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의 드로잉》은 하동 토박이인 작가가 찍은 하동 풍경 사진과 시가 담긴 사진 시집이다. 이 책은 조문환 시인의 두 번째 사진 시집이자 세 번째 시집이다.
조문환 시인에게 있어서 시는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샘물과 같다. 그의 초년 작이었던 《시골공무원 조문환의 하동편지》에서부터 지금까지 그가 쓴 책들에서는 시적인 글들이 배어 있다. 조문환 시인은 이 책을 쓸 당시에는 그 속에 잠재 되어 있었던 시심을 시로 생각하지 않았었다고 소회했다. 그 같은 사람에게는 시라는 것이 올라올 수 없다고, 시라는 것은 ‘시인’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솟아나는 것이라고 단정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두 번째 책 섬진강 에세이집 《네 모습 속에서 나를 본다》에서조차 시가 돋아났다. 시인은 굳이 시를 글에 포함시켜야하겠다는 생각에서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런 글들이 돋아났다고 한다. 그의 그런 생각은 계속 이어져 세 번째 책이었던 《평사리 일기》도 사진 시집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민망하여 ‘사진에세이’라고 애써 외면해 버렸다. ‘시집’이라는 말을 붙인다는 것이 부끄러웠고 그 자신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문환 시인은 《괴테따라 이탈리아·로마 인문 기행》에 “물이 고이면 썩기도 하지만 더 많은 물이 고이면 보가 터지고 보가 터지면 새로운 물길이 생기고 새로운 물길이 생기면 새로운 문명이 발생한다. 사람의 영혼이나 정신도 같은 것이어서 하나의 생각이 넘쳐 나게 되면 분명 그쪽으로 발전하게 되고 발전된 그 생각으로 행동이 이어지게 마련이다.”고 썼다. 이처럼 그의 시는 결국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순리의 산물이었다. 그랬으니 그의 시류는 대부분 그의 삶의 표현이자 자연과 이웃에 대한 마음을 담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반나절의 드로잉》에 실린 ‘짧은 긴 이별’이라는 시다.
봉대길 끄트머리 태령씨 집 들어가는 사립문 앞 얕은 산자락에
아침이면 사랑을 나누는 꿩 연인이 있다
내 인기척에 푸드덕 푸드덕
하나는 남쪽 봉대마을 쪽으로
하나는 북쪽 주암마을 쪽으로 날아가더니
결국은 봉대마을로 날아갔던 수꿩이
주암마을로 포물선 그리듯 선회하여 돌아와서는
둘은 오랜 이별 후의 재회처럼
또다시 수풀더미에서 푸드득 푸드득 거렸다
그 잠시 잠깐도 둘에게는 오래된 이별이었던 것처럼
때로는 잠깐의 시간이
오랜 이별이 되는 때도 있다
<짧은 긴 이별> 전문
그렇다고 하여 그에게 있어서 시라는 것이 보석처럼 고귀한 사고나 깊은 철학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는 ‘두루마리 휴지 둘둘 풀어 탱탱 코 풀어 버리듯이... 시를 낭비 해 버리고 탕진해 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어 버리고, 빈대가 되어 버리고, 불임이 되어 버리고...’라고 ‘시인의 말’에서 썼다. 누구나 사람들 속에 자기만의 시가 있고 그것이 소모품처럼 닳아지고 낡아지고 함부로 다뤄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의 시는 ‘경계’에서 관조한 것들도 많다. 그것은 지역과 지역의 경계일 수 있고 시간과 시간의, 사람과 사람의 경계일 수도 있다. 시인이 살고 있는 하동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도와 경상도가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이 넓고도 좁은 경계에서 일어나는 일들,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서 일어났던 일들은 ‘경계’에 섰기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것들이다. 자주 그는 강 건너 전라도 땅에서 하동을 바라본다. 강을 건너서 바라본 하동 땅이 진정한 하동의 모습 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것이 여행이 가져다주는 유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그의 시에는 ‘경계’에 관한 표현들이 포함되어 있다.
삶과 죽음의
새벽과 아침의
오늘과 내일의
육지와 바다의
산과 산의
남자와 여자의
믿음과 불신의
사람과 사람의
깨어남과 잠잠의
너와 나의
역사와 그 언저리의
동과 서의
남과 북의
하늘과 땅의
인식과 무의식의
달과 달의
해와 해의
멈춤과 나아감의
질서와 자유의
눈감음과 눈뜸의
인식과 무의식의
위층과 아래층의
전반전과 후반전의
너 거기에서 울었는가?
이 새벽과 이 아침의
그 기묘한 경계에 엎드려
저처럼 우는 새여!
<나는 내일도 그곳에 있었다> 전문
다음의 ‘끝에서 바라본 끝’이라는 시도 ‘끝’이라는 경계에 서서 바라본 인생의 드로잉이라 할 것이다.
여기가 끝이다
지나왔던 끝
지나가고 있는 끝
지나 갈 끝
끝에서 끝까지 끝을 지르밟고 서 있다
끝에서 끝까지 거리는 끝이 없다
질끈 밟고 있기 때문이다
발을 떼면 발아래서 끝이 올려다본다
‘너는 끝이다’라고
발밑에는 끝이 끝도 없다
끝에서 보이는 것은 끝뿐이다
제거되지 않았던 가름막
풀리지 않았던 함수
모두모두 풀어헤쳐 놓았다
끝이 준 선물이다
<끝에서 바라본 끝> 전문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시인이 된다면 이 땅에는 미움도 싸움도 없는 그런 평화의 땅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에게는 자리하고 있다. 앞으로 언제까지 시를 쓰고 싶으냐는 질문에 “샘물이 마르면 더 이상 물을 떠 마실 수 없는 것처럼 내 속에 시의 샘이 마를 때까지는 시를 써야죠. 샘물이 그의 의지나 욕구가 아닌 자연의 순리에 따라 물을 내듯이 저 또한 시를 쓰고자 하는 의지라기보다는 내 속에 시의 샘이 흐르는 한 죽을 때까지 손 놓을 수 없는 것은 시를 쓰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