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쓰다, 문장을 찍다
이 책 《사진을 쓰다》는 1989년 〈한겨레〉에 입사하여 30년간 사진기자로 활동한 저자 곽윤섭의 6번째 단독 저서이다. 《나의 첫 번째 사진책》을 시작으로 그동안 저자가 출간한 책들이 모두 크게 보아 ‘사진을 다루는 법’에 대한 것들이었다면, 이번에는 처음으로 에세이를 선보인다. 이름하여 ‘사진이 있는 에세이’이다.
모두 44개의 에세이에서 사진은 다양한 역할로 글과 함께한다.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흘러나온 단상이 한 편의 글이 되기도 하고, 먼저 쓴 글을 더욱 깊게 만들 용도로 사진을 찾아 쓰기도 한다. 글에 나온 장소를 소개하는 사진이 있는가 하면, 글과 내용상으로는 전혀 무관한, 또다른 심상을 전달하기 위한 사진도 있다.
“ ‘사진이 들어 있는 수필’을 쓰고 싶었다. …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그림이 없이 글만 까맣게 들어 있는 책들을 숱하게 읽으면서도 문득문득 아름다운 그림이 있는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생각이 났다.”
저자는 이 책을 쓰며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속 그림들을 떠올렸다. 우리 기억 속에 남겨진 교과서 삽화가 그렇듯, 이 책의 사진들은 각기 다른 형태와 용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따뜻하고 사람 냄새가 난다. 저자의 글과 사진이 항상 보여주는 포근한 매력이다.
기록으로서의 사진
에세이 각각의 소재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길고 짧은 길이의 국내?외 여행기, 기자 생활에서 생긴 에피소드에 대한 글에서 일상의 단상을 기록한 짧은 글까지, 사진은 다양한 방식으로 글과 만나 한 권의 책을 만들어 간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는 역시 여행이다. 쿠바, 일본, 순천만, 하동 등 다양한 국내.외 여행지에서 남긴 사진과 글들이 들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쿠바 여행기이다. 다른 글들이 모두 한 편으로 이루어진 데 반해 ‘무려’ 4편으로 이루어진 쿠바 여행기에서는 사진 애호가들에게 포토제닉한 여행지로 널리 알려진 쿠바를 만난 저자의 기쁨이 느껴지는 듯하다. 특히나 쿠바 현지인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담긴 인물사진들이 인상 깊다.
또한 에세이 중 일부는 30년간 〈한겨레〉 사진기자로서 다양한 취재현장을 누빈 저자의 취재 후일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1년 최초의 남북한 탁구 단일팀 취재기, 2000년 평양 방문기 등의 글에서는 사진기자 취재과정의 단편을 엿보는 즐거움과 함께 신문지면에는 미처 담지 못한 현장의 살아 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사진 실용서가 아닌 에세이 모음집이지만, 10년 넘게 사진 강의를 해온 관록의 힘일까, 책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사진에 대한 짧은 팁 또한 전수받을 수 있다. 구체적인 기술적 조언 대신 일상에서 사진을 찍을 때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벼운 수칙이 글 중간중간에 녹아 있는 데서 저자의 내공이 새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