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간직하다’와 ‘유지하다’
‘보수’는 간직하다, 유지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conservare에서 유래했다. 파생어인 수호자conservator는 황제의 별칭으로 쓰였으며 14세기 이후에는 법과 재산을 보호하는 직위에 붙여졌다. conservator는 프랑스어conservateur에서 보호자 또는 보수주의의 의미가 되었고, 프랑스혁명 이후 혁명의 성과를 보호하는 정책을 표현하는 데도 쓰였다.
보수주의는 공화정이 왕정을 교체하는 국면에서 정치사회적 개념으로 부상했다. 1818년 프랑스에서 왕당파 기관지 《보수주의자》가 창간되어 자유주의에 대항하면서 프로그램을 갖춘 정치적 노선과 정당의 이름으로 쓰였다.
견고한 법적 질서 건설을 지향
프랑스어 conservateur는 영국으로 건너가 토리당원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용어가 되었으며, 보수당의 원칙은 전복적 원칙의 대항 개념이 되었다. 이어서 독일에서 보수는 영국의 당명으로 받아들여졌다가 1840년에 와서야 보수주의가 하나의 정치적 입장, 노선, 이데올로기, 정당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공인되기 시작했다.
1848혁명 이후에는 자유주의적 요소가 실현되면서 자유주의자의 보수화가 진행되었다. 이때 보수주의는 혁명을 경계하는 동시에 반동이나 복고와 확연히 거리를 두면서 견고한 법적 질서를 건설하는 것을 지향했다.
시대의 변화 전체에 저항
‘보수적’이라는 정치적 태도는 계몽주의, 자연권 사상, 인권론, 점진적인 공공성 확장, 계몽화된 정부의 실용적 개혁 등에 대한 반작용으로 드러났다. 보수주의는 모든 삶의 범위를 포괄하는 시대의 변화 전체에 대한 저항을 지향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소유나 삶과 관련된 일반적 국면들이 경제, 사회, 정치적 관계의 변화를 통해 위협받았다고 보고, 역사적 지속성 유지, 법의 엄수, 문화의 지속 등으로 자신들의 위기를 방어하려 했다. 보수주의는 과거의 지배형식을 재건하고 지배계급의 귀환을 통해 자신들의 역할을 되찾으려는 데 주력했다.
‘보수’의 문제, ‘무엇’을 지킬 것인가
독일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스스로를 보수주의라 칭하기를 꺼려했다. 너무 쉽게 비판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독일에서 보수주의는 자기표현과 상징어로 관철되지 못했다. 관건은 ‘무엇’을 지킬 것인가에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보존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고 비판 받았으며, 스스로도 ‘보수’해야 할 것을 구체화하며 내용을 채우는 일에 실패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