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 명언집》에서 보노보노와 숲속 친구들이 나눴던 명대사들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그들이 숲에서, 강에서, 바다에서 읊조렸던 언어는 곧 힘이 되고 온기가 되고 등불이 되는 명언(名言)으로 레벨업되었습니다. 《보노보노》를 읽는 즐거움은 ‘상수(常數)며 그들의 언어가 펼쳐내는 파노라마는 삶의 우여곡절에 작용하는 ‘변수(變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뼈아픈 실패나 그로 인한 좌절과 종종 만납니다. 그래서 실의에 빠져 가뜩이나 힘들고 아픈데 누군가 위로와 충고를 한답시고 또 뼈를 때립니다.
“열심히 했는데 실패한 거야? 그런데 진짜 열심히 했어? 뭐, 열심히만 해선 안 돼. 죽도록 해야지!” 얼마나 아플까요. 그리고 위로랍시고 어깨를 두드리며 책을 건넵니다.
“이거 실패를 이기는 책인데. 아주 좋아. 이거 읽고 다시 분발해!” 차라리 참견이나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럴 땐 다그치는 거보다 툭툭 던지는 몇 마디의 말이 더 절실합니다.
정답만을 요구하는 세상을 향해, 나지막한 보노보노의 읊조림은 다른 답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틀린 답은 아니지요. 오랜 시간을 묵혀 둔 조언도 한몫합니다. 이제 그들이 전해준 ‘말의 힘’을 믿는다면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삶은 양면입니다.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그러나 괴로운 일도 반드시 끝나고 즐거운 일도 반드시 끝나게 돼 있다는 것을 잊고 삽니다. 이 작은 일깨움이 숲을 지나와 우리한테 닿습니다. 《보노보노》에 녹아 있는 이야기와 말의 힘이, 지친 우리에게 따듯한 어깨를 나누어 줍니다. 숲속에서 반짝였던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말들. 그 중에서 골라서 건져낸 묶은 것이 이 책에 꽉 차 있습니다.
한국어판을 만들면서 책의 제목을 정하는 데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보노보노 명언집》. ‘명언집’이란 다소 상투적인 단어에 부담이 있었습니다. 좀 더 신선하고 세련된, 이들의 빛나는 언어들을 딱 집어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면면에서 반짝이는 언어는 ‘명언’이라는 확고하고 직관적인 명사를 대체할 단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마도 원작 출판사와 이가라시 미키오 선생도 이 책을 내기로 하면서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우리 앞에 놓은 세계는 가파르고 험합니다. 뒤로 물러설 수 없다는, 룰도 있습니다. 과학과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개인 간, 계층 간의 격차는 더욱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스템만 있을 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온기란 없습니다. 그러나 절망하고 두려워만 하지 말라고 보노보노가 그 도톰함 입술을 꼬물거리며 말을 건넵니다.
“아픈 걸 작게 볼 수 있다면, 아프지 않은 걸 크게 볼 수 있을지도 몰라. 슬픈 걸 작게 볼 수 있다면, 슬프지 않은 걸 크게 볼 수 있을지도 몰라.”
철학자 우치야마 타카시 교수가 보노보노와 숲속 친구들, 그리고 세상 모든 독자에게 전하는 말도 꽤 의미심장합니다.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숲은 무사하다. 그리고 영원하다. 변용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사랑스러움만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