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영혼에 예술적 총격을 가하다!”
사회의 편견과 억압에 맞서 치유와 해방을 노래한 니키와 요코의 이야기
“우리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창조적인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예술가의 사명과 한 명의 인간 사이의 니키 드 생팔
금발머리 미인. 누구든 니키 드 생팔의 첫인상은 여기서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보그》와 《엘르》 같은 패션 잡지 및 사진 주간지 《라이프》의 모델로 활동했고, 영화에도 출연했다. 매혹적인 외모에서 뿜어내는 형형한 눈빛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20세기 예술 사조 중 하나인 누보 레알리슴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작가로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니키의 삶은 화려했을 것만 같지만 대공황으로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헤어졌고 10대 초반에는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해 정신질환을 앓는다. 이를 달래기 위해 미술을 시작하여 마침내 예술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만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크게 고생했다.
그래서 니키 드 생팔이 만든 오색 통통하고 재기 발랄한 조각상 ‘나나’를 보면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그리고 마침내 누보 레알리슴 작가, 페미니스트라는 수식어보다 행복하고 자유롭기를 바랐던 한 명의 인간이 보인다. 니키는 석고상에 직접 물감 총탄을 쏘아 완성시킨 슈팅 페인팅, 타로 카드의 주인공들이 즐비한 타로 공원 등 매번 새로운 작품과 스타일로 화제에 올랐지만 늘 자유로운 조각들을 선보였다. 이처럼 그녀가 만들어 낸 조각상들은 사회의 편견이나 강요에 얽매이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의 삶을 불태워서라도 세상에 자신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은 없고, 대신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가정주부 요코, 컬렉터가 되다
니키 드 생팔에겐 몇 명의 컬렉터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단연 ‘요코 마즈다’다. 요코는 니키가 머물고 활동했던 프랑스나 미국이 아니라 일본에 살았다. 니키 드 생팔을 만나러 갈 때까지는 한 번도 일본 밖을 나간 적도 없다. 또한 전문 컬렉터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예술이나 미술에 정통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니키 드 생팔 외에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니키 드 생팔만의 컬렉터’였던 셈이다.
여성으로, 아내로, 어머니로 평범한 삶을 살던 요코는 ‘세상이 나를 이미 만들어 둔 틀에 가둔다’,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와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았으며 나름대로 그 방법을 궁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50세가 된 어느 날 우연히 한 갤러리에 들렀다 〈연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는 판화 작품을 보고 단번에 매료되어 처음 ‘니키 드 생팔’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다. 이후 생팔의 작품을 수집하고 마침내 니키 드 생팔 미술관까지 짓게 되면서 컬렉터이자 미술관 관장으로 제2의 삶을 산다. 또 니키와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반자로 거듭난다.
예술이 주는 힘은 무엇인가?
이 책은 니키 드 생팔의 컬렉터이자 팬, 그리고 친구였던 요코 마즈다의 입장에서 쓰였다. 요코는 니키 드 생팔과 한 살 차이였다. 요리사인 아버지 밑에서 세 자매의 맏이로 태어난 그녀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전쟁을 겪는 등 굴곡진 유년을 보내지만 아버지의 지지로 고등교육까지 받는다. 남편과의 사랑의 도피로 아버지와 요원하기도 했지만 가업을 이어받으면서 당시로서는 드물게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었다. 여성이기 때문에, 시대적 상황 때문에, 일본이라는 사회 때문에 자신의 꿈이나 이상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지만 1960년대에 불어온 페미니즘 열풍으로 조금씩 변화한다. 결정적으로 니키 드 생팔을 만나면서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의 삶을 꾸려 나간다.
요코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니키 드 생팔을 만나고 이후의 삶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필연적으로 예술의 진짜 힘을 마주하게 된다. 요코는 니키의 컬렉터였지만 니키의 작품은 한 점도 팔지 않았고, 니키 역시 요코를 위해 기꺼이 작품을 창조했다. 1980년대에 사람들이 니키 드 생팔은 한물간 작가라며 폄하했을 때나 미술관 건립으로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에도 요코의 의지는 확고했다. 이와 같은 지지자들 덕분에 니키 드 생팔은 현재에도 신선한 예술가로 기억되고, 요코 역시 평생 예술이라는 따듯한 요람에서 잠들 수 있었다. 『니키 드 생팔 × 요코 마즈다』를 읽는 독자들도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