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이 아이를 품은 날 모든 것이 결정된다. 산모는 자기 소모의 대가를 얼마만큼 치르고 아이에게 영양분을 내어줄까?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앞으로의 삶에서 어떤 질병의 경로를 걷게 될까? 만약 자궁에 한 번도 아이를 품어보지 않은 여성이라면 출산 경험을 한 이들에 비해 더 건강할까, 아니면 다른 질병들을 얻게 될까?
이 책은 여성의 몸을 이전에는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탐색한다. 즉 진화론적, 보건학적, 인류학적 고찰을 시도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건강법’에 관한 것이다. 다만 병이 생기면 ‘운동도 꽤 하고 기름기 있는 음식도 줄이며 술·담배도 안 하는데 나는 왜 건강하지 못할까?’라며 자책할 필요가 없다. 앞선 연구들에 따르면 여성의 몸은 진화론적 경로에서 개인의 노력과 관계없이 얻는 질병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노력이 독이 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운동을 지나치게 하면 생식능력에 해를 입는다).
따라서 이 책이 ‘그대로 따라하면 건강해진다’와 같은 간단한 처방전을 제시하진 않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내 몸은 왜 이런 상태인 것인지, 내가 혹시 아이를 갖게 된다면 어떤 거래가 오가는지, 둘째 아이는 첫째 아이와 어떤 경쟁을 치르게 되는지, 임신 기간에 영양을 잘 섭취하는 것이 아이에게 큰 도움이 안 될 때도 있다든지 하는 새로운 경험치들을 알려줄 것이다.
성적으로 성숙된 여성은 거래를 시작한다
모든 생명 활동에는 비용이 따른다. 여성은 성적으로 성숙해지면 자기 몸을 보존하는 것 외에 다른 과정에도 에너지를 분배하는데, 바로 생식이다. 만약 에너지가 한정돼 있다면 그 한정된 에너지를 최우선으로 사용하는 곳은 ‘생식’이다. 여성은 임신과 출산 과정에 들어서면 자기 몸을 돌보는 일은 이차적인 것으로 밀린다. ‘독신’이거나 불임일 때만큼 자기 몸에 최적의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성 개개인의 체격, 성장 속도, 성 성숙 연령, 나아가 자녀수와 자녀의 체격 등은 그녀의 생활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형질과 사건이다. 여성이 일생 동안 생식, 즉 임신·수유·양육에 할당할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돼 있다. 따라서 한 여성이 생식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려면 생애 전반에 걸친 생식 사건들에 에너지를 신중히 배분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한 여성에게서 태어난 자녀들 각자는 원하는 만큼의 충분한 에너지와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산모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으면 사태는 더 심각한데, 왜냐하면 산모는 출산 이후에 지속적으로 들어갈 비용까지도 감안해 에너지를 절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자녀에게 너무 많이 투자하면 산모의 건강이 악화되거나 미래의 출산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우려도 있다.
살아 있는 유기체가 맞닥뜨리는 또 하나의 영원한 딜레마는 생식과 면역 사이의 거래다. 현재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여성이라면, 면역 기능은 후순위로 밀려날 것이다. 이런 단기적인 거래들이 장기적인 영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즉 생식에 비용을 더 많이 쓸수록 유기체의 수명은 단축될 가능성이 있다.
여성호르몬이 많으면 어떤 질병을 얻을까
우리는 유전자와 환경적 요인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달한다. 유전자는 대개 하나의 유전자가 하나 이상의 형질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특히 하나의 유전자가 어떤 형질에는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반면 다른 형질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때가 있는데, 이를 길항적 다면 발현antagonistic pleiotropy이라 한다. 여성의 경우 에스트로겐이 길항적인 효과를 낸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으면 생식에 유리하다. 에스트로겐이 수정에 직접 관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스트로겐 유인성 암인 유방암에 걸려 사망할 확률도 높아진다. 문제는 생식 연령기가 지난 후에도 에스트로겐이 또 다른 거래에서 길항성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즉,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을수록 암 발병률은 높지만, 대신 골다공증이나 심장병, 우울증이나 치매 같은 노년기 질병 발병률은 낮아진다.
이 같은 생활사 거래들을 이해하면 각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건강을 유지하기 힘든 까닭과 거래 조건을 변경하기가 불가능한 까닭을 알 수 있다. 이 거래들이 곧 생명의 실체다. 말하자면 “완벽한 형질은 없다. 모든 형질이 월등하면 좋겠지만, 어느 하나를 월등하게 만들면 다른 하나는 열등할 수밖에 없다.”
진화생태학자들이 이러한 우선순위의 딜레마, 에너지의 분배와 거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50년 정도에 불과하다. 생활사 이론도 이제 막 진화생물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문제의 복잡성을 풀어보려고 노력했던 경험론자들의 접근법을 활용해 여성의 몸을 탐색해나간다.
진화론적 고찰이 필요하다
이 책은 건강에 관한 책이다. 그중에서도 생식생물학과 여성의 건강을 다룬다. 여기서 핵심은 진화론적 관점이다. 즉, 여성이 직면하는 생리학적 도전과 건강상의 문제를 진화생물학적 관점, 특히 생활사 이론에 입각한 관점에서 살펴본다.
인간의 생리적 특징과 해부학적 구조, 행동 양상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했다. 장년기에 발병하는 몇몇 질병은 인간이 진화하면서 적응한 환경과 현대인이 살고 있는 환경 사이의 부조화의 결과다. 가장 큰 부조화는 진화 시대 조상들의 생활 방식과는 극적으로 달라진 대다수 현대인의 생활 방식에서 나타난다. 진화의 역사에서 90퍼센트에 이르는 기간을 수렵채집인으로 살았던 인간 조상들은 식생활, 신체활동의 패턴, 사회적 관계망이 지금과 크게 달랐다. 여성의 생식 패턴도 당연히 달랐다. 성 성숙이 늦고 월경주기의 횟수는 적었던 반면 출산 간격이나 수유 기간은 상대적으로 길었다.
인간이 수렵채집에서 벗어나 생존 전략을 바꾼 것은 약 1만4000년 전이었다. 즉 대부분의 진화적 적응은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하지만 생활 방식이 변했어도 인간의 생리학적 양상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생리 기능에서 일어나는 주요한 진화론적 변화들이 인간의 형질 목록에 자리를 잡기에는 1만4000년이란 시간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인이 갖고 있는 생리와 대사 기능 대부분은 구석기 시대 수렵채집인 조상들이 갖고 있던 그대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생활과 몸의 불일치가 발생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해 진화론적 고찰 없이는 보건학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다.
영양이 풍부할 경우의 최악의 시나리오
진화론적 적응보다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급격한 생활 방식 변화로 인한 부조화는 여러 질병의 발병률을 높일 수 있다. 산모의 환경이 열악하다면 그 속에서 자라난 태아는 성인기에 이르러 특정 질병을 얻을 확률이 현저히 높으며, 특히 영양이 풍부한 환경에서 성인기를 보낸다면 그 위험은 더 높아질 수 있다. 몇몇 가설에서는 생애 초기와 성인기 환경의 부조화가 한 개인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인생 시나리오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즉 태아가 자궁에서 빈약한 영양분으로만 견뎠을 경우, 이 아이가 성인기에 거꾸로 풍부한 에너지 상태에 처한다면 자신이 자궁 안에서 발달시킨 모든 생리와 대사 기능들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즉 이런 아이는 커서 고혈압을 앓거나 당뇨병과 심장병을 앓을 확률이 높다. 한편 성인기 환경이 (열악하든 양호하든) 태아 때의 환경과 일치한다면 오히려 건강상의 문제들이 악화될 가능성은 낮다.
현대인이 경험하는 태아기와 성인기 환경의 엄청난 차이는 인간의 진화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시기에는 부실하게 태어나면 부실하게 살다가 부실하게 죽었다.
오늘날 태아 발육기 동안 산모의 환경은 한 개인의 미래 건강을 결정하는 중대한 요인이다. 작게 태어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질병 발병률이 높다. 태아 발육기 동안 영양 결핍의 결과가 그토록 끔찍하다면 왜 어머니는 자녀의 발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하지 않을까? 왜 인간은 어머니가 발육기의 자녀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전달하도록 메커니즘을 진화시키지 않았을까? 실제로 그런 메커니즘이 없지는 않다. 어머니는 에너지를 박탈당하는 임신기와 수유기 동안 생리학적 희생을 감수한다. 하지만 그 비용이 터무니없이 클 때는 크고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생활사 거래인데, 현재의 생식과 미래의 생식 사이의 거래다. 영양이 결핍된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기의 체중이 적게 나가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 거래 탓이다.
개인 맞춤형 생식의 역사와 건강 관리법
진화론적, 공중보건학적, 생애사적 관점에서 여성의 건강을 다루는 이 책은 또한 운동이 생식 호르몬 수치를 얼마나 낮추고 유방암을 얼마나 예방할 수 있는지, 또 프랑스에서 어린이의 건강을 위해 개발한 건강 프로그램의 역사와 그런 프로그램들이 동시대 프랑스인 건강에 장기적으로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본다.
역사적인 삶의 조건들이 건강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하나의 가설, 즉 오랜 노예생활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저체중아 출산에 부분적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점검한다. 문화적 관습과 생식생물학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무어족 소녀들의 살찌우는 과정이 갖는 생물학적 의미를 살펴본다. 실제로 살찐 여성은 생식활동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여성과 생식을 논함에 있어서 자녀를 낳는 데 따르는 비용도 비중 있게 다룬다.
어떤 식사와 운동이 적절한지, 또 그 근거는 무엇인지도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주제다. 격렬한 운동, 흔히 직업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은 음의 에너지 균형의 결과로 월경 불순 빈도가 늘어나고, 심하면 월경 주기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취미로 운동을 하는 여성이더라도 과한 운동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난소 기능의 변화를 일으킨다. 가령 기분 전환 삼아서 일주일에 20킬로미터 내외로 조깅을 하는 여성에게서는 프로게스테론 분비가 억제된다.
한편 한 개인의 출생체중은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출생체중이 적었던 사람은 성인이 되었을 때 심장혈관계 질병을 앓을 위험이 높다. 저체중으로 태어난 여성은 심장혈관계 질병을 앓을 위험이 높은 반면, 과체중으로 태어난 여성은 유방암을 겪을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따라서 이 책은 다양한 질병의 발병률을 낮추기 위한 운동의 종류와 강도 등에 대한 조언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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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예방이라면 모름지기 인간의 진화 역사에 대한 지식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생활사 이론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의 예방은 한 개인의 생애 전반, 즉 서로 긴밀히 상호작용하는 생애 모든 단계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따라서 한 개인의 태아기나 유아기 환경 조건들을 알면 미래의 건강을 예측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따라서 각 개인의 과거 경험과 생식의 역사를 고려해 여성 각자에게 필요한 지식과 생활 경험이 무엇인지 맞춤형으로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