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연 주옥같은 창작 생태놀이들
‘재미있고 유익한 생태놀이’를 향한 현직 교사들의 오랜 모색과 실천
야외수업 현장에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생태놀이 가이드북
자연놀이에 관심을 갖고 기존의 책과 자료들을 찾아보는 교사나 숲 해설가들은 대부분 비슷한 고민에 빠진다. 늘 하던 놀이의 장소를 숲이나 공원으로 바꾼다고 해서 그것을 자연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꽃이나 나뭇잎, 열매 같은 자연물을 활용한 미술이나 공예는 좀 더 자연에 가깝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야외 체험활동을 매번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을까? 서너 명 단위의 소규모 놀이들로 학급 단위의 대규모 활동을 진행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핵심은 결국 ‘자연’과 ‘놀이’의 효과적인 만남에 관한 것이다. ‘놀이’의 개념에 걸맞게 집단적인 신체활동을 통해 건강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정해진 규칙을 통해 협동의 가치와 사회생활의 원리를 터득하며, 그 과정에서 자연·생태·생명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생태감수성을 키워나갈 수 있는 놀이! 한마디로 ‘더 재미있고 더 유익한’ 자연놀이에 대한 교사로서의 갈증인 셈이다. 그런 놀이들을 소개해주고 배경 지식과 진행 방식까지 함께 제시해주는 안내서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그 모든 고민들을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체계적인 솔루션이다. 학년과 인원 수, 계절과 장소 등에 구애받지 않는 30여 개의 놀이들이 그림과 함께 자세히 실려 있다. 그중 10개는 한반도 생태계의 다채로운 생명그물망을 놀이 속에 그대로 반영한 창작 생태놀이들이다. 놀이에 등장하는 동식물들의 생태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놀이에 앞선 몸풀기부터 놀이 후의 나눔까지 꼼꼼하게 안내되어 있어서 안내자들이 마치 대본처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환생교)’ 회원으로서 20여 년간 자연놀이를 연구하고 실천해온 베테랑답게, 글쓴이들은 현장 안내자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방법을 제시해준다. 하지만 그런 기술적 요소들보다 더 중요한 건 놀이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가치다. 자연을 단순히 놀이 공간이나 소재로 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놀이를 통해 생명과 생태와 평화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들의 믿음이다. 제목이나 본문에서 ‘자연놀이’ 대신 ‘생태놀이’라는 표현이 일관되게 쓰인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한반도 생태계의 실제 모습을 반영한 창작 생태놀이들
경쟁과 승부가 아닌, 협동과 공생을 가르친다!
화려한 군무를 선보이는 겨울철새 가창오리는 천적인 흰꼬리수리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독특한 행동을 보인다. ‘가창오리 살려!’는 바로 그 모습을 놀이 속에 담고 있다. 한강 하구 장항습지의 버드나무와 말똥게가 보여주는 특유의 공생관계는 ‘버드나무와 말똥게 그리고 너구리’의 놀이 규칙 속에서 고스란히 재현된다. 무수한 난관을 뛰어넘어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들의 긴 여행은 ‘온 힘을 다해 연어 알 낳기’라는 놀이로 만들어졌고, 멸종위기종 재두루미의 목숨을 건 이동은 ‘재두루미 살아남기’를 통해 실감 나게 체험된다. 글쓴이들이 오랜 관찰과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고 다듬어온 주옥같은 창작놀이들이다.
“우리 숲속의 나무들, 우리 하늘의 철새들, 우리 땅의 동물과 곤충과 개구리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생물들의 특징, 역할, 관계를 반영한 새로운 놀이들을 만들어 현장에서 시험해보았습니다. 어색한 규칙이나 서툰 진행 방식은 조금씩 고쳐나갔습니다.”(시작하는 말)
놀이 규칙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들 중 하나는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이다. 글쓴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놀이를 하다 보면 아이들이 승부에 집착하기 쉽습니다. 생태놀이 안내자는 놀이가 지나친 경쟁으로 흐르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처음부터 놀이 규칙을 비경쟁적으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시작하는 말)
가령 ‘자연은 살아 있다’라는 놀이에서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쪽에게 선택권을 준다. ‘달팽이야, 뛰어라!’에서도 가위바위보에서 진 모둠이 더 유리하다. ‘살살! 밤송이 옮기기’나 ‘애벌레, 꼭꼭 숨어라’에서도 무조건 빨리 끝내거나 많이 찾아오는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자연에서 배워야 할 것은 치열한 경쟁이 아니라 아름다운 상생과 평화로운 균형이기 때문이다.
네 개의 단계와 하나의 흐름; ‘플로 러닝’
교사와 지도자들이 대본처럼 활용할 수 있는 현장 안내서
이 책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마다 하나씩 상징동물이 있다. 이 동물들은 미국의 자연교육자 조셉 코넬이 사람들을 자연으로 안내할 때 적용한 ‘플로 러닝(Flow Learning)’의 각 단계를 상징한다.
플로 러닝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놀이나 활동을 통한 배움을 뜻한다. 코넬에 따르면 수달(1단계)은 열의를 일깨우는 단계, 까마귀(2단계)는 주의를 집중하는 단계, 곰(3단계)은 자연을 직접 체험하는 단계, 돌고래(4단계)는 감동을 나누는 단계다.
글쓴이들 또한 놀이의 난이도, 신체활동 정도, 목표 등에 따라 30여 개의 놀이들을 네 개의 장으로 구분했다. 한발 더 나아가, 각각의 놀이들에도 네 개의 단계를 두어 시작에서 끝까지의 모든 시간들이 하나의 큰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몸과 마음 열어요’에서는 간단한 몸짓을 통해 놀이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높여주고, ‘함께 알아봐요’에서는 놀이에 등장하는 동식물의 생태적 특징들을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온몸으로 놀아요’는 말 그대로 온몸으로 즐기는 놀이 과정이고, ‘감동을 나눠요’는 놀이를 통해 얻은 느낌과 영감 등을 서로 표현하고 나누는 시간이다. 단순히 놀이 방법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놀이 자체를 소중한 배움의 기회로 만들어내려는 글쓴이들의 마음이 책장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준비에서 나눔에 이르는 이 단계들이 놀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진다면 생태놀이의 재미와 감동이 더욱 커지리라 믿습니다.” (시작하는 말)
이런 구성이 독자들, 그러니까 이 책을 활용하는 교사나 안내자들에게 주는 장점은 명확하다. 놀이에 등장하는 동식물들의 특징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따로 자료를 찾지 않고도,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에 대한 별도의 고민 없이도 곧바로 야외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책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진행이 가능할 만큼 내용의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놀이방법 자체보다도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함께 알아봐요’ 코너는 그것만으로도 수업이나 토론이 가능할 만큼 다양하고 흥미로운 생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책 제목에 ‘이야기가 담겨 있는’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이유이기도 하다. 본문 자체가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의 말투로 쓰여 있고 일러스트도 풍부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함께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