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찌개를 끓일 땐 뚝배기
촉촉하고 깊은 맛에는 대나무 찜통
오랜 시간 살림의 닻이 되어 준 양철 쌀통
매일 써도 질리지 않는 밥그릇
여행 중 우연히 만난 마음에 스미는 그릇들
……
손때 묻은 것들로 삶을 채우다
매일 쓰다 보면
그 사람과 어울리는 물건이 된다
삶의 닻이 되고 생활의 누름돌이 되는
물욕 많은 사람의 소소한 행복
내게 어울리는 물건을 발견하고
내 손으로 길들이며
익숙하게 오래 쓰는 즐거움
히라마쓰 요코는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맛과 음식을 탐구하고 그에 대한 자신만의 감각을 풀어내는 맛 칼럼니스트다. 그런 그녀가 음식을 만드는 부엌과 도구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스스로를 ‘물욕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히라마쓰 요코는 《손때 묻은 나의 부엌》에서 욕심내어 고르고 고른 냄비, 이국 도시를 헤매며 손에 넣은 그릇, 오랫동안 부엌의 터줏대감이 된 물건들의 다양한 면면을 소개한다. 스테인리스 채반, 젓가락받침, 냄비와 돌솥, 프레스글라스 컵 등 그녀가 소개하는 물건들은 특별한 사람만이 가지고 있거나 턱없이 비싼 물건이 아니다.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볼 수 있고 흔히 가지고 있을 법한 것들에 히라마쓰 요코는 평범한 물건에 특별한 소임과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다.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드는 조리도구가 무엇인지 연구하고, 어떻게 담아야 먹음직스러운지를 늘 생각하며, 탁월한 감각으로 물건이 있어야 할 자리를 적절하게 찾아내는 것이다. 물건들을 소개하는 그녀의 글에는 애틋함과 자부심이 가득하다. 《손때 묻은 나의 부엌》을 읽다 보면 익숙한 물건의 새로운 면면을 발견하는 즐거움, 내게 맞는 물건을 길들여 사용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놓이는 정도가 다르다. 진심으로 의지가 된다. 심지어 오래간다. 벌써 10년이나 써 온 리넨 행주는 촉감이 순하고 주름도 스르르 부드럽다. 수분을 마법처럼 흡수한다. 이 정도면 존재 자체가 이미 재산이다. [이런 나, 안 되나요_리넨]
자신만의 센스와 상상력으로 채워진
히라마쓰 요코의 부엌
부엌에 냄비는 3개만 있어도 충분하다고들 하지만 히라마쓰 요코의 부엌에는 열 손가락을 넘어가는 개수의 냄비가 있다. 작은 부엌을 갖고 싶다고 하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 꼭 필요한 부엌용품이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맛있는 밥을 지을 땐 돌솥, 뭉근하게 오래 끓이는 요리에는 질냄비가 필요하고 대나무 찜통이 있으면 재료의 맛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음식을 먹어 보고 또 해보았기 때문에 마룻바닥이 주저앉더라도 필요한 물건이라면 갖고 싶다고 그녀는 말한다. 히라마쓰 요코의 물욕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고이꾸온을 사먹다가 그릇에 반하기도 하고, 남의 부엌에서 발견한 국자도 얻어 온다. ‘르크루제’ 냄비를 만드는 곳까지 찾아가는가 하면, 저울 접시를 찾기 위해 베이징을 뒤지기도 한다. 이런 고집과 욕심이 그녀의 요리와 글을 더 맛있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히라마쓰 요코 별것 아닌 물건도 사용법을 조금 달리 하여 유용한 도구로 만들어낸다. 평범한 소라 껍데기는 노란 고무줄 걸이가 되어 부엌 한편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해변을 굴러다니던 산호는 젓가락받침으로 재탄생한다. 땅속에서 녹슬어가던 수도관은 꽃병이 되어 세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낙엽이나 식물의 잎도 그녀의 손에서는 음식을 데커레이션하는 주방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좋은 물건을 찾아내는 탁월한 눈썰미와 적절한 쓰임새를 부여하는 손길은 평범한 물건도 가지고 싶은 아이템으로 바꿔 놓는다. 그녀의 살림은 자신만의 센스로 채워져 반짝반짝 빛난다.
손때 묻은 물건은
살림의 문진, 인생의 닻이 된다
물욕이 많은 저자지만 무조건 물건을 사 모으는 것은 아니다. ‘살림의 닻’이라고 말하는 양철 쌀통은 자신의 주방을 가진 후 계속 써오고 있는 물건이다. 자신의 손에 맞지 않는 일본의 전통 주방용품인 대나무 소쿠리와 가메노코 수세미는 과감히 버리고 편하게 쓸 수 있는 것을 고른다. 전자레인지를 버리고 찜통으로 음식을 데우고, 전기 주전자 대신 무거운 무쇠 주전자를 들인다. 물때가 잘 끼기까지 길들이는 시간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길이 잘 들어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된 무쇠 주전자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물맛을 선물해준다.
나는 구태여 옛날 주방용품을 고집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구나 반성했다. 지금은 일본인의 살림살이와 주거 형태 전부 꽤 변했기 때문에, 현재 내 살림에 무리 없이 잘 맞는 물건을 천천히 찾아가는 편이 낫다. 옛날 것이라고 뭐든 좋을 리가 없다. [불쾌한 느낌_알루미늄 채반]
히라마쓰 요코는 물건의 소중함과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본인만의 감각으로 그 필요성을 증명해 보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물욕이 나쁜 것이냐고 묻는 듯하다. 미니멀리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아니냐고. 누구에게나 가지고 싶은 것, 내게 잘 어울리는 것, 오래 썼기에 자연스럽게 손에 익은 물건이 있다. 《손때 묻은 나의 부엌》은 내가 길들여 익숙하게 잘 쓰는 물건의 소중함, 갖고 싶은 물건을 알맞게 잘 사용하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