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계급의 두려움을 반영해온 ‘아나키’
‘아나키’의 어원이 된 고대 그리스어 “아나르키아”라는 말은 ‘지배자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지배자가 없는 세상이란 어떤 것일까. 권위와 위계가 없는 세상일까. 반대로 법과 질서가 무너지는 세상일까. 경험적으로든 이론적으로든 이 질문에는 여러 종류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담은 대답이 모두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 단어로부터 일차적으로 상상된 내용들이 “무질서”, “방종”, “불법(무법) 상태” 등 두려움과 공포가 기반이 된 ‘부정적’인 의미들 일색이라는 사실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단어의 의미가 결국 단어를 사용하는 주체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한다면, 이 단어는 실은 민중의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배계급의 두려움을 주로 반영해왔던 것이 아닐까.
플라톤, ‘아나키’를 ‘민주정’과 연결시켜 사고하다
일찍이 국가를 신체에 비유하면서 지배 계급을 인간의 머리 부분에 할당했던 플라톤이라면, 아나키에 대해 당연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플라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행보를 보여 흥미로운데, 그는 ‘아나키’를 ‘민주정’과 연결시켜 사고하는 패턴을 선보였다. 민주정 아래서 시민들의 영혼은 “나약해져서 약간의 의무라도 주고자 하면, 바로 싫어하고 참지 못”하며, 민주정이 지나쳐서 심지어 짐승조차도 “아나키”를 배울 정도라는 것이다.
프랑스혁명, ‘아나키’의 부적적 의미 희석시킨 분수령
그렇다면 플라톤 이래 ‘아나키’에 자동적으로 따라붙었던 부정적 의미들이 희석되고 전복되기 시작하는 것은 과연 언제부터일까. 여러 계기들이 있지만, 정치체제와 관련된 서구 용어들의 변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분수령은 역시 프랑스혁명이다. 혁명을 통해 강화된 아나키의 역동성은 말 그대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없앤다는 역사철학적 목표를 띠게 된다.
이 단어는 다른 무엇보다, 유럽의 혁명가들에게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영감과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는 ‘마니페스토manifesto’로 변신한다. 혁명을 통해 ‘아버지’를 추방한 이들의 형제애는 ‘연맹’, ‘분파’, ‘동지적 결사’의 형태로 자연히 옮겨갈 터였다. 물론 혁명 이후 반동과 반혁명은 어느 시기나 존재하는 것이어서, ‘아나키’도 한때 예전의 의미로 회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아나키는 정치체제를 넘어 철학, 과학, 종교, 예술, 문학, 경제학 등 수많은 근대의 개념적 영역으로 확장되어간다.