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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왈 알아야 면장을 하지

공자왈 알아야 면장을 하지

  • 최동군
  • |
  • 담디
  • |
  • 2019-01-11 출간
  • |
  • 592페이지
  • |
  • 152 X 225 mm
  • |
  • ISBN 978896801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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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조선판 ‘너 자신을 알라’
논어에 曾子曰 吾日三省吾身(증자왈 오일삼성오신)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하루 세 번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일성록(日省錄)은 바로 이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일성록(日省錄)은 정조가 세손으로 있을 때부터 임금의 언행과 동정을 일기체로 적고, 그가 왕위에 오른 지 3년 후 1779에 규장각을 설치하여, 각신(閣臣)들로 하여금 왕이 조정에서 행한 갖가지 사실들을 기록하게 한 것이다.
책의 이름을 일성록(日省錄)이라 지은 까닭은 모든 백성의 어버이이자 모범이 되어야 하는 군주가 하루하루 자신의 언행에 대해 반드시 돌아보고 반성하여 더 나은 지도자가 되어야 됨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관덕정(觀德亭), 훌륭한 덕행을 내보이는 정자??
공자가 당시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기본 교육내용인 육예(六藝)를 살펴보면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로 나눠진다.
‘예’는 예법, ‘악’은 음악, ‘사’는 궁술(弓術), ‘어’는 마술(馬術, 말을 모는 기술), ‘서’는 서도(書道), ‘수’는 수학(數學)으로, 이 중에서 ‘사(射)’와 ‘어(御)’는 바로 ‘전차를 몰고 그 위에서 활을 쏘는 것’을 교육시킨 것이다.
공자의 사상을 따랐던 우리 조상들은 문관이라 하더라도 활쏘기 연습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
활쏘기 연습을 위해 만든 정자[사정(射亭)]들 중에서 유독 관덕정(觀德亭)이라는 이름이 많은데 이는 사서오경의 하나인 예기(禮記)의 사의(射義)편 제2장과 제3장에서 “활을 쏜다는 것으로써 덕(德)이 왕성함을 볼[觀] 수 있다.”는 구절과 “활과 화살을 살펴서 견고히 잡은 연후에야 과녁에 적중할 것을 가히 말할 수 있고, 이것으로써 가히 덕(德)의 행함을 볼[觀] 수 있다.” 라는 구절에서 관덕이란 말을 발췌했기 때문이다.

궁궐 양쪽에 있는 커다란 솥은 어떤 의미일까?
하나라 우왕은 천하를 아홉 개의 주(州)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그 아홉 개의 주에서 청동을 모아오게 한 뒤 모아온 청동으로 세 발 달린 큰 솥, 즉 정(鼎)을 만들었다. 그 솥의 이름을 구정(九鼎)이라고 했는데, 이는 곧 왕권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구정을 빼앗다’라는 말은 곧 ‘천자의 자리를 빼앗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복궁근정전’과 ‘덕수궁중화전’ 건물 앞의 양쪽에는 정(鼎)이 세워져 있어서 임금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문화재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쳐진 모든 것들이 한자의 본뜻보다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알아야 왜 그러한 이름들이 붙여졌는지 알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웬만한 우리 문화재 현판은 대부분 시경이나 서경, 논어, 주역 등에서 발췌하여 지어졌다. 조선왕조실록 속의 기록을 보아도 위 책들 내용이 수시로 인용되어 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공자가 있다. 공자를 모르면, 우리 역사와 문화재를 앞에 두고도 담벼락을 마주하고 서있는 듯 답답한 형국이 된다.

이 책은 논어 일부와 사마천의 사기 중 <공자세가> 전문을 살펴, 공자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했다. 공자를 제대로 알아야 우리 역사와 문화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쪼록 이 서적이 우리 문화재와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는데 작은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목차


004 머리말
008 일러두기

016 공자와 유교
018 _ 조선과 유교와 공자
021 _ 천자문(千字文)과 중국고대사
025 _ 삼황오제 중 삼황(三皇)
027 _ 삼황오제 중 오제(五帝) - 황제(黃帝)
030 _ 삼황오제 중 오제(五帝) - 전욱과 제곡
032 _ 삼황오제 중 오제(五帝) - 요(堯)임금
037 _ 삼황오제 중 오제(五帝) - 순(舜)임금
039 _ 하(夏)왕조의 시작 - 우(禹)임금
042 _ 하(夏)왕조의 몰락 - 걸왕(桀王)
045 _ 상(商)왕조의 시작 - 탕왕(湯王)
048 _ 상(商)왕조의 몰락 - 주왕(紂王)
051 _ 주(周)왕조의 시작 - 무왕(武王)
054 _ 주(周)왕조의 절정 - 주공(周公)
059 _ 주(周)왕조의 쇠퇴 - 유왕(幽王)
063 _ 주(周)왕조의 몰락 - 동주(춘추전국)시대
069 _ 공자는 누구인가?
076 _ 공자의 생애
080 _ 공자의 사상
082 _ 공자의 제자들
088 _ 공자연표
090 _ 유교란 무엇인가?
091 _ 유교사상의 역사
097 _ 문묘 배향인물

102 공자의 언행 (논어 중에서)
104 _ 학이(學而) 편
105 _ 공부하는 것이 과연 기쁘고 즐거운가?
109 _ 친구를 의미하는 글자로 굳이 왜 벗 우(友)가 아닌 벗 붕(朋)을 썼을까?
111 _ 일자 무식쟁이도 군자가 될 수 있을까?
113 _ 공자는 돌직구를 선호했다?
118 _ 국왕의 일기인 일성록도 논어에서 따온 이름이다
122 _ 공자시대 전쟁은 보병전 위주가 아니라 전차전(戰車戰)이었다
129 _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미친 소리!
135 _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고 한 공자는 처세술의 달인인가?
138 _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전설은 모두 다 허구다!
145 _ 부모의 거상(居喪)기간이 ‘3년상’으로 된 이유는?
150 _ 말보다 행동이다. 그리고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惡)의 편이다
157 _ 위정(爲政) 편
158 _ 고려 말 충신 정몽주의 이름 출처는 논어다
165 _ 시경은 노래가사 모음집이다
170 _ 나이 40이면 과연 ‘불혹(不惑)’인가? 아니면 남의 인생 ‘부록’ 인가?
175 _ 고전을 공부할 것인가? 최신학문을 공부할 것인가? 둘 다 해라!
179 _ 당신은 대기만성(大器晩成)의 뜻을 제대로 알고 있나?
182 _ 공자는 무려 2500년 전에 이미 민주주의를 외쳤다!
186 _ 죽어라고 공부만 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둡다?
189 _ 죽음을 부른 띄어읽기 사건
196 _ 제비도 ‘논어’를 읽는다?
200 _ 논어의 편집구성 오류에 대한 또 다른 단서
202 _ 팔일(八佾) 편
203 _ 현재 우리나라의 종묘에서 황제 춤을 추는 이유
211 _ 제사를 지낼 때 음악이 연주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215 _ 예(禮)란 남에게 보여주기보다는 근본에 힘써야 한다
219 _ 내 탓이오! 운동은 이미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224 _ 공자의 이름과 자(字) 속에는 둘째 아들임을 알려주는 단서가 있다
228 _ 과녁은 표적으로 사용된 가죽을 뚫는 관혁(貫革)에서 변형된 말이다
233 _ 희생양은 과연 양(羊)이었을까?
242 _ 임금에 대한 절대복종은 단언컨데 충(忠)이 아니다!
246 _ 더 이상의 인신공양을 막은 것은 제갈공명의 만두(饅頭)였다
257 _ 이인(里仁) 편
258 _ 공자가 꼽은 한국 최고의 동네는 숭인동(崇仁洞)이다?
260 _ 원수를 사랑하라? 공자 왈, 천만의 말씀!
264 _ 공자는 굵고 짧게 사는 것을 원했다?
267 _ 대전 회덕(懷德) 분기점의 지명은 논어에서 따온 것이다
272 _ 사회의 각종 이익집단들은 반드시 욕먹을 각오해라!
276 _ 바보야, 문제는 너야!
280 _ 공자 도(道)의 핵심인 충서(忠恕)를 충성과 용서로 해석하는 자는 우매하다!
285 _ 국익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말하는 자들은 듣거라! 너희는 소인배들이다!
290 _ 공자 왈, 너 크면 절대 저렇게 되지 마라! 진짜?
294 _ 공자님, 부모님과 의견충돌이 있는데 어떡하죠?
297 _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놀다가 견훤에게 죽었다? 겨울에 야외에서 웬 잔치?
303 _ 당신은 부모님의 연세를 알고 있는가?
306 _ 성공하려면 약속을 잘 지켜라
307 _ 항상 덕을 쌓고 살아야 한다
310 _ 듣기 좋은 말도 한두 번으로 끝내라
313 _ 공야장(公冶長) 편
314 _ 공자의 사위는 살인용의자였다
317 _ 실패로 끝난 자공의 표절 작전
320 _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324 _ 공자 왈 세상은 적당히 살자
328 _ 옹야(雍也) 편
329 _ 군주(君主)는 남면(南面)하라!
332 _ 공자는 그의 이름에서 머리가 짱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36 _ 공자는 자식의 죽음보다 수제자 안회의 죽음을 더 안타까워했다
339 _ 공자와 박정희의 공통점은? 하면 된다!
342 _ 공자의 제자 중에는 부자지간도 있고 삼형제도 있다!
346 _ 하라는 것은 안하고 하지말라는 것만 하는 것이 인간이다!
348 _ 공자는 의외로 뒤끝(?)있는 인물이었다
352 _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354 _ 공자는 물보다는 산을 더 좋아했을 것 같다
357 _ 중용에서 변화는 지극한 정성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368 공자의 일생 (사마천의 공자세가 중에서)
370 _ 탄생 ~ 10대(志于學,지우학)
371 _ 공자는 진짜로 야합(?)해서 태어난 천한 신분이었다
376 _ 공자의 이름은 ‘짱구’라는 뜻이다
380 _ 공자는 과연 아버지의 무덤위치를 몰랐을까?
384 _ 공자시절 노나라 임금마저 갈아치우는 계 씨 가문
388 _ 나이 17세의 어린 스승, 공자
393 _ 20대(弱冠,약관)
394 _ 키다리 아저씨, 공자!
397 _ 유가와 묵가, 도가의 원조 논쟁
404 _ 초나라의 군주를 공(公)이라 하지 않고 왕(王)이라 칭한 이유는?
411 _ 30대(而立,이립)
412 _ 조강지처를 대하는 안영, 백리해, 강태공의 태도
419 _ 제나라에서 보낸 제1차 망명시기
423 _ 공자는 긴축재정을 선호했다
426 _ 공자의 출셋길을 막은 안영이었지만 공자는 끝까지 그를 존경했다
434 _ 40대(不惑,불혹)
435 _ 공자를 테스트하는 실세 대부 계환자
439 _ 공자는 당시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었다
446 _ 양호를 두려워한 공자
453 _ 50대 전반(知天命,지천명)
454 _ 공자의 예견으로 막은 양호의 반란
457 _ 반란군의 유혹에 흔들린 공자
461 _ 드디어 공자에게도 등용문이 열렸다
467 _ 싸우지도 않고 제나라에 빼았겼던 땅을 되돌려 받은 공자
475 _ 삼환의 근거지를 없애는 와중에 발생한 공산불뉴의 반란
481 _ 소정묘 주살사건에 대한 진위논란
485 _ 60대(耳順,이순+주유천하)
486 _ 제나라의 미인계에 놀아나는 노나라
493 _ 14년간의 정치적 방황을 시작하다
497 _ 공자를 배반한 제자 염구
502 _ 공자를 초빙하려는 계강자
506 _ 14년 만에 노나라로 돌아온 공자
510 _ 70대 전후(從心,종심) ~ 사망
511 _ 귀국은 했으나 등용되지 못하는 공자
513 _ 모든 예법을 총정리한 공자
517 _ 공자는 훌륭한 작곡가 겸 편곡자였다
524 _ 시경은 역사적 내용도 담고 있다
527 _ 공자는 선천적 천재(天才)가 아니라 노력형 인재(人材)였다
531 _ 공자의 네 가지 없는 네 가지?
533 _ 공자는 이익을 내세우지 않았고 맹자도 마찬가지였다
537 _ 공자는 결코 나서는 법이 없었다
540 _ 공자는 귀신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545 _ 원래 기린은 목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
550 _ 수제자 안연(안회)의 죽음
554 _ 공자는 충신의 대명사 백이, 숙제를 칭송했다
560 _ 공자는 춘추를 저술했는데 그 의미는 역사란 뜻이다
568 _ 공자는 제자 자로의 죽음 후에 73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575 _ 사망 이후
576 _ 자공은 공자를 위해 3년상이 아닌 6년상을 치렀다
582 _ 공자의 손자 자사는 중용을 지었다
586 _ 공자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

592 _ 사진 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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