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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1 서울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1 서울

  • 신정일
  • |
  • 박하
  • |
  • 2018-06-01 출간
  • |
  • 392페이지
  • |
  • 148 X 218 X 23 mm /632g
  • |
  • ISBN 9788965706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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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문화사학자 신정일의 도보답사기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1 : 서울》 출간!

대한민국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이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시리즈가 1권 ‘서울’ 편을 시작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서울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까지 대한민국의 수도로 정치·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이다. 저자가 인구 천만이 넘는 거대 도시 서울을 도보답사기의 첫 권으로 꼽은 것은 나라 안에서 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도시이자 도심 한복판을 한강이 가로질러 흐르고 크고 작은 산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임에도 우리가 그 진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서울 구석구석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 전해주는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현대판 김정호” 신정일이 발로 쓴 국토 인문서

저자 신정일은 30년 넘게 우리 땅 곳곳을 답사한 전문가로 각 지역 문화유적은 물론 400곳 이상의 산을 오르고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고,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으며, 400여 곳의 산을 올랐다. 부산 오륙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 바닷길을 걸은 후 문화체육관광부에 최장거리 도보답사 길을 제안하여 ‘해파랑길’로 조성되었고, 그 외에도 소백산자락길, 변산마실길, 전주 천년고도 옛길 등의 개발에 참여하였다.
두 발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걸어온 신정일을 김용택 시인은 “현대판 김정호”라 했고, 도종환 문화관광부장관은 “길 위의 시인”이라고 했다. 김정호가 그랬듯 산천 곳곳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시리즈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국토 인문서로 독자들에게 이 땅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서울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서

《두 발로 만나는 우리 땅 이야기》 시리즈 1권 ‘서울’ 편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한강변에 자리잡은 서울공화국 : 서울의 역사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서울을 도읍(수도)으로 정하고, 국가의 근간이자 왕권의 존엄을 드러내는 궁궐을 짓고 성곽을 쌓았다. 1장에서는 서울에 새로운 길을 만들고 신분과 직업에 따라 백성들의 거주지를 정하는 등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는 과정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의 수도가 되기까지 서울의 역사를 짚어본다.

2장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궁궐 : 경복궁에서 종묘까지
태조 이성계는 서울에 궁궐터를 정한 뒤 ‘좌묘우사’의 법도에 따라 종묘를 왼편에 사직단을 오른편에 세운 후 경복궁을 건설했다. 정종 때 수도를 개성으로 옮겼으나 태종 때 수도를 다시 한양으로 옮기면서 창덕궁을 건설하여 이궁으로 사용했다. 경복궁, 창덕궁과 함께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을 조선의 5대 궁궐이라고 한다. 2장에서는 조선시대 5대 궁궐과 함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를 탐방한다.

3장 한양도성 성곽길 걷기 : 숭례문에서 다시 숭례문으로
궁궐이 지어진 뒤에는 한양을 둘러싼 백악산·인왕산·남산·낙산을 연결하여 둘레 18.6킬로미터의 성을 쌓았다. 《한경지략》에는 “봄과 여름이 되면 한양 사람들은 도성을 한 바퀴 돌면서 주변의 경치를 구경했는데 해가 떠서 질 때까지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으며, 이렇게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도는 것을 순성놀이라고 했다.

4장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 : 북한산에서 도봉산까지
서울이 다른 나라의 수도보다 아름다운 것은 크고 작은 산들이 서울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한양의 바깥 경계에 해당하는 산을 외사산이라고 하는데, 남쪽의 관악산과 북쪽의 북한산, 여기에 동쪽의 아차산과 서쪽의 덕양산이 서울을 감싸면서 호위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한강 북쪽에는 도봉산·청계산·불암산 등이 있고, 한강 남쪽에는 관악산 자락의 청계산·삼성산 등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5장 서울의 중심 한강 : 역사가 흐르는 강
서울의 젖줄, 나라의 젖줄이라고 일컬어지는 한강은 신석기시대부터 한반도 문화 발달의 터전이 되었다. 한강은 강원도와 경기도, 충청도 북동부의 많은 곳을 연결하는 큰 간선 수로였으며, 조선 말기까지도 다리가 가설되지 않아 나룻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1960년대 이후 한강종합개발의 여파로 한강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는데, 하중도인 뚝섬·잠실·여의도에는 아파트단지와 빌딩이 들어섰고, 폭파되어 사라졌던 밤섬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어 현재는 철새도래지가 되었다.

6장 서울 도심 속 근대사의 자취 : 서울 근대 유적 답사
서울 시내에는 근대사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서구 열강의 공사관과 정동교회가 들어선 정동 지역은 우리나라로 서구 문화가 들어오는 중심지였다. 일제가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지은 구 서울역사는 지금은 전시관으로 운영되며, 일제에 저항하던 김구 선생과 유관순 열사가 투옥되었던 구 서대문형무소는 지금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7장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서울의 풍속
다산 정약용은 “사람이 살 곳은 서울의 십 리 안팎뿐”이라며 자녀들에게 서울에 살 것을 권했다.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서울에 살아야 문화적 혜택을 누리는 것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7장에서는 서울에서 태어나 살다간 사람에는 누가 있는지,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서울 사람들의 풍속을 살펴본다.

8장 서울의 지명 속에 숨겨진 역사 : 지명의 유래
지금의 명동 세종호텔 뒤는 비만 오면 토사가 쌓여 진흙탕길로 변해 ‘진고개’라 했는데 일제강점기에 고개 높이를 낮추고 도로를 만들어 일본 상점과 음식점이 들어선 번화가가 되었다. 구로동이라는 지명은 옛날 이곳에 있던 구루지라는 마을에 노인 아홉 사람이 오랫동안 화목하게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8장에서는 서울 지역 지명의 유래를 알아본다.

[책속으로 추가]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하다가 병신 되면 못 가리”라는 참요처럼, 19세기 후반 조선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 같았다. 갑오년(1894)에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고, 을미년(1895)에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다음 해인 병신년(1896) 2월 11일에 새벽 한 나라의 국왕이 비밀리에 궁궐을 탈출하여 타국의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태가 바로 친러 세력과 러시아공사가 공모하여 비밀리에 고종을 현재 정동에 있던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긴 아관파천이다
-6장 서울 도심 속 근대사의 자취 : 서울 근대 유적 답사, 288쪽

보신각에 처음 종을 건 것은 태조 7년(1398) 때였다. 처음에는 지금의 인사동 입구쯤에 있던 청운교 서쪽에 2층짜리 누각을 짓고 종을 걸었다가 태종 13년(1413)에 지금의 종로1가사거리에 통운교로 옮겼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종루는 소실되고 종도 파괴되었다. 그 후 광해군 11년(1619)에 종루를 다시 짓고 종을 걸었다. 이때는 임진왜란 전과 같은 2층 종루가 아니라 1층 종루로 세웠다. 종루는 그 뒤로도 화재로 인해 다시 건립되기를 거듭하다 고종 32년(1895) 종루에 ‘보신각(普信閣)’이라는 현판을 걸면서 보신각으로 불리게 되었다.
-7장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서울의 풍속, 346쪽

종로1가에서 종로6가까지 큰길 양쪽으로는 집 한두 채 건너마다 좁다란 골목길이 형성되었는데 이 길을 피맛골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 말을 타고 큰길을 가다가 고관대작을 만나면 말에서 내려 길가에 엎드려 있는 것이 관례였다. 고관대작이 지나간 후에야 다시 말을 타고 가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피맛골을 한자로 피마동(避馬洞)이라고 한 것은 이처럼 종로를 행차하는 양반을 피하기 위해 서민들이 쓰던 길이었던 데서 유래되었다. 주로 서민들이 다녔던 피맛골에는 그들을 상대하는 장국밥집이나 목로주점과 내외술집 같은 허름한 가게들이 들어서 이 일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8장 서울의 지명 속에 숨겨진 역사 : 지명의 유래, 366쪽


목차


추천사 강과 길에 대한 국토 입문서
머리말 역사 속 나그네 되어 두 발로 서울을 만나자
개요 한반도의 중심 서울 : 나라 안 제일가는 명당을 도읍으로 정하다

1. 한강변에 자리잡은 서울공화국 : 서울의 역사
우리말 이름인 서울│나라를 세우기에 가장 적당한 땅│조선의 도읍을 서울로 정하다│북악 아래 경복궁을 짓다│서울의 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중국으로 이어지던 의주로│조선시대의 서울은 어디까지인가│신분에 따라 사는 곳도 달랐다│서울공화국의 어제와 오늘│한국인에게 서울은 무엇인가

2.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궁궐 : 경복궁에서 종묘까지
고려시대 남경에 경복궁을 세우다│임금이 부지런해야 한다는 뜻의 근정전│왕의 집무공간 사정전│왕과 왕비의 침전, 강녕전과 교태전│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 경회루│휴식과 풍류를 즐기던 향원정│명성황후가 시해당한 비운의 현장 건청궁│가장 오랜 세월 정궁 역할을 한 창덕궁│비밀의 화원 창덕궁의 후원│상왕 태종을 위해 지은 창경궁│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던 경희궁│돌담길이 아름다운 덕수궁│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

3. 한양도성 성곽길 걷기 : 숭례문에서 다시 숭례문으로
500년 역사의 한양도성│우리나라 국보 1호 숭례문│숭례문 근처에 있던 남지터│사라져 버린 태평관터│전국 각지 봉수의 최종 집결지 남산 봉수대│손순효의 자취가 서린 남산│세상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집 남산 허백당│광희문을 지나 흥인지문으로 이어지는 길│김창협의 흔적이 남은 흥인지문│관우의 제사를 지내는 동묘│낙산 기슭에 살았던 사람들│동망봉에서 영월을 바라보다│도성의 북쪽 대문이었던 숙정문│서울이 눈에 잡힐 듯 보이는 북악산│사소문 가운데 융리하게 남아 있는 창의문│창의문 밖 세검정과 석파정에 얽힌 내력│사대부들이 풍류를 즐기던 인왕산 자락│악명 높았던 인왕산 호랑이│김구 선생의 최후를 지켜본 경교장│다산 정약용이 친구들과 풍류를 즐겼던 서련지

4.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 : 북한산에서 도봉산까지
서울의 진산 북한산│북한산에 북한산성이 있다│추사 김정희가 발견한 신라 진흥왕 순수비│매월당 김시습이 자주 찾았던 북한산│관악산에 올랐던 조선의 사대부들│산이 맑고 골짜기가 많은 청계산│노원의 명산, 불암산과 수락산│우뚝 솟은 바위가 일품인 도봉산

5. 서울의 중심 한강 : 역사가 흐르는 강
큰 물줄기가 맑고 밝게 뻗어내린 강│한강에 떠 있던 잠실섬과 부리도│흔적도 없이 사라진 송파나루와 삼전도│말이 떼 지어 노니는 모습을 즐기던 화양정│잃어버린 섬 저자도│중국 사신 예겸이 이름 지은 압구정│박지원의 슬픈 제문이 남아 있는 동호│이항복의 소유였던 천일정과 달구경하기 좋았던 제천정│삼남대로가 지나던 동작나루│한강변 모래언덕이었던 노들섬│백로가 노닐던 노들나루│노량진 동산에 있는 사육신묘│나라 안 모든 세곡이 몰리던 마포나루│철새도래지로 변신한 밤섬│고려시대 귀양지 여의도│미수 허목이 바라본 서강에서 임진강까지│한양의 천연방어선을 이루는 양화나루│산의 형세가 고양이를 닮았다는 선유봉│풍경이 아름다워 국제 연회장으로 쓰였던 망원정│난초 향이 난다던 난지도의 어제와 오늘│한강에 놓인 다리들│한국전쟁 때 폭파된 한강대교

6. 서울 도심 속 근대사의 자취 : 서울 근대 유적 답사
미국 문화가 들어오는 중심지가 된 정동교회 | 아관파천의 현장 구 러시아공사관 | 한국 천주교의 총본산 명동성당 | 약초고개에 자리한 약현성당 | 일제 대륙 침략의 발판이 된 서울역 |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한국은행 본관 | 보천교 십일전으로 건립된 조계사 대웅전 | 3·1운동의 진원지 인사동 태화관 | 서울 3대 건축물로 꼽혔던 천도교 중앙대교당 | 원각사지에 들어선 한국 최초의 공원, 탑골공원 | 서울대학교병원의 전신 대한의원 | 자유의 진공지대 서대문형무소

7. 서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서울의 풍속
예나 지금이나 혼잡한 도시 서울 |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다간 인물들 | 우산각골에 서린 사연 | 놀이터이자 빨래터였던 청계천 | 수표교의 연날리기와 다리밟기 | 북청 물장수의 내력 | 도성민의 시계 역할을 한 보신각종 | 종루거리의 육의전 | 우리나라 최대 시장,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 | 각종 물화의 집산지 송파시장 | 서울을 두고 만들어진 속담들

8. 서울의 지명 속에 숨겨진 역사 : 지명의 유래
진흙탕길에서 번화가로 변모한 진고개 | 다양한 상점이 들어선 종로 | 종로의 뒷골목 피맛골에 얽힌 사연 | 구름재에 있던 흥선대원군의 사저 운현궁 | 긴 세월 수난을 겪은 정릉 | 공릉동에 있는 태릉과 강릉 | 미나리로 유명했던 왕십리 | 나라의 목장이 있었던 뚝섬 | 얼음 창고가 있던 동빙고동과 서빙고동 | 나이 많은 노인들이 오래오래 살았던 구로 | 새로운 모래판 신사동과 논고개 논현동 | 빌딩 숲 사이에 자리한 선릉과 사교육 1번지 대치동 | 조선시대에 마방이 있던 양재역의 말죽거리 | 인조가 피난길에 들른 송파구 마을들 | 고려 말 이집이 은거했던 둔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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