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조차 선물이었던
한 농민의 삶과
그저 슬픔으로만
그를 기억하지 않으려 한
사람들이 엮어낸
아픔과 분노, 연대와 희망의 기록
백남기 농민은 자신이 씨앗이 되어 아스팔트 위에 싹을 틔웠다.
그가 싹틔운 생명과 평화, 민주주의를
이제 ‘백남기들’이 가꾸고 지킬 것이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 참가했던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쓰러진 지 꼭 3년이 지났다. 그가 눈 한 번 뜨지 못한 투병 끝에 2016년 9월 25일 영면에 든 후 11월 5일 장례식을 치른 지도 2년이 되었다.
2015년 11월 14일부터 2016년 11월 5일까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백남기다’라고 외치며 백남기 농민을 지키고, 함께 싸우고,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나섰다. 민중총궐기대회를 조직했던 노동.농민.빈민조직 등을 비롯해 인권.시민사회단체 등이 발 벗고 나서 국가폭력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해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지난한 투쟁을 벌였다. 한편으로는 집회와 시위로, 한편으로는 민형사 소송으로 정부와 경찰에 책임을 물었다. 때로는 농성장에서 서명을 받으며, 때로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천 배를 올리며, 때로는 단식 투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이 땅에서 다시는 국가폭력에 의해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없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 ― 백남기 농민 투쟁 기록》은 국가폭력에 희생되었으나 오로지 생명과 평화를 추구하던 백남기 농민의 삶을 기리고, 그의 뜻을 잇기 위해 자신의 마음과 시간과 몸을 바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농민단체를 비롯한 운동조직 실무자들의 헌신, 세월호 희생자 학생 부모들의 눈물어린 연대, 소리 없이 농성장과 장례식장을 지켜준 성직자들, 그리고 누구보다 단단하게 중심을 지켰던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의 이야기다. 평범하고 작은 사람들이 만난 백남기의 이야기이자, 그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역사의 기록이다.
2015년 11월에 백남기 농민이 심고 떠난 밀을 이듬해 6월에 박경숙 농민과 그의 동료들이 거두었다. 소출이 예년보다 많이 줄었다. 밀밭의 주인이 서울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 혼자서 자라느라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밀 씨앗이 긴 겨울을 견디는 동안 백남기 농민 자신이 씨앗이 되어 싹을 틔웠다. 그러고는 끝내 우리에게 밀알들을 쥐여주고 떠났다. 이제 밀알을 다시 뿌릴 시간이 왔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