전》은 좋은 자료가 된다.
-학원]은 그 무렵 청소년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친 잡지였다. -학원]에 실린 -얄개전]을 읽고 성장한 세대들은 기성세대 전반에 대한 부정과 함께 새로운 세대의 가치를 고민했다. 도둑을 잡다가 다쳐 병원에 입원한 나두수는 “값있게 살아보자” 결심하고 보람 있는 삶을 다짐하며 남다른 성장을 이룬다. 이러한 주인공에 공감하며 자란 세대들은 나두수처럼 의미 있게 살고자 마음먹고는 했다. 이렇듯 《얄개전》은 단순한 얄개소설이 아닌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 용기와 사랑은 물론 뜻 깊은 삶을 모색케 하는 명실상부한 그 시절의 고전이었다.

웃음으로 젊음의 아픔을 치유하는 조흔파 얄개문학!
억압적이고 관습화된 규범에 대한 반발,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언어 능력은 조흔파 작품을 특징짓는 키워드이다. 조흔파는 언어유희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창조하는 데 뛰어났다. 때문에 《얄개전》을 비롯한 전쟁기 조흔파 얄개소설의 웃음은 평범한 삶을 유쾌하게 복원함으로써 현실의 상처를 상상적으로 치유하고자 했던 삶의 회복을 위한 희망의 웃음으로 작용했다.
조흔파의 소설은 즐겁다. 어떠한 고통이나 아픔도 웃음으로 넘기며 긍정적인 화합을 꿈꾸는 유쾌함이 그의 작품을 읽게 만드는 동력이다. 전쟁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조흔파의 작품이 널리 읽히고 곧바로 영화화되곤 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조흔파는 기성세대의 위선, 고루한 관습, 형식에 치우치는 허위 등에 굴복하지 않는 저항적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저항은 언제나 웃음을 동반한 것이었기에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도리어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 조흔파의 ‘얄개걸작시리즈’는 옛 독자들에게는 향수와 추억을, 오늘의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감동, 웃음, 행복을 선사할 것이다.

인생을 즐겁게 살도록 만들어준 조흔파선생님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최래옥

* 조흔파 선생,
나에게 어떤 분인가?
조 선생은 1918년생이므로 지금 살아계시면 94살이 되는 바라, 1940년생이라 22살이나 아래인 나에게 친구도 아니다!
그러면 스승인가? 나를 직접 가르쳐준 선생님도 아니다.
그러면 진작 문단의 웃어른으로 뵙고 모시고 시중도 들었는가? 그런 만남도 없었다. 그러면 이 자리에 왜 나왔는가?
그분의 부인인 정명숙 선생이 한번 나오라고 하여서 나왔다.
* 그런데 나오라고 해서 나오고, 조 선생을 모른다고 하면서 아는 척을 하는 연유가 무엇인가를 말하겠다.
아, 조흔파 선생을 모른다고 한 나에게 사실, 조 선생은 나의 친구 같고, 나의 스승 같고, 나의 인생지도자 같은 분이다.
* 나는 1950년 중반에 전북 남원군 운봉면, 지금 남원시 운봉읍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돈이 없어서 일 년간 재수를 하였다. 남원은 춘향전의 고장이다.
보통 십대 소년으로 남들은 사춘기니 뭐니 하지만, 나는 그 때 산에 가서 나무를 하든 농사일을 하든 일만 하고 진학을 못하여 한숨을 쉬던 때 나중에는 에라 될 대로 되라는 체념과, 그래도 일 년 후에 고등학교를 진학을 한다는 희망과 각오를 다지고, 이런 것이 뒤섞이면서 재수를 한 바람에 사춘기인지 오춘기인지 팔춘기인지 모르고 지냈다.
그때 오직 해당이 있는 것은 인기가 대단하던 “학원(學園)” 잡지에 실은 몇 작품에 취해 있는 것이었다.
그 취해 있는 것은 후에 나의 인생에 무지무지하게 막대한 영양을 미쳤다.
누구는 어려서 세계명작과 성현(聖賢)과 위인을 보고 감명을 받아 훌륭한 사람이 될 각오를 일찍 하였다지만, 지리산 산골에 사는 나는 세계명작도 위인도 성현도 접할 수가 없었다. 산골에서 책도 없고, 견문도 없는 처지였다.
오직 내가 성인(聖人) 대신 접하는 분은 명랑소설 “얄개전”을 쓴 조흔파, 탐정소설로 “검은 별”과 “황금박쥐”를 쓴 김내성, “홍길동전”을 쓴 정비석, “코주부 삼국지” 만화를 그린 김용환 선생들이었다.
* 그러고 보면 조흔파 선생은 나에게 소년시절에 큰 영양을 준 위인이며 성현과 같고, 그의 작품 얄개전은 세계명작과 같았다. 솔직히 그때 나는 조흔파 선생 이상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하였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도 얄개전에 나오는 얄개 나두수처럼 살아야지,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야지. 나는 얄개전 같은 재미있는 책을 훗날 써야지…”
이렇게 생각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렇게 영향을 좋게 끼쳤다면 이 분들이 나에게 성현이나 위인과 무엇이 다르랴? 당시 나에게 그 유명한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나 천재 물리학자 아인시타인은 몰랐어도, 훌륭한 종교의 교주(敎主)를 몰랐어도 조흔파를 알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조흔파 선생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면 되었지 않는가?
나는 후에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교수가 되고 교회 장로가 되었는데, 제법 재미있는 사람, 웃기는 교수, 남을 즐겁게 하는 착하디착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고 산다. 여기 내 말을 인정할 증인이 없어서 아쉬운데… 국문학계에서 “뱀장사 최래옥”하면 어느 정도 통한다. 특이한 목소리로 허리띠를 목에 걸고,
“뱀을 잡수세요… 이 뱀으로 말하면 삼천갑자 동방삭이 들었고… 누가 먹느냐 하면, 해를 보면 눈이 부시는 사람, 사흘을 굶으면 배가 고픈 사람…”
하여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말인데…
다 조흔파 선생을 닮으려고 한 것이다. 앞으로도 닮겠다.
그리고 나는 교수가 되고 나서 조흔파 선생을 닮아서 소년 명랑소설은 쓰지 못하지만, 중년 명랑수필을 쓰겠다고 하고 지금 2권을 냈다.
“나는 시장구경 채질이라니까”
“곰보마누라 사랑받고 미인마누라 매 맞는다.”
이런 이름이 있는 책이다.
나는 유모어 컬럼, 명랑 수필, 명랑설화 등을 앞으로 더 쓰고 책을 내고자 한다.
다 조흔파 선생 덕분이다. 나에게 삶이든 작품이든 명랑하게 살고 쓰라고 말해준 분은 조흔파 선생밖에 없다는 말이다.
옛날이야기를 재미있게 써서 “되는 집안은 가지나무에 수박 열린다”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그 재미로 말하면 조 선생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다.
* 나는 조흔파, 조흔파를 기억하고 고등학교와 그 후를 살았다.
조흔파(趙欣坡). 이름이 멋있다. 이전은 봉순(鳳淳)이라고 하였다는데 흔파가 좋다!
기쁠 흔 欣, 언덕 坡 기쁨의 물결이 넘치는 언덕!
이 이름을 보면 기쁘게 살라는 기독교 신앙이 물씬 나고, 인생을 값지게 산 자세가 완연하다.
사실 나는 欣자가 기쁠 흔 자라는 것을 조흔파 선생 이름을 통하여 처음 알았다. 이 글자는 내가 서당에 다닐 때에도 보지 못한 글자였다.
나는 1958년 전주고등학교 때 국어를 가르쳐준 시인 신석정(辛夕汀) 선생이 欣快. 欣然 欣欣(흔쾌 흔연, 흔흔)을 판서하고 누가 읽어보라고 하여서 내가 선뜻 읽었다. 흔쾌, 흔연, 흔흔… 하고.
신 선생이 나에게 신통하다는 눈길을 주고 물었다.
“欣은 어떻게 읽나?”
“네, 조흔파 흔, 아차, 기쁜 흔입니다.”
이리하여 교실에서 폭소가 터졌다.
나는 지금도 책에서 이 글자를 보면, 또 성경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 항상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는 구절을 보면 欣, 조흔파 선생을 생각한다. 나에게도 그의 이름대로 생활 자세에 흔흔(欣欣)이 들어간 것이다.
* 나는 이십년 전 쯤에 케이비에스에서 방송을 같이 하면서 한학자요 대학에서 일문학 강의를 하고 있던 정명숙 선생을 만났다. 나중에 보니 저명한 수필가였다.
정 선생이 조흔파선생의 부인이라고 하여서 나는 드디어 조 선생의 가족을 보는 구나하고 반갑고 놀랐다.
조 선생 부부가 어느 해 겨울 이불 속에서 소설 이름을 이북 사투리로 개구쟁이를 얄개라고 하는데, 이 얄개를 따서 “얄개전”이라고 지었다는 말을 듣고 내가 좋아하는 이 소설의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런데 이번 조흔파 유물전에서 신문 기록을 보니까 얄개전 이름을 정 선생이 지었다고 하는데… 원작자가 궁금한데, 하기야 부부일신(夫婦一身)이니까 더 알아서 무엇하리요?
그 후에 얄개라는 말은 널리 쓰이고, 얄개 영화로도 나오고, 국어사전에도 올랐으니, 조 선생 부부가 국어에 큰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반세기 동안 베스트셀러가 된 얄개전… 우리 국민을 즐겁게 하여준 책이요. 그 작자인 조흔파 선생이다. 나만 하여도 십대 독자가 70대 독자로 이어졌지 않는가?
* 나는 이번에, “조흔파 문학선집”을 다 읽었다.
지금까지 명랑소설가로 본 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저 재미있는 글을 쓰고, 재미있게만 산 사람이 아니었다.
조흔파 선생은…
소설가이고 수필가였다. 경기여고 교감이면서 국어선생이었고 또 여러 대학에 출강 한 교수였으니 교육자였다. 신문사의 논설위원이니 언론인이었다. 중앙방송국 국장을 한 방송인이었다. 16권 짜리 “소설 한국사”를 쓴 역사가였다. 9권 짜리 “소설 대성서”를 쓴 신앙인이었다. 이전 인물을 현대에 살려 놓은 한학자였다.
전집 1권에 있는 수필 “사모곡(思母曲)”을 보니 정말 나의 가슴이 뭉클하였다. 어머니가 첩의 아들을 자기 앞으로 호적을 올린 것. 6, 25 이야기 등등… 그는 휴매니스트였다.
이 책에서 수필 “정표(情表)”를 보고, 에세이 3권에 있는 “남성 해방을 제창한다”나, “풍류백년(風流百年)”이나, ”유머소설 작금(昨今)”을 보면 그는 여전히 유머리스트였다.
그러면 도대체 조흔파의 정체는 무엇인가? 너무나 널리 활동을 한 천재였다. 모든 것을 다 하였다. 감탄, 감탄!
그 어마어마한 필력(筆力) 천하장사 같은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고?
본인의 천부적인 힘도 있고, 또 정명숙 여사의 지극한 내조, 도움, 격려, 지원 덕분이고, 수필집을 보면 조 선생은 강하고 개성이 아주 강한 남편이던데, 이런 남편에게 순종하는 침묵이었으리라. 풍류를 즐기는 남편, 사람을 좋아하는 남편, 그래서 방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루도록 한 남편이니 살림하기에 힘이 들었을 것인데, 잘도 살아 냈다고 본다.
조흔파 선생은 부인을 참 잘 두었다. 생전에도 잘 두고 사후에도 잘 두었다.
조 선생이 1980년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된 오늘, 남편 조흔파의 문학을 부활하고, 그의 작품을 다 간행해 낸 것… 보시라. 오늘 문학의 집에서 문인들이 많이 모인 “그립습니다. 조흔파 소설가” 행사, 놀랍지 않는가? 정명숙 여사가 아니면 그 누가 이런 행사를 할 것인가? 조 선생은 사후에도 아내를 잘 두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금 나의 가슴에 자리 잡은 친근한 조흔파, 스승인 조흔파, 인생의 지도자인 조흔파, 선생님!
그리고 아내요 동지요 동업자요, 멋 진 수필가 정명숙 선생님!
시작할 때 내가 조흔파 선생과 무관하다는 나의 말을 바꾸어 이제는 유관(有關)하다고 하겠다.
시작할 때 정명숙 선생이 나를 불러서 왔다는 말은 바꾸어서 이제 내 발로 기꺼이 찾아왔다고 말을 하겠다.
천국에 있는 조흔파 선생, 지상에서 남편을 불러 세운 정명숙 선생,
이 두 분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뜨거운 박수를!


목차


머리글
나오는 사람들

첫 번째, 모험병
나하고 톰 소여 … 15
마적단 … 23
기도한 보람 … 29
우리 아버지 … 33
금주 서약 … 39
오두막 집 … 46
탈출 … 56
반가운 친구 … 65
홍수 … 83
짐의 봉변 … 88
아슬 아슬 … 95
무서운 광경 … 107
악한들의 최후 … 116
짐의 위기 … 122
편 싸움 … 135

두 번째, 사기꾼과 한패
폐하와 각하 … 151
솜씨 테스트 … 162
연극 공연 … 171
귀가 솔깃 … 177
눈 뜬 장님들 … 184
쥐도 새도 모를 곳 … 193
아차 실수 … 198
저들의 본색 … 203
진짜와 가짜 … 210
집안 싸움 … 220
사라진 짐 … 223
천만 다행 … 229
임금과 공작의 말로 … 235

세 번째, 한밤의 탈출
흑인과 검둥이 … 247
빈틈 없는 계획 … 254
땅굴 … 259
밀고 … 264
염소 울음의 신호 … 269
사람 좋은 의사 아저씨 … 279
고지식한 짐 … 288
폴리 아줌마 … 296
결말 …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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