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90여점의 작품사진을 시와 같이 감상할 수 있는 시.사진집입니다.
“밤새 이파리를 다 떨구어 놓았다/바람이 그랬니/어둠이 그랬니/그리움이 그랬니/사랑이 그랬니/이슬이 그랬니//비명도 없이 순종하는 너의 삶에/숙연해지는 나의 아침”
- 「순종」 전문
솔직한 심사가 드러내는 죄 속의 구원, 좌절 속의 희망
이문연 시인의 첫 시집 『그 이후의 여행』 시편들을 쭉 읽어 내리며 솔직한 심사에 숙연해졌다. 신 앞에 고백하듯 시인의 삶과 마음을 아무런 가식 없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 시편들이 시인의 추억과 순수와 그리움, 그리고 중년에 이른 삶의 고단함과 구원과 희망을 일관성 있게 꿰나가고 있어 경건하다.
시인이 내 몸이지만 내가 다독여주지 못하는 곳, 그 외로운 등허리를 시로 다독여줬다고 시집 머리에 밝혀놓았듯 바삐 살아오며 우리가 미처 돌보지 못한 곳을 다독여주는 시편들이다. 해서 이번 시집 『그 이후의 여행』은 아등바등한 현실을 살아내며 다친 우리네 마음, 꿈과 미련과 그리움을 위무하고 구원하는 시집이다. 나아가 앞으로의 삶과 세상을 더 맑고 힘차게 가꾸는 시집으로 내겐 경건하게 읽혔다.
그런 이번 시집 시세계가 잘 드러나 있어 이 글 맨 위에 올린 「순종」을 보시라.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듯한 어느 날 아침 잎 다 떨궈버린 나무를 소재로 한 시다. 그런 나무를 보며 시인에게 든 마음을 ‘바람’, ‘어둠’, ‘그리움’, ‘사랑’, ‘이슬’ 등의 시어로 순차적으로 내보이고 있다.
이 시어들의 나열로 벌거벗은 나무와 시인은 차차 한 몸이 돼가고 있다. 바람 잘 날 없는 우리네 삶에도 어둠이 있고 그리움과 사랑도 있지 않은가. 그런 쓰리고 그립고 아픈 속내를 비명도 없이 떨궈버리고 겨울에 순종하는 나무, 그리고 우리네 삶과 꿈은 매 한가지 아니겠는가. 그런 삶의 속내, 비명을 선명한 이미지로 잡아내며 숙연하게 들려주고 있는 시집이 『그 이후의 여행』이다.
“나무들도 겨울을 맞으려면 많이 앓는다/ 한 삶을 보낸다는 것이 어디 그렇게 쉬운 것이랴/ 살아서 많이 갖고 있던 것들 내려놓는 소리일 테지/ 한 번 두 번 지었던 죄, 한 잎 두 잎 내려놓는 모습일 테지”
-「환절기」 전문
「순종」에 이어지는 속편 정도로 읽어도 좋을 시다. 사계절 환절기마다 나무들이 그렇듯 생로병사生老病死, 혹은 유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중년기로 이어지는 우리 삶 매듭 매듭에도 통과제의通過祭儀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라는 걸 보여주는 시다.
그런 만물의 통과제의 때마다 시인은 죄를 나뭇잎 떨구듯 고해하며 털어내고 있다. 이런 저런 삶에 연유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죄, 그런 원죄 같은 죄를 털어내고 사謝하며 점점 성숙하고 깊어지는 게 이번 시집에 실린 시편들이며 시인의 삶이다.
- 이경철(문학평론가,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