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는 스페인 사람이 없다?
스페인에 가면 스페인 사람은 없고 카스티야 사람, 바스크 사람, 카탈루냐 사람, 갈리시아 사람, 안달루시아 사람만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스페인은 각 지역의 정체성이 매우 강한 나라다. 한 국가지만 쓰이는 공식 언어만 해도 4개다. 레콩키스타 이후 카스티야라는 강력한 통일 왕국이 탄생했지만 중세 시대 이후 각 지역에 형성되었던 소왕국들의 문화적 전통과 언어는 여전히 굳건하게 남아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순례길로 잘 알려진 산티아고뿐만 아니라 영국과 영토 분쟁이 일고 있는 지브롤터,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스페인 영토 세우타와 멜리야, 반도 주변의 부속 섬인 마요르카와 카나리아 등 스페인의 각 도시에 얽힌 역사와 이슈를 흥미롭게 풀어내며 이들 지역이 가진 개성과 매력을 전한다.
우리와 다른 듯 닮은 스페인 역사
유럽의 서쪽 끝 이베리아반도에 위치한 스페인은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던 역사를 갖고 있다. 로마 제국이 남긴 기독교 문화가 이슬람 문화와 섞이면서 완성된 스페인의 문화적 다양성은 중세 시대를 지배한 기독교의 엄혹했던 종교재판으로 해체되었고 스페인 사회에 뿌리 깊은 불신의 상처를 남겼다. 이후 이사벨 여왕이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원하고 방대한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막강한 번영의 시대를 이끌었으나, 펠리페 2세 시대에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한 뒤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유럽의 변방 국가로 전락한 스페인은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으며 내전이라는 비극을 겪었다.
우리나라에는 한국전쟁이, 스페인에는 스페인내전이 있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내전이 국제전으로 확산되며 국토가 폐허에 가깝게 망가졌지만, 스페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섰다. 이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 정치와 민주화 과정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묘하게 닮아 있다. 그래서인지 스페인의 역사는 알면 알수록 더 친밀하게 느껴진다.
천의 얼굴을 가진 다양성의 나라
스페인은 천혜의 자연환경이 주는 아름다움으로 일년 내내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천재적인 건축가 가우디의 독창적인 건축물, 각 지방마다 개성 있는 음식 문화, 뜨거운 태양과 그림 같은 해변, 다채로운 축제, 가톨릭과 이슬람의 신비로운 조화가 만들어내는 이국적인 풍경이 스페인에 전부 모여 있다.
그러나 스페인에 가지 않아도 우리는 책 속에서, 길 위에서 스페인을 만날 수 있다. 패스트 패션을 선두하는 패션 브랜드 ‘자라’와 막대 사탕 ‘추파 춥스’가 스페인의 대표적인 브랜드다. 또한 스페인은 최고의 와인 생산국 중 하나다. 널리 알려진 축구와 투우, 플라멩코로 대표되는 열정적인 문화뿐 아니라 ‘스패니쉬 스타일’로 통칭되는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 문화가 있다. 문학 작품 속 주인공인 돈키호테, 돈 후안, 카르멘은 시공간을 넘어 지금까지도 정열과 자유, 낭만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전 세계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