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 운동의 주체가 누구이며,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근대 지식 형성 과정에서 ‘국가’에 대한 인식, ‘인민’ 또는 ‘국민’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진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당시의 지식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규명하는 문제는 계몽 운동의 주체가 누구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일제 강점기의 유학생 실태와 계몽 담론을 살피는 일은 한국 계몽 운동의 주체와 의미, 그 한계를 고찰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1장에서는 이른바 개화 지식인과 보수적인 지식인의 정신세계를 살피는 데 중점을 둘 것이며, 성리학적 전통이 개신 유학파의 애국계몽론으로 이행되는 과정을 논의하였다.
근대 이전의 지식과 계몽 정신의 성격을 바탕으로 제2장에서는 근대 지식인을 유형화하고, 개항 직후 형성된 유학생 담론을 분석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근대 계몽기의 유학생 관련 담론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의 해외 유학생 역사는 ‘관비 유학생 파견 이전(1880~1894)’, ‘관비 유학생 시대(1895~1905)’, ‘국권 침탈기의 유학생 시대(1905~1910)’, ‘국권 상실기의 유학생 시대(1910~1945)’로 나눌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각 시기별 유학생 담론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를 고려하여 제3장에서는 근대 계몽기(1880~1910)의 유학생 역사와 유학생 담론을 기술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근대 계몽기 유학생 단체와 계몽 활동을 좀 더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유학 지역에 따른 특성, 유학생들의 학문 활동, 계몽 활동, 사회 활동을 좀 더 자세히 살핌으로써, 계몽시대를 이끌어 간 주체로서 유학생이 갖는 의미를 규명하고 있다.
제5장에서는 국권 상실기 유학생 실태와 유학 담론의 변화, 그 의미와 한계 등을 검토학고 있다. 식민 통치하의 유학생은 대부분 일본으로 간 유학생들이지만, 전시대에 비해 다양한 경로로 구미에 유학한 학생들이 늘어났다. 구미 유학생 가운데 상당수는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들과 재일 유학생 사이에는 계몽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