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그녀, 아델
“그녀의 정원에 쾌락은 없다. 슬픔만 있을 뿐.”
거짓 쾌락을 좇는 그녀에게 삶은 한 편의 연극일 뿐이다.
권태와 공허함을 욕망으로 가린 한 여자의 이야기
아델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신문사 기자다. 그녀는 다정하고 능력 있는 의사 남편 리처드, 세 살 난 아들 뤼시앙과 함께 파리의 부유한 동네에 살고 있다. 모자랄 것 없이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다. 하지만 아델에게는 도무지 이성의 힘으로 떨치기 어려운 본능이, 그녀 스스로도 “나 자신보다 더 힘센 어떤 게 날 움직인다”고 하소연하는 욕망이 있다. 끝없이 애인을 수집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난 낯선 이, 친구의 애인, 직장 상사, 바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자, 업무상으로 만난 남자, 오랜 친구……. 모두가 아델의 표적이 된다. 아델의 욕망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동시에 결코 채워지지도 않는다. 그녀의 다음 상대는 남편의 의사 동료이자 둘도 없는 친구인 자비에다. 그 위험한 관계로 인해 리샤르는 완벽한 아내인 줄 알았던 그녀, 아델이 감추고 있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왜 쾌락도 없는 욕망에 노예가 된 것일까. 어떤 고독이 그녀를 잔혹한 식인귀로 만들었을까. 그 어떤 것으로도 충족되지 않는 본능 충동의 노예가 되어버린 한 여자, 아델이 있다.
"나 자신보다 더 힘센 어떤 게 날 움직여."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욕망에 관한 절망적 보고서
사람들은 여성의 성을 순수함 속에, 성스러움 속에 가두어 두려고만 한다. 하지만 『그녀, 아델』에서는 그런 여성의 성적 욕망을 전면에 드러내는 것을 넘어서 한 여자가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또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차가운 문체로 전달한다. 아델이 여러 남자들과 관계를 맺는 장면은 자극적이거나 외설적이지 않다. 오히려 차갑게 분석된 진료 차트를 보는 것 같다. 환자의 케이스를 보는 것처럼, 그녀의 욕망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나타내고 있는 증상에 집중하게 된다. 쾌락도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그녀의 내면에 어떤 슬픔이 자리하고 있는지, 원인을 찾게 되는 것이다.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은 그녀에게 참을 수 없이 지루하다. 일상이 주는 지루함의 자리에 그녀는 에로티시즘을 두었다. 성적인 긴장감은 그녀의 일상에 활력을 준다. 그녀는 남자들을 원한 것이 아니라 남자들이 그녀를 욕망하는 마음을 원했다. 하지만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가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말한 것과 같이 그녀의 뻥 뚫린 내면, 고독감, 깊은 공허를 채울 수 있는 건 인내로 다져진 사랑이다. 슬픔이 물러날 때까지,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 웅크린 공포가 입을 다물 때까지 그녀를 붙들어줄 사랑.
이제 그녀도 단념할 것이다. 그녀가 떨리는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대어오면 그는 닻을 내린 한 육신의 무게를 온전히 느낄 것이다. 그의 몸 위로 묘지의 꽃들을 다발째 뿌려주고, 그렇게 죽음에 다가갈수록 그녀는 다정해질 것이다. 내일이 오면 아델은 영원한 휴식에 들 것이다. 그리고 뼈가 벌레 먹고, 관절이 녹슨 그녀는 사랑을 나눌 것이다. 여전히 사랑을 믿는, 두 눈을 감은,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가여운 노파처럼 사랑을 나눌 것이다.
아델, 그게 끝이 아니야. 아니야, 그렇게 끝나지 않아. 사랑은 인내일 뿐이야. 경건하고 열정적이며 폭군과도 같은 인내. 비이성적일 정도로 낙천적인 인내. 우리는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본문 293쪽)
“나의 영원한 주제는 여성이다.”
2016년 공쿠르상 수상, 2017년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어 진흥 특사 임명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
레일라 슬리마니의 작품은 여성에 관한 가장 현재적이고 세계적인 소설로 평가받는다. 그는 여성작가로서 113년 공쿠르상 역사상 역대 12번째로 수상했으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장관급인 프랑스어 진흥 특사에 임명하기도 했다. 프랑스어 진흥 특사는 장관급으로 이전 정부들에서는 주로 경력 정치인들이 맡아왔으나, 마크롱은 각 부문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민간 전문가들에서 각료나 보좌관을 주로 발탁한다는 취지에 따라 슬리마니를 기용했다.
슬리마니는 기자로 활동했던 만큼 소설뿐 아니라 이슬람 사회와 테러 등 세계적인 이슈를 다룬 논픽션 에세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모로코의 열악한 여성 인권, 여성 평등을 주제로 한 『섹스와 거짓말』 등을 출간하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숨겨진 사람들, 여성 그리고 소수 인권에 대한 글을 계속해서 써내려 가고 있다. 특히 데뷔작인 『그녀, 아델』에 대하여 “픽션이자 일부 자전적인 내용이 뒤섞인 소설”이라고 말하며 이 소설이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가장 내밀하고 강렬한 이야기임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