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억지로 깨려고 애쓰던 기억이 난다. 깨면 나머지 꿈을 꾸는 걸 피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매번 아무리 도망치려 버둥대도 꿈이 쫓아오리란 걸 알았다. 악몽이 나를 놔주지 않았다. 끔찍한 이야기가 다 끝난 뒤에야 깨어날 것이다.
넓은 바다에서 불타는 큰 배가 보였다. 배가 가라앉자 불길에 싸인 사람들이 바다로 뛰어내려 헤엄쳤다. 바다는 불타서 배 주위가 펄펄 끓었다. 구명정으로 헤엄치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하지만 구명정은 이미 만원이라서 탈 자리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태워 달라고 애원했지만, 선원들은 타지 못하게 했다. 뒤쪽에서 뱃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배 전체가 신음했다. 다친 동물이 고통스럽게 죽으면서 지르는 소리 같았다. 그러다 배가 파도 밑으로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배는 마지막 고통 속에서 거대한 증기를 토해 냈다. 바다가 적막에 싸였다. -8~9쪽 중에서-
할아버지가 시끄러운 걸 싫어하니 텔레비전을 많이 보지 마라. 그중에서도 특히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는 잔소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할아버지를 똑바로 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예의에 어긋난다고, 할아버지는 사람들, 특히 애들이 쳐다보는 걸 싫어한다고.
나는 안 그러려고 애썼다. 무지무지 애썼다. 할아버지가 도착하면, 난 늘 다른 데를 쳐다보려고 노력했다. 할아버지의 머리 위에 늘어진 크리스마스 장식을 쳐다본 기억이 난다. 현관 복도 천장에 빨간 종이로 만든 종이 달려 있었거든. 이따금 할아버지의 조끼나 늘 차고 다니는 회중시계를 보려고 했다. ‘금지 구역’ 근처를 제외한 아무 데나 보려고 했다. 일단 금지 구역인 할아버지의 얼굴이나 손을 보면 눈을 뗄 수가 없었을 테니까.
-12~13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