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강원도 원주에서 낳아서 춘천사범학교를 졸업. 1962년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매일경제신문 수습1기로 기자가 되어 편집국 국차장을 거처 여러 국장을 역임. 20년간 봉직하고 퇴사.
월간지 《말벗》을 창간하여 발행하다가 귀향, 10여 년간 농업에 종사, 추요(芻?)의 생활을 즐겼다.
머리말]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너 정신을 어디에 팔고 다니니!” 자식이 엉뚱한 짓을 하고 다니면 부모가 호통을 친다. 우리는 지금 정신을 어디에 쏟고 있는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이건 희극판인가 하면 비극 같고, 비극판인가 하면 희극 같다.
선진국인가 했는데 후진국이고, 아직도 후진국인가 하면 선진국 같은 행태도 보인다. 과도기적 현상인가 하면 본질문제 같고, 본질문제인가 하면 지엽문제 같다. 구체적으로는 우파인가 하면 좌파 같고, 좌파인가 하면 우파 같다. 보수인가 하면 진보이고, 진보인가 하면 보수 같다.
‘영광의 나라’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가 엇갈린다. 어지럽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나라가 돼 있다. 그러면서 나라는 기운단다. 아우성은 높아진다. 개별 사안으로 눈을 돌려본다. 판사? 검사? 언론인? 교사? 전문직? 학생? 지성인?….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는가? 제 기능을 해서 신뢰받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가?
모두 중심을 이탈, 확고한 부문이 없는 것 같다. 나라도 흔들리고, 국민도 흔들린다. 민주주의는 방황한다. 온갖 이매망량(?魅??)이 난장(亂杖)의 춤을 추는 난장(亂場)이 펼쳐진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현기증이 난다.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사라지고, 증오와 분노로 검게 탄 얼굴에서 질러대는 괴력의 함성이 거리에 넘친다. 긴 눈으로 보면, 우리의 좌표는 어디인가. 세계에 비춰지는 코리안은 스마트한가 어그리한가. 한국인은 팔면조(八面鳥)?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항상 싸움질이고, 노동자들은 산업전사도 됐다 귀족노조도 됐다 한다.
거리에선 촛불과 태극기가 대립한다. 촛불도 아름답고, 태극기는 숭고하여 둘 다 필요한 존재인데 거리에 나서면 대립한다. 정당은 이합집산을 반복하고, 지성인들은 간교한 혓바닥을 놀려 도대체 그 뜻을 짐작하기 어렵다.
정치인이건 노동자건 교육자건 언론인이건 지독한 독선 독단 독주 독점에 빠져 고슴도치같이 앙당그린다. 각종 범죄가 넘친다. 오래전 외국 철학자가 지적한 ‘자연상태’,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의 사회가 되고 있음인가. 그 야비하고 천박한 세계에 빠졌음인가. 그런 자탄이 나온 지도 한 세기를 넘는다. 왜 이렇게 사는가.
인생은 좋은 일 하며 웃고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항상 소리 지르고, 욕하고, 싸우며 사는가. 무엇인가 생각이 잘못됐고, 사로(思路)가 꼬였기 때문일 것이다. 가치관이 얽히고, 목적의식이 삐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나라가 아니다. 역사적 맥락 속에 존재한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알려면 과거의 조선을 알아야 한다. 조선인은 무엇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 사유(思惟)의 맥락에서라야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 단순히 호사가적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차원이 아니다. 맥을 찾아야 한다. 반짝 햇볕이 드는가 했는데 다시 먹구름이 몰려온다.
지금 여러 부문에서 과거로 돌아간다는 소리가 나온다. 사고방식과 행태가 그렇다는 것이다. DNA 탓인가. 운명의 굴레인가. 그 굴레를 벗을 수 있는가. 벗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위상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도, 남이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할 탓으로 추락할 수도 있고, 비상할 수도 있다. 요만한 위상이 그대로 지속된다는 보장도 없다. 세상은 항상 변한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좌표를 그려갈 것인가. 우리에겐 항상 운명의 선택지가 놓여 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에 앞서 우리 자신을 앎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책은 관조의 고개 언덕에 올라선 한 추요(芻?)의 한담이다. 우리 문화의 키워드(유교 자기중심주의 정직 질투 집단행동)를 따라가 반추해 보는 것이다.
출판의 기회를 제공해주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콘텐츠’ 선정에 감사드리며, 또 출판의 수고를 해주신 <한가람서원>의 김기호 사장을 비롯한 여러분에게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