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부엌이지만
그곳에는 일상의 드라마가 숨어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 웹진 인기 연재물 「도쿄의 부엌」이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매주 한 곳씩, 지금까지 103곳의 집을 방문, 책에는 그중 50곳의 집을 추려 실었다. 요리를 하는 사람도 하지 않는 사람도, 혼자 사는 사람도 누군가와 의지하며 사는 사람도, 어느 누구의 부엌이든 그곳에서는 사람의 말과 멜로디가 들려오는 듯하다. 특별할 것 없는 냄비와 머그잔, 도시락통이 ‘들어봐, 들어봐’ 하며 말을 걸어온다.
나만의 작은 숲, 부엌
소소한 행복을 찾아 떠나는 모험
2018년 초, 팍팍하고 고단한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간 주인공의 느릿한 일상을 그린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도시에서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할 만큼 피로한 삶을 살던 주인공이 고향집에 내려가 어린 시절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부엌에서 매끼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해먹으며 차츰 일상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일종의 치유와 같았다. 영화에서는 특히 주인공이 매일 서는 부엌 풍경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엄마의 손길이 남아 있는 부엌에 주인공의 손길이 덧칠해졌다. 소쿠리, 항아리, 밥솥 등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주방도구들에서 이야기가 흘러넘쳤다.
부엌은 요리를 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일상이 버무려진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한다. 그리고 그런 매일이 차곡차곡 쌓여 인생이 만들어진다.
보통 인테리어 잡지에는 실리지 않는 것들에서 뜻하지 않게 ‘그 사람’이 보일 때가 있다. 고향과의 거리, 지금까지 걸어온 길. 얼마나 사랑받으며 자라왔는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생활신조와 장래의 꿈까지.
다이닝룸이나 거실과 달리 부엌에는 꾸미려야 꾸밀 수 없는 진짜 일상이 넘쳐 난다. 성품과 개성이 어떻게든 겉으로 드러나고 만다.
어느 디자이너의 조명, 어느 브랜드의 컵과 같은 취향 이상으로, 식기건조대를 두면 걸리적거려서 설거지를 하자마자 접시를 닦아버리는 무의식적인 습관이나, 본가에서 먹던 달큰한 간장만 고집하는 그 사람만의 당연한 일상이 내게는 흥미롭게 다가왔다.(5~6쪽)
지은이의 말처럼 매일 사용하는 부엌은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사용자의 흔적이 드러난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그 사람의 습관, 취향, 좋아하는 음식 등 개개인이 품고 있는 성품이 배어나온다. 인테리어·건축 관련 잡지에 글을 기고하던 지은이는 취재를 가서도 생활의 냄새가 짙게 밴 공간이나 냄비가 가지런히 놓인 부엌을 보면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비록 낡고 좁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부엌이지만 집 주인이 쓰기 편한 방식으로 정리한 풍경, 상처나 결핍조차 멋이 되는 활기차고 즐거운 공간을 보면 ‘이 사람은 여기서 어떤 요리를 만들까. 이 나무 밥통은 어떤 계기로 샀을까’ 하는 식으로 취재 테마와는 관계도 없는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꽉 채웠다고 한다.
그런 지은이의 관심사를 눈치 챈 일본의 출판사가 책으로 엮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그전까지 글만 썼던 지은이에게 직접 사진까지 찍어보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지은이의 느릿느릿 부엌 순례가 시작되었다. 이후 일본의 유력지 『아사히신문』 디지털본부 ‘&W’에 매주 한 곳의 부엌 이야기를 올렸다. 반응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2013년 1월부터 현재까지 인기리에 연재 중이다.
취재한 곳만 해도 170곳이 넘는다. 긴 시간 동안 「도쿄의 부엌」이 사랑받아온 이유는 뭘까.
무엇이 평범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없다. 그렇지만 100곳이 넘는 집을 돌아다녀본 지금 생각하면 멋들어진 시스템키친이나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근사한 설비를 갖춘 곳은 극히 드물었다. 싱크대와 상부장이 있고, 술병과 채소가 너저분하게 삐져나와 있고, 이렉타의 철제 선반이나 무인양품과 이케아의 틈새 가구가 놓인 흔하디흔한 부엌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이 도쿄의 ‘평범함’일지도 모른다.(286쪽)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런 ‘평범함’에 끌리고 매료된다. 그 평범함 속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드라마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은이는 그것들의 극히 일부라도 건져 내고 싶어서 서투른 사진 솜씨와 필력으로 안간힘을 썼다고 전한다.
“별 생각 없이 먹고 사용하는 것에서 인생의 한 부분을 엿본다. 익명이기 때문에 보이는 본질도 분명 있다. 그런 부엌을 찾아다니는 소소한 모험을 통해 도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내가 그랬듯이, 부엌을 뒤로하고 나왔을 때의 따스하고 온화한 마음의 평화가 당신에게도 찾아온다면 기쁘겠다.”
원서에서는 중반 이후부터 부엌 사진을 흑백으로 처리해 아쉬움이 남는다는 독자들이 있었다. 그런 점을 보완해 한국어판 『도쿄의 부엌』에는 특별히 50곳의 부엌 전부를 컬러 사진으로 담아냄으로써 한국 독자들에게 평범하지만 개성 넘치는 도쿄의 부엌 풍경을 전하고자 했다.
자, 그럼 맛있는 이야기가 익어가는 도쿄의 부엌 순례를 떠나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