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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장자

  • 장주
  • |
  • 글항아리
  • |
  • 2019-02-28 출간
  • |
  • 620페이지
  • |
  • 158 X 225 X 42 mm /948g
  • |
  • ISBN 9788967356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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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이 책은 『장자』로 박사학위를 받고 40년 가까이 장자와 도가를 연구해온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전문가인 김갑수 교수가 펴내는 『장자』 완역으로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의 11번째 책이다. 이번 개정증보판에서는 한문 원문을 수록하고, 번역을 더욱 매끄럽게 전반에 걸쳐서 다듬었다. “이번 개정증보판에서도 전체적으로 수백 군데를 고치기도 하고, 하나의 문장이나 혹은 하나의 문단 전체를 다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증보판이 아니라 ‘개정증보판’이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라고 역자는 말했다.
이 책이 의도하는 주요 독자는 학자가 아니라 일반인이며 가능한 한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을 주된 번역어로 쓰고, 간단명료한 문체로 내용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렇다고 원래 텍스트의 자구를 무시하거나 또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서 벗어나도록 허용한 것은 아니다. 텍스트에 충실하되 우리말의 어법에 맞아야 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했다. 『장자』는 문장 자체도 해독이 까다롭고 때로는 진짜 무슨 의도로 썼는지 아무도 모르는 부분도 꽤 있다. 게다가 그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 역시 보통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그래서인지 우리말 번역서 가운데 아무리 읽어도 도대체 무슨 뜻인지 말이 안 되는 문장이 자주 있다. 특정 문장이 우리말 어법에 전혀 안 맞거나,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불분명하거나, 문맥이 전혀 통하지 않거나 하는 치명적인 문제들이 대부분의 번역서에서 발견된다. 물론 이 책도 그러한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확신은 못하지만 먼저 우리말이 되게 하고, 하나하나의 문장이 전체 문맥의 흐름에 맞아서 그 문단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도록 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두었다. 물론 그것은 『장자』의 원문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도 안에서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역자는 계속 강조한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번역이라 원문과 어려운 글자나 어구에 대한 풀이를 상세하게 곁들이지 않았고, 이런 학술적 내막은 차후에 전문 역주서를 통한 학술번역을 통해 해소할 생각이다.
이번 『장자』 완역본엔 역자 김갑수 교수의 오랜 연구 공력과 철학이 함께 담겨 있다. 머리말에서 그는 장자를 허무주의자라고 규정한다.

“장자는 허무주의자입니다. 혹은 자연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장자를 허무주의자, 불가지론자 등으로 규정하는 데 대하여 많은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장자』를 음미해보면 장자를 포함한 그의 추종자들은 대개 허무주의자이고 불가지론자들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장자는 현실도피주의자는 아닙니다. 장자는 오히려 세상의 그 어떤 철학자보다 현실과 철저하게 마주했고, 현실을 꿰뚫어보면서 현실의 부정적인 면을 바로잡으려고 했습니다. 장자는 우리가 그냥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구속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부정하고 거부했습니다. 세상에서 나의 개인적인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며, 그 생명을 위한 최선의 삶은 그때그때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즐겁게 사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자에게 있어 돈이라든가, 명예라든가, 사회적 지위라든가 혹은 신이든, 국가든, 인류든 그 어떤 것도 나의 개인적인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나의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나의 자유로운 삶을 제약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세상에 자연 이외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장자는 허무주의자 혹은 자연주의자이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이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또 이 세상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며 삶은 충분히 즐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낙천주의자입니다. 그래서 나는 장자를 낙천적 허무주의자로 규정합니다.”

장자의 전기

장자는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언제 죽었는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일을 했는지 등의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서조차 명확한 것이 전혀 없다. 대개 장자의 성은 장莊이고 이름은 주周이며 자는 자휴子休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장자에 대한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것으로는 『장자』를 들 수 있다. 『장자』에는 장자가 대화에 직접 등장하는 문장이 있고, 장자에 대해 설명하는 문장이 있기도 하다. 특히 「천하」 편에는 장자의 사상적 특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밖에 전국시대의 기록으로 『순자』와 『여씨춘추』 등에도 장자에 대하여 언급하거나 장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록들에는 장자가 언제 적 사람인지, 어디 출신인지, 어떤 일을 했었는지 등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 체계적으로 장자의 전기를 쓰고자 한 시도는 사마천의 『사기』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이 가장 이르다. 그러나 공자를 제외한 다른 제자백가가 그렇듯이 장자에 대한 기록도 그렇게 분명한 것은 아니고 대략적인 추정치에 불과하다.
이제 『사기』의 기록을 따라가면서 장자의 전기와 관련된 것을 추적해보자. 사마천은 먼저 장자의 출신지와 활동 연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장자는 몽蒙 지방 사람이고 이름은 주周다. 그는 일찍이 칠원리漆園吏를 지냈으며, 양梁나라 혜왕惠王, 제齊나라 선왕宣王 등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

사마천은 장자를 몽 출신이라고 했는데, 몽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나라에 속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역대로 『사기』의 기록 가운데 몽이라는 지명을 어디에 있는 땅으로 보느냐에 따라 장자의 출신 국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게 갈라졌다. 즉 송宋나라, 양梁나라, 초楚나라, 제齊나라, 노魯나라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유향劉向·고유高誘·반고班固·장형張衡 등은 장자를 송나라 사람이라고 주장했으며, 당대唐代의 학자들은 『한서』 「지리지」의 “양나라는 큰 현이 여덟 개 있었는데, 그 중 세 번째로 큰 것이 바로 몽이다”라는 기록에 의거하여 장자를 양나라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와 『경전석문經典釋文』 「장자서록莊子序錄」, 『사기회주고증史記會注考證』 등에서는 장자를 양나라의 몽현蒙縣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밖에 송대宋代의 악사樂史(『태평환우기太平?宇記』), 주희朱熹(『주자어류朱子語類』) 등은 장자를 초나라 사람이라고 주장했고, 석지장釋智匠의 『고금악록古今樂錄』에서는 장자를 제나라 사람이라고 했으며, 마숙馬?, 염약거閻若? 등은 석지장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노나라 사람이라고 했다. 특히 근대의 왕수롱王樹榮은 「장자는 바로 자막이다莊周卽子莫說」는 논문에서 『맹자』의 “자막子莫은 중中을 지켰다”는 기록의 자막子莫이 바로 장자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막은 노나라 사람이며, 노나라에 몽이라는 지방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상의 여러 가지 학설 가운데 장자가 송나라 혹은 양나라 사람이라는 주장 외에 초나라, 제나라, 노나라 사람이라는 주장들은 근거가 부족하다. 다만 송과 양은 같은 나라이거나 동일한 지역에 대한 다른 명칭일 수 있다. 양샹쿠이楊向奎는 『사기』 「한세가韓世家」의 “문후文侯 2년에 (…) 한나라는 송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을 치고 송나라 임금을 붙잡았다”라는 기록을 인용하면서 송나라가 한韓나라의 침략으로 인해 천도한 뒤 몽 부근 상구商丘 일대가 양梁나라의 침략을 받았을 것이며, 따라서 장자가 태어난 시기에는 송나라는 이미 멸망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몽이 양 나라의 땅으로 귀속되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장자』에서 송나라와 장자를 연계시키고 있는 기록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오히려 장자가 송나라의 멸망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라는 팡커方克의 주장이 더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자가 송나라 사람이었다는 점을 받아들이더라도 오늘날로 치면 구체적으로 어디쯤일까 하는 문제가 남는다. 크게 두 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는 허난 성 상추商丘라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안후이 성 멍청蒙城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다음에 장자는 칠원리를 지냈다고 했는데, 칠원漆園이 지명인지 아니면 글자 그대로 옻나무밭인지도 분명하지 않지만 대개 당시에 옻나무를 나라에서 직접 경영했을 것이고, 장자는 관영 옻나무밭을 관리하는 말단관리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장자가 정식으로 밥벌이를 한 것은 이것이 전부였던 것 같다. 이 밖에는 다른 기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장자가 위나라를 찾았을 때 당시 위나라의 재상으로 있던 장자의 친구 혜시가 자기 자리를 빼앗길까 위협을 느꼈다는 이야기나, 장자가 먹을 것이 떨어져 구걸을 나갔다는 기록 등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장자가 다른 일자리를 갖지 않았을 것이 확실한 것 같다.
사마천은 장자가 태어난 해나 죽은 해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대략적인 활동 시기를 양나라 혜왕이나 제나라 선왕 등과 같은 시대라고 추정했다. 양나라 혜왕의 재위 기간은 기원전 370년부터 기원전 318년까지이고, 제나라 선왕의 재위 기간은 기원전 319년부터 기원전 301년까지다. 따라서 사마천의 추정에 따르면 장자는 기원전 370년에서 기원전 301년 사이에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근현대에 이르러 장자의 활동 연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학자마다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면서 각기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학자로는 마쉬룬馬敍倫, 뤼전위呂振羽, 판원란范文瀾, 양롱궈楊榮國, 원이둬聞一多 등 다섯 사람을 들 수 있다. 이들 다섯 사람의 견해에 따르면 장자의 활동 연대는 아무리 소급하더라도 상한선이 기원전 375년(원이둬)을 넘지 않으며 하한선은 기원전 275년(뤼전위)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기원전 370년에서 기원전 301년 사이에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한 사마천의 견해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장자의 활동 시기를 빠듯하게 잡는다면 사마천의 견해에 따라 기원전 370년에서 기원전 301년의 약 70년 사이라고 할 수 있고, 좀 넉넉하게 잡으면 기원전 375년에서 기원전 275년의 100년 사이에 살았다고 확정하더라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장자』의 성립

우리가 보는 『장자』라는 책은 장자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와 그의 후계자들의 공동저작집이다. 『장자』는 70여 편이 전해져 왔었는데, 위진魏晉시대에 이르러 각 주석가들이 각기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편수나 편차를 다시 정비했다. 예를 들어 최선崔?은 27편으로 정리하여 주석했고, 상수向秀는 26편으로, 곽상郭象은 33편으로, 이이李?는 33편으로, 사마표司馬彪는 52편으로, 맹씨孟氏는 52편으로 정리하여 주석을 붙였다. 현재까지 온전하게 전해오고 있는 유일한 주석본은 진晉나라의 곽상郭象이 33편으로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보통 『장자』라고 말하면 바로 이 곽상이 정리한 책을 말한다.
곽상은 『장자』를 크게 내편과 외편 그리고 잡편으로 분류했다.
내편에 속하는 것은 「소요유逍遙遊」 「제물론齊物論」 「양생주養生主」 「인간세人間世」 「덕충부德充符」 「대종사大宗師」 「응제왕應帝王」 등 7편이다.
외편은 「병무騈拇」 「마제馬蹄」 「거협??」 「재유在宥」 「천지天地」 「천도天道」 「천운天運」 「각의刻意」 「선성繕性」 「추수秋水」 「지락至樂」 「달생達生」 「산목山木」 「전자방田子方」 「지북유知北遊」 등 15편이다.
잡편은 「경상초庚桑楚」 「서무귀徐無鬼」 「칙양則陽」 「외물外物」 「우언寓言」 「양왕讓王」 「도척盜?」 「설검說劍」 「어부漁父」 「열어구列禦寇」 「천하天下」 등 11편이다.
이 가운데 내편에 속하는 7편은 장자의 직접적인 저작 혹은 그의 말이나 생각을 기록한 것이고, 외편과 잡편에 속하는 26편은 장자의 제자 혹은 그의 사상을 추종하는 후대인들이 지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자의 사상과 지향

△ 학문적 경향과 중심 사상
장자의 학문적 경향에 대해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의 학문은 탐구하지 않은 분야가 없었지만 중심 사상은 노자老子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10여만 자로 이룩된 그의 저서는 대체로 우화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는 「어부」 「도척」 「거협」 편 등을 써서 공자孔子의 추종자들을 공격하면서 노자의 학술을 밝혔다.” 사마천은 장자 사상의 주요 목적이 공자를 공격하고 노자를 선양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장자』의 주요 저작이라고 평가되는 내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장자가 도통한 어부의 제자로 나오는 「어부」 편, 흉악하기로 유명한 도둑 집단의 우두머리 도척을 훈계하러 갔다가 도리어 도척으로부터 훈계를 듣는다는 내용의 「도척」 편, 세상 혼란의 원인이 인의仁義 등에 있고 유가와 묵가는 백성을 착취하는 큰 도둑(제왕을 포함한 지배 집단)을 위한 충실한 앞잡이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펴는 「거협」 편 등에 대해 주목한 것이다.
사마천은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그는 여러 가지 사실들을 연관 지어 글을 잘 썼으며, 허황된 이야기를 가져다가 사실과 비슷하게 설명하는 방법으로 유가와 묵가의 학설을 비판했다. 비록 당대의 석학이라 할지라도 그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호탕하고 도도한 말투로 자신의 견해를 표현했기 때문에 왕공대인王公大人(왕족과 귀족 등 지배층)이라 하더라도 그를 부릴 수 없었다.” 사마천의 눈에 비친 장자는 유가와 묵가를 비판하고 지배자에게 협조하지 않는 아웃사이더였고 반항아였으며, 또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는 것을 거부하는 자유주의자였다.
『장자』에는 장자를 초빙하려고 사람을 보내온 제후들이 몇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 고사, 특히 「추수」 편의 고사를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각색하여 소개한다.
“초楚나라 위왕威王이 장자의 학식과 인격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영접하기 위해 많은 예물을 들려 사람을 보내 재상의 벼슬을 내리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때 장자는 강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는 왕의 사신을 돌아보지도 않고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천금은 큰돈이고 재상은 높은 벼슬입니다만, 당신들은 제사에 희생물로 쓰이는 소를 보지 못했소? 수년 동안 잘 먹여주고 아름다운 무늬를 수놓은 비단 천으로 장식을 해주면서 정성껏 보살핍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사당으로 끌고 들어가는데, 그때 가서는 돌보아주는 이 아무도 없는 송아지로 되돌아가고 싶어도 이미 때는 늦은 겁니다. 당신들은 어서 돌아가시오. 나를 방해하지 마시오. 나는 차라리 작은 개울 속에서 맘껏 자유로움을 만끽할지언정 통치자가 씌워주는 굴레에 나를 가두고 싶지는 않소. 나는 죽을 때까지 관직에 나가지 않고 나의 삶을 즐길 것이오.’”
「외물」 편에는 장자가 당장 끼니를 때울 식량이 없어서 황하를 관리하는 관리인 감하후監河侯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다는 우화가 실려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산목」 「추수」 「열어구」 편 등에는 초라한 행색과 핏기 없는 얼굴을 한 장자가 그려지고 있다. 그처럼 가난한 처지에서 고통스럽게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높은 관직과 많은 재물을 모두 거절했다는 것이다. 위의 고사가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장자는 몹시 가난했고, 그렇다고 해서 벼슬길을 찾아 나설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비록 주변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구걸은 할지언정 임금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권력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모든 사회 규범이나 제도가 인민의 불평등과 부자유의 원천이라고 보는 그의 기본적인 노선과 일치한다. 특히 「추수」 편에 실린 원래 고사나 사마천이 그리고 있는 위의 인용문을 볼 때 장자가 관직에 나가기를 거부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권력자가 씌워주는 굴레를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가난할지언정 자유롭게 살겠다는 것이다. 권력자의 앞잡이가 되기를 거부하고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개인으로 남겠다는 것, 이것이 장자가 일상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다.
장자가 관직에 대한 미련이 없었던 것은 사회 제도나 규범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의 기본 사상에 비추어볼 때 당연한 일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삶 그 자체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장자는 가난을 즐겼다. 「천운」 편에서 노자가 공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옛날의 지인至人은 인仁이라는 길을 빌렸고, 의義라는 집에 머물면서 소요의 터에서 노닐었고, 손바닥만 한 경작지로 먹고 살았으며, 남에게 손 벌리지 않을 정도의 밭에 의지하고 살았지요. 소요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오. 손바닥만 한 땅은 가꾸기 쉽지요. 남에게 손 벌리지 않을 정도의 밭은 힘을 쓸 일이 없으니까요. 옛날에는 이런 것을 진실의 열매를 따면서 노는 것이라 했소.” 먹고사는 데 큰 힘이 들지 않을 정도의 삶, 가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정신의 풍성함, 장자는 그런 삶을 실천했다. 장자는 부유함 그 자체가 죄악이고 또 구속이며, 가난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또 자유로운 삶을 보장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산목」 편에서는 누더기옷을 입고 위나라 왕을 만나러간 장자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거기에 그려진 장자의 행색은 그야말로 거지 그것이었다. 그는 성긴 천조각으로 기운 옷을 입고 있었고, 낡아 헤어진 신발을 삼끈으로 얽어 묶은 채로 왕 앞으로 걸어갔다. 왕의 눈에는 그저 가련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위나라 왕은 그러한 장자를 보고 물었다. “선생은 왜 그렇게 피폐해져 있는 것이오?” 장자가 대답했다. “저는 가난할 뿐 피폐한 것이 아닙니다. 선비로서 도와 덕에 대한 뜻을 품고 있으면서 그것을 실천할 수 없는 것이 피폐한 것입니다. 옷이 헤지고 신발이 구멍 난 것은 가난한 것이지 피폐한 것이 아닙니다. (…) 지금 저는 어리석은 군주와 세상을 어지럽히는 신하들이 다스리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피폐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이 문장의 요지는 백성들의 고단한 삶의 책임은 위정자들에게 있다는 점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지만, 자발적으로 선택한 가난한 삶을 즐기는 당당한 장자의 모습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 장자가 추구했던 것
장자 철학의 핵심은 개인의 행복 추구에 있다. 어떻게 하면 한 세상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의 철학적 문제의식의 핵심이다. 장자가 생각한 행복한 삶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에 근심걱정이 없고, 몸이 편안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몸과 마음이 아무런 속박이나 제약을 받지 않을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을 장자는 지인至人, 진인眞人, 신인神人 혹은 성인聖人이라고 불렀다. 사람에게 있어 부자유는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면이 더 크다. 우리가 흔히 겪는 크고작은 두려움이나 근심걱정에 시달리는 것, 여러 가지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 불쾌한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것, 가족이나 친지 혹은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갈등 등과 같은 것은 육체적인 것이라기보다 정신적인 것이다. 즉 몸을 직접적으로 얽어매거나 우리에 가두어둠으로써 발생하는 부자유가 아니라 정신적 혹은 심리적 제약에서 오는 부자유인 것이다. 장자는 이처럼 정신이 자유롭지 못할 때, 마음이 편치 못할 때 우리는 고통을 느끼며 행복이라는 이상적인 삶으로부터 멀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장자』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된 내용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모든 요소를 비판하면서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들을 살펴보면 첫째, 도덕·이념·제도·법률 등 사회적인 것 둘째, 오래 사는 것, 돈과 재물, 사회적 지위, 명성 등에 대한 욕망과 관련된 것 셋째, 공포·불안·우울·분노·증오·질투 등 심리적인 것 등이 있다. 장자에 따르면 이런 것들은 모두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것, 습득된 것 혹은 사회적인 것들이다. 사회는 인간의 본성에 따라 형성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고, 사회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지만 인간은 마땅히 사회를 형성하고 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춘추전국 시기에 이미 이 점과 관련한 논쟁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여기서 핵심이 되는 문제를 우리는 인성론이라고 부른다. 장자가 생각한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가장 부합하는 사회는 지배와 피지배,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유식한 사람과 무식한 사람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는 자연스러운 공동체다. 거기서는 굳이 어떤 정해진 법률이나 제도도 없고, 각 개인에게 도덕이나 규율, 법률을 요구하는 것도 없다. 그저 자기 뜻대로 살면 서로 충돌하지도 않고 저절로 잘 굴러갈 것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장자는 모든 욕망과 이기심은 불평등을 기초로 한 사회, 경쟁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각자가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이고, 인간의 이러한 학습된 욕망과 이기심으로 인해 사회가 혼란에 빠졌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심리적 불안정이 초래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장자는 인류가 축적해온 모든 문명과 역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인류 전체로 보나 개인적인 면에서 보나 사람은 문명을 통해서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고 행복해질 수 없다.
그런데 장자가 보기에 세상에는 온통 몸과 마음을 구속하는 것들뿐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모두 후천적인 것, 인위적인 것들이다. 장자가 유가와 묵가 등 제자백가를 몽땅 비판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학문은 인류 문명의 한 가지이고,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비자연적이며 대개는 반자연적이다. 따라서 장자가 볼 때 그것은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다. 장자가 주장하는 것은 때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마치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열등한 패배자의 푸념처럼 들리기도 한다.
장자의 생각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인류가 현재 처한 상황이나 지향하고 있는 방향에서 볼 때 그의 주장은 대부분 이미 실현 불가능한 꿈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원론적으로 볼 때 그의 지적은 정확했고, 또 여러 가지 면에서 그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장자를 포함한 우리 누구도 그가 제기한 이상적인 삶을 살 수는 없다. 적당한 선에서 현실과 타협하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최대한 지켜내는 것이 실질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문명을 몽땅 내버리거나 깡그리 외면하고 살 수는 없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타고난 자연성이나 자유가 구속되고, 자신이 외물, 즉 욕망이나 이념, 도덕, 제도의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의 노예가 되어 외물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거나 심리적 평형을 잃을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우리도 동의할 수 있는 교훈이다.


목차


개정증보판을 펴내며
머리말
해제
1. 장자의 전기
2. 『장자』의 성립
3. 장자의 사상과 지향
4. 『장자』에 나오는 주요 개념

제1부 내편內篇

제1편 소요유逍遙遊
제2편 제물론齊物論
제3편 양생주養生主
제4편 인간세人間世
제5편 덕충부德充符
제6편 대종사大宗師
제7편 응제왕應帝王

제2부 외편外篇

제8편 병무騈拇
제9편 마제馬蹄
제10편 거협??
제11편 재유在宥
제12편 천지天地
제13편 천도天道
제14편 천운天運
제15편 각의刻意
제16편 선성繕性
제17편 추수秋水
제18편 지락至樂
제19편 달생達生
제20편 산목山木
제21편 전자방田子方
제22편 지북유知北遊

제3부 잡편雜篇

제23편 경상초庚桑楚
제24편 서무귀徐無鬼
제25편 칙양則陽
제26편 외물外物
제27편 우언寓言
제28편 양왕讓王
제29편 도척盜?
제30편 설검說劍
제31편 어부漁父
제32편 열어구列禦寇
제33편 천하天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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