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 베스트 코믹 2018년 Carlo Boscarato Award 수상
★ 2019년 10월 영어판 출간 예정
최초의 여성 노벨과학상 수상자이자
프랑스 과학계의 상징이 된 마리 퀴리,
그 삶의 여정을 그래픽 노블로 만나다!
눈부신 업적, 그 이면의 외로움
파리에 도착해 소르본대학에 입학했을 때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는 이미 24살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와 당시 약소국이었던 폴란드에서 온 이방인이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과학자로서의 입지는 항상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리는 당시 유럽의 보수적인 사고방식에 굴하지 않고 핵물리학의 여명기의 선두에 서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 나갔다.
세상이 기억하는 마리의 이름은 그녀의 남편 피에르 퀴리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낡은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았던 피에르의 전폭적인 지지로 마리는 과학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퀴리 부부는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하였고, 이 발견은 새 방사성 원소를 탐구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피에르의 급작스러운 죽음 이후에도 마리는 물질량의 측정법을 발견하고 국제 라듐 원기를 설정하는 등 눈부시게 뛰어난 업적을 쌓아 나갔다. 마리는 사후 61년이 지난 1995년에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프랑스 국립묘지 팡테옹에 남편과 함께 이장되었는데, 이는 유명인의 아내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업적으로 이룬 결과이다.
피에르와의 운명적인 만남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19세기에는 여성이 폴란드 대학에 입학할 수 없었다. 가난한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난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는 가정교사로 일하며 학비를 마련해 프랑스로 떠났다. 둘째 언니 브로냐의 도움을 받아 파리의 소르본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는 동안, 마리아는 운명의 상대 피에르를 만난다. 옷과 구두는 초라하고 낡았지만, 마리아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연구에 대한 열정을 느낀 피에르는 마리아에게 걷잡을 수 없이 매료되었다. 마리아는 대학을 졸업한 후 피에르와 결혼하여 스크워도프스카-퀴리로 성을 바꾸었고, 마리아의 프랑스식 이름인 마리로 불리게 되었다.
치열한 노력의 결과, 노벨상 공동수상
피에르는 마리의 뛰어난 과학적 자질을 가장 잘 알고 그녀의 학업을 전적으로 지원해온 지지자였다. 퀴리 부부는 친밀한 연인이자 든든한 연구 파트너로서 가정과 연구 모든 것을 함께했다. 두 사람의 노력은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하는 결실을 맺었는데, 폴로늄은 마리의 조국인 폴란드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업적으로 두 사람은 베크렐과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하게 되었다. 원래는 피에르에게만 수상이 예정되었으나 피에르가 마리의 공로를 강력히 주장하여 함께 상을 받을 수 있었다.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교수
비가 세차게 내리던 어느 날, 피에르가 마차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슬픔과 절망 속에서 방황하던 마리는 과학 연구에 다시 몰두한다. 한편 이례적으로 소르본대학교는 마리에게 피에르의 자리를 물려주기로 결정하였고, 마리는 프랑스 고등교육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교수가 되었다. 마리는 피에르의 강의 진도에 정확히 맞추어 수업을 이어나갔을 만큼 피에르를 존중하였고, 남편의 유지에 따라 연구에 더욱 정진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함께 공유했던 피에르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보수적인 과학계에 던진 한 마디 “상은 과학자의 사생활이 아니라 업적에 주어지는 것”
어려운 상황에서도 마리는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고, 두 번째 노벨상인 화학상 수상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피에르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폴 랑주뱅과의 스캔들로 유럽 전역이 충격에 휩싸이면서, 결국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로부터 노벨상을 거절해달라는 편지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마리는 “노벨상은 저의 과학적 업적을 인정해서 주는 것입니다. 제 사생활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시상식에 참석해 다시 한 번 노벨상을 받았다. 이렇게 마리는 노벨상을 수상한 첫 번째 여성이자 서로 다른 분야의 노벨상을 수상한 최초의 과학자가 되었다.
'리틀 퀴리' 그리고 마리가 남긴 유산
제1차 세계대전에서 마리는 스스로 개발한 ‘리틀 퀴리’라는 자동차로 전선을 누비며, ‘리틀 퀴리’의 X선 사진 장치로 부상병들을 진단하는 데 크게 활약했다. 퀴리 부부의 과학적 재능을 물려받은 장녀 이렌느는 전쟁터에서 마리를 도왔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마리가 운영하던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이렌느는 남편과 함께 인공 방사능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여 어머니의 뒤를 이어 여성으로서 두 번째 노벨화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마리와 그 후손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비범함과 과학적 업적 때문만은 아니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부터 과학의 수행방식을 바꿔놓은 대규모 연구센터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놀라운 발견들은 우리 삶과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