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품격 병맛 만화, 어쩌다 보니 독서 유발
▶ “안녕, 노마드!”를 외치면 당신도 익명의 독서 중독자가 될 수 있다.
▶ 들고 읽어라, 단행본 소장만이 답이다.
‘익명의 알콜 중독자들’ 모임처럼 운영되는 독서 모임이 있다. 이들은 별명을 제외하고 서로의 정보는 전혀 모른 채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 나간다. 선생, 고슬링, 사자는 기존 멤버다. 회원들조차 정체를 잘 모르는 미확인 중년 동물도 있다. 여기에 신입 회원으로 경찰과 노마드가 합류한다. 경찰은 경찰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조폭에 잠입해 오랜 세월 이중생활을 하고 있고, 자기개발서를 주로 읽는 노마드는 독서모임에서 여러 차례 쫓겨나고 들어오길 반복한다. 이어서 들어온 신입 회원 로렌스는 회원들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이 쓴 소설을 발표한다.
전작 〈에이스 하이〉 <빅토리아처럼 감아차라〉에서 보여 준 것처럼 이창현, 유희 작가는 환상의 콤비를 자랑하며 병맛에 충실하면서도, 고품격 인문학적 상식을 맘껏 펼쳐 놓는다. 다음 웹툰에서 인기리에 연재한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댓글에서 원작의 세계가 그대로 재현될 정도로 책을 고르는 기준부터 다양한 독서 경험을 나누며 책의 세계로 입문하는 독자를 양성해 냈다. 그런가 하면 독서 만화인 줄 알고 접근했다가 예상 외로 개그 본능에 충실한 엄청난 병맛에 중독되는 독자를 만들어 냈다. 다음 대사조차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와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는 이 작품은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작가들이 영리하게 심어 놓은 복선들이 보이고, 언제 어디서든 아는 척, 읽은 척할 수 있는 인문학적 지식을 자연스레 쌓게 된다. 단행본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장치들도 있다. 새로 추가된 <냉동과 해동 사이> 아영 편과 독서 클럽에서 무대에 올린 셰익스피어 비극의 전말만으로도 책을 소장하는 의미가 크다. ‘알아 둬도 쓸데없는 작가 주석’은 작품의 이해를 깨알같이 돕고, 한데 모아 놓은 ‘독서 중독자들의 독서 리스트’는 책에서 연마한 독서 방식으로 도전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