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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펑더화이에 대하여 쓰다

나, 펑더화이에 대하여 쓰다

  • 펑더화이, 이영민 옮김
  • |
  • 앨피
  • |
  • 2018-10-10 출간
  • |
  • 490페이지
  • |
  • 152x225mm/931g
  • |
  • ISBN 979118743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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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군사지도자 펑더화이 

 펑더화이 사망 4년 후인 1978년, 중국공산당은 펑더화이에게 씌워진 누명을 벗기고 정중하게 추도회를 거행했다. 당시 덩샤오핑은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원과 민중들이 모두 펑더화이 동지를 그리워하고 있다. … 그는 작전에는 용감했으며 어떤 곤란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했으며 스스로 엄격하게 기율을 지켰다. 개인의 득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무거운 책임을 거리낌없이 맡았다.” 

과연 펑더화이는 군사 업적 면에서 어느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탁월한 이력을 지닌 군사지도자이자 참군인으로 지금까지도 중국 인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성과 중국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한국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을 이끌고 내려온 인물, 북진통일을 방해하고 1·4후퇴로 수많은 이산가족을 만든 장본인 정도가 우리가 아는 전부이다. 실제로 그는 한국전쟁 당시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으로 북한의 남일, 미국의 클라크와 함께 휴전협정에 조인한 당사자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참전은 그의 화려한 군사 업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그의 이름은 중국공산당사는 물론이고 중국 현대사에 넓고 깊게 새겨져 있다. 

 

펑더화이라는 사람 

 펑더화이는 지금 중국에서 한창 선양되고 있다. 전기와 소설, 각종 일화집 등이 쏟아지고 있으며, 2년 전에는 CCTV에서 그의 일생을 드라마로 제작 방영하기도 했다.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인간 펑더화이의 일생은 극적이었다. 비운의 혁명가 펑더화이는 소학교도 마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였고 먹고 살기 위해 병사가 되었다. 하지만 타고난 정의감과 용감함, 탁월한 군사 능력으로 ‘신중국 10대 원수’ 중 두 번째 반열에 올랐다. 주더가 경력과 상징성으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했다면, 펑더화이는 오로지 그의 능력과 실적, 선당후사의 헌신적인 태도를 인정받아 군부의 실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직설적이고 주위를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항미원조의 영웅’은 ‘반당집단의 수괴’로 전락했다. 

 

모든 것을 혁명에 바친 대가 

 중국 근현대사에서 펑더화이는 유방의 한신이나 유비의 관우, 송나라 충신 악비에 맞먹는 군사가이자 애국자로 평가받는다. 초강대국 미국을 비롯한 UN군과 싸워 승리한 인물이니 이러한 평가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가 모든 것을 걸고 쟁취하려 한 사회는 그에게 처절한 절망만을 안겨 주었다. 문화대혁명 후 죽을 때까지 연금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암에 걸려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헤어진 아내를 만나게 해 달라는 소망도 이루지 못했다. 그가 부인 푸안슈와 억지로 이혼하면서 배를 두 쪽으로 잘라 나눠 먹은 이야기는 유명하다. 펑더화이는 어린 시절 함께 구걸하던 두 동생도 혁명에 바쳤다. 동생들은 고향인 후난에서 지하당 활동을 하다 국민당 특무에 잡혀가 처참한 고문을 당한 뒤 살해당했다. 펑더화이 본인도 사후 ‘왕촨’이라는 이름으로 화장을 당했다. 일생토록 마오쩌둥과 함께 군벌, 일본 군대,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에 맞서 남들이 가장 꺼리는 임무를 도맡아 완수한 혁명가의 말로는 그렇게 비참했다

목차

옮긴이 서문 심문받으며 쓴 자술서, 펑더화이의 분투와 비운의 죽음 

 출판에 대한 설명 

 

 제1장 어린 시절, 소년기의 처지 1898~1916 

 

제2장 상군湘軍의 병사가 되다 1916년 3월~1921년 가을 

 상군에 들어가 병사가 되다|북양군벌의 부대 정황을 정찰하다|장징야오를 몰아내는 전역戰役|급료소요의 바람|후베이성 자치를 지원하다 

 

 제3장 빈민구제에 뜻을 세우다 1921년 가을~1925년 

 악질 지주 어우성친을 죽이다|구빈회 회칙을 몰래 의논하다|광둥으로 가 친구를 찾다|병사 생활 6년의 감상|집에 돌아와 농사를 짓다|호남군관 강무당에 입학하다|호남군의 모순과 구빈회 활동|몇 번 집에 돌아왔을 때 상황 

 

 제4장 중국공산당을 찾다 1926~1928년 4월 

 북벌에 참가하고 돤더창과 사귀다|사병위원회를 결성하다|국민당이 혁명을 배신하다|탕성즈 부대의 동쪽 정벌이 실패하다|신저우전투|연대장이 되다|난현 청향위원회 설립을 분쇄하다|중국공산당에 가입하다|입당 소개인과 입당 날짜 문제에 관하여 

 

 제5장 핑장기의 1928년 봄~1928년 7월 

 독립 5사단 병영학교를 설립하다|급료소요|핑장 출동|기의를 결심하다|“우리는 기의하였다!” 핑장기의의 전말|간단한 맺음말 

 

 제6장 징강산으로 가다 1928년 8월~1929년 7월 

3성의 합동토벌을 분쇄하고 상악감 변구를 건설하다|홍4군과 홍5군이 처음으로 징강산에서 만나다|징강산 포위를 돌파하다|홍4군과 5군이 루이진성에서 2차로 만나다|안푸를 공격하다 

 

 제7장 다시 상악감 변구로 돌아오다 1929년 8월~1930년 6월 

 상악감 변구로 돌아오다|중앙 순시원 판신위안과의 대화|위안원차이·왕줘 사건|변구 전성기, 중앙에서 4월에 편지를 보내오다|뤄린·궈루둥 사단의 공격을 분쇄하다 

 

 제8장 창사를 치다 1930년 6월~1930년 9월 

 우창 공격과 리리싼노선의 문제에 관하여|웨저우를 점령하다|첫 번째 창사 공격|제1방면군 설립과 2차 창사 공격 

 

 제9장 제1차에서 제4차 반포위토벌 투쟁 1930년 9월~1933년 2월 

3군단이 동쪽으로 간장강을 건너다|위조편지를 폭로하고 1차 포위토벌을 분쇄하다|2차 포위토벌을 분쇄하다|황메이좡을 죽이다|3차 포위토벌을 분쇄하다|새로운 소비에트구를 만들고 군중공작을 배우다|간저우를 치다|4차 포위토벌을 분쇄하다 

 

 제10장 5차 반포위토벌 전후 점차 왕밍노선을 인식하다 1931년 11월~1934년 9월 

 롄청전투|19로군과 담판하다|푸젠사변과 5차 반포위토벌의 시작|탄춘전투|광창전투 

 

 제11장 장정長征부터 3대 주력이 합류하기까지 1934년 10월~1936년 12월 

 왕밍 좌경 기회주의 노선의 결과|쭌이회의에서 후이리회의까지|4방면군을 만나 장궈타오에 대하여 투쟁하다|홍군, 장정에서 초지를 벗어나다|산베이에 대한 3차 포위토벌을 분쇄하다|황허를 동쪽으로 건너 산시로 진군하다|6월에 서쪽으로 출병하다 

 

 제12장 항일전쟁 1937년 7월~1945년 8월 

 홍군을 8로군으로 개편하다|군사위원회 화베이 분회의 지시에 관하여|2차 왕밍노선에 관하여|반마찰 전역|백단대전 

 

 제13장 해방전쟁 1946년~1947년 10월 

 옌안에서 철수하다|칭화볜·양마허·판룽전투|방어에서 공격으로 바꾸다|신식으로 군을 정돈하다|와쯔제 전역에서 란저우를 공격하여 점령하기까지|두 번의 잘못과 귀중한 경험 

 

 제14장 미국에 맞서 조선을 지원하다 1950년 10월~1953년 7월 

 출병하여 조선을 지원하다|1차 전역|2차 전역|3차 전역|4차 전역|5차 전역 

 

 제15장 루산회의 전후 1959년 

 루산회의 전후 상황에 관하여|7월 23일, 엄중한 시련을 겪다 

 

 부록 1 펑더화이 동지가 1959년 7월 14일 마오 주석에게 보낸 편지 

 부록 2 마오쩌둥과 펑더화이의 대화 - 1965년 9월 23일 펑더화이의 기록 

 옮긴이 후기 신실한 혁명가에게 닥친 가혹한 운명 

 

■ 펑더화이 연표 

■ 주요 등장인물 

저자소개

펑더화이 

중국 후난성湖南省 샹탄현湘潭縣 출생. 호남군 강무당講武堂을 졸업하고 국민혁명에 참가하였다. 1928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하고 핑장봉기를 일으켜 공농홍군 5군을 조직하였다. 1934∼1935년 장정에 참가하였으며 1936년 제1방면군 사령이 되었다. 항일전쟁 시기 주더朱德 밑에서 부총사령을 지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 서북인민해방군 사령을 거쳐 신중국 정부 수립 후 중앙인민정부위원회 부주석·서북군정위원회 주석 등을 맡았다. 1950년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였고, 1954년 이후 국방위원회 부주석·국무원 부총리·국방부장·당중앙정치국원 등을 역임하며 군의 근대화를 추진하였으며, 1955년 원수가 되었다. 1959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추진하던 대약진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국방부장에서 해임되고 모든 공직을 빼앗겼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자 홍위병의 공격 대상이 되어 폭행과 조리돌림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1974년 암으로 베이징에서 사망하였다. 1978년 마오 

 

 쩌둥 사후 중국공산당 제11차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사면을 받고 명예를 회복했다. 


역자 : 이영민
철도 기관사. 중국 여행을 하려고 중국어를 공부했다. 우연히 펑더화이를 알게 되어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와 관련해 한국에 소개된 책이 전혀 없어 부득이 이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  

도서소개

신중국 10대 원수’ 펑더화이의 

“나는 이렇게 중국혁명에 복무했다” 

 

혁명영웅이 반동집단의 수괴로 몰려 쓴 자술서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책의 주인공인 펑더화이(팽덕회彭德懷)가 직접 쓴 자술서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서전이 아닌 ‘자술서’다. 어떤 사건에 관해 본인이 겪은 바를 직접 진술했다는 말이다. 펑더화이라는 중국 공산혁명의 영웅과 자술서의 역설적인 조합이 이 책의 묘미이자 가치라 할 수 있다. 

대장정과 국공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한국전쟁의 판세마저 뒤집은 중화인민공화국 원수로 평생 마오쩌둥 곁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도맡아 완수했던 펑더화이는, 1950년대 후반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중국 경제가 파탄나고 수천만 명이 아사하는 참사를 겪는 상황에서 마오쩌둥에게 직언을 했다가 반당집단으로 몰려 국방부장직에서 해임당했다. 그리고 몇 년 후인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홍위병에게 붙잡혀 베이징으로 압송되어 온갖 고초를 겪는다. 이 책은 “우경 기회주의, 반당·반사회주의”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직후인 1962년 그가 당 중앙과 마오쩌둥에게 쓴 8만 자의 편지와, 이후 문화대혁명 기간에 특별심사조에게 심문을 받으며 3차에 걸쳐 작성한 장문의 이력자료 등을 바탕으로 펑더화이라는 인간이 어떻게 처절한 역경을 딛고 혁명을 완수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중국혁명에 관한 희귀한 자료이다. 

 

더할 수 없이 담백한 자기비판 

 이 책의 내용은 건조할 정도로 담백하다. 어떤 과장이나 자랑도 없다. 심문 과정에서 “공로를 써서는 안 되며 잘못을 반성하는 취지로” 장문의 생애 이력을 거듭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빛나는 이력도, 조금의 과장도 없이 본인의 삶을 담담하게 기술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악명을 떨친 홍위병들의 심문은 황당할 정도로 모욕적이었다. 펑더화이는 혁명가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기본 자질마저 의심받았다. 그러나 심문조의 악랄한 모욕과 치욕적인 강압도 펑더화이라는 인간이 지닌 기개를 꺾지 못했다. 펑더화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책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지만, 펑더화이는 안타까울 정도로 담백하고 강직한 사람이다. 펑더화이의 기억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지는 중국 공산혁명의 큰 그림과 더불어, 어떤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한 인간의 처절한 내적 투쟁이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묘미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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