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행위가 모두 계몽의 범주
철학이라는 전문 분야에서 사용하는 ‘계몽철학’ 또는 ‘계몽주의’, ‘계몽사조’ 등과는 달리, 일상어로서의 ‘계몽’이 갖는 의미는 매우 추상적이고, 그 지칭하는 범위도 넓다. 더욱이 역사학이나 교육학 분야에서 다루는 계몽의 의미를 고려한다면, 가르치는 모든 행위가 다 계몽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
‘계몽’이라는 용어는 1880년대 한문 신문이었던 ≪한성순보≫에도 등장하기 시작하며, 1900년대에 이르러 일상어로 널리 쓰이기 시작하였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계몽편(啓蒙編)’이라는 아동용 교과서가 있었지만, 일상에서 계몽이라는 용어가 번지기 시작한 것은 이 시기부터로 판단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한국 계몽운동 연구의 본질적 고민
우리나라의 계몽사상이 서양과 달리 지식 보급론이나 문자 보급론을 지시하는 것처럼 해석되었던 이유도 본질적으로는 계몽이 갖고 있는 교육적 기능 때문이었다. 특히 1920~30년대 동아일보나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활발해 전개되었던 ‘브나르도 운동’은 그 자체가 문자 보급 운동의 성격을 지녔다.
‘계몽’이라는 표현은 ≪한성순보≫ 1883년 12월 20일자 ‘영국지략’에도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개항 직후 처음 발행된 신문인 ≪한성순보≫에서는 ‘지구론’과 ‘세계지지’에 관한 기사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서구의 르네상스가 지리상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특히 순보 창간호의 ‘지구도해’, ‘지구론’, ‘논양주(論洋洲)’ 등과 같이 세계지지(地誌)를 수록한 것은 세계에 대한 견문을 넓혀 경세(經世)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의 계몽운동이 축자적 의미로서 ‘민지개유’와 ‘동몽계발’을 목표로 하는 지식 보급 운동의 성격과 이성주의・과학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서양의 계몽철학의 혼종성을 보인다고 할 때, 한국 계몽운동 연구에서 본질적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가 등장한다. 그 중 하나는 개유(開牖)의 도구인 지식, 특히 신지(新知)의 성격을 규명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계몽운동의 역사에 반영된 계몽성, 좀 더 구체적으로는 근대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 책의 구성
제2장은 한국 근현대 계몽시대의 학문과 사유 형식의 하나로 ‘문명 개화를 위한 지식 보급론’이 갖는 의미에 대해 규명하고 있다.
제3장은 인간관과 자의식의 문제,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윤리의식의 문제 등이 어떻게 형성되며 어떤 변화를 거치는지,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있다.
제4장은 근대 계몽기의 사회 담론과 국가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과 의미를 규명하고 있다.
제5장은 광의의 계몽과 협의의 계몽이 어떤 상관성을 보이는지를 규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