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말
2018년 국제사법과 국제소송 제6권의 간행과 더불어 국제상사중재법연구 제2권을 상재한다. 국제상사중재법 제1권을 상재한 것이 2007년이니 10년도 더 지났다. 이처럼 간격이 길어진 것은 저자의 게으름 탓이다. 제1권은 국제상사중재의 기본적인 논점을 다룬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1999년 UNCITRAL 모델법을 수용하여 중재법을 전면 개정한 것을 계기로 전과 달라진 논점들(중재법의 속지주의, 중재가능성의 해석론과 입법론, 분쟁의 실체의 준거법, exclusion agreement)을 다루었고, 뉴욕협약에 관하여 거의 100면에 걸쳐 비교적 상세히 논의하면서 예컨대 중재판정의 국적 결정처럼 1999년 중재법에 의하여 달라져야 하는 점 등 우리 중재법을 반영한 해석론을 전개하였다. 한국에도 중재실무는 하지 않으면서 국제상사중재법을 공부하는 연구자가 있음을 보여주자는 생각도 있었다. 저자로서는 보람 있는 작업이었지만 그렇다고 저자가 국제상사중재법의 전문가라고 자처하지는 않는다.
근자에는 2016년 중재법이 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저자도 중재법 개정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었음은 큰 보람이었는데 이는 아마도 저자가 제1권을 간행한 덕분이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2016년 중재법을 해설한 실무가들의 저서(김갑유 변호사 기타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변호사들의 공저와 임성우 변호사의 저서 등)가 간행된 것도 반가운 일이다. 제2권에서는 제1권을 기초로 더 까다로운 논점들, 즉 중재합의와 소송유지명령(anti-suit injunction), 사기에 의하여 획득한 외국중재판정의 승인과 공서위반 여부 그리고 한국에서 행해지는 ICC 중재에서 ICC 중재규칙과 한국 중재법의 상호작용을 다룬 논문들을 수록하였는데 이는 우리 국제상사중재법학의 기초를 다지는 의미가 있다. 또한 대한상사중재원(KCAB)의 2007년 국제중재규칙을 분석하고 평가한 논문을 수록하였는데, 저자로서는 공을 들였지만 2016년 국제중재규칙이 개정되었기에 자료로 처리하였다. 하지만 제2권의 핵심은 중재법의 개정과 관련된 쟁점을 다룬 논문들이다. 과거 구 중재법 하에서 그의 개정방향을 제시한 논문들과, 2016년 중재법에 관하여 발표한 논문들을 함께 수록하였다. 구 중재법의 개정방향을 다룬 논문을 수록하는 것은 다소 주저되었으나 2016년 중재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약적으로 증가한 해외직접구매에서 소비자의 보호방안을 국제중재의 맥락에서 검토하였다. 2016년 중재법이 국제거래의 당사자가 되는 소비자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데 소비자보호는 장래 중요한 개정의 착안점이 될 것이다.
국회는 2016년 ‘중재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중재진흥법)을 제정하여 2017. 6. 28. 시행하였고, 대한상사중재원은 2018. 4. 20. 기존 조직에서 국제중재 부문을 분리하여 국제중재를 전담할 국제중재센터(KCAB International)를 출범시켰으며, 근자에 국제상사중재에 대한 우리 법률가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으므로 앞으로는 뛰어난 중재 전문가들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뛰어난 실무가가 반드시 뛰어난 연구자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중재법학 특히 국제중재법학의 연구자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2007년 제1권을 간행할 때에는 간행시점을 기준으로 그 전에 발표했던 논문을 최대한 update 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제2권에서는 그 작업을 줄이고 간단한 후기를 적기로 하였다. 무엇보다도 작업이 힘들고 많은 시간을 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관련되는 본문이나 각주에서 조금씩 보완하는 작업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기존 논문의 전재는 큰 의미가 없다고 여전히 믿기 때문이다.
저서의 간행은 연구자에게는 보람 있는 일이고 존재의의를 증명하는 수단이나, 한편으로는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제2권의 간행이 유의미한지 자문하게 된다. 국제상사중재를 다루는 실무가들은 정평 있는 외국 법률가들의 저서를 통하여 법리와 실무를 이해하므로 한글로 간행된 저서는 학생들과 초심자들을 위해서는 의미가 있지만 그를 넘어 의미가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에 관하여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법의 국제화(특히 모델법처럼 국제규범을 조화시키는 노력에의 참여)에 수반되어 제기되는 의문이다. 고민 끝에 의미를 인정하여 제2권을 간행하기는 하나 점차 그 의미가 축소될 것이다.
머리말을 쓰면서 1997년 경 고 김홍규 선생께서 회장을 맡고 계셨던 중재학회에 참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저자는 국제금융거래를 다루는 변호사였기에 중재법은 업무상 필요하지는 않았으나 국제상사중재에 관심을 가졌었다. 중재학회에 참석하면서 법률가들보다 무역이나 상무(또는 상학)를 하시는 분들이 더 많은 점에 놀랐고, 일부 법학적 기초가 약한 분들이 중재 관련 법학논문을 발표하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꼈다. 그런 현상은 현재도 별로 달라진 바 없다. 어쨌든 한참 세월이 흐른 지금 제2권의 머리말을 쓰자니 장기간의 투자가 맺은 작은 결실에 보람을 느끼면서 감회가 새롭다. 저자로서는 1999년 변호사의 길을 접고 교수가 된 이래 한국에서 ‘국제 관련 법학분야’의 발전을 위해 나름 노력해 왔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국제상사중재법에 관한 논문을 몇 편 더 쓰겠지만 단행본으로 묶는 것은 아마도 제2권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이 책이 간행될 수 있도록 해주신 조성호 이사님과 편집과 교정에 수고해주신 박영사의 담당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변함없이 교정작업을 도와주는 아내에게도 감사한다.
2019년 1월
관악산을 우러르며
석광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