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에 간 사회학자, 사람을 보고 사회를 읽다”
독일의 주목받는 젊은 지성 외른 회프너의 날카롭고도 번뜩이는 분석과 통찰
누군가 슈퍼마켓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면? 우리가 하루 중 언제, 어떤 옷을 입고 어느 슈퍼마켓에서 무슨 제품을 사는지 남몰래 관찰하는 괴짜가 있다. 독일의 젊은 사회학자 외른 회프너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일이다. 그는 도심과 외곽 지역의 크고 작은 슈퍼마켓을 드나들며 그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통해 독일 사회의 구성원들을 분석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슈퍼마켓은 우리가 비교적 꾸밈없이 행동하는 장소로, 대부분의 사람은 경계심이라는 방패를 내리고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즉 슈퍼마켓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면 인물의 성격은 물론, 그가 사회적으로 어느 집단에 속해 있고 어떤 취향과 기호를 지녔는지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광역 열차 속의 사회학’이라는 주제로 독일 과학교육부가 주관하는 사이언스 슬램(2015)에서 우승했다. 『카트 읽는 남자』는 당시 강연의 테마였던 열차라는 무대를 슈퍼마켓이라는 친근하지만 특수한 공간으로 옮겨 독일 사회를 구성하는 열 개 집단의 유형과 특징을 설명한다. 아이와 함께 자동차를 끌고 온 여성을 통해 시민 중산층의 삶을, 자유분방한 옷차림에 무화과 잼을 찾는 남성을 통해 힙스터의 태도를, 사사건건 비윤리적인 쇼핑 태도를 지적하는 부인을 통해 환경주의자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책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인물 군상을 유형별로 서랍에 분류해 넣지만, 저자는 결코 타인을 서랍 안에 가두어 놓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사회를 견인해 오고, 앞으로도 지탱해나갈 다양한 세대와 계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조화롭게 사회를 이루는 ‘우리’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사회에서 개개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바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슈퍼마켓은 사람을 관찰하고 사회에 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어려운 이론 없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탁월한 방법
외른 회프너는 『카트 읽는 남자』의 본격적인 내용에 앞서 두 가지 다짐을 한다. 하나는 독자에게 진실을 알려주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것, 또 하나는 엉터리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은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사회학자의 존재 방식에 대한 저자의 철학이 담겨 있다. 사회학자는 단 하나의 진실을 알려주는 사람도, 반대로 뜬구름 잡는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사람과 사회가 어떻게 구분되고 연결되는지, 사회 구조의 변화 양상을 관찰하고 왜 그렇게 되는지를 관찰하고 밝혀내는 것이 사회학자의 관심사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다짐과 철학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독일의 사회환경과 독일 사회의 구성원, 한층 더 나아가 타인과 세상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기 위해 먼저 ‘슈퍼마켓’이라는 특정한 공간을 무대로 설정한다. 그 이유는 슈퍼마켓에서는 사람들이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꾸밈없이 행동하며, 장보기는 거의 모든 사람이 행하는 일상 활동이며, 드물게도 한 사람의 사회적 서열을 추론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슈퍼마켓이라는 친숙한 장소를 고른 만큼 이 책에는 어렵고 따분한 사회학 이론을 읊는 대신, 저자가 열 개 집단을 대표하는 인물을 한 명씩 만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오늘의 타깃을 정하고 진득하게 관찰하다 슬쩍 다가가 대화를 나누며 상대를 간파해낸다.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사이언스 슬램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이와 같은 구성은 일반 독자에게 딱딱한 이미지의 사회학을 보다 말랑말랑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당신이 산 것을 말해주세요.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줄게요”
사회를 구성하는 열 가지 유형의 세대와 계층을 파고드는 매력적인 탐구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타인을 향해 신호를 내보낸다. 평소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은 물론, 일상에서 행동하고 보고 말하고 먹는 모든 것이 사실상 타인을 해석하는 퍼즐 조각이다. 저자는 그 신호들을 마치 사명인 것처럼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그리고 그들을 분석하고 평가하며 분류하고 편입시키는 과정에 독자를 동참시키며 여러 인물들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카트 읽는 남자』에 등장하는 대표적 사회환경은 ‘시민 중산층, 디지털 원주민, 사회생태적 환경주의자, 보수적 기득권층, 진보적 지식인층, 순응적 실용주의자, 전통주의자, 성과주의자, 쾌락주의자, 불안정층’의 열 가지다. 이들은 저자가 태어난 198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독일 사회를 이루고 일궈온 각계각층의 집단이다.
외른 회프너의 관찰은 이런 식이다. 주차장에서 청바지에 평범한 가죽 구두, 수수한 재킷을 입고 가장 많이 팔린 휴대전화를 사용하며 볼펜과 쪽지라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장보기 목록을 확인하는 한 주부를 발견한다. 그리고 나서 은밀히 슈퍼마켓에서 구매한 물품을 곁눈질한다. 얇게 저민 돼지고기와 시리얼, 딸기 한 팩과 샴페인 한 병 등이 담겨 있음을 확인하고, 스타일을 통한 파악이 끝나면 대화를 시도한다. 저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평균적인 중산층의 과거와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방식은 ‘독일이 열 명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면’이라는 콘셉트로 이어지나, 열 명의 대표자는 독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보편적인 인물로 우리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서랍은 열어두자”
관찰과 추정을 넘어 이해와 포용을 권장하는 사회학자의 메시지
저자는 시종일관 삐딱하게 제멋대로 남들을 관찰하고 평가하지만, 결코 그들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니다. 이것은 보다 생생하고 과장된 묘사로 장면을 재현함으로써 독자가 슈퍼마켓이라는 가상의 장소에 서서 사회의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특정한 환경의 전형적인 구성원들의 모습을 전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한 인간이 속한 집단이나 사회환경이 그를 온전하게 담아내기는 어렵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처음에 말한 것처럼 ‘진실을 알려주려는 한 사회학자의 시도’가 아니다. 저자는 재치 있는 방법으로 타인과 사회를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제반 소스들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그로 인해 우리를 웃고 울고 짜증나게 만드는 모든 타인들과 잘 지내는 방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이 독특한 사회학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서랍을 열자. 누군가를 우리 서랍에 집어넣어야 한다면 그들에게 다시 나올 수 있는 기회도 주어야 한다.”
[책속으로 추가]
순응적-실용주의적 환경에 속하는 사람은 격렬한 토론, 대립적인 논쟁, 데모에 가담하려는 욕구를 느끼는 경우가 드물다. 실용주의적 관점과 남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바람이 이런 일들에 끼어드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원칙상 매우 튼튼한 두 기둥 위에 놓여 있다. 그것은 안전책과 안정에 대한 욕구, 뚜렷이 형성된 오락과 체험에 대한 갈망이다. -‘머리를 앞세우고 물결 속으로’ 중에서
전통적 환경의 사람들은 절약, 겸손, 의무 이행 같은 가치들을 충실히 따라야 하는 시민의 덕목으로 여긴다. 예전에 생활과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것이, 노년에 들어 빈곤이 가중되는 시기가 되면 다시 절실해지고 중요해진다. 그들은 자주 불평을 하기는 하지만 주어진 여건에 ? 비록 언젠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로 끝난다 하더라도 ? 침착하고 끈질기게 순응한다. 그럴 때 무엇보다 ‘우리는 이미 더 심각한 상황도 이겨냈어’ 하는 굳건한 태도가 도움이 된다. -‘우리는 더 심각한 상황도 이겨냈어’ 중에서
성과자들은 사회적으로 뿌리내린 탄탄한 연결망을 떠나야 할 시점이 오면 늦게라도 위험을 감수하고 순응적-실용주의적 사람들과 결별한다. 성과자들은 훨씬 더 높은 위험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고, 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간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에 단호히 경제적 성공을 추구한다. 바로 이 성공이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서로 닮아 보이는 쌍둥이’ 중에서
건강, 갈채, 활기, 슬픔, 피로 등 우리는 더 이상 이런 것들에 관해 말하지 않고 글자판을 이용한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 거리감이 많이 생길수록 그만큼 타인에 대한 우리 관계도 디지털화된다. 우리는 ‘진정한’ 접촉을 적게 할수록 사람들을 디지털 방식으로 속속들이 아는 지점에 더 빨리 도달한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그들의 모습을 마주할 때면 전혀 낯선 사람을 대하고 있는 것처럼 당혹스럽고 소심해진다. -‘디지털화된 정서의 비극’ 중에서
즐거움, 자극, 의사소통을 추구하는 것이 쾌락주의자들의 실질적인 동인이다. 따라서 이때 다른 환경의 사람들과 벌어질 수 있는 불화는 사실상 기꺼이 감수하거나 심지어 의식적으로 초래하기도 한다. 쾌락주의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 살고 있으며, 따라서 무엇보다 참신함, 즐거움, 특이성을 중요시한다. -‘수프가 가득한 세계에서 포크를 든 사람들’ 중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이 중요한지와 관련된 가치 지평을 이루는 것들을 결정한다. 이때 세상은 흔히 은연중에 자유의지라는 생각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자유의지란 인생의 많은 분기점에서 순전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자유’ 결정들이 우리가 사전에 만들어둔 기반에서 나온 결과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내리는 모든 결정을 이용해서, 자신이 몰두하는 사안의 각각의 새로운 특성을 이용해서, 우리의 생활 세계가 놓여 있는 기반의 또 다른 부분을 세우는 것이다. -‘독일에도 하류층이 존재한다’ 중에서
불안정한 환경에 속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든 생활 여건에서 한결같이 배제와 불이익에 직면한다.이 환경에는 무엇보다 원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태어났거나 사회적 신분 하강을 겪은 사람들이 속해 있다. 이 신분 하강은 종종 사회가 변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피해로 인한 것이다. 사멸되어버린 업종, 통일이 되는 과정에서 낙오한 구 동독 시민들, 혹은 인생의 결정적인 분기점에서 필요한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독일에도 하류층이 존재한다’ 중에서
나도 사람들을 마주칠 때 부정적인 측면들을 가정하고 시작하는 것이 때로 쉽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오늘 무언가를 배우려 한다면, 그것은 비교적 간단하다. 서랍들을 열도록 하자.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 그들을 서랍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면 혹은 넣기를 원한다면, 그들에게 다시 나올 수 있는 기회도 주어야 한다. -‘슈퍼마켓은 사회의 배양접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