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중에서
메스…… 면도, 면도…… 메스, 잊으려면 잊으려 할수록 끈적끈적하게도 떨어지지 않고 어느 때까지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서 돌아다니었다. 금시도 손이 서랍으로 갈 듯 갈 듯하여 참을 수 없었다. 괴이한 마력은 억제하려면 할수록 점점 더하여 왔다. 스스로 서랍이 열리는 소리가 나서 소스라쳐 눈을 뜨면 덧문 안 닫은 창이 부옇게 보일 뿐이요, 방 속은 여전히 암흑에 침적(沈寂)하였다. 비상한 공포가 전신을 압도하여 손끝 하나 까딱거릴 수 없으면서도 이상한 매력과 유혹은 절정에 달하였다.
_「표본실의 청개구리」 중에서
그리고는 정례 모친은, 옥임이가 가끔 함께 들러서 알게 된 교장 선생님의 돈 오만 원을 얻어 가지고, 개학 초부터 찌부러져 가던 상점의 만회책(挽回策)을 다시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땅뙈기는 자동차 바람에 날려 보내고, 자동차는 수선비로 녹여버리고 나니, 상점에서 흘러나간 칠팔만 원이라는 돈을 고스란
히 떼 버렸고, 그 보충으로 짊어진 것이 교장의 빚 오만 원이었다. 점점 더 심해 가는 물가에 뜯어먹고 살아야는 하겠고, 내남없이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라도 덜 사겠지 더 팔리지는 않으니, 매삭 두 자국 세 자국의 변리만 꺼 가기도 극난이었다.
_「두 파산」 중에서
병인은, 두 번씩이나 의사를 따라 나가서 수군수군하고 들어오는 명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무엇을 찾아내려고 몹시 초조해하는 기색이었다. 마음을 턱 놓았던 화색이 금시로 스러지고, 불안과 공포의 빛이 휙 떠오르다가 꺼지면서 어색한 웃음을 띠고 무슨 말을 꺼내려는 눈치더니 자기도 입 밖에 내서 물어보기가 무서운 듯이 멈칫 하고는 또다시 퀭한 눈으로 언제까지 명호의 기색만 노려본다.
_「임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