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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이만희

영화감독 이만희

  • 유지형
  • |
  • 다빈치
  • |
  • 2005-08-10 출간
  • |
  • 319페이지
  • |
  • 152 X 223 mm
  • |
  • ISBN 9788989348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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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만추(晩秋)의 창경원. 바바리코트를 입은 한 여인이 화면 뒤에서 걸어와 낙엽이 깔린 벤치에 조용히 앉는다. 카메라가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그녀는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철지난 고궁의 모습을 천천히 둘러본다. 교도소에서 막 출감한 그녀의 이름은 남혜림(문정숙 분). 그녀의 얼굴 위로 한 남자의 나지막한 내레이션이 흐른다.
“가을이 왔다. 가을과 함께 여자도 왔다. 아직 남자는 오지 않았다.”
열차의 기적 소리와 덜커덩거리는 바퀴 소리가 가까워지며 영화는 1년 전 추억 속으로 가을 기차 여행을 떠난다.


1966년 이만희 감독이 연출한 영화 <만추>의 첫 장면이다. 40여 년 전에 제작된 이 영화는 당시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둔 것은 물론, 현재에도 한국 영화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영화의 하나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전설적인 영화의 감독 이만희는 누구인가?

척박하고 가난하던 시절, 오직 흑백 필름으로만 영화를 찍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에 탁월한 영상미와 간결한 영상화법을 구사하며 영화를 만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만희 감독이다. 그는 감독으로 활동한 15년 동안 50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나, 이미 오래전에 43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제 그의 이름은 세인에게서 잊혀져버렸고, 그의 작품들은 나이 지긋한 어른들의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에 영화감독 이만희를, 그리고 그의 영화를 잊지 못한 한 후배 감독이, 고(故) 이만희 감독의 30주기를 추모하며 그의 훌륭한 영화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한국 영화사에서 그 작품들의 자리를 더듬어보려 한다.

이만희 감독은 첫 작품 <주마등>(1961)에서부터 유작인 <삼포 가는 길>(1975)까지, 이름 없는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소 어두운 영상으로 그려냈다. 떠돌이와 양아치, 범죄인 등 하류인생들의 절박한 삶, 전쟁터에서 죽어간 병사들의 영혼, 고독한 여인들의 여정에 동행하여 그들의 고통을 스크린에 담았다.

“저도 감독 초기에는 영화를 고발하는 자세로 만들었습니다. 고발을 한다는 것은 곧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영화예술』1966년 12월호 「현역 영화인들의 좌담」에서 이만희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고발적 의미의 영화였음을 실토했다. 그는 전쟁 영화를 통해 과잉된 이데올로기와 전쟁의 비극성, 잔혹성 등을 고발하고, 피가 끓는 젊은이들의 폭력을 통해 잘못된 사회구조와 분배 논리, 그리고 위선과 권위로 위장하여 힘을 기른 악의 세력에 도전했다. 또한 뜨내기 노동자의 일상을 그려 노동여건, 임금착취, 인권유린, 인간경시 등을 고발했다.

<열두 냥짜리 인생>(1963)pp.53-54
이 영화는 궁핍한 시대에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이 오직 몸뚱어리 하나로 살아가는, 소외받은 노동자들의 삶을 어두운 묵화처럼 영화 전편에 그리고 있다. … 이만희 감독은 공사판 주변의 너절한 일상과 풍경들을 차분히 묘사해 노동자들의 음습한 인정과 거친 심성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 그들에게 대립적인 상대는 적군처럼 버티고 선 커다란 돌산과 암벽으로, 파고 무너뜨리고 깨뜨려도 돌산은 더욱 우람하게 이들 앞에 서 있을 뿐이다. 더욱이 벌거숭이 웃통을 파고드는, 작렬하는 태양과 열악한 노동조건은 그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 (그들 간의) 질시와 반목은 결코 타인이 미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으려는, 본능에서 나온 보호책이다. 그런 구구한 각자의 불행과 사연들을 잘 알면서도 이들은 싸우고 화해하곤 한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p.129
전투 작전 중에 전장 정리라는 것이 있다. 한 전투가 끝나고 다음 전투를 기다리는 사이에 전장을 정리하는 작전을 말한다. 무너진 벙커를 고치고, 모기를 수거하고, 적과 아군의 시체를 구별하여 한 곳에 정돈 한다. 이들은 적군의 시체도 생명의 존엄성에 입각해 소중히 수거한다.
“전장 정리란 적의 시체를 치워야 하는 염장이 노릇을 해야 한단 말이야.”
“죽은 다음에야 상호간에 미워할 것이 없으니 치워 주는 게 옳지. 놈들의 시체를 잘 치워야 해. 그래야 후손 중에 착한 놈이 나오거든….”
서로 안 좋았던 감정을 푼 한 해병과 최 해병은 적의 시체를 치우며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이 장면은 많은 전쟁영화들 중에서 전장 정리라는 전술규범을 보여준 유일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만희 감독은 전쟁을 직접 경험한 참전용사였고, 전쟁에 관해서는 전문가 이상으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흑맥>(1965)
p.101 이 영화는 『한국문학』에 연재된 이문희의 원작을 토대로 하고 있다. 6?25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가 10만 명을 넘어 사회 문제가 된 당시 상황을 이문희가 사실적 리얼리즘 문학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고아는 대부분 깡통을 찬 거지나 부랑자 혹은 불량배가 된다. 그 중에서 사회의 독버섯이 되어 기생하는 양아치들이야말로 병든 검은 보리를 뽑듯이 뽑아서 불태워버려야 할 깜부기(흑맥)라고 작가는 생각한 것이다.
“전쟁은 우리 같은 전쟁고아를 낳았지만 이 사회는 그런 고아들을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pp.108-109 그는 영화 <흑맥>에서 전쟁의 후유증으로 태어난 전쟁고아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사회가 얼마나 무책임하게 전쟁을 종결했고 얼마나 무책임하게 전쟁 이후에 대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 이만희 감독은 현실사회의 모순이나 어두운 측면 속의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처지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현실의 고발과 인간성 회복, 이 두 가지에 충실하게 접근한 이만희 감독의 영상이 영화 <흑맥>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삼포 가는 길>(1975)p.65
빈 농가의 시퀀스(sequence)는 거짓과 진실을 오고가는 절묘한 몽타주로 교차 편집되어 보여진다. 진실의 장면 위에 거짓이 자조적인 음성으로 오프 보이스(off voice)로 겹치는 이율배반적 화면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그 거짓말은 점점 더 과장되게 발전한다. 그리고 거짓말 틈틈이 욕설과 함께 뛰쳐나오는 진실어는 살아 있는 생에 대한 억울함의 항변이다. 그 항변은 가난한 자, 억눌린 자의 울분의 탄식이라는 걸 관객은 금방 눈치 챈다. 거짓말이 드러나도 그들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거짓말은 그들이 원하는 바람이며 소원이며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도착할 수 없는 낙원이며 유토피아다. 그래서 뜨내기들은 대부분 그런 허풍과 거짓말로 살아간다.

1965년 이만희 감독은 이러한 사회고발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 제작에 있어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다. 바로 영화 <7인의 여포로>와 관련하여 반공법 위반으로 고발되어 구속된 것이다. 당시 이 영화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영화계를 비롯한 문화계와 사회 전반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고, 국내에서 작가의 표현의 자유를 법으로 재단하는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한국영화에서 반공과 용공의 좌표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잣대가 되었는데, 반공법 제4조 제1항에 저촉된 혐의 내용은 ‘북한의 국제 지위를 높이고 반미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며, 아군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고 북괴를 찬양했다’는 것이다. 이 작품으로 감독은 법정 구속되어 조산관의 심문을 받았고, 동시에 이 영화의 작가 한우정과 제작을 맡은 동성영화사 최동권 사장, 인민군 대대장 역을 맡은 배우 장동휘까지 참고인으로 불려가 고초를 당했다. 당시 조사관 앞에서 당당함을 잃지 않은 이만희 감독의 일화는 유명하다.

“좋소. 이 프린트를 가지고 이북에 올라가 김일성에게 보여주시오. 그럼 김일성이 이 영화를 보고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보시오. 그 말에 따라 나를 용공주의자로 몰든지 간첩으로 만들든지 하시오.”

결국 유죄가 인정된 이만희 감독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되고, 영화는 난도질당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여군>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7인의 여포로>(1965)pp.92-94
영화 시작과 함께 송아지를 끌고 피난길에 오른 소녀는 달려오는 앰뷸런스 차량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며 인민군 만세를 외친다. … 대한민국에서 아이든 어른이든 정신병자든 그 누구도 인민군 만세는 금기다. 그 시기는 어린아이들에게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철저한 반공사상만 존재하는 시대였다. 그러니 당연히 이 장면은 반공의 표적이 되고 만다.
… 구봉서는 하의는 크고 상의는 작은 군복에 군모는 챙을 올려붙여 써서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운전병 역으로 설정되었다. 더구나 운전병은 코와 뺨에 검은 색 모빌유를 묻힌 채 코믹한 몸짓을 하며 총알을 피해 겁난 표정으로 앰뷸런스 밑으로 허둥지둥 숨어들거나 인민군 장교 앞에서 벌벌 떨면서 경례를 부치는 등 갈피를 못 잡는다. 아무리 사평이지만 대한민국 국군으로서 그 위상에 먹칠을 했다는 것이다.
… 장동휘가 연기한 인민군 대대장은 장교로서 품위와 카리스마가 있고 강한 자존심은 반전적이고 페시미즘의 분위기를 자아내며, 인간적으로 갈등하고, 사상적 자유를 찾아 전향하는 사람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군 장교의 그런 내면적 갈등, 자유의지 등은 적군의 사기를 양양하는 외피적 시각이라는 낙인으로 돌출되고 만다. 더욱이 간호 중위가 강압에 못 이겨 인민군 대위에게 경례하는 장면을 북한의 국제지위를 높이는 장면이라고 간주하여 역시 문제 삼는다. 또 양공주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자조적으로 하는 “이 나라가 나한테 해준 게 전쟁 밖에 더 있어? 양놈, 뺑코 운운 … ”하는 대사는 불경스러운 반미 행위로 간주된다. 욕정을 못이긴 중공군들이 간호장교를 겁탈하려는 순간 인민군이 총을 쏘며 저지하는 장면은 휴전 이후 국민들에게 주입된 반공사상의 근간을 흔드는 엄청난 쿠데타적 발상을 보인 장면으로 낙인찍혔다.

한편 이 책은 이만희 감독의 로맨스, 스릴러, 전쟁 등을 다룬 다양한 작품들 소개에만 그치지 않고, 1960-70년대 한국 영화계의 상황도 재미있게 들려준다.

pp. 153-154 당시 감독들은 여러 작품을 동시에 만들기도 했다. … <만추>를 제작한 해에 이만희 감독은 4편의 영화를 만든다. … 요즘에는 한 감독이 1년에 4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이만희 감독이 1년에 4편을 만든 것은 나중에 비하면 약과다. 1967년에는 <원점>, <귀로> 등 11편의 영화를 만든다. 이런 다작을 하면서도 <방콕의 하리마오>와 <얼룩무늬의 사나이>를 작업할 때는 방콕과 베트남으로 해외 촬영을 다녀오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작업이 가능했을까? 당시에는 가능했다.
다음의 예를 보자. A영화사에서 낮 촬영을 하고 B영화사의 작품은 밤 촬영을 한다. 다음날은 C영화사의 작품으로 낮 촬영을 하고 D영화사의 작품으로 밤을 새운다. 모든 준비는 각 작품마다 조감독과 연출부원을 따로 두어 하게 했다. 집에는 언제 들어가고 잠은 언제 자나? 당연히 집에는 며칠이나 몇 달 만에 들어가고 부족한 잠은 달리는 차 안이나 촬영장 의자에서 보충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편집하고 녹음하고 현상실로 뛰어다녔다.


올해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10월6일-14일)에서는 이만희 감독의 탄생 74주년, 서거 30주년을 기념하여 영화감독협회와 함께 이만희 감독 추모전이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영화제 측은 원본 필름이 북한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추>를 초청하기 위해 북한 영화인들과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라고 하지만, 우리 젊은 세대들이 그의 훌륭한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꼭 오기를 바란다.

오늘날 한국영화계는 관객 천만 명 시대를 맞았고 그에 걸맞게 엄청나게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진다. 칸과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도 한국의 감독들이 석권하고 있다. 참신하고 젊은 영화인들이 등장하여 우리 영화는 이만큼 좋아지고 국제적 위상도 커졌다. 그리고 이런 위업에 초석을 마련한 선배 영화인들의 노고가 존재한다. 그 노고에 일조한 사람 중 하나가 고(故) 이만희 감독이다. 그러나 그가 만든 영화 <다이얼 112를 돌려라>, <만추>, <흑맥>의 필름은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보며 그를 알든 모르든, 그의 영화를 한 편이라도 보았든 안 보았든, 그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 머리말 中


목차


후배 감독이 선배 감독에게 - 임원식
영화적인 그러나 너무나 인간적인 - 정지영
머리말

제1화 기차의 출발, 영상의 도착
제2화 전쟁영화와 전쟁의 천재성 1
제3화 떠도는 부초들의 노래
제4화 <만추>, 가을 기차여행
제5화 <7인의 여포로>와 <돌아온 여군>
제6화 흑맥, 뽑아 버려야 할 검은 보리
제7화 스릴러영화 속으로
제8화 전쟁영화의 베스트 원, <돌아오지 않는 해병>
제9화 시장, 그 삶의 현장
제10화 이만희 감독의 문예영화
제11화 정신병원으로의 초대
제12화 리얼리즘의 변주
제13화 전쟁영화와 전쟁의 천재성 2
제14화 이만희 감독의 폭력영화
제15화 이만희 감독의 총천연색 영화
제16화 <만추>, <육체의 약속>, 또 다른 <만추>
제17화 마지막 영화 <삼포 가는 길>
제18화 이만희의 미완성 혹은 미개봉 영화
제19화 이만희 감독의 사람들

통속을 거부하는 육체적 감각 - 박유희

연출 작품 목록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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