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漢字’의
시대적·정치적 의미를 되묻다
문자는 인간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문자에 의한 지배와 억압을 초래했습니다. 이렇듯 문자라는 것에 의한 세계 구성의 역사와 원리를 묻는 작업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원리에 관하여 한자와 같은 개별 문자 체계에 입각해서 고찰하면서도 동시에 문자 자체가 지니는 일반적인 원리를 통해 고찰하는 일도 중요하겠지요. _ 한국어판 서문
저자는 입말과 문자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간극을 강조한다. 그리고 한글과 파스파 문자, 일본의 만요가나와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둘러싼 문제들을 끄집어내어 각 지역에서 한자를 어떻게 사용해왔는지를 설명한다. _ 옮긴이의 글
한자권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
이 책은 ‘한자漢字’라는 것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입말과 ‘결합’되고 또한 무의식의 단계로 ‘숨어들었는지’를 날카롭게 논해간다. 한자세계의 형성은 그 무의식의 세계가 거대한 랑그 체계를 이룬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책의 제목이 ‘한자권의 성립’인 이유다. 저자 사이토 마레시는 이 분야의 독보적인 연구자로 이미 국내에 『근대어의 탄생과 한문: 한문맥과 근대 일본』이란 책이 번역되어 있다. 저자는 구두 언어로부터 서기 언어를 설명해온 음성 중심주의적 사고를 비판하고, 입말과 문자로부터 배제되어온 존재들, 이를테면 기호나 수화 그리고 단순히 수화라고 표현할 수조차 없는 여러 종류의 수화까지 불러오면서 이 문제를 천착해나간다.
한자의 형성부터 동아시아 각국의 한자권 성립 역사 서술
1장 ‘한자란 무엇인가: 문자가 만드는 세계’에서는 한자가 만들어지고 최초로 한자세계가 성립되는 시점으로 고고학 여행을 떠난다. 또한 중세와 근세를 거치며 한자를 매개로 각국의 언어체계가 잡혀나가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한다.
서기 언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즉 기호에서 문자로 뛰어넘기 위해서는 그것을 사용하는 집단이 밀도 있게 집약적으로 그 기호를 사용할 필요가 있었다. 은나라에서 왕을 중심으로 한 신관 집단은 부와 권위와 권력을 가진 집단이었으며, 신사神事에 관련된 작업은 폐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상정할 수 있다. 이전까지 사용되었던 기호를 조합하여 하나의 의미를 구성하는 노력이 어딘가에서 이루어지고, 그것이 폐쇄적인 집단 내부에서 밀도 있게 상호적으로 사용됨으로써 특권적 서기 언어로서의 시스템이 정착된 것은 아닐까? 앞에서도 논했지만 서기 언어의 발달은 신관 집단에 의한 점복이 촉진한 것이며 일상에서의 의사소통과는 관련이 없다. 19세기 말까지 갑골문자라는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것도 문자의 이러한 성격과 연관되어 있으리라. 그것은 왕과 관련된 시설의 한 구석에 집적되고 보존된 채 무분별하게 공개되지 않았으며 배포되는 일 또한 없었기에 후대에 그 장소가 우연히 발굴될 때까지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라는 게 저자의 추정이다.
근대와 같이 문자와 입말의 관계가 밀접해야 한다면 문자뿐만 아니라 음성까지도 언어 통일을 지향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고대에는 서기 언어와 음성 언어가 일정한 대응 관계에 있더라도 문자는 문자로, 입말은 입말로 존재했다. 문자와 음성 언어의 결합이 지역 언어와의 결합을 만들어내면서 생겨난 다양성과 갈림 현상이, 이번에는 강력한 정치권력에 의해서 문자 통일로 뒤바뀐다. 이때부터 각 지역 언어에서는 문자를 중심으로 각자의 방법을 고안하여 언어와 문자의 대응 방식을 구성해가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영웅이 각자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전국시대에서 진으로 통일되는 과정은, 대륙 각지에 확산되어 있던 문자를 같은 규범으로 재통일하는 흐름이기도 했다.
한자와 한문의 유통만으로 한자권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한자와 한문을 읽고 씀으로써 자신을 양성하던 ‘사士’라는 존재가 없어서는 안 된다. 이를 중핵으로 한자권은 한자권으로서 성립한다. 한자의 전파는 진한 통일처럼 통합의 방향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한자권이 확장되면서 각 지역은 스스로의 고유성을 의식하게 되었으며, 각 사회가 국가로 성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왜倭’는 한자를 얻었기에 스스로를 ‘일본’이라고 칭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역사를 기술할 때 ‘일본’이라고 부르지 않는 사태도 일어났다. 춘추전국시대의 한자권이 그 이전 세계를 망각함으로써 성립할 수 있었다면, 고대 일본은 『고지키古事記』를 편찬함으로써 망각을 대신했다고 할 수 있다. 『고지키』는 한자를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고전문의 정격을 거부함으로써 노골적으로 한자 없는 세계를 지향했다. 이에 비해 『니혼쇼키日本書紀』는 스스로를 ‘일본’이라 칭하면서 고전문을 통하여 역사를 엮었으며, 이를 통해 한자권의 일원임을 드러냈다. 한자가 문화의 기원을 갱신하는 작업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이러한 격투 과정을 거치면서 한반도, 일본 열도, 류큐 제도, 인도차이나반도 동부 지역이 한자권을 형성했다. 즉 한자가 외교문으로 사용되었고 한문을 읽고 쓰는 일이 지식층의 조건이 되었다. 이것이 제2차 한자권이다. 한문을 읽기 위한 기법을 고민하고 한자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고전문의 통사법이나 문법에 의거하지 않는 문체가 생겨났다. 그리고 시기와 형태의 차이를 보이면서 각 지역마다 중국의 사에 상응하는 계층이 형성되었다. 쉬운 예로 고려와 조선의 ‘양반’이나 근세 일본의 ‘사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제2차 한자권이 성숙기로 접어들면서는 주자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가 되려는 이들에게 주자학의 정돈된 세계관과 체계적인 학습법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서양 열강이 동아시아에 들어오면서 한자권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직접 한자권을 파괴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자권은 쌓아둔 힘을 발휘하여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나갔다. 열강이 청나라를 근거지로 삼으면서 한문으로 된 서양 정보가 동아시아 세계로 전파되었다. 상하이에서는 선교사들에 의해 활자 인쇄가 발달했다. 서양 과학과 종교, 역사가 한문으로 쓰이거나 번역되면서 한문, 즉 사士의 교양 격인 고전에 기반했던 문체에 통풍구가 열렸다. 새로운 한어 한문을 향한 길이 열렸으며 고전이 속해 있던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편 한문이 키운 사족에 의해 일어난 메이지 유신은 한자권에서 발생한 일대 사건이었다. ‘5개조의 서문五箇條の御誓文’이 한문 훈독체로 쓰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한문에 의거하되 한문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훈독체는 서양말을 번역하면서 새롭게 생겨난 수많은 한자 개념을 거침없이 사용했다. 뒤집어 말하자면 새로운 한자 개념이 대량으로 생산되었기에 훈독체가 애용되었다. 가나假名가 섞인 훈독체는 한문으로부터의 이탈과 국민어로의 지향을 의미했다. 한자권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이 각 지역에서 일어났다. 한글 사용 또한 그 예일 것이다. 중국에서도 문언文言(고전문)이 아닌 백화白話를 사용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문언은 사대부의 것이지 국민의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단순히 기록하고 말하는 데에 있지 않다. 많은 한적을 독파해야 쓸 수 있는 것이 문언이며 그렇지 않은 것이 백화라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 물론 처음부터 백화가 생겨날 수는 없었다. 문언의 어휘나 어법이 자원이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일단 방법만 확립되면 더 이상 고전을 더듬어 올라가는 일은 불필요했다.
한자에 대응해서 만들어진 가나와 한글의 성립 과정
2장 ‘말言과 글文의 거리 : 와고和語라는 허구’에서는 일본에서의 한자의 전파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문장을 엮는다는 행위는 항상 파격을 동반했다. 서기 언어는 구두 언어의 간섭을 받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파격에 의한 전개가 없으면 문체 변화도 어휘의 증가도 일어나지 않는다. 서기 언어가 퍼져 나가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히려 이러한 파격이 필요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한편으로 파격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는 큰 과제다. 저자는 오규 소라이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 그런 후 한글로 넘어온다. 가나와 달리 한글은 문자와 음성 간의 결합을 강하게 의식한 문자이며, 발성을 분석하고 이를 가시화하는 형태로 만든 것이다. 만요가나가 머지않아 가타카나와 히라가나로 그 자체를 변화시키면서 가독성을 높인 반면 조선땅에서 한글 창제 이전까지 이두는 이러한 변화 없이 한자를 빌려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따라서 이에 익숙하지 않으면 읽기 어려웠으며 일상 언어를 그대로 반영하기도 어려웠다. 중화 문장도 아니고 일상 언어도 아니었다. “이러한 방법은 속되고 근거가 없을 뿐더러 입으로써 하는 말에는 만분의 일도 통하지 않는다”는 탄식이 나왔다. 파스파 문자와 같은 표음문자를 참조한 동시에, ‘인성제자因聲制字’에서 보듯이 문자 제작 원리를 달리하면서도 전통적인 틀인 상형이 고려된 것이다. 문자 제작이 복희의 역괘 제작에 필적할 만한 행위였던 이상, 소리를 바탕으로 글자를 만든다고 해도 그 소리의 모양을 본뜨지 않으면 안 된다. 거꾸로 말하자면, 한글에 이러한 발상이 가능했던 것은 한자가 상형에 기원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글은 한자가 속한 전통적인 틀을 지렛대로 삼으면서 발음기관의 형상을 문자로 본뜨는 전대미문의 시도를 할 수 있었던 셈이다.
훈독의 탄생
3장 ‘문자를 소리내어 읽는다: 훈독의 음성’에서는 훈독을 번역의 일종으로 파악하는 의견에 이의를 제기한다. 사이토는 번역과 훈독을 달리 생각한다. 번역이라는 사고방식은 입말과 문자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은 세계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매우 친근하며 근대 이후의 언문일치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훈독에는 기본적으로 입말과 문장이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즉 훈독이란, 쓰인 문장 즉 한문이 이곳의 언어 배치와 다르기 때문에 이곳의 언어 배치를 통해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고민 속에서 나온 행위이며, 그래서 훈독 나름의 질서와 그 나름의 문파를 지닌다. 근세의 훈독이 근세시대의 언어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논어』나 『시경』을 읊는 언어가 당시 언어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이토는 훈독을 근세까지 축척된 한자권의 한 역사적 현상으로 파악한다.
소리 내어 읽기가 만든 세계
4장 ‘눈과 귀와 글: 라이 산요의 새로운 문체’에서는 18세기 전후의 소독素讀에 관해 다룬다. 18세기 말, 일본 막부의 학문소였던 쇼헤이코에서는 다른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금지하면서 주자학이 유행하는 시대를 이끌었다. 교육 개혁은 단순히 다른 학문을 금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시험을 통해 한적을 읽는 방식을 통일시켰다. 한적을 오로지 소리 내어 읽는 소독이 전국적으로 행해진 것도 이때다. 이러한 시기에 태어난 유학자 라이 산요賴山陽(1781~1832)에게 소독은 신체에 각인된 리듬이었으며 그는 이 리듬을 통해서 붓을 잡았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니혼가이시日本外史』라는 한문 역사서는 메이지 초기까지 전국적으로 회자되고 암송될 정도로 당대를 휩쓸었다. 필자는 근세 후기부터 메이지 초기까지 낭독으로서의 훈독이 널리 유행된 현상을 라이 산요의 『니혼가이시』를 통해 설명한다. 근세 후기를 거치면서 훈독은 단순히 한문을 해석하는 것에게 나아가 감흥을 일으키는 행위로 변화하며, 그렇기에 산요에게 “완벽하지 않은 모자란 한문” “일본어 냄새가 나는 한문”이라는 비판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번역의 시대, 한자문의 근대
5장에서는 여기까지 축척된 한자문의 모습들, 즉 그 나름의 질서와 변형을 형성해온 훈독訓讀과 명문구를 유행시킨 소독素讀, 난학蘭學과 중국 대륙에서 간행된 대역사전 등의 경험들은 곧 번역의 시대를 이끌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자문의 근대가 열린 것이다. 근대 번역은 각 지역의 전통적인 문체와 어휘를 바꾸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는 단순한 유입이나 교체가 아니었다. 전통적인 지知와 문체文體는 방기되는 일 없이 근대 한자문의 토대가 되어 새롭게 재편되었다.
한어 한문이 고전적인 규범에서 떨어져 나가는 현상은 『철학자휘』에 실린 새로운 한자 번역어를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편지글과 같은 일상 작문에서 시작하여 영작문까지 다양한 작문의 연습에 한문을 가키쿠다시かきくだし(위에서 아래로 내려 씀)한 문장 즉, 훈독문이 사용되었고 이는 국가 단위에서 장려되었다. 메이지 초기에 훈독문을 보통문으로 정착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가능했던 것은 다름 아닌, 근세 후기부터 훈독이 정형화되고 일정한 형식으로 암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근대의 보통문을 이끈 주자로 근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존재했던 훈독문과 훈독체를 강조한다. 오늘날 한자권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한자 개념들이 생겨난 것 또한 훈독체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비일상적인 한어를 담기 좋은 훈독체는 새로운 번역어들을 탄생시켰고 이는 량치차오와 같은 중국 지식인들에게 쉽게 읽혔다.
문자란 무엇이고, 문자가 바꾼 세계는 무엇인가
서기 언어로서의 일본어는 한자를 통해 성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자를 외래의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국어’라는 중심이 상상되었으며, 나아가 이렇게 꾸며진 중심에 의해서 한자를 거느리고자 하는 전도가 생겨났다. 이것이 일본의 ‘국학’이며, ‘국어학’이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이 책은 이러한 내용을 주장한
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이 일관성을 가지고 쭉 생각해온 문제는 ‘문자란 무엇인가’ ‘이는 무엇을 초래했는가’라는 물음이다. 저자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문자가 힘을 지닌 권역으로서 한자권을 파악하고 그곳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현상 몇 가지를 끄집어내어 그것이 한자세계를 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분석했으며, 문자의 기능과 그것이 초래한 세계를 그리고자 했다.
문자란 당연하게도 써서 기록하고 써서 기록되는 것이다. 써서 기록한다는 행위를 떠나서 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또한 읽어서 해석되는 것으로 드러난다. 문자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은 읽고 쓰는 행위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기도 하다. 이 책이 한자론에 관한 책으로 읽힐 수도 있으나 그것은 읽고 쓴다는 행위를 내포한 언어 실천으로서의 문자, 그리고 이러한 실천에 의해 구성된 세계를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일 뿐 일본론이나 중국론으로 쓰인 것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