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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 시리즈 세트 (반 고흐, 제인 오스틴, 모네, 다빈치, 클림트, 프리다 칼로, 코코 샤넬, 데이비드 보위)

인포그래픽 시리즈 세트 (반 고흐, 제인 오스틴, 모네, 다빈치, 클림트, 프리다 칼로, 코코 샤넬, 데이비드 보위)

  • 앤드류 커크/옮긴이 박성진, 비브 크루트/옮긴이 박성진, 소피 콜린스/옮긴이 박성진, 리즈
  • |
  • 큐리어스
  • |
  • 2018-12-25 출간
  • |
  • 148 X 210, 올컬러 양장
  • |
  • ISBN 9791161654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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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반 고흐
 

비주얼 스토리텔링, 인포그래픽으로 읽는 반 고흐

 

그들의 인생은 결코 흑백 화면처럼 단조롭지 않았다. 

‘인포그래픽’만으로 구성된 획기적인 예술가 시리즈! 

 

스물일곱, 마침내 그는 미술계로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10년!

 

“추악해지고, 늙어가고, 비겁해지고, 병들어가고, 가난해질수록 

 더 화려한 색채와 배열로 복수하고 싶어져.”

 

 “우리에게 도전할 용기가 없었다면 과연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_반 고흐

 

많은 이들이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를, 19세기 네덜란드 예술가였고, 해바라기와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을 그렸으며, 후기 인상파 운동을 주도했고, 자기 귀를 자른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평생 2,100점의 작품 중 한두 점밖에 팔지 못했다는 사실은 잘 모릅니다. 그의 사후 '가셰 박사의 초상'이 1억5200만 달러에 팔렸다(1990년 판매 당시 8,250만 달러)는 사실 역시 잘 모릅니다. 더구나 그가 자신의 귀를 자른 건 유명하지만, 그 귀를 갈색 종이에 싼 뒤 매춘 지역으로 보낸 일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인포그래픽 : 반 고흐》는 고흐의 생애와 작품이 지닌 강렬한 인상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그 작품 뒤에 숨어 있는 예술가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그의 생애와 작품만큼 강렬한 인포그래픽으로 담아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에 대해서 적어도 세 가지는 알고 있다. 자기 귀를 잘랐다는 것, 미쳤다는 것(결국 자살로 마감한), '해바라기'(Sunflowers)를 그렸다는 것. 이는 물론 사실이지만, 이런 지식은 반 고흐와 그의 작품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만 남길 뿐이다. 

자, 거리를 두고, 37세로 생을 마감한 고흐의 짧은 생애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고흐라는 인간은 뒤로 물러나고 서서히 그의 작품들이 전면에 떠오를 것이다. 

이런 궁금증이 생길지도 모른다. “가끔 들어오는 후원금 외에는 돈 한 푼 없이, 심신을 괴롭히는 질병과 줄곧 싸우면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그림들을 그려낸 거지?”

 

반 고흐는 예술의 길로 들어서기 전, 자신의 성격에 맞지 않는 다양한 일을 해야 했다. 

10대 때 고흐는 삼촌의 예술품 중개소에서 일하면서 확고한 취향을 추구하는 손님들을 상대해야 했지만 그러기엔 지나치게 직설적이었다. 결국 해고당한 반 고흐는 성직자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가 과연 설교에 열정을 쏟을 수 있었을까? 아니,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빈센트에게 목사가 되고자 하는 확신이나 신념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 빈센트는 성직자의 아들이었고, 목회자의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 요구되는 수준까지는 턱없이 부족했다. 

 

스물일곱, 마침내 그는 미술계로 뛰어들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성공하기까지 악착같이 그리고 양심적으로 작업했다. 끊이지 않는 갈등과 심각한 우울증, 절망감으로 가득했던 삶에 대한 보상인지, 생애 마지막 몇 년은 활짝 피는 꽃과 같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예술은 그의 사후 불과 몇 십 년 내에 수백만의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역사가 줄리언 벨(Julian Bell)이 말했듯이, 고흐의 놀라운 성취를 고려할 때 

“…우리는 그를 미쳤다고 말하면 안 된다. 그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제인 오스틴
 

비주얼 스토리텔링, 인포그래픽으로 읽는 제인 오스틴

 

 그들의 인생은 결코 흑백 화면처럼 단조롭지 않았다. 

‘인포그래픽’만으로 구성된 획기적인 예술가 시리즈! 

 

사후 20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인포그래픽 제인 오스틴!

 

“나는 나만의 스타일을 지킬 것이며 

 나 자신의 방식대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코 성공을 거둘 수는 없을지라도, 

그 방식이 아니면 완전히 실패할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죠.”

_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1775-1817)은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과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이라는 유명한 두 작품을 집필하였으며, 오늘날까지 비평가와 일반 독자 모두에게 찬사를 받는 문학사적 성취를 이룬 작가입니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의 삶을 구성하는 다른 부분들, 즉 목회자인 아버지 슬하의 여덟 남매 속에서 자라났다는 사실, 그녀의 모든 소설이 원래는 익명으로 출판되었다는 것‘레이디Lady 지음’이라고만 표기되었을 뿐, 그녀가 청혼을 받아들였다가 하루 만에 마음을 바꾸었던 일 등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인포그래픽 : 제인 오스틴》은 제인 오스틴이 지닌 작가이자 인간으로서의 생애와 업적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한 인포그래픽을 통하여 그녀가 지닌 수많은 매력을 만나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제인 오스틴은 단순한 독자로서의 애정을 넘어선 숭배에 가까운 열렬한 팬층을 거느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녀를 낭만적인 소설가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하지만 그와 동시에 제인 오스틴에 대한 좀 더 폭넓은 이해를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는 독자는 그 자신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시선으로 제인 오스틴을 해석하게 될 것이다. 그녀의 책에는 작가가 지닌 여러 가지의 다른 성격들이 드러나 있다. 우리는 제인 오스틴을 낭만적인 로맨스 작가로 이해해야 할까, 아니면 사회적 관습에 대한 날카롭고 유머러스한 관찰자로 보아야 할까, 혹은 음울한 냉소주의자로 받아들여야 할까?

 

《인포그래픽 : 제인 오스틴》은 제인 오스틴이라는 작가를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숫자로 보는 그녀의 삶을 비롯한 다양한 요소들을 과거와 현재의 여러 맥락에서 짚어보고 있다. 

 

《인포그래픽 : 제인 오스틴》을 앞에서부터 페이지를 넘기며 순서대로 읽어나갈 필요는 없다. 페이지를 들추다 보면 어느 순간 시각적으로 당신을 끌어당기는 장면과 마주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제인 오스틴이 지니고 있는 개별적이며 다양한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그녀는 우아한 조지 왕조 시대(리젠시 시대) 정신을 지닌 숙녀이며 누군가의 누나이자 여동생이면서 병약한 환자인 동시에 출판과 인세에 관심이 많은 작가이기도 하며, 때로는 잔소리꾼이기도 했다. 

제인 오스틴은 분명 현실주의자였다. 그녀는 삶이 낭만적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이는 그녀가 지닌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우리가 그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쩌면 오스틴은 행복과 불행을 오르내려야 하는 인생의 굴곡, 혹은 세속적 삶 속에서 일상의 진실한 맛을 잡아낸 최초의 소설가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러한 분야에서 그녀가 지닌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모네
 

비주얼 스토리텔링, 인포그래픽으로 읽는 모네

 

그들의 인생은 결코 흑백 화면처럼 단조롭지 않았다.

‘인포그래픽’만으로 구성된 획기적인 예술가 시리즈! 그 세 번째!

 

신의 눈을 지닌 유일한 인간, 모네 

끊임없이 변하는 빛을 화폭에 담아내다!

 

모네, 빛과 시간을 그리다

 

“물체가 지닌 고유한 색은 없다. 색은 빛에 따라서 변화할 뿐이다.” 

“색채는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니며 번민하게 만든다. 심지어 꿈에서까지.”

_클로드 모네

 

많은 이들이 클로드 모네(1840-1926)가 프랑스 인상주의의 창시자라는 것, 「인상, 해돋이」와 「수련」 연작을 그린 풍경화의 대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네가 연못을 직접 조성하여 수련을 가꾸고 그 수련을 250점의 유화로 그려냈다는 사실은 잘 모릅니다. 「수련 연못」(Water Lily Pond, 1919)이 80만4천 달러에 팔리고, 「디에프 인근 절벽」(Cliffs Near Dieppe, 1897)이 두 번씩이나 도난당했다는 것, 그리고 가장 유명한 작품을 그릴 무렵의 모네는 백내장 때문에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인포그래픽 : 모네》는 작품 너머의 예술가 모네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흥미진진한 사실들을 인포그래픽으로 구성하여, 독자에게 모네의 생애와 작품과 명성에 대한 즉각적인 인상을 선사합니다. 

 

샤갈은 모네를 ‘우리 시대의 미켈란젤로’라고 했고, 

앙드레 마송은 오랑주리 미술관을 ‘인상주의의 시스틴 성당’이라 불렀다.

 

모네가 동시대 화가들과 구분되는 점은 ‘연작’이다. 모네는 각각 다른 시간과 조도와 날씨 조건에서 같은 구도의 그림을 강박에 가까운 열정으로 수십 장씩 그려냈다. 거대한 비율로 확대해 그린 작품이 포함된 모네의 수련 그림은 민첩한 붓질 몇 번으로 사물의 시시콜콜한 특징을 겨우 잡아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보는 이에게 풍요롭고도 손에 잡힐 것 같은 인상을 전한다.

 

모네, 인상을 만들다

모네, 끝없는 전체에 대한 환상을 품다

모네, 꽃의 정원과 물의 정원을 조성하다

 

화가 초년생 시절 모네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당대 미술계를 지배했던 파리 전통 화단의 냉대로 고통받았다. 미혼이지만 나이 어린 가족의 가장에다, 사귀던 여인과 화가의 길을 반대하여 사이가 소원해진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없어 무일푼이었던 모네는, 부유한 친구와 지인들의 호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신선한 새 화풍이 대중에게 인정을 받고 고리타분한 미술계도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이게 되자 모네의 그림은 잘 팔려나갔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모네는 비로소 지베르니에 뿌리내리고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인상주의 화풍이 대중과 미술계에 인정을 받은 이후 모네는 땅을 사들여 이국적인 수련 꽃으로 가득한 그 유명한 연못을 만들고 정원을 조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착수할 수 있었다.

모네가 직접 조성하고 가꾼 정원과 수련 연못은 놀랍게도 이후 20년간 하나의 주제로, 200점이 넘게 그린 작품의 중심주제가 된다.
 



다빈치
 

비주얼 스토리텔링, 인포그래픽으로 읽는 다빈치


그들의 인생은 결코 흑백 화면처럼 단조롭지 않았다.
‘인포그래픽’만으로 구성된 획기적인 예술가 시리즈! 그 네 번째!

다빈치, 미래를 기록하다
르네상스 시기의 위대한 창조정신을 대표하는 르네상스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15세기에 21세기를 상상하다!

다빈치는 그 어떠한 카테고리의 분류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그는 그를 정의하려는 모든 노력을 뛰어넘는다.
명확한 것은 그가 존재했다는 사실뿐!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르네상스 시기의 위대한 창조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이자 융합형 수재인 폴리매스(polymath)로도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의 작업노트인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가 3천만 달러에 빌 게이츠에게 팔렸다거나 다빈치에게 난독증이 있었다는 것, 또 양손잡이여서 한 손으로는 드로잉을 하며 다른 한 손으로는 필기를 했다는 사실, 그리고 장갑차나 비행선, 콘택트렌즈를 발명했다는 이야기 등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인포그래픽 : 다빈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매혹적인 사실들을 바탕으로 제작한 인포그래픽을 통하여, 작품 뒤에 가려진 대가의 삶과 작품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를 제시할 것입니다.

다빈치, 자연에 대한 경외와 인체에 대한 호기심을 품다
다빈치, 모든 학문을 융합하다
다빈치, 회화와 발명품 그리고 사고의 총체 ‘코덱스’를 남기다


융합형 천재 폴리매스이자 전형적인 르네상스인. 화가, 제도사, 건축가, 발명가, 해부학자, 수학자, 식물학자, 지질학자, 지도 제작자, 토목 기사, 기계 공학자, 군사 공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 어떠한 카테고리의 분류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다. 그는 그를 정의하려는 모든 노력을 뛰어넘는다. 그를 이해하고자 후대에서 찾아보는 그의 모든 발명품 목록, 수많은 그림, 잃어버린 작품의 재구성과 같은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그 결론은 현재의 우리가 레오나르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뿐이다. <모나리자>의 경우가 그렇듯이, 명확한 것은 그가 존재했다는 사실뿐이다. 15세기의 이탈리아라는 시대적 맥락에서 출발하여 동시에 현대의 일부로 걸쳐진 존재, 그가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클림트
 

비주얼 스토리텔링, 인포그래픽으로 읽는 클림트 

 

그들의 인생은 결코 흑백 화면처럼 단조롭지 않았다. 

‘인포그래픽’만으로 구성된 획기적인 예술가 시리즈! 그 다섯 번째! 

 

세기말 빈을 대표하는 클림트, 

시대의 황금빛 유산을 남기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전례가 없는 캐릭터인 동시에 

추종자도 후계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계의 모든 움직임에 맞닿아 있는 동시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클림트!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빈 분리파(Wein Secession)의 리더이자, [키스](The Kiss)와 같은 금빛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클림트가 열네 명의 사생아가 있다는 소문에 시달렸다거나, 그의 작업실에는 여남은 마리의 고양이들로 북적였다는 것, 2006년도에 판매된 작품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이 135만 달러에 낙찰되었는데 이는 당대 최고가였다는 사실 등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인포그래픽 : 클림트》는 클림트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을 바탕으로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 명성이 한눈에 보이도록 구성하였습니다. 작품 뒤에 가려진 예술가의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클림트, 금세공인 집안에서 태어나다 

클림트, 종합예술의 구현을 꿈꾸다 

클림트,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하다 

 

“검열은 충분히 겪었다. 이제는 내 뜻대로 할 것이다.” 

_구스타프 클림트, 1905 

 

▶▷ 구스타프 클림트는 말 그대로 세기말 빈의 ‘포스터 보이’(poster boy)이다. 그는 세기말 빈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며, 또한 다량의 포스터를 제작한 작가이기도 하다. 클림트의 에로틱한 미학은 평화, 사랑 그리고 성적인 자유를 추구하던 젊은이들에 의해 재발견되었으며 1960년대 이후 수천 명의 학생들은 자신의 방 한쪽 벽을 황금 속에 푹 젖은 채 무아지경에 빠진 ‘키스’하는 커플의 모습으로 장식했다. 누가 뭐라 해도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빈이 배출한 가장 세계적인 화가다. 

▶▷ 1850년대부터 시작된 다양한 예술계의 모든 움직임과 클림트는 관련이 있다. 어떻게 보면 클림트는 그 어떠한 예술적 변화와 운동과도 관점에 따라서 연관 지을 수 있으며, 동시에 모든 것과 거리를 두고 있다. 심지어 클림트는 빈 예술계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기묘하게 거리를 유지했는데, 이로 인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 미술사 속에서 클림트가 창조해낸 일회적이며 절충적인 스타일은 그가 받은 다양한 훈련이 뒤섞이며 연마된 것이다. 평생에 걸친 장식미술에 대한 사랑, 여성성이 지닌 힘에 대한 강박적 집착, 의무감으로 진행했던 전 유럽의 ‘미술 순례’, 베를린과 뮌헨 그리고 런던에서 함께 전시회를 열었던 수많은 작가들, 분리파가 빈에 소개한 동시대 외국 작가들, 이 모든 것은 클림트라는 작가를 형성하고 영향을 미쳤다. 



프리다 칼로
 

비주얼 스토리텔링, 인포그래픽으로 읽는 프리다 칼로

 

그들의 인생은 결코 흑백 화면처럼 단조롭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래서 더없이 궁금한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세계 

‘인포그래픽’만으로 구성된 획기적인 아트북

 

불꽃같은 삶과 상처의 화가, 프리다 칼로

고통스러운 삶의 시를 캔버스에 옮기다!

인간적인 고난과 예술적 성취의 페미니스트 아이콘, 프리다 칼로

 

“두 다리가 왜 필요하지? 내 날개로 날 수 있는데.”

 

멕시코 혁명, 소아마비와 교통사고, 

그리고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 

삶 자체가 투쟁이 되다! 존재의 결함이 예술이 되다! 

 

프리다 칼로(1907-1954)는 푸른색으로 칠해진 집(카사 아술 Casa Azul)에 살았으며 '두 명의 프리다'(The Two Fridas, 1939)와 같은 개성 있는 인물화를 그린 멕시코 작가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회화 143점 중에서 55점이 자기 자신을 그린 자화상이라는 것, 그녀의 작품 중에서 '숲속의 두 나신'(Two Nudes in a Forest, 1939)은 남아메리카 회화 중에서 최고가로 매매되는 기록을 세웠다는 것(2016년 기준, 800만 달러)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한 남자(디에고 리베라)와 두 번 결혼했다는 사실이나 고국 멕시코에서 처음 열린 자신의 개인전에 참석하기 위해 구급차에 실리는 것을 무릅썼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포그래픽 : 프리다 칼로》는 프리다 칼로에 대한 검증된 사실과 숫자들을 바탕으로 그녀의 생애와 작품세계, 명성을 한눈에 들어오게 구성하였습니다. 이 책은 작품 뒤에 가려진 예술가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프리다 칼로, 치명적인 전차사고를 당하다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하다

프리다 칼로, 병상에서 자기 자신을 캔버스에 옮기다

 

“나의 그림은 나의 꿈이 아닌 현실입니다.”

_프리다 칼로, 1953

 

“프리다 칼로의 예술세계는 리본으로 감싼 폭탄이라 할 수 있죠.”

_앙드레 브르통, 1939

 

현실을 그리고자 하는 불손하고 기이한 열정

‘리본으로 감싼 폭탄’과 같은 예술세계

누구보다 치열했던 삶에서 외치다.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 인생이여, 만세!

 

▶▷ 프리다 칼로는 종종 초현실주의 작가라고 불렸다. 그녀의 작품에는 강렬하고 환상적인 요소들이 있다. 하지만 본인은 그렇게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 프리다 칼로는 자신이 초현실을 그리고자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험한 삶 자체를 그렸다고 말한다. 

▶▷ 프리다 칼로의 삶이 대중을 매혹시킨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6살의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린 데다가 10대 후반에는 전차 사고로 인해 중상을 입고 회생불가 판정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살아나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드라마다. 사고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운 통증에 평생 시달렸다는 것과 세 번의 유산까지 포함해서! 

▶▷ 프리다 칼로가 쏟아낼 이야기는 가득했고, 표현방식 또한 사뭇 급진적이었다. 이제껏 그녀만큼 솔직하게 자신의 신체적 결함이나 상처, 특히 유산의 경험이나 그로 인한 신체적·심리적 여파들을 보여준 작가는 없었다. 

 

그 결과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다른 작가들이 거의 하기 어려운, 독특한 방식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약함과 결함을 보여줄 수 있었다. 



코코 샤넬
 

비주얼 스토리텔링, 인포그래픽으로 읽는 코코 샤넬

 

그들의 인생은 결코 흑백 화면처럼 단조롭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래서 더없이 궁금한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세계 

세계를 이끈 여성 코코 샤넬에 대한 스타일리시 아트북!

 

“명성이 계속되면 전설이 된다.” 

_코코 샤넬, 1935

 

전설이 된 그 이름, 코코 샤넬

여성을 자유롭게 하다!

스타일로 혁명을 일으킨 패션 아이콘, 코코 샤넬

 

고아원 출신의 소녀, 파리 패션계에 진출하다

코코 샤넬, 여성을 불편한 옷에서 해방시키다

코코 샤넬, 71살의 복귀 그 자체로 전설이 되다

 

“코코 샤넬은 그 누가 정해준 길로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_코코 샤넬, 1944

 

우리가 알고 있는 가브리엘 ‘코코’ 샤넬(1883?1971)은 수많은 스타일을 성공시킨 패션 디자이너이며 샤넬 하우스의 창립자이자, 60년 동안 프랑스 파리의 오트-쿠튀르를 휘어잡았던 천재입니다. 하지만 코코 샤넬이 파리 리츠 호텔에서 34년 넘게 살았다는 사실, 그녀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대공이나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과 낚시를 즐겼으며, 그들보다 낚시 실력이 더 뛰어났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향수 샤넬 No. 5의 소유권을 팔아버리고, 그 후 20년 넘게 소유권을 회복하려고 애썼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포그래픽 : 코코 샤넬》은 코코 샤넬에 대한 검증된 사실과 숫자들을 바탕으로 그녀의 생애와 작품세계, 지금까지 이어지는 명성을 한눈에 들어오게 구성하였습니다. 화려한 패션쇼 무대에 가려진 디자이너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샤넬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코코 샤넬이 남긴 유산은 말 그대로 여전히 살아 있다. 

코코 샤넬을 둘러싼 수백 가지 이야기와 끝나지 않는 우아함 속에서! 

 

그 어떤 소설보다 비현실적이다! 

누구와도 같지 않았던 코코 샤넬, 패션으로 여성의 자유를 실현시키다 

 

“20세기가 지나면 프랑스에는 세 명의 이름이 남을 것이다. 

드골, 피카소 그리고 샤넬”

_앙드레 말로

 

“그녀는 검정색 풀오버 스웨터와 열 줄짜리 진주목걸이로 

패션의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_크리스티앙 디오르

 

▶▷ 지방 소도시의 ‘어린 재봉사’로 출발한 가난한 소녀는 첫 번째 연인을 따라 몇 년 동안 시골에 묻혀 있다가 프릴과 레이스, 고통스러운 코르셋의 시대에 깔끔하고 단순한 매력을 지닌 옷과 함께 등장했다. 코코 샤넬은 우아하며 보이시한 스타일을 선보임으로써 패션의 도시 파리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 코코 샤넬은 러시아의 망명귀족부터 영국 귀족집안에 이르는 다양한 상류층 남성들과 긴밀하게 교제했다. 또한 그녀는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의 모임을 오가며, 피카소를 비롯한 예술가들을 매료시키기도 하고 후원이 필요한 여러 예술가들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기도 했다. 

▶▷ 《인포그래픽 : 코코 샤넬》은 샤넬이 지닌 다양한 얼굴들 - 버림받은 아이, 성공한 사업가, 실연당한 연인, 예리한 독설을 던지는 믿음직한 친구 등을 비롯하여 샤넬의 공적인 모습과 사적인 모습이 서로 얽혀 있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전설적인 패션 아이콘 샤넬의 세계를 보다 쉽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보위
 

비주얼 스토리텔링인포그래픽으로 읽는 데이비드 보위

  

그들의 인생은 결코 흑백 화면처럼 단조롭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하는그래서 더없이 궁금한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세계

팝 문화의 아이콘 데이비드 보위에 대한 스타일리시 아트북!

  

내가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지만그 길이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_데이비드 보위, 50번째 생일 콘서트에서

  

2016년 1월 10한 남자의 죽음으로 전 세계가 비통에 빠졌다.

그는 이틀 전 새 앨범 <블랙스타>를 발표해 대중과 평단의 극찬을 받고 있었다.

지기 스타더스트스타맨야윈 백인 공작… 뭐라 부르든

별이 되어 우주로 간 그 이름데이비드 보위

  

은하계를 유랑하다 우연히 지구로 떨어졌던 사나이,

혁신적인 뮤지션이자훌륭한 배우,

그리고 모든 뮤지션들의 우상이었던 데이비드 보위

  

나는 용을 때려잡은 적 없다그저 음악을 만들었을 뿐이다.”

_데이비드 보위영국 기사 작위를 거절하며 한 말

  

2016년 1월 10보위의 죽음은 특히 더 충격적이었다.

바로 이틀 전 69살 생일에 25번째 앨범 <블랙스타>(Blackstar)를 발매하여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한 직후였기 때문이었다그토록 강력하고 창의적인 컴백 이틀 뒤 암으로 사망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믿기지 않았다지구를 초월한 존재안무로 구성한 듯한 삶삶과 예술의 융합으로 요약할 수 있는 보위의 핵심 주제는전 세계를 비탄에 빠뜨린 이 마지막 예술 행위로 극대화되었고 그의 유산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팝의 얼굴을 바꾼 사람

_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

  

우리는 데이비드 보위의 아이였다.” _펫숍 보이스

  

지구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 같았던 한 인간

인간 그 이상을 갈망했던 존재데이비드 보위

  

아폴로 11호 달 착륙의 상징이 된 노래,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

베를린 장벽을 넘어 동독까지 울려 퍼진 “Heroes”

대중과 평단의 극찬을 받는 앨범 발매 이틀 뒤 사망마지막 유작 앨범

  

우리는 영웅이 될 수 있어단 하루라도

(We can be Heroes, just for one day)

_“Heroes” 가사 중에서

  

데이비드 보위(1947-2016)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가수이자 작곡가였으며그의 가사퍼포먼스변화를 거듭하는 페르소나가 50년여 동안 팝 문화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을 대중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아마도 보위가 색소폰고토비올라를 비롯하여 14가지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다는 것최초로 다운로드 가능한 곡을 발표한 뮤지션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이기 팝(Iggy Pop)과 함께 베를린 아파트에서 살았다는 것이나 앨범이 1억 4천만 장이나 팔렸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포그래픽 데이비드 보위는 데이비드 보위에 대한 검증된 사실과 숫자들을 바탕으로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명성을 한눈에 들어오게 구성하였습니다음악 뒤에 감춰진 아티스트 보위의 여러 매력적인 사실과 한 인간으로서 보위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 데이비드 보위의 인생은 고정관념과 관습에 저항했고보위의 예술은 획일화를 거부했으며 모든 경계가 모호했다보위는 카멜레온이었다뮤지션배우예술가이자 스타일의 아이콘을 차례로 넘나들며 우주인번쩍이는 왕소울 소년(soul boy), 은둔자이야기꾼중독자절대 금주가연인남편아버지의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했다하지만 보위는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 팬들에게 영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쉼 없이 일깨워준 문화 개혁가였다.

▶▷ 깡마른 몸매에 독특한 눈매매혹적인 자태까지보위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데이비드 보위(본명 David Jones)는 전쟁 직후 런던 교외의 빈궁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1969년 데이비드 보위로 개명하고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의 상징적인 음악이 된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를 발표했다보위는 전 인류가 기존의 한계를 넘어 부상하고 있던 시기에 음악가로 데뷔하여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로 진정한 스타의 반열에 진입했다번개 맞은 듯한 헤어스타일에 우주 미아 의상을 입은 보위는 전위적인 퍼포먼스와 음색으로 청중을 전율에 떨게 만들었다.

▶▷ <헝키 도리>(Hunky Dory), <지기 스타더스트의 흥망성쇠와 화성에서 온 거미>(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Spiders from Mars), <알라딘 세인>(Aladdin Sane)을 비롯한 보위의 명반들은 길을 잃고 헤매는 청소년에게 길을 안내하는 별과도 같은 존재였다남들과 조금 다르거나성 정체성이 남다르거나제 구실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누구나 보위를 보면 이런 모든 것이 다 괜찮다고 느끼게 되었다.



◆ 시리즈 소개

 

비주얼 스토리텔링, 인포그래픽! 그래픽으로 읽는 위대한 삶!

인포그래픽(infographics) 시리즈는 세계의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합니다. 그들의 삶에서 찾아낸 50가지의 사실, 시간, 생각, 습관, 업적을 인포그래픽만으로 생생하고 간결하게 전달합니다. 

 

“한 명의 예술가를 한 개인이 아닌 

수많은 아이콘의 집합체로 바라본다면, 

예술가와 그 작품세계가 우리의 문화와 의식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더욱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반 고흐
 

아이콘으로 본 반 고흐

소개의 글

01 : 반 고흐의 생애

02 : 반 고흐의 세계

03 : 반 고흐의 작품

04 : 반 고흐의 유산

주변인물

색인


제인 오스틴
 

아이콘으로 본 제인 오스틴

소개의 글

01 : 오스틴의 생애

02 : 오스틴의 세계

03 : 오스틴의 작품

04 : 오스틴의 유산

주변인물

색인



모네
 

아이콘으로 본 모네

소개의 글

01 : 모네의 생애

02 : 모네의 세계

03 : 모네의 작품

04 : 모네의 유산

주변인물

색인

 

다빈치

아이콘으로 본 다빈치

소개의 글
01 : 다빈치의 생애
02 : 다빈치의 세계
03 : 다빈치의 작업
04 : 다빈치의 유산
주변인물 

색인​ 


클림트
 

아이콘으로 본 클림트 

소개의 글 

01 : 클림트의 생애 

02 : 클림트의 세계 

03 : 클림트의 작품 

04 : 클림트의 유산 

주변인물 

 

색인



프리다 칼로
 

아이콘으로 본 프리다 칼로

소개의 글

01 : 프리다 칼로의 생애

02 : 프리다 칼로의 세계

03 : 프리다 칼로의 작품

04 : 프리다 칼로의 유산

주변인물

 

색인



코코 샤넬
 

아이콘으로 본 코코 샤넬

소개의 글

01 : 코코 샤넬의 생애

02 : 코코 샤넬의 세계

03 : 코코 샤넬의 작품

04 : 코코 샤넬의 유산

주변인물

 

색인



데이비드 보위
 

아이콘으로 본 보위
소개의 글

01 : 보위의 생애

02 : 보위의 세계

03 : 보위의 작품

04 : 보위의 유산

주변인물

 

색인

도서소개

반 고흐



제인 오스틴



모네




다빈치



프리다 칼로





코코 샤넬




데이비드 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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