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하다가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렸다!’
『카모메 식당』 무레 요코의 좌충우돌 싱글 라이프
『카모메 식당』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 등 여성들의 소소한 일상을 경쾌하고 유머 넘치는 문장으로 전해온 작가 무레 요코. 어영부영하다가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오십을 넘긴 그녀는 이제야 자신의 노후 주머니 사정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젊은 시절에야 ‘어떻게든 한 달만 버티면 월급날이 돌아온다’고 믿으며 계획성 없이 돈을 써댔고, 원하는 물건을 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집안에 물건은 잔뜩 쌓였다. 하지만 통장 잔고는 변변찮은 수준이고 기껏 저금한 돈은 본가의 주택 대출금으로 사라질 운명인데다가 매년 내는 세금도 고민거리다. 노후에 돈이 얼마나 필요할지를 가늠해보고는 깜짝 놀라 난생처음 가계부도 몇 달간 써보지만 월말 총지출액을 보고는 ‘용케도 여태까지 이렇게 살아왔구나’ 할 뿐 달리 지출을 줄일 방법이 없다며 포기해버린다. 어찌 보면 주먹구구식으로 하루하루 넘겨가는 삶. 이렇게 살아도 정말 괜찮은 걸까.
통장 잔고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지만, 그렇다고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뭐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며 단단히 마음을 고쳐먹는 것도 아니라 스스로도 한심하다 싶지만…… ‘고민해봐야 어쩔 수 없지 뭐.’ 만사태평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다. 누구나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노후 자금’ 문제를 비롯해서 차곡차곡 늘어가는 나잇살과의 전쟁, 수십 년 독신으로 살아도 전혀 늘지 않는 인테리어 센스, 몇십 년간 희노애락을 나눠온 싱글 친구들과의 에피소드 등 무레 요코만의 좌충우돌 싱글 라이프가 가감 없이 솔직하게 펼쳐진다.
“저축이 인생의 목적도 아닌걸.” 그렇게 말한 순간 적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져버린다. 이것이 내 나쁜 습관인데, 지금까지 여러 가지 문제를 이런 식으로 넘겨버렸다. 햇볕에 그을려 주근깨가 늘어나면, “하얀 피부가 인생의 목적은 아니야” 하고 중얼거린다. 불쑥 튀어나온 아랫배를 흘깃 보면서, “다이어트가 인생의 목적은 아니야” 해버린다. 그러면 모든 것이 고민해도 소용없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처럼 느껴진다. 자각한 시점에서 무언가 해야겠다고 궁리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내 ‘뭐 어때’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냉정하게 판단할 때는 스스로도 한심하다 싶지만, 그 역시도 ‘어쩔 수 없지’라며 고민을 접어버린다. 예전에는 ‘이래서는 안 돼. 정신 차려야지’ 하고 조금이나마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늘 긍정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_35~36쪽
혼자서 나이든다는 것
1984년 첫 에세이집을 출간한 후 삼십여 년간 꾸준히 집필 활동을 해온 무레 요코. 주변에서는 그녀가 돈을 엄청나게 벌었을 거라고 생각해 “무레 씨는 당연히 괜찮지 않습니까?”라고 하지만 노후를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거의 예순 살까지 매달 갚아야 할 주택 대출금에 생활비, 세금까지 이래저래 계산해보면 도리어 몇천만 엔이 부족하다며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돈 문제에 툴툴댄다. 그러면서도 노후에는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친구들과 공동주택에서 서로 의지해 살아갈 계획에 착수한다. 낙향을 하려면 엄청나게 짐을 줄여야 하는데다가 줄곧 도시에서 살아 흙 만지기도 싫어해 노후 계획이 이래저래 걱정스럽기만 하다.
노후라는 먼 일만 문제가 아니다. 나이가 들며 옆구리와 다리에 착착 붙는 당장의 나잇살도 근심스럽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유 있게 맞던 옷이 딱 달라붙게 되고 아무리 필사적으로 배를 집어넣어보아도 아랫배가 존재감을 과시한다. 살을 빼겠다며 식사량을 줄여봤더니 무기력해지고, 운동을 시작해봤더니 작심삼일이다. 그러다 우연히 홈쇼핑에서 <빌리의 부트 캠프>를 보고 주변의 성공 사례까지 접해 빌리와 함께 운동을 시작한다. 나잇살을 털어내고 건강하게 일자 몸매로 거듭날 수 있을까?
노후 문제가 결국 한 손에 계산기를 드는 일이라니 슬프다. 낙향을 하면 전체적으로 경비는 절감될 것이다. 나 하나와 고양이 한 마리가 사는 것이니 넓은 집이 아니어도 좋다. 안 그래도 청소를 싫어하니 잠깐잠깐 해도 될 정도의 공간이면 충분하다. 작은 집에서 살려면 짐도 적어야 하니 아직 체력이 받쳐주는 지금 열심히 짐을 줄여가고 있다. 젊었을 때 샀던 기모노는 초등학생 두 딸을 둔 지인에게 넘겼는데 마침 치수도 나와 딱 맞고 아이들도 기모노를 무척 좋아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책은 도서관의 교환 코너로, 잡화는 바자회로 보내고 큰 물건은 업자에게 맡겨 처분하고 있지만 물건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버리는 것도 돈과 체력이 필요한 힘든 일이다.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니 스트레스 해소니 하면서 필요 없는 물건까지 사들였던 것은 아닐까. 사회의 경제 유통에 공헌했고 잠시 즐겁기도 했지만, 소유한다고 해서 즐거움이 유지되는 물건은 얼마 되지 않는다. 무언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며 반성한다. _13~4쪽
그럼에도, 내 방식대로 살겠습니다
무레 요코에겐 의식주 중에서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손댈수록 음식이 점점 맛없어진다고 자책할 정도로 변변찮은 요리 실력 탓에, 그저 집에 있는 재료를 양껏 넣고 채소볶음이나 톳조림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먹거나, 빵에 검은깨 페이스트를 발라 먹으면서 미소된장국을 곁들이는 식으로 일본식과 서양식을 대강 절충해 먹는다. 색감도 엉망이고 디스플레이도 예쁘지 않지만 잡지 화보 찍을 것도 아니니 상관없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맘껏 즐기면 그만이다.
혼자 살면서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식사만이 아니다. 집 꾸미기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남의 눈 신경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집을 꾸밀 수 있게 되어 신이 나 이것저것 해보지만 인테리어 센스가 꽝이라 영 시원찮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조립식 식탁의 금속제 다리가 거슬려서 목제로 바꿨더니 집안 분위기가 선술집처럼 변해버리고, 장지문이 찢겨 종이를 덧댔더니 덕지덕지 처참해진다. 엉망진창 인테리어 센스에 좌절하면서도 “이것도 나름 새로운 감각의 일본식 인테리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슬쩍 눈감아버리는 무레 요코. 조금은 대책 없어 보여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유쾌하게 살아가는 무레 요코의 무사태평 싱글 라이프는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