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물결을 따라서
수학사 여행을 떠나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명화’를 감상하면서 ‘수학사’를 한눈에 살펴본다. 그것도 여행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수학사를 둘러볼 수 있다. 수학사 여행은 오랜 옛날 선사시대부터 시작한다. 선사시대에 수학이 존재했을 리 만무하지만, 수학적 사고가 생기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한다는 데 의미를 둔다. 선사시대에 숫자는 없었지만 그림과 기호가 있었으므로 수학의 역사보다 미술의 역사가 더 길다고 할 수 있다. 수학은 고대 오리엔트 시대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농사, 측량, 천체 관측 등 실용적 목적이 강했다.
유독 문명이 발달한 그리스에서는 수학도 탁월하게 발달했다. 이를 통해서도 수학은 인류의 역사와 뗄 수 없는 문명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종교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중세는 예술의 발전이 주춤했고, 수학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건축에서만큼은 수학이 활용되어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 건축이 꽃을 피웠다.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영기하학이 탄생했다. 기존의 유클리드기하학에서는 임의의 직선은 아무리 연장해도 만나지 않지만, 사영기하에서는 양 끝이 만난다(무한원점). 사영기하학은 중세의 평면적인 그림에서 벗어나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한 화가들에 의해 촉진된 기하학이다. 여기서 원근법이 생겨났고 소실점이 발견된다. 저자는 원근법적 공간 계산이 뛰어난 작품으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꼽는다.
수학의 혁명에서부터
수학의 변주까지…
르네상스 시대가 지나고 근대의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수학도 혁명적으로 발전한다. 갈릴레이, 뉴턴, 데카르트, 파스칼, 페르마 등 천재 수학자들이 폭발적으로 업적을 쏟아냈다. 이때 수학이 전문화되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우리가 수학을 복잡하고 어렵게 느끼는지도 모른다. 이 시기에는 해석기하학과 화법기하학이 발전하고 사영기하학이 이론 체계를 갖추었다. 근대 지식인들은 빛, 운동, 속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수학에서는 미분적분학을 발달시켰고, 미술에서는 바로크미술의 역동적인 표현 방식을 등장시켰다.
현대에 들어와 칸토어가 ‘집합론’을 발표했을 때 우연찮게도 미술 분야에서는 사물을 ‘점들의 집합’으로 보는 후기 인상주의의 점묘화법이 나타난다. 또 20세기 수학자들이 새로운 수학, 즉 토폴로지(위상기하학)의 세계를 열어갈 때, 미술에서도 피카소, 마티스 같은 입체파 화가들이 기존의 원근법을 파괴하고 추상의 세계로 나아갔다. 저자는 위상기하학과 추상화는 모두 같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최근의 다양한 문화 트렌드도 토폴로지적인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현대 수학의 변주 현상을 몇 가지 더 소개한다. 20세기는 양차 대전 등으로 인간 이성의 한계를 직면하는 시기이기도 한데, 수학에서도 호모 사피엔스의 한계를 비꼬는 패러독스가 등장했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프랙탈 이론도 현대 수학과 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동서양의 수학과 미술이
절대 같을 수 없는 이유?
개정판에는 제7부 「동서양의 수학과 미술의 비교」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저자가 흥미롭게 연구한 주제를 청소년의 수준에서 이해하기 쉽게 풀어 썼다. 우리가 배우는 수학사는 엄밀히 말하면 서양의 수학사이고, 미술사도 서양의 미술사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옛 동양에도 수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했을까? 저자는 중국과 한국을 예로 들면서 동양에도 수학이 존재했지만 서양처럼 하나의 학문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물품을 세고 인구를 조사하는 데 필요한 실용적인 산술에 불과했다고 지적한다.
한편, 저자는 수학에 대한 동서양의 사유 형식의 차이가 기하학과 미술 화풍에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본다. 서양의 화가들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까지 ‘한 점 투시화법’을 추구했지만, 동양은 ‘삼원법’이라는 중국 고유의 원근법이 있었다. 이렇게 원근법이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서양인이 분석적인 데 반해 동양인은 종합적이고, 서양인과 동양인의 빛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17세기부터 서양의 투시화법이 동양에 전해지지만 완전히 정착하지는 못했다. 이처럼 서양의 문화를 동양이 수용했지만 완전히 용해되지 못하는 이유를, 저자는 토인비 이론을 빌려 동서양의 민족 원형의 차이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무엇보다 동서양의 사유 형식이 어떻게 다르고 그것이 예술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었는지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