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는 4월부터 짙푸른 녹음의 8월까지. 작가는 구례에서 하동까지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다. 걷고 또 걸었던 둘레길에서 만난 자연과 사람, 동물들 그리고 마을.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찌는 듯이 덥고.
하지만 작가는 그 경험들을 유쾌하고 톡톡 튀는 시선으로 그림에 담아내고 글로 풀었다. 작가가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는 책에 생동감을 더한다. 때로는 친구와, 때로는 가족과, 때로는 혼자 걸었던 둘레길에서 작가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
비오는 구례 오일장에서 사 신은 만 원짜리 꽃무늬 장화에서 이 걷기 여행은 시작한다. 여행 첫 날부터 오는 비에 실망할 법도 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꽃무늬 장화를 신고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부러 물웅덩이를 찾아 첨벙거리며 유쾌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홀로 떠난 여행의 밤 버스에서 날 따라오던 달처럼 둘레길을 걷는 내내 작가를 따라오고 또 감싸주던 지리산이 이 여행의 친구였다. 그리고 낯선 여행자를 무심하게 챙기는 시골 어르신들.
이 책을 읽다보면 둘레길을 걷던 작가가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무뚝뚝하지만 세심하게 가끔은 영화의 히어로처럼 등장하는 사람들.
넘쳐흐르는 물을 보며 발만 동동거리고 있는데, 그 순간 빗소리를 뚫고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우두두두두. 곧 코너를 돌아 모습을 드러내는 경운기 한대.
“할아버지... 길이 막혔어요.”
“타라!”
다 건너니
“이제 내리라.” 하시고 뒤도 안돌아보고 출발하는 할아버지.
빗속을 뚫고 가는 할아버지 뒷모습이 아이언 맨 못지않았다.
- 아이언 맨 中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증권맨 아저씨, 비를 피하느라 들어간 정자에서 만난 고사리 따는 아저씨, 빗길에 발을 동동구르다 만난 아이언 맨 할아버지, 같은 길을 걷는 등산객, 마을 정자나무 아래에서 뱀 조심을 일러주시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여행은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우연처럼 우리 곁에 잠시 데려다 주기도 한다.
하지만 둘레길을 걷는 다면 사람들보다 동물이나 여러 가지 식물들, 굴러가는 돌멩이들 같은 것들을 더 많이 만나고 관찰하게 된다. 책 중간 중간 작가가 그린 걸으며 만난 것들에는 어쩌면 스쳐지나 갈 수도 있는 이런 여러 가지 사물들에 대한 작가의 관찰력과 애정이 느껴진다.
지리산 둘레길을 가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며 ‘맞아 여기 그랬었지’, ‘이런 곳이 있었나?’하는 상반된 감상을 갖게 될 지도 모르겠다. 내 경험과 작가의 경험이 만나 빚어내는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될 수도.
만약 아직 둘레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들고 한번 떠나보는 건 어떨까. 중간 중간 구간마다 그려진 지도가 꽤 도움이 될 듯하다. 아니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내일 갈 곳을 정해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