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영성의 중요한 한 축 희망의 성사를 노래하다
≪잎≫에 앉은 작의 새의 모습으로 온 무한자
깡마른 겨울나무가
사느라 바쁜 나도 몰래
초록 잎을 휘감고
세상에 떡 버티고 서 있다.
어떤 순간에도 닫지 마십시오.
캄캄한 허공이 전부라도, 어딘가 빛이 있을 테니까요.
(<희망> 전문)
가톨릭 영성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는 것은 희망의 성사(Sacrament of Hope)이다. 교의신학에 이 희망의 성사는 놀랍게도 생략되어 있지만, 가톨릭 영성을 사는 근원적 이유는 바로 도래할 ‘희망’에 있다. 이 희망은 어떠한 순간에도 닫히지 않는 영원한 개방의 문에 비유될 수 있다. 시인은 바로 이 점을 간파하기라도 한 듯이 아래와 같이 노래한다.
어떤 순간에도 닫지 마십시오.
어떤 순간에도 앞서 설명한 새롭게 도래하는 희망을 ‘보려는’ 시선을 닫지 않는 태도로서 시인은 이미 희망을 새롭게 정의 내리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 우리네 삶이 앞이 보이지 않고 캄캄한 허공이 전부라고 여겨질 때에도 시인은 강력하게 요청한다. 이 요청은 무한자 하느님에게 향하는 동시에 시적 화자인 자기 자신에게도 향하는 거룩한 선언이기도 하다.
어딘가 빛이 있을 테니까요.
시인이 고백한 ‘어딘가’를 찾는(seeking) 행위가 바로 신앙이다. 전임 교황이신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자신의 저서에서 신앙(Faith)이라는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 적이 있다.
“신앙은 절대적으로 어떤 것이 지속해서 자아의 가장 중심으로 모이는 힘이며, 이 힘은 거부할 수 없는 희망과 연루되어 있습니다.”
시인은 바로 이 절대적으로 자아의 중심으로 향하는 힘을 발견한 듯싶다. 그 힘은 바로 거부할 수 없는 희망과 연루되어 있는데 지속적이며 또 절대적으로 시인 자신뿐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구원으로 이끌 강력하고도 자비로운 힘의 근원을 역설적으로 매우 가난하고 비움의 미학 가운데 길어 올리는 정수로 표현하고 있고, 이것을 필자는 인간의 마지막 남은 부분, 곧 시선으로 정의내리고 싶으며, 이 시선은 시인에게 곧 사랑의 시선임을 이 시집 전체를 통하여 발견하게 되었다. 이 발견은 시인이 노래하듯 오랜 기다림 끝에 시인의 마음 안에 앉은 작은 새와도 같은 무한자의 ‘말씀’을 듣는 행위로부터 주어졌음을 감사하게 여기며 이 기다림이 이 시를 읽을 독자 모두에게 기도하는 시로 읽혀지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